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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날개치는소리 원문보기 글쓴이: 이수환-관광4
2007. 5. 10(목) _ 7. 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층․3층 로비
*국립극장 전속단체로 활동했던 신협이 대구 피난시절 재공연한 <원술랑> 프로그램 표지. 1951년 1월 9일, 대구문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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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번호: 국립 2007-5-1호 | 발신일: 2007년 5월 4일(금) 문의: 국립극장 진흥팀 한정희(2280-4130, 011-324-2933) 자료는 기록이고, 삶이고, 미래이다
연극은 순간의 예술이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연극의 치명적인 결함이자 매력이다. 오로지 그 순간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만이 기억하고 공감하는 여운의 힘으로 연극은 과거를 갖는다.
그러나 과거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기록이 있다. 기록된 것은 과거에 실체를 부여하여, 비로소 살아있는 유기물로서의 역사를 완성시킨다.
대본, 사진, 포스터, 스케치, 도면, 소품, 영상물, 녹취록, 원고, 각종 유물…. 국립극단 57년의 역사를 이룬 1,000여 종의 기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빛바랜 사진과 인쇄물들을 통해 지나온 시간을 새롭게 발견한다. 노배우의 주름 뒤에 숨어 있던 눈부신 젊음의 한순간과 만난다. 연필로 밑줄 친 대본 한 귀퉁이에서 눈물과 땀방울의 흔적을 찾아낸다. 부민관-대구문화극장-시공관-명동국립극장-남산 국립극장 등 57년 동안 수없이 자리를 옮겨가면서도 연극의 불씨를 잃지 않았던 국립극단의 연대기를 통해 한국의 연극과 문화와 시대의 흐름을 읽는다.
역사가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않지만 역사를 딛고 일어설 때에만, 역사는 미래를 향한 길을 우리에게 조금씩 열어준다. 한국연극 탄생 100주년※을 한 해 앞둔 2007년 봄, <국립극단 57년>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다리를 밟게 된다.
※1908년 협률사 자리에 생긴 원각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신극(소설극)’으로 알려진 이인직의 <은세계>가 공연되었다. 이때부터 한국연극의 역사는 시작되어 2008년이면 100주년을 맞는다.
한국연극 57년, 국립극단 57년을 만난다
5월 10일~7월 1일, 두 달 동안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로비
사랑하는 이를 눈물로 보내는 예쁜 公主! 화랑 원술랑을 사모했든 것이 잘못일까? 아니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가 百年을 언약해놓은 또 한 송이 예쁜 꽃이 있었음을 몰랐든 것이 公主의 한이로다 1950.4. 국립극장 창립공연 - 1950년 4월 국립극단 창립공연 <원술랑>을 본 관객이 공주 역의 백성희에게 보낸 팬레터 -
매화 한 가지에 새봄 빛이 만연하오. 삼가 만복을 비옵니다. 새해 아침 월탄 박종화 배상 - 월탄 박종화 선생이 특유의 필체로 유치진 선생에게 보낸 친필 엽서 -
국립극단 제37회 공연 滿船 1964년 10만원 현상 희곡 당선작 천승세 작 최현민 연출 장종선 미술 3막6장, 요금 일반 80원 학생 50원 1964년 7월 1일~7일 국립극장 - 1964년 7월 신문에 게재된 <만선> 광고 -
연극 속에 등장하는 배우에 대한 팬들의 애정과 연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57년 전 제1회 국립극단 공연인 <원술랑>을 보고 그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 한 남성 관객은 극중 원술랑(김동원 역)의 약혼녀인 비운의 공주 역을 맡은 백성희에게 엽서를 보냈다. 스물여섯이었던 여배우는 83세가 된 지금까지 그 엽서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호방하기 그지없는 서체가 엽서 하나를 가득 채우는 월탄 박종화의 엽서에는 후배이지만 동랑 유치진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그대로 묻어 있다. 또 옛 신문광고에는 1964년 당시 관람 요금이 80원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국립극단이 탄생한 지 올해로 57년. 한국 현대연극의 주인공으로서 현대문화사를 함께 써 온 국립극단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엽서 한 장, 빛바랜 사진, 낡은 포스터 그림 등은 57년 된 극단과 배우들이 전해주는 생생한 삶의 흔적들로서 연극과 인생에 대한 이해와 깊은 감회를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국립극장(극장장 신선희)은 5월 10일부터 7월 1일까지 두 달가량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로비에서 특별기획《국립극단 57년》전시회를 갖는다. 2007년 봄 국립극장이 야심 차게 준비한 ‘청소년 공연예술제’와 때를 맞춰 진행되는 이 전시회에는 1950년 4월 29일 국립극장 창설과 함께 태어나 올해로 57년을 맞은 국립극단의 57년 간 쌓인 기록과 자료 10여 종 1,000여 점이 정리, 전시된다.
수많은 역사적 부침기를 통과하면서‘국립극단’이라는 정식 명칭으로 정착한 국립극단의 역사는 그 자체가 한국 현대연극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50년 유치진 작, 허석 연출로 <원술랑>을 창단 공연으로 올린 후 2008년 봄 이강백 작, 오태석 연출의 <황색여관>에 이르기까지 208회의 정기공연을 무대에 올렸고, 수많은 특별공연과 지방 및 해외 공연을 올려왔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극단 중 하나이자 유일한 국립 극단으로서 장민호(84), 백성희(83)와 같은 현존 최고령의 배우들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고, 수많은 명배우들의 산실로도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
국립극단은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알려져 있다. 국립극단의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적 정서를 재조명하는 일과 다름 아니다. 그러나 장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공연예술 자료들이 모두 남아 있지 않다. 사라지고 흩어지는 소중한 자료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 이번 전시회는 준비되었다.
《국립극단 57년》전은 국립극단의 역사를 명동에서 장충동으로 옮기게 된 1973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고, 다시 전기는 부민관 시절, 6.25전쟁으로 인한 대구 피난 시절, 시공관 시절, 명동국립극장 시절로 세분화해 모두 5기로 나눠 전시된다. 특히 기념비적인 작품이나 호평을 얻었던 작품 등을 중심으로 포스터, 프로그램, 대본, 무대디자인, 의상, 장신구, 사진 및 기타 유물 등의 자료들이 전시된다. 또한 국립극단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인 유치친, 이해랑, 김동원, 차범석, 허규, 이근삼 등 여섯 분들의 특별부스도 마련되어 고인들의 애장품을 비롯한 소중한 유물들이 함께 선보인다.
국립극장은《국립극단 57년》을 시작으로 2007년 하반기에는‘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9.7~10.28)과 함께《국립극장 57년》전시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 전시회들을 통해 2008년‘공연예술박물관’건립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한편《국립극단 57년》과 함께 해오름극장 2층 로비에서는‘2007 청소년공연예술제’에 참가하는 국내 단체들의 홍보관과 세계 각국에서 온 공연용품들의 전시관도 마련되어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공연문화를 두루 여행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가 될 것이다.
■ 7만 5천명의 관객 동원 기록하며 시작된 국립극단
1950년 4월 29일 국립극단의 창단과 함께 경성 부민관에 오른 작품은 유치진 작, 허석 연출의 <원술랑>이었고, 제2회 공연은 중국 작가 조우가 쓴 <뇌우>(유치진 연출)였다. 각각 5만과 7만5천이라는 초유의 관객을 동원한 이 연극들은 당시 서울 인구 40만 명으로 계산했을 때 오늘날 1천만 영화 관객과 맞먹는 놀라운 흥행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제3회 공연으로 <청춘의 윤리>(정비석 작)를 준비하던 중 극단이 창단된 지 57일 만에 6.25전쟁이 터져 대구로 피난을 가야했고, 대구 문화극장에서 피난기를 보냈다. 1957년 환도하여 명동 시공관을 거쳐 1974년부터 현재의 장충동으로 이전, 오늘날의 국립극단을 이루고 있다. 국립극단은 2007년 봄 <황색여관>(이강백 작, 오태석 연출)으로 모두 208회의 정기공연을 올렸고, 오는 6월 22일부터 29일까지 차범석 작 임영웅 연출의 <산불>을 올릴 예정이며, 가을에는 국가브랜드 공연 <태>와 세계명작무대 <햄릿>을 올릴 계획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제1회 공연인 <원술랑>의 공연 사진을 비롯해 제2회 <뇌우>의 포스터와 사진, 당시의 신문광고 등이 전시되며, 대구 문회극장 시절에 올린 <야화>의 사진 등 희귀한 자료들이 선보인다.
■ 1천여 점의 연극자료 전시, 제1회 <원술랑> 의상 그대로 복원
국립극단은 부민관에서 현재 장충동까지 모두 5번이나 극장을 바꿔야만 했다. 국립극장이 그동안 공연자료실을 통해 꾸준히 자료들을 수집, 보관해 왔으나 초장기의 자료들을 모두 찾아내기는 역부족. 그러다 2000년대 들어 국립극장 리모델링 작업을 시작할 무렵, 먼지투성이로 버려진 옛 자료들을 창고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이 자료들은 모두 1950년대 후반부터 1973년 전까지 명동극장에서 사용되었던 공연사진과 무대디자인, 의상디자인, 도면 등으로 당시의 작품을 선명하게 기록한 귀한 자료들이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 당시에 제작된 <원술랑> 무대의상 디자인, <딸들은 자유연애를 구가하다> 등 20여 작품의 공연미술 자료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자료들은 사진 170장, 포스터 170장, 프로그램 200부, 대본 170부, 소품인형 10개(꼭두각시, 홍동지 등), 소품가면 50개(봉산탈춤, 파우스트 등), 무대의상 50벌(햄릿, 파우스트, 이성계의 부동산, 태 등), 무대 미니어처 5개(산불 등) 등 다양한 자료 1천여 점인데, 특히 제1회 공연인 <원술랑>의 원술랑, 진달래, 공주 등 주인공의 의상을 옛 자료를 통해 그대로 복원해 전시한다.
■ 유치진․이해랑․김동원․차범석․허규․이근삼 특별 부스 마련
57년이라는 세월 동안 국립극단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인물 중 작고했지만 길이 기억될 예술가의 유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먼저 유치진(1905~1974, 극작가․제1대 국립극장장), 이해랑(1916~1989, 배우․연출가), 김동원(1916~2006, 배우), 차범석(1924~2006, 극작가), 허규(1934~2000, 연출가․전 국립극장장), 이근삼(1929~2003, 극작가) 여섯 분에 초점을 맞추었다.
유치진 선생의 반듯한 안경과 만연필과 육필원고, 이해랑 선생의 옛 사진과 노트, 김동원 선생의 유명한 <햄릿> 사진과 무대의상, 차범석 선생의 육필원고 및 자료, 허규 선생의 소리북 등 귀한 자료들이 전시된다. 이밖에 장민호, 백성희 원로단원을 비롯해 유민영(교수), 전세권(극단 신협 대표), 노경식(극작가) 등 많은 분들이 이번 전시회를 위해 귀중한 소장품들을 기증했다.
■ 아시아 각국 진귀한 공연용품과 악기도 함께 전시
《국립극단 57년》전시와 함께 해오름극장 2층에서는‘2007 국립극장 청소년 공연예술제’ 참가 단체 및 국립극장이 진행하고 있는‘2007 문화동반자’사업 참가국들의 다양한 전시품들이 함께 전시된다.‘청소년 공연예술제’참가단체들 중 6개 단체에서 해당 공연의 소품과 의상 등을 전시하는데, 특히 6월 29일부터 7월 1일까지 해오름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는 대만의‘당대전기극장’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오르기도 해 세계적인 호평을 받는 단체로, 공연시 사용해 온 각종 다양한 탈(가면)과 소품들을 전시해 눈길을 모은다. 한편 지난해 아시아 7개국이 참가해 좋은 반응을 얻은‘국립극장 문화동반자 사업’이 올해는 북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범위를 넓혀 인도, 몽골, 미얀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우즈벡, 튀니지, 이집트 등 8개국의 예술가와 무대 예술인들이 참가한다. 이들 나라에서도 각종 진귀한 공연예술품을 선보이는데, 몽골의 마두금, 덮쇼러 등의 악기와 전통의상, 인도의 전통의상 및 장신구, 타블라, 시타르, 하모늄, 반수리 등의 악기이집트의 도이라(타악기), 나이(피리), 말레이시아 게돔박(타악기) 등 8개국에서 온 다양한 전통악기와 의상, 소품 등 70여 종이 전시된다. 이 중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악기도 있어 교육적인 면에서도 큰 볼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국립극단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무대예술품을 통해 세계 공연계를 여행하는 진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국립극장의 새 프로젝트 - 공연예술박물관 건립
공연예술박물관은 공연예술계의 오래된 숙원 사업 중 하나이다. 민간단체에서도 몇 번이나 시도했고, 여러 번의 학술 세미나에서 그 당위성이 강조되었지만 실행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공연예술박물관은 그만큼 특수성이 요구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국립극장은‘공연예술박물관’설립을 목표로 2007년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2006년 7월 7일 공연예술박물관 현황과 전망에 대한 세미나 개최를 바탕으로 2007년에는‘공연예술자료관’팀을 발족했다. 2008년 7월 국립극장 별관 자리에 공연예술박물관 건립을 앞두고 첫 번째 행사로 이번《국립극단 57년》전시를 기획하게 되었고, 이어 하반기에는‘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과 함께《국립극장 57년》을 열 계획이다 The National Drama Company of Korea Since 1950
◎ 일 시 : 2007년 5월1일(화) ~ 7월1일(일) / 오후 1시~9시(월요일 문 열지 않음)
◎ 장 소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3층 로비
◎ 관람료 : 무료(티켓 소지하지 않은 사람도 가능)
◎ 문 의 : 2280-4115~6(국립극장 고객지원실)
◎《국립극장 57년》(3층)
Ⅰ. 제1기 - 부민관 시대(1950. 4~1950. 6.25전쟁) Ⅱ. 제2기 - 대구 문화극장 시대(1953~1957. 5) Ⅲ. 제3기 - 명동 시공관 시대(1957. 6. 환도 후~1959) Ⅳ. 제4기 - 명동 국립극장 시대(1962~1973) Ⅴ. 제5기 - 장충동 국립극장 시대(1973~현재)
*특별부스 / 유치진, 이해랑, 김동원, 차범석, 허규, 이근삼 6인전
◎《아시아의 향기》(2층)
- ‘2007 청소년 공연예술제’ 참가단체 홍보관 및 아시아 공연예술품 전시
1관 - 대만 ‘당대전기극장’ 상설 홍보관 2관 - ‘청소년공연예술제’ 참가단체 홍보관 3관 - ‘2007 국립극장 문화동반자’ 8개 참가국 악기 및 공연용품 전시관
<국립극단 57년> 전시 개막식
일시: 5월 10일(목) 오후 6시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3층 로비 문의: 2280-4120(공연예술자료관팀) 진행: 환영사/ 축사/ 내용:‘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준비위 발족’ 자료 기증자 감사패 증정(전세권, 강성희) 행사 후 국립창극단 창극 <청> 관람(7:30)
제1기_ 경성 부민관 시대(1950.4~1950.6.25전쟁)
- 1948년 8월 ‘국립극장’ 창설에 대한 대통령령 공포 - 1949년 10월 21일 국립극장 운영위원회 조직 - 초대 극장장으로 유치진 임명 - 국립극장을 1,997석의 경성 부민관(현, 시의회 의사당 건물 부지)으로 결정 - 전속배우를 두지 않고 산하극단 ‘신협’과 ‘극협’을 둠 (연중무휴 공연체제 방침)
◇ 창단공연 <원술랑> _ 유치진 작, 허석․이화삼 연출 민족 연극예술의 수립과 창조라는 국립극장 설립 취지에 맞춰 개관 기념작으로 오른 작품. 당시 약 5만 명 이상이 관람하여 신극 사상 최대 관객 동원이란 역사적 기록을 남겼다.
◇ 제2회 공연 <뇌우>_ 조우 작, 유치진 연출 “이 연극을 보지 않고는 문화인이라고 할 수 없다”. 1950년 6월 6일부터 15일까지 공연이었으나 매회 공연마다 대성황을 이루어 23일까지 연장공연. 부민관(현 시의회 의사당)의 북쪽은 광화문까지, 남쪽은 덕수궁까지 입장권을 사려는 관객이 장사진을 이뤄, 제1회 <원술랑>의 관객기록을 깨고, 서울 인구의 1/6정도인 약 7만5천명이 관람하여 한국연극 사상 최고의 관객수를 기록하였다. 당시 무대장치(비 오는 장면)를 맡은 강성범 은 이 작품으로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 제3회 공연 <청춘의 윤리>_ 정비석 작, 이광래 각색으로 준비하는 도중 6.25전쟁 발발
제2기_ 대구 국립극장 시대(1953.2~1957.5)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신협 국립극장 이탈 1952년 5월 14일 국립극장 대구 설치령(국무회의 의결) 1953년 2월 13일 문화극장을 접수, 대구 국립극장 개관 공연
◇ 개관공연 <야화> _ 원작 윤백남, 각색 하유상, 연출 서항석 피난 온 연극인들이 총출동하여 대구 국립극장 재개관 기념공연으로 <야화>를 올렸다. 김승호, 조미령, 서월향, 최은희, 이민자, 유계선, 주선태 등이 출연했다. <야화> 공연 이후 국립극장은 전속극단이 없었기 때문에 자체 공연은 갖지 못하고 대관 위주로 운영하게 된다.
제3기_ 명동 시공관 시대(1957.6~1961.12)
서울 중구 명동 54-1번지 1948년~1961년 서울시의 공관이었고, 1957년 6월 1일 이후 일부(3층)를 국립극장이 사용 1957년 환도 직후 전속단체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이해랑이 주도하던 ‘신협’과 이원경을 중심으로 한 ‘민극(民劇)’로 쌍두마차 체제로 만들었다. 1957년 11월 들어 ‘국립극단’ 이름으로 공연을 갖게 된다. 1958년 7월 31일 신협 단원들은 국립극장으로부터 이탈하여 재출발을 하게 된다.
◇ 환도 기념 공연 및 국립극단 제3회 공연 <신앙과 고향>_ 원작 카알 쉔헤르, 역 서항석, 연출 홍해성(1957.7.12~7.20)
◇ 제5회 <인생차압>_ 오영진 작, 이해랑 연출, 장민호․황정순․백암․박상익․나옥주 / 1957.10.30~11.5
◇ 희곡 현상 공모제- 제6회 공연 및 제1회 희곡현상공모 당선작 <딸들은 자유연애를 구가하다>(하유상 작, 박진 연출/ 1957.11.28~12.5) 제9회 공연 및 제1회 희곡현상공모제 가작 <가족>(이용찬 작/ 1958.4.29~5.4)
제4기_ 명동 국립극장 시대(1962.1~1973.9)
1961년 11월 7일 시공관을 전용극장으로 사용 1973년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옮겨가면서 대한투자금융(현 대한종금)이 매입, 사옥으로 사용 2003년 12월 문화관광부에서 매입, 옛 국립극장 복원사업 진행 중 극 실험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해이기도 했다. 또한 연기자를 지속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양성하여, 좋은 연기자를 국립극단으로 끌어오기 위해 각 대학 연극과나 연극반 졸업생들 중심의 대학원급 부설 ‘국립극단 부설 연기인 양성소’를 설치했다.
◇ 제29회 공연 <산불>_ 차범석 작, 이진순 연출 /1962.12.25-12.29 / 김금지, 백수련 등의 연기인 양성소의 신인들이 합류, 철저한 연습과 열연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이 작품부터 프롬프터 사용을 금지했다.
◇ 제37회 흰곡현상 당선작 <만선>_ 천승세 작, 최현민 연출 / 1964.7.1-7.7
◇ 명동시대 국립극단 창작극들 중 가장 호평을 받은 작품들 <순교자>(원작 김은국, 각색 김기팔, 연출 허규 / 1964.9.28~10.4) <북간도>(원작 안수길, 연출 이해랑 / 1968.3.1~3.7) <달집>(작 노경식, 연출 임영웅 / 1971.9.14~9.18)
제5기_ 남산 국립극장 시대(1973.10~ 현재)
1962년부터 1973년까지 약 11년 간의 명동 국립극장 시대를 마감하고 신축 남산 국립극장 건물로 이전한다. 1973년 10월 17일 개관공연 <성웅 이순신>으로 새로운 국립극장의 첫발을 내딛는다. 지금까지 부민관, 시공관은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건축된 극장이었지만,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민족문화의 요람으로서 국립극장을 갖게 되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1967년 10월12일 착공, 1973년 8월 26일 명동으로 장충동으로 이전 서울시 중구 장충동 2가 산14-67
◇ 남산 국립극장 개관기념공연 <성웅 이순신>_ 이재현 작, 허규 연출, 나영수 합창지휘 / 1973.10.17~28 국립극단 전원을 비롯해 발레단, 합창단까지 240여명이 출연한 초유의 거작. 회전무대와 좌우 이동무대 등 최신 무대 메커니즘을 활용하면서 공연예술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최신형 무대시설에 대한 기술적인 적응, 매머드급 무대를 소화해낼 수 있는 연기자들의 역량 등 대형무대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 제69회 정기공연 <남한산성>_ 김의경 작, 이진순 연출 / 1974.6.25~30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대하사극으로, 생동하는 극적 인물의 창조와 판소리 도입으로 주목받았다. 같은 해 10월 앙코르 공연, 1990년 국립극장 40돌 기념공연 및 제140회 공연으로 재공연된다. 제140회 공연 당시 남자배우들로만 구성하여 공연을 하는 이례적인 시도를 했다.
◇ 제69회 <파우스트> 괴테 원작, 박찬기 번역, 기징 연출 / 1984년 1984년에 들어서 주로 대형극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중 남산 국립극장 사상 최대 유료관객을 맞아들인 <괴테의 파우스트>는 한․독 수교 100주년 기념공연으로 이뤄지면서 독일 연출가 디터 기징과 의상 및 장치 디자이너, 음악가 등을 초빙, 독일연극의 무대기법과 고전의 현대적 연출 스타일을 접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40여 종의 무대장치 모형을 제작, 가설하는 등 국내 최초로 무대장치 리허설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하루 6시간씩 70일 동안 무대연습을 가져 국립극단 사상 최고로 연습을 많이 한 공연이었다.
◇ 제115회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어이> _ 최인훈 작, 김정옥 연출 / 1985.3.8~17 연출가 김정옥을 초빙, 국립극단 최초로 집단창작을 시도한 공연이었다. 1989년 제138회로 앙코르 공연.
◇ 제147회 <사로잡힌 영혼> _ 이상현 작, 김아라 연출 / 1991.6.14~6.23 국립극장 창작극 개발 91년 선정작. 조선후기 오원 장승업의 생애와 일행 그리고 기행을 그린 작품이다. 1992년 전국연극제 최우수상·연출상·연기상을 수상하였다.
◇ 제155회 <피고지고 피고지고> _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 / 1993.7.1~7.20 공연기간 연일 매진으로 10일간 연장공연이 이뤄질 만큼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은 1993년 국립극장 창작극개발작. 1994년 백상예술대상 수상작으로 L.A 공연, 같은 해 제160회 정기공연 및 국립극단 최고 흥행작 앙코르 공연, 1997년 제174회 정기공연 및 국립극단 '다시보고 싶은 연극시리즈’ 선정 공연, 2001년 제190회 정기공연 및 우수레퍼토리 공연으로 공연되었다.
◇ 제172회 공연 <태(胎)>_ 오태석 작․연출 / 1997.3.6~3.20 여러 번의 재해석 과정을 거쳐 1997년 제172회 공연으로 올려졌으며 2000년 국립극단 우수레퍼토리로 선정, 50주년 기념공연으로 올려졌다. 국립극단 국가브랜드 공연으로 2006년 올려졌고, 2007년 1월 제9회 인도 국제 연극제에 초청되어 델리와 콜카타 지역을 순회공연을 가진 바 있다.
◇ 세계명작무대 및 국립극단 제202회 <귀족놀이>_ 몰리에르 원작, 에릭 비니에 연출 2004.9.11-9.24 몰리에르의 <평민귀족(Le Bourgeois Gentilhomme)>을 프랑스 연출가와 스태프를 초빙하여 만든 작품. 2006년 6월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작으로 선정되어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같은 해 9월 20일부터 10월 7일까지 프랑스 파리 오페라 코믹 극장(Opéra Comique de Paris)과 프랑스 북서부의 브레스트 꺄르즈 극장(Le Quartze-Scene National de Brest)에서 총15회 공연을 가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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