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을 걷는다. 2만5,000분의 1 지도에 한가닥 명주실처럼 가늘게 표시돼 있는 길. 안부를 묻듯 가끔씩 사람들이 찾아온다. 맑은 계곡물이 귀를 씻어주고 나무들이 뿜어내는 싱싱한 공기로 가득찬 길을 찾아간다. 인제 마장터 길과 영주 고치령 길.
▲마장터 길(강원 인제)
강원도 인제 용대리에서 설악산 미시령 쪽으로 가다보면 물굽이 계곡과 만난다. 미시령 북쪽의 신선봉(1204m)과 마산봉(1051m) 중간쯤에 위치한 계곡이다. 계곡 건너 숲속에 마장터 길이 놓여 있다. 고성이나 속초·양양에서 한양으로 가던 선비와 소금장수들로 번성했던 길이지만 지금은 옛길이 됐다.
옛길은 속도와 번잡함을 새길에 내어주고 고요를 받아들인다. 단풍나무와 자작나무, 굴참나무 사이마다 자리잡은 고요. 지천으로 핀 야생화는 나그네를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천남성, 방울꽃, 얼레지, 금낭화, 앵초…. 바람이 불 때마다 꽃이 흔들린다.
잡목숲을 벗어나면 낙엽송 지대가 시작된다. 한때는 화전민들이 살았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들을 몰아내고 낙엽송을 심었다. 마장터라는 이름은 샛령을 넘기 전 말에게 꼴을 먹이고 쉬어가던 곳이라고 해서 이름 붙었다. 낙엽송이 끝나는 지점에 무성한 억새밭이 있고, 억새밭 너머에는 투막집(통나무와 진흙으로 집을 짓고 억새로 지붕을 올린 집)이 있다. 그 집에 약초꾼인 정준기씨(63)가 산다. 봄에는 산나물을 캐고 여름에는 뱀을 잡아 판다. 가을에는 송이를 캐고 겨울에는 양양으로 가 쉰다.
길도 사람처럼 흥망과 성쇠를 거치는 모양. 연극평론가 안치운은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사라지면 길도 없어진다. 길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었고, 사람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마장터 길에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고, 길 역시 살아 있다.
▲고치령 길(경북 영주)
부석사 가는 길. 부석사 못 미쳐 좌석리 방면으로 좌회전 하면 고치령 길이다.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시작되는 숲길. 길은 승용차 두대가 비켜갈 수 있을 만큼 넓다. 길은 뱀처럼 구불거리며 하늘로 치솟는다. 낙엽송들이 겹쳐 있고 이깔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다. 고치령 정상(770m)까지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경사가 급해 제법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야 한다.
고치령 길은 비극이 묻어 있는 길이다. 세조의 동생이었던 금성대군이 이 길을 다니며 단종 복위운동을 벌이다 관노의 밀고로 실패했다. 복위운동이 실패한 후 단종은 영월에서, 금성대군은 안동에서 죽임을 당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정상에 태백산신과 소백산신을 모시던 서낭당이 있었지만 불에 타 없어졌다. 태백산신은 다름 아니라 단종이고 소백산신은 금성대군이다. 최근 서낭당을 다시 짓는 공사를 하고 있다. 정상에서 한숨을 돌리고 고개를 넘어간다. 고개를 넘으면 마락리 마을. 말이 떨어져 죽을 정도로 계곡이 깊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락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 넘어다녔다고 전한다. 당시에는 규모가 꽤 컸던 영주 부석장으로 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제 고치령 길은 원래의 기능을 내어주고 '걷는 사람'들을 위한 길이 됐다.
길을 내려와 떠올리는 프랑스 소설가 장 지오노의 말. '옛길이 지닌 인내와 겸손의 시간을 기억하라.' 길은 이렇듯 인내와 겸손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린다. 누군가의 발 아래 놓이면서 제 모습을 잃지 않는 길. 마장터와 고치령은 묵묵히 사람들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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