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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돈신해(圓頓信解)인 여실언교(如實言敎)가 항하사수(恒河沙數) 같으나63 사구(死句)라 하나니 학인으로 하여금 해애(解碍)64를 내게 함이다. 아울러 이 초심학자가 경절문활구(徑截門活句)에 능히 참상(參詳)65치 못하게 되는 고로 자성에 칭합(稱合)한 원담(圓談)으로 보여서66 그로 하여금 신해(信解)하여 퇴전(退轉)67치 못하게 한 연고이다.
선종의 교외별전인 경절문(徑截門)은 격량(格量)68을 초월하므로, 다못 교학자만 난신난입(難信難入)69할 뿐 아니라 또한 선종의 하근천식(下根淺識)70도 망연히 알지 못하느니라.
고로 이르기를 교외별전은 교승(敎乘)을 형출(逈出)한다71고 하니라.
대저 참학(參學)하는 자는 모름지기 활구를 참(參)할 것이요 사구(死句)를 참(參)하지 말지니, 활구 하에 천득(薦得)하면 영겁토록 불망(不忘)이요72 사구(死句) 하에 천득(薦得)하면 자구(自救)도 불료(不了)니라73.
圓頓信解인 如實言敎가 如恒河沙數나 謂之死句니 以令人으로 生解碍故라 並是爲初心學者於徑截門活句에 未能參詳故로 示以稱性圓談하야 令其信解不退轉故니라.
禪宗敎外別傳徑截門은 超越格量故로 非但敎學者難信難入이요 亦乃當宗의 不根淺識도 茫然不知니라.
故云 敎外別傳은 逈出敎乘이라 하니라.
夫參學者는 須參活句요 莫參死句니 活句下에 薦得하면 永劫不忘이요 死句不에 薦得하면 自救不了니라.
『看話決疑論』 (韓國佛敎全書4,p.733a;p.735b;p.736b;p.737a)
보조는 적후(寂後)에 발견된 그의 『간화결의』에서 돈오점수를 내용으로 하는 원돈신해(圓頓信解)는 전혀 지해(知解)이므로 사구(死句)라 규정하고 교외별전인 선종의 경절문(徑截門)은 활구라 결론하여 참학자(參學者)는 이언망해(離言忘解)하여 영겁불망(永劫不忘)하는 활구를 모름지기 참구하고 의언생해(依言生解)하여 자구불료(自救不了)하는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 것을 거듭거듭 말하였다.
선교(禪敎)를 혼동한 초년의 저술인『결사문』과『수심결』로써 돈오점수의 대종(大宗)으로 추앙되는 보조 자신도 만년에는 교외별전은 형출교승(逈出敎乘)이라 선설(宣說)하여 돈오점수를 지해(知解)인 사구(死句)임을 규정하고 선종의 경절문(徑截門) 활구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였거늘, 만약에 돈오점수를 선종이라고 다시 운위(云謂)한다면 이는 선종정전(禪宗正傳)의 반역일 뿐만 아니라 보조에 대하여도 몰이해한 어리석은 견해이다. 그러므로 교외별전인 달마아손(達磨兒孫)은 선문의 최대 금기인 하택·규봉의 지해종도(知解宗徒)가 되어서는 아니된다.
돈오점수를 내용으로 하는 해오(解悟)인 원돈신해(圓頓信解)가 선문의 최대의 금기인 지해(知解)임을 명지(明知)74하였으면 이를 완전히 포기함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므로 선문정전(禪門正傳)의 본분종사들은 추호의 지해(知解)도 이를 불조의 혜명을 단절하는 사지악해(邪知惡解)라 하여 철저히 배격할 뿐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지해(知解)를 권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조는 규봉의 해오사상을 지해(知解)라고 비판하면서도 『절요』,『원돈성불론』등에서 해오사상을 연연하여 버리지 못하고 항상 이를 고취하였다. 그러니 보조는 만년에 원돈해오(圓頓解悟)가 선문이 아님은 분명히 하였으나, 시종 원돈사상(圓頓思想)을 고수하였으니 보조는 선문의 표적75인 직지단전(直旨單傳)의 본분종사가 아니요, 그 사상의 주체는 화엄선이다.
선문은 증지(證智)임을 주장한 『결의론』의 결미(結尾)에서 교종의 원돈신해(圓頓信解)인 참의문(參意門)을 선양하였으니, 보조의 내교외선(內敎外禪)의 사상이 여기에서도 역연(歷然)하다.
강설
보조스님은 참 묘한 분이다. 원돈신해문이 선문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끝끝내 원돈신해문을 버리지 않으셨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스님으로 신라 때는 원효대사, 고려 때는 보조국사, 조선시대에는 서산대사를 꼽는다. 그러니 내가 보조스님의 돈오점수설을 비판하면 “어떻게든 내 조상의 훌륭한 점을 부각시켜야지 너는 왜 자꾸 잘못을 캐내려고 야단이냐?”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허나 내 조상이라고 그 과오까지 가리고 무조건 다른 분보다 훌륭하다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제 조상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진상을 밝혀 수정하고 따르지 않는 것이 후손된 도리이다.
보조 이후로 대선지식이 출현하지 못한 것은 보조스님의 『수심결』때문이다. 『수심결』의 돈오점수사상 때문에 지해의 병이 들어 선을 닦는다는 이들이 참공부를 못한 까닭이다. 지해의 병이 걸리면 바로 들어가려야 들어갈 수가 없다. 지해의 병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상을 배격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법을 깨트려 정법을 지키는 것, 사법을 깨트려 정법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 그것이 자비이자 불제자의 사명이다. 그러니 모든 이들이 존중하는 보조스님이라도 잘못된 사상은 배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63 “갠지스 강의 모래알같이 많으나”
64 알음알이의 장애.
65 참심(參尋),참구(參究)와 같은 뜻. 열심히 참구하여 깨닫는 것.
66 “자성과 합치하는 진리의 말을 보여주어”
67 물러남.
68 격식과 도량.
69 믿고 들어가기 어려움.
70 근기와 식견이 낮은 사람.
71 “교종을 멀리 벗어났다”
72 “살아있는 활구에서 깨치면 영겁토록 잃지 않고”
73 “죽어있는 사구에서 깨치면 자신마저도 구제하지 못한다”
74 분명하게 앎.
75 목표로 삼는 것. 표지로 삼는 표.
첫댓글 조상이 그저 단순한 조상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요. 그러나 萬代의 중생들이 의지해야 할 부처님 法에 있어서는 추호의 인정사정도 있을 수 없습니다. 正法의 門을 훼손한다면 조상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무엇이라도 가차 없는 비판과 책임 추궁 및 진실 규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