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의 <코다>
1. 영화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수상한 일본의 유명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2023년 4월 71세의 나이로 암으로 사망했다. 명필림에서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와 관련된 몇 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그 중에는 류이치 말년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코다>도 있다. <코다>는 암에 걸려 음악작업을 중단한 류이치가 가까운 영화감독의 제안으로 다시 음악작업을 시작하면서 달라진 음악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2018년에 발표된 다큐에는 암 발생이후 달라진 음악세계의 성격과 이전 류이치가 추구했던 작품들을 같이 만날 수 있다. 이 다큐에는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적 활동’에 진심으로 전념하는 한 사람의 열정과 용기가 정직하게 담겨있다.
2. 류이치 음악의 변화에는 ‘자연의 조율’이라는 개념이 핵심이었다. 듣기 좋고 이해하기 좋은 음악들을 그는 ‘인간의 조율’이라고 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소리가 아닌, 인간의 감각에 맞춰져 왜곡되고 변환된 소리들은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고 위로를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연 그대로의 소리는 아닌 것이다. 류이치는 ‘자연’의 원초적 소리를 찾아서 여행한다. 그가 여행을 통해 발견한 음악은 북극의 빙하가 내는 소리이며, 숲 속에서 뿜어나는 원초적 소리이기도 하고, 때론 마치 불협화음처럼 감각을 자극하고 파괴하는 기이한 소리이기도 하다. 그는 그것을 천천히 음악으로 전환시켜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암이 가져온 ‘죽음의 공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3. 류이치 음악은 ‘음악’ 그 자체의 순수한 추구만은 아니다. 20세기 말부터 관심을 갖게 된 환경과 평화에 대한 관심은 음악 또한 사회의 변화를 위한 하나의 축이 될 수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하는 작업이었다. 다큐의 배경으로 들려오는 그의 음악은 결코 따뜻하지만은 않다. 어쩌면 순수한 자연의 소리도,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변화도 결코 행복하지 않다. 음악은 이상을 추구하지만, 이상은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을 바탕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죽음은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다. 류이치는 몸의 쇠퇴 속에서 오히려 정신의 확장을 시도할 수 있는 자유와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되면 거칠고 때론 감각을 자극하는 소리의 의미를 수용할 수 있을 것같다.
4. 다큐는 고통을 극복하는 한 인간의 도전을 그리고 있지만, 또한 육체적 쇠퇴 속에서 무너져가는 인간의 실존적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 마지막 류이치는 작업에 집중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고백하면서 조금씩이라도 계속 피아노를 쳐야겠다고 말한다. 평안하고 따뜻한 표정이지만 오히려 그 담담함 때문에 그 속에 담겨있을 불안과 안타까움이 가슴 시리다. 그럼에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예술적 작업과 사회적 발언에서 도망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첫댓글 - 예술을 통한 삶의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