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 동산 못잖은 매력눈 덮인 고요한 잣나무숲
잣나무숲에 송이눈이 내리고 있었다. 잣나무와 눈은 수도자와 침묵처럼 잘 어울렸다. 눈 쌓인 잣나무숲은 신성한 수도원마냥 고요해서 지나는 사람은 자기 내면을 돌아보게 되었다. 원래 있었던 풍경처럼 잣나무숲에 내리는 눈은 흠잡을 데 없이 경이로웠다. 명상에 잠긴 잣나무와 소리를 삼키는 눈은 감미롭게 서로에게 몰입하고 있었다.
서리산(832m)은 경기도 남양주시와 가평군의 경계에 있다. 능선을 따라 2.8㎞ 거리에 축령산(886m)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데, 서리산은 축령산에 등산 왔다가 들렸다 가는 산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럴 만한 것이 축령산 서쪽 남양주 방면에 축령산자연휴양림이 있어 산행이 편하고 서울에서의 접근도 더 쉽기 때문이다.
- ▲ 절고개에서 서리산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길. 뒤로 축령산이 힘 있는 산세를 과시하고 있다.
들머리인 행현리에는 행현천을 따라 인가와 팬션, 식당이 간간이 있다. 행현리의 전 이장이자 토박이인 최중선(77)씨는 "서리산은 참 부드러운 산이야"라며 운을 뗀다. 서리산의 산세를 보면 정상에서 북쪽이나 동쪽으로는 가혹하리만치 가파르지만, 유독 행현리가 있는 동쪽으로는 마치 다른 성격의 산처럼 부드러운 흐름이다.
서리산이 편애하는 행현리에서 산을 오른다. 마침 눈송이가 가라앉는다. 서리산과 축령산 등성이가 에워싸고 있어 햇골은 바람 한 점 없이 안정된 분위기다. 진공 상태에서 털이 내려앉는 것처럼 눈은 내린다기보다 가라앉는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고요를 깨는 건 개 소리다. 성심선원에서 키우는 개들이 낯선 사람 지나간다며, 밥값해보겠다고 부지런히 짖어댄다. 너른 임도라 눈발이 쌓여도 걷기는 편하다. 잣공장 삼거리를 지나 서리산에 다가간다. 서리산과 축령산에는 잣나무숲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토박이 최중선씨는 "80년 전 왜정시대에 심었다"며 "지금은 나무가 너무 크게 자라서 잣을 쉽게 따지 못할 지경"이라 한다. 현재 마을 영농회에서 매년 잣을 수확하고 있다.
이웃마을에서는 매년 소를 잡아 축령산 산신령에게 산제를 올리는데 "곗돈은 떼먹어도 산제는 지낼 정도로 엄하다"고 한다.
사방댐 공사 현장을 지나니 능선의 절고개다. 쉼터로 좋은 너른 사거리인 절고개에서 서리산 쪽으로 몇 발짝 가면 3m정도의 바위 사면에 고정로프가 있다. 위험하기보다는 놀이기구처럼 즐기며 지나는 구간이다. GPS로 확인한 절고개의 높이가 692m이니 정상까지 고도 140m를 높이면 된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마루금이지만 푹신한 흙이 깔려 있고 널찍해 기분 좋게 오른다. 한참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축령산이 육중한 덩치로 길게 앉아 있다. 흰 눈의 바탕에 마른 나무가 숲을 이루어 슬쩍 보면 호랑이 무늬 같다. 호랑이가 웅크려 앉아 잠을 자는 듯 범상치 않은 산세다.
시원하게 땀 빼고 오른 정상은 터가 완만해 탁 트인 경치는 없다. 북쪽 산등성이에는 나무데크를 만들어 둔 것이 보인다. 철쭉동산이다. 서리산은 등산인들에게 잣나무숲보다는 철쭉 명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겨울 심설 잣나무숲 산행도 철쭉 동산 못지않게 매력 있다.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하산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니지만 능선이 워낙 뚜렷해 걷기 수월하다.
임도를 따라 산을 내려선다. 싸륵싸륵 눈꽃이 쌓이고 산객들은 익숙한 웃음을 보이며 집으로 돌아간다.
산행 길잡이
산행은 수월하다. 절고개에서 서리산으로 이어진 1.6㎞ 오르막 능선을 제외하면 대부분 완만하다. 서리산 원점회귀산행(난이도: 별 다섯 개 기준 ★★)의 기점은 행현리다. 더 자세히 보면 히든밸리 차단기 앞에서 시작된다. 차로 행현천을 거슬러 오르면 히든밸리까지 갈 수 있다. 히든밸리 앞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들어야 하는데 차단기가 잠겨 있어 차량 통행은 여기까지다. 임도가 미로처럼 나 있어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지도를 가지고 진행 방향을 숙지하며 가야 한다.
절고개에서 왼쪽으로 가면 축령산 정상이고 오른편으로 가면 서리산 방향이다. 이정표가 있다. 정상에는 산불무인감시탑이 있으며 오른쪽의 내리막 능선으로 가야 한다. 정상 동쪽 능선을 따라 내려갈 때 헬기장 지나 만나는 갈림길에서 너른 직진길을 버리고 좁은 오른쪽 길을 따라가야 임도를 만난다. 갈림길에서 이정표의 '행현리마을회관 5.4㎞' 방향을 따라간다. 직진하다 삼거리에서 방향을 반대로 틀어 가면 잣공장에 닿는다. GPS로 확인한 서리산 행현리 원점회귀산행의 실주행 거리는 10.9㎞, 4시간 걸린다.
교통
청평에서 현리행 군내버스와 1일 12회(09:00, 10:20, 10:50, 11:20, 12:40, 13:20, 14:20, 15:30, 16:00, 16:30, 17:40, 18:30) 운행하는 아침고요수목원행 버스. 현리행 버스는 행현리 입구 37번 도로 세창슈퍼 앞 삼거리에서 하차해 3.3㎞를 걸어야 히든밸리 갈림길에 닿는다.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수목원행 버스는 37번 도로에서 행현리 마을 안쪽 700m 거리 옛골식당을 지난 마을비석 앞 삼거리에서 하차해야 한다.
숙식(지역번호 031)
37번 도로에서 산 입구로 이어진 행현천 임도의 식당과 숙소가 있다. 숙소는 펜션뷰(584-0533), 그린비(010-3605-3509), 독박골숯가마(031-585-8111), 솔향기별빛마을(010-3812-8112), 히든밸리(581-5807) 등이 있고 식당은 행현1리 입구의 또먹세(584-6190), 축령산(585-5203), 밤나무집(585-2247), 금강칼국수(584-5669) 식당이 있다.
볼거리
아침고요수목원: 축령산 자락의 사설 수목원(1544-6703)이다. 약 10만평 부지에 고향집정원, 허브정원, 능수정원, 분재정원, 등 13개의 테마정원으로 나뉘어 있다. 겨울에는 오후 5시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오색별빛정원전을 연다. 연중무휴이며 12~3월까지 입장료는 60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