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혜는 원래 조용하고 평범한 주부였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있거나 또는 개성이 있어서 그녀와 결혼한 것이 아니다. 어떤 부분도 튀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여자였던 영혜에게 안정감을 느끼며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혜는 갑자기 냉장고에 있던 고기와 해산물을 죄다 꺼내서 버리기 시작한다. 너무나 평범한 여자로만 알았던 아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남편은 당황한다. 왜 그러냐며 영혜를 다그치지만, 영혜는 "꿈을 꿨어"라고 대답할 뿐이다.
남편은 영혜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한다. 하지만 그녀의 결정이 그저 개인적인 변덕으로 여겨져 처음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영혜가 채식을 선언한 이유는 꿈에서 본 끔찍한 환상 때문이다. 꿈 속에서 그녀는 피와 고기로 가득한 장면을 목격하고 그 충격으로 인해 고기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영혜의 채식 선언은 단순히 식습관의 변화에서 그치지 않았다. 영혜는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사회적 규범에 대해 저항한다. 출근하는 남편의 옷을 준비해두지 않고, 남편에게 해주는 밥도 자신과 같은 채식식단이다. 결국 남편과의 성적 관계에도 흥미를 잃고, 오직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영혜가 모든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는 점점 일상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영혜는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밖에 외출할 때도 브래지어 착용을 거부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산다. 심지어 남편 상사 부부와 동반 모임 자리에서도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채로 가고, 그 자리에서 고기를 거부하며 남편을 곤란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영혜의 남편은 영혜를 이해하려고 하기는 커녕, 영혜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영혜와 대화를 나눠보는 대신 영혜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영혜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토로할 뿐이다.
파국의 극단은 영혜의 가족모임에서 벌어진다. 영혜는 가족모임에서도 고기를 거부하는데, 가족들 모두 그녀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고기를 먹어보라며 권하기만 한다. 그 중,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을 가진 영혜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강제로 고기를 먹이려고 한다. 심지어 딸의 뺨을 때리고, 강제로 입을 벌려 고기를 밀어넣기까지 한다.
결국 폭력과 억압을 견디지 못한 영혜는, 자해를 한다. 이 사건으로 영혜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크게 망가져버린다.
그는 예술가이다. 비디오 아트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창작에 대한 영감을 잃어버리고,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는, 영감도 돈도 부족한 배고픈 예술가였다.
그러던 중, 아내(영혜의 언니)에게 영혜의 몽고반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상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은 영혜의 몽고반점은 형부에게는 신비하고 강렬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영혜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흑심을 품은 형부는 그녀에게 비디오 아트를 제안하며 자신만의 예술적 욕망을 투영하기 시작한다. 그는 그녀의 몸에 꽃무늬를 그려 넣고, 그것을 영상으로 기록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영혜는 형부의 제안을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그녀는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형부의 욕망을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어쩌면 형부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라고 믿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형부는 영혜의 몸에 꽃무늬를 그리면서 점점 더 그녀에게 집착하게 되고, 결국 둘 사이에 성적 관계가 이루어진다. 이는 형부가 아내와의 관계에서 공허함을 느끼던 형부의 욕망의 표출이자, 영혜의 혼란스러운 내면이 외적으로 표현되는 중요한 장면이다.
하지만 이 관계는 1부에 이어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진다. 영혜의 형부가 그녀와의 관계를 은밀히 유지하려고 하던 중, 인혜에게 이 사실이 발각된다. 인혜는 형부와 영혜의 관계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으며,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인혜는 결국 형부와 영혜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이제 영혜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이며, 점점 더 현실에서 멀어져간다. 인혜는 그녀를 돌보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녀는 자신의 신체가 나무로 변하고 있다는 환상을 가지며, 더 이상 인간적 욕망이나 관계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거의 음식을 먹지 않고, 의사소통을 최소화하며 점점 고립되어 간다.
인혜는 영혜를 돌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인혜는 결혼 생활이 지속되면서 점점 자신이 어떻게 억압받고 무감각해졌는지를 깨닫게 되고, 그동안 동생 영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특히,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되고 난 후 벌어진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인혜는 동생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왔음을 인지하게 된다.
이제 영혜는 인간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나고, 더 이상 인간적 삶을 유지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인혜에게 큰 충격을 주며, 인혜는 자신이 영혜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노력도 성과를 얻지 못한다. 결국 인혜는 동생을 구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게 된다. 영혜는 단순한 정신적 문제를 넘어서,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인혜는 가족과 사회, 그리고 자신을 향한 동생의 저항을 이해하면서도,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다.
사실 모두의 마음 속에 '영혜'가 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 억압을 거부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어렸을 적, 숙제를 하려고 앉았을 때 마침 어머니가 나타나 "숙제 안 하냐?"라고 말하면 하기 싫어졌던 것. 그게 우리의 본능이다. 누구에게도 통제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사실 누구나 가지고 있다.
결국 한 사람을 망가뜨리는 건 어떤 외부적 사고도 아닌,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다. 만약 누군가 한 명이라도 영혜를 인정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영혜의 자해는 제발 자신을 인정하고 내버려두라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 몸부림마저 봐주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과 다른 것들을 고립시켜버리고, 또 그를 향해 가한 폭력이 마침내 파국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