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어스름한 새벽 6시 30분 소백산으로 향하는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필이면 올해 울산지역 고등학교 동문들의 첫 산행이 춥고도 추운 날, 높고도 높은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을 병풍처럼 둘러싼 소백산 눈꽃 산행이다.
우리 동문들은 5년 전부터 매월 마지막 토요일 산행을 실시하여 왔는데 올해 1년 동안 산행은 우리 동기생이 주관 기수이기에 자의반, 타의반 처음으로 산행에 동참하게 되었다.
40여명의 선후배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지난 추억을 나누는 사이 산행 출발점인 어의곡에 도착하였고, 시간과 초보 산행자를 위해 비교적 쉬운 코스 (어의곡 → 비로봉 → 천동마을)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추울 것이라 예상하여 옷을 단단히 입었는데 다행스럽게 바람이 불지 않았고, 산행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작은 행복은 등산 30분이 지나면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오를수록 기온이 떨어지고 눈이 무릎까지 차서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한걸음 오르면 반걸음은 미끄러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좀더 철처한 준비를 하지 않고 겨울 산을 오른 것이 후회가 되었다.
오를수록 천지가 온통 눈이다. 눈을 만끽하는 것은 잠시. 오르막 계단은 눈 덮여 보이질 않고 뿌두둑 뿌두둑 발걸음 재촉해 보지만 정말 힘든 산행이다.
일행 중 다리가 조금 불편하다는 동기와 함께 오르느라 맨 뒤에서 오르고 있는데 산 중턱쯤 다다르니 먼저 오른 동문들이 점심을 먹다 우리에게 좋은 자리를 양보해 준다.
우리도 준비해 온 도시락을 모두 풀어 놓으니 학창시절의 소풍을 연상케 하는 반찬이 푸짐하여 겨울의 눈 덮인 산에서 천상의 만찬이 따로 없다. 잠시 20여년 전이었던가 눈으로 라면을 끊여 먹었던 기억이 스친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오르기를 30여분, 두툼한 솜바지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스며 든다. 이제 정상이 멀지 않았나 보다.
추위와 바람과 사투를 벌이며 정상을 향해 어려운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소방헬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아니나 다를까 맨 뒤에 처져 있던 동기가 양쪽 다리 근육이 경직되어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어 119에 구조 요청을 했다고 급보가 들려오고, 15년 선배되시는 두분은 도저히 자신이 없어 되돌아 가셨다고 하니 이번 산행이 얼마나 고난의 행군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내려와서 알았지만 그 당시는 매우 심각하여 친구가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등산객3명과 함께 다리를 아무리 주물러도 효과가 없자 등산객이 119로 구조 요청했다나. 헬기가 오기까지 근육 완화제와 아스피린을 3알이나 먹여가며 응급초치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였다고 한다.
가끔 TV 뉴스로만 보던 구조 헬기와 등산객 이야기가 우리 일행에게 발생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두고두고 우리들의 이야기 꺼리가 될 것만 같다.
정상은 눈 앞에 바로 보이는데 소백산이 자랑하는 주목이나 에델바이스 (외솜다리)를 볼 수 있을 것이라던 생각은 아예 접어야 했다. 산등성이를 타고 미친듯이 불어대는 칼바람은 눈보라를 일으켜 앞을 볼 수 없었고 배낭에 담았던 온수마저 얼음덩어리가 되었다.
정상에 오르니 비로봉의 칼바람과 눈보라는 잠시 서 있는 것 조차 허락하지 않아 몸을 가눌 수 없고 둘러쓴 목도리 귀마개, 마스크는 영하 30도의 추위를 감당하 기는 역부족이었다. 우리 일행은 1분을 채 버티지 못하고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낼 엄두조차 못하고 기념촬영 한 두 컷이 전부였다.
하산은 끝없는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힘들게 내려 왔으나 멋진 자연 앞에 피로도 잊은 채 순간의 행복감을 느끼며 눈 구경을 한없이 했다.
하산을 완료하여 버스에 오르니 소방헬기를 탓던 친구가 다행히도 완전히 회복을 하여 우리 일행을 반긴다.
함께한 40명의 동문님들이 예상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모두들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풍기의 맛집 인삼 갈비탕과 하산주를 곁들이니 모두들 만면의 웃음으로 가득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아찔했던 친구의 헬기를 탄 무용담(?)을 듣는 것도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면서 몸은 천근만근이었으나 마음속으로는 이 겨울에 그래도 한건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정말 후회없는 칼바람의 진면모를 경험해 본 2013년 소백산 눈꽃 산행으로 기억되리라! [끝]
첫댓글 눈하며 경치는 좋았겠지만 연세도 생각해야제.....함튼 오래감만에 자네가 쓴 글 읽어 보네 그려...역시 ...
인자 나이는 못 속이겠다. 니도 내 나이 함 되봐라^^^
택시기사에게는 눈이안조은데,소백산설경은괜찮네,
택시 기사가 아니고 사장아이가? 정년도 없고...
소백산은 원래 바람이 마이 분다
강원도 선자령도 바람 카믄 알아주는 곳이지...
눈귀경 마이 했다니 다행이다
몸좀 풀었으니 밀양가면 펄펄 날겠네....
멋진 추억이다. 부럽다. 우리 선우회도 언제 한번 추억에 남을 만한 등산 한번 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