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문사의 겸손이 담긴 ‘댓글 미학’
- 최민호 선생 칼럼 소감 후기 -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매일 같이 수많은 댓글을 주고받는다
어느 낯선 길거리에서
낯모르는 이와 이처럼 살갑게 말을 걸고
정답게 인사를 주고받으랴.
언젠가 직장 동료들과 지리산 ‘첫 등산’을 갔다가
낯선 이들과 주고받았던 인사말이 잊히지 않는다.
모두가 낯설지만
오르는 이는 내려오는 이에게 축하를,
내려오는 이는 오르는 이에게 격려를 보내는
정다운 인사.
“수고하십니다.”
“안녕히 가세요”
집에 돌아와서도
그 따뜻한 사람들끼리 ‘마주침’과
인정 넘치는 ‘비껴감’ 인사 광경,
감동의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아
수필을 썼다.
그 수필은 1990년 11월 19일
KBS1 라디오 문학프로그램
『시와 수필과 음악과』에서 <등산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다.
다시 방송 녹음테이프를 들어보니
30년 전, 세상 무엇이든 아름답게 느끼고 싶었던
청춘 시절이었다.
어느덧 백발 할아버지가 되어
옛 수필 한 대목이 갑자기 떠오르는
까닭이 무엇인가.
최민호 선생의 페이스북 댓글 한 줄!
모처럼 멋과 풍류가 느껴지는
낯선 문사의 정겨운 댓글 한 줄이
내 30년 전 '추억의 수필' 한 대목을 소환한 것이다.
<윤승원 선생님.
저도 뵙지는 못했지만,
과찬의 말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세종에 살고 있지만, 저도
고향이 대전입니다.
언제 문향 그윽한 버드나무 아래서
속 들여다보이는 맑은 청주
한 잔 받고 싶습니다.>
▲ 최민호 선생 페이스북 댓글 캡처
◆ 관련 소감 :
윤승원 소감 / ‘인생의 고수高手’를 만나는 즐거움 (daum.net)
최민호 선생이 쓴 일간지 칼럼을 읽고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졸고 소감 댓글로 달았더니
내게 돌아온 답글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언제 문향 그윽한 버드나무 아래서
속 들여다보이는 맑은 청주 한 잔
받고 싶습니다.”
이러한 문장은 몇 가지 숨은 뜻이 있으니
그 깊이를 잘 살펴 읽어야 한다.
고전적인 문학평론가 식 해석도 굳이 필요하다면
수필문학인의 글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맑은 술 淸酒는 藥酒다.
처음 마주치는 등산객에게 정답게
‘수고하십니다’라고 던지는 인사말처럼
청주라는 따뜻한 술 이름에 정을 담았다.
진정한 '댓글 미학'은 그다음 문장에 담겼다.
가까운 사람끼리 흔히 오가는 인사말처럼
진부하게 “약주 한잔 대접하고 싶어요.”
“술 한잔 살게요.”라고 하지 않는다.
“맑은 청주 한 잔 받고 싶다.”라고 했다.
시문에 능한 문사의 어법이다.
일상의 멋을 평소 문장에 담아온 풍류객
특유의 언사다.
주는 게 아니라 ‘받고 싶다’라는 표현은
언뜻 ‘당신이 술을 사라’는 뜻 같지만,
아니다.
청산리 벽계수, 황진이가 울고 간다.
아니,
최민호 문필가의 댓글 한 줄에 옛 황진이가
옷고름 입에 물고 살포시 웃고 간다.
한 줄 댓글이 결코 가볍지 않다.
댓글도 예의다.
상대의 게시물을 깊이 살피지 않고 그저 형식적으로
달아주는 빈 껍데기나 풍선 같은 댓글과는
근본이 다르다.
정중한 예禮가 담겼다.
한국인의 예의에는 가장 핵심적인
가치가 ‘겸손’이다.
문사의 풍류 언사에도
겸손이 바탕을 이루니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격조가 느껴진다.
내가 소감을 썼던 그의 칼럼 메시지에도
결국 '겸손 실종시대'의 경종이었다.
고수나 호랑이들이 무서운 것은
그들이 지닌 겸허한 인품이다.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
앗, 이건 지난해 《월간문학》7월호에 실린
나의 졸고 수필 제목이 아닌가.
▲ 《월간문학》(2020.7월호)에 실린 나의 졸고 수필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 한 대목을 권갑하 시인(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이 붓으로 정성껏 써서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문사는,
귀한 술이니 ‘주는 것’이 아니라
‘받고 싶은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인품인가.
더 높은 격조는
‘문향 그윽한 버드나무’ 가지에 학처럼 앉아 있다.
'버드나무 아래'란 정을 주고받는 장소를 뜻한다.
'버들 류(柳)'자가 들어간
대전 유등천(柳等川)이 딱 어울리지만
거기가 아니라도 좋다.
문사가 가리키는 ‘버드나무 아래’는
멋과 맛이 어우러진 어느 맛집 풍경,
벌써부터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다.
‘대전수필문학회’ 글 마당 <수필예술> 카페에도
소개했더니, 어느 저명 여류 문사가 답글을 달았다.
“참 좋은 글을 읽는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딜레탕트, 늘 기억해야겠습니다^^*”
‘댓글’에는 ‘답글’이라는 예禮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주거니 받거니 소감 댓글은
나의 마지막 답글로 이렇게 끝을 맺는다
<좋은 글을 만나면 자극을 받고, 조금 있으면 즐거움이 됩니다.
고수들의 술자리에는 그래서 늘 글맛도 끼어들어 풍미를 더 합니다.
칼럼 필자 최민호 문사가
‘문향 그윽한 버드나무 아래에서 속 들여다보이는 청주 한 잔
받고 싶다’라고 하시네요.
야외 돗자리 깔아야겠습니다.>
2021. 04. 30.
윤승원 페북 댓글 감상 記
첫댓글 따뜻한 댓글 덕담도 공덕이지요.
지리산 토끼봉 아래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김밥 먹던 생각이 납니다.
따뜻한 댓글 격려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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