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는 날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1박2일 일정으로.
버스를 타면 차창을 내다보는 것이 취미.
바깥이 궁금해서 잠도 오지 않는다.
수십 번도 더 다닌 그 길인데 그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새로운 느낌.
몇 시간을 스캐닝해도 메모리에 저장되는 것을 별로 없다.
그래서 볼 때마다 즐거운가 보다.
오늘은 차창을 가리는 뿌연 김 때문에 볼 수가 없다.
통영에 도착하니, 주선한 여행사 직원이 마중인사를 한다.
“통영에는 벌써 봄이 왔습니다.
일년 중 가장 좋은 때가 지금입니다.”
목련은 벌써 져 땅에 떨어진 꽃잎 자국이 어수선하다.
언제 아름다운 적이 있었던가.
벚꽃은 일러 아니 피었고 동백은 한창이다.
가는 곳마다 동백이다.
바다 건너 한산도에도
세병관에도 지천에 동백이다.
달려 있는 꽃보다 떨어진 꽃이 더 붉다.
전혁림 미술관
연분홍 겹동백이 소담스런 꽃송이를 수북이 매단 채 입구에 서있다.
어디서 들었더라?
같이 간 진석에게 <잘라내기> 부탁.
그의 그림은 오방색과 통영 그 자체다.
93의 나이에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한다.
‘살아있는 화석’
그의 아들의 말이다.‘
'예술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터득하는 것이다’
그가 한 말이란다.
피카소가 그랬던 것처럼 초기에는 구상. 후기에는 추상.
프린트라도 하나 사올 걸.
청마문학관.
가장 좋아했고, 가장 많이 외우고 있는 시인.
‘동백꽃’ 시를 거기에서 찾았다.
뜰에는 동백꽃이 물론 만발해 있었고.
피빛이라고 했다. 피를 토하는 그리움이라고 했다.
미당과 송창식의 동백을 합쳤다고 할까.
그 시를 쓸 무렵 50대.
한 여자를 향한 짝사랑이 그랬던가 보다.
시 歸故 나오는 ‘우리집은 유약국’
그의 생가에는 아직도 현판이 달려 있다.
통영.
아담하고 아름다운 소도시.
바다가 있어서 활기가 두 배는 더 넘쳐 보인다.
앞바다를 채우고 있는 섬들.
그 섬이 비워 놓은 강같은 뱃길.
올망졸망한 언덕 위를 장식한 나직한 집들.
만을 휘돌아 저 쪽
섬이 될 뻔한 야트막한 산 위에 있는 예술회관.
세상에 이렇게 좋은 자리에 있다니.
윤이상
그를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그곳에서 열리고 있다.
사실 이 음악제를 보러 통영에 왔다.
그의 음악은 좋아하지 않지만
통영구경과 청마문학관 그리고 전혁림미술관 관람이 부추긴 셈.
<혼자서 고독씹기>를 바꾸어 진석이를 붙였다.
그가 더 좋아한다.
윤이상의 생가 근처에 표석만이 있고 기념관도 없다.
부지매입중이라고 한다.
청마와 전혁림과 나눈 편지가 그들의 전시관에 남아 있다.
시대와 불화하여
생전에 고향바다를 다시 못보고 간
비운의 거장이라고 안내원은 입이 닳는다.
예술회관 정원에서 만난 또 하나의 예술가.
시조시인 김상옥.
그의 시비를 만난 것은 뜻밖이다.
그의 시조 봉선화를 줄줄 외자 진석은 핀잔이다.
“그때 것을 안 버리고 있으니 지금 것이 맹탕이지”
맞는 말인데 녀석은 연신 셔터를 터뜨린다.
마지막 연주회가 일요일 밤 너무 늦게 끝나,
집에 돌아오니 밤 3시.
나 혼자 즐거웠던 만큼 미안함도 크네.
올 보다 더 봄 속으로 들어간 적이 또 있었던가
서울에도 곧,
개나리, 목련, 벚꽃이 한바탕 난리를 칠 태세고
뒤를 이어 단순한 듯 다양한 濃淡의 연두색이
느릿느릿 녹음으로 변해가고
절정이면 봄을 바라보는
내 조바심도 끝이겠다
첫댓글 친구야! 넘 멋지다. 정말 아름답구나 ...넌 언재나 그렇게 멋지게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저나 줘서 고맙다 .. 직지사 보살이랑 같이 갔다구 ...부러워...나두 끼워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