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19코스는 조천 만세동산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김녕 백년사에서 바닷가까지 내려가 끝났습니다. 쉬지않고 걸었지만 5시간 더 걸리는 18.8킬로 긴 거리죠. 바닷길을 걷다가 마을을 거쳐 중산간 곶자왈 숲길을 걷었지요. 직선거리로는 한두시간이면 갈 수 있는 길이지만 오솔길을 따라 걷는 길이었습니다. 올레길이 아니었다면 일생 발을 닿을 일이 없을텐데 고향의 세세한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항일운동이 조천땅에서 이루어진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골이지만 귀양온 선비들이 이쪽에 많이 살았기 때문에 의식이 깨어있었던 것이라 여겨집니다.
한라산이 비교적 깨끗하게 보입니다. 항일운동 기념관 경내에서...
돌담 위에 덩굴꽃이 씨를 터트려 하얀 솜꽃을 피워냈습니다. 억새도 씨눈 하나하나 자줏빛이다가 터트려 솜털을 날립니다...붉었던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있는 다양한 과정들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가을은 내부의 뭔가를 터트리지 않으면 안되는 계절인가 봅니다. 아주 떠나기 전에 비밀을 갖고 갈 수가 없어 시원히 터트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위의 무리를 크로즈엎 시켰습니다...저 가녀린 흰 손가락 같은 꽃잎이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않나요...
돌로 둥그렇게 쌓은 '불턱'은 해녀들의 탈의실이며 쉼터였지요...바다쪽으로 열리지 않고 반댓쪽으로 들어갑니다. 바닷쪽을 열면 너무 바람이 세기 때문이지요..이제 흔적처럼 귀통이가 무너진 채 잡풀이 무성해졌네요...해녀가 줄어들고 채취할 수 있는 곳도 줄어든 탓이겠지요..
해녀들이 불을 피우고 잠시 간식을 먹으며 쉬던 곳...투박한 사투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데 말입니다..
'갯강할'이라는 남국의 족속같은 식물이 어느 밭에 무성하네요...이 식물은 바닷가에서 많이 볼 수 있답니다..해풍에 강한 것 같아요..
가을 억새길을 앞서가는 우리 가족입니다..저는 두리번거리고 사진을 찍느라 늘 뒤쳐집니다...갈림길 헷갈릴 것 같은 곳에서는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제가 나타나면 또 앞에 걸어갑니다...우리는 함께지만 혼자의 정신적 공간을 존중해주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바닷가에도 이 꽃이 많이 피어있습니다. 이제 보랏빛이라 구절초는 아니라는 것을 알지요...쑥부쟁이인가..하고 생각하지만 또 자신이 없어집니다..'개미취'랑 구분이 단지 쑥부쟁이는 잎의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는데, 이 것은 매끈하여 '개미취'인가?...확신이 안 되네요. 어떻게 판단되시는지요? 이것은 바닷가에 많이 핀 것 입니다..
참 구절초, 개미취,쑥부쟁이는 닮은 꼴인데 구분이 안되면 그냥 '들국화'라 통칭한다네요...ㅎㅎ
신흥리의 샘입니다..용천수지요...귀한 식수였지만 지금은 올챙이들과 개구리들이 살고 있네요...샘을 길던 사람들도 끊기고 역사의 뒷페이지로 넘어가 사랑을 잃어버린 곳이네요...
참새들이 멀구슬나무에서 아침을 맞고 있습니다...가족들이 둘러앉아 아침 식사를 마쳤나봅니다...우리는 8시부터 걸었으니 벌써 1시간 이상 걸었네요...
담장위에 강아지풀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거립니다..담장너머는 동산이라 높은 곳으로 올라섰습니다..늘 무릎가에서 간질이면 손이 가서 목아지를 뚝 잘라 장난치게 만들잖아요...
억새는 하얗게 머리채 내두르는 때보다 자주빛 알알이 뭔가를 내보이려고 준비할 때가 이쁜 것 같습니다...아직 채 익지않은 풋 소녀같은 때 말입니다..꽃봉오리가 마음을 조아리 듯 억새도 어떤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겠지요...
콩 수확이 곧 이뤄지겠네요..
홍시가 빈 가지에서 가을 무드로 불을 켜고 있습니다...
함덕 해수욕장으로 걸어갑니다...우리도 깜짝 놀랄 정도로 관광빌딩들이 늘어섰습니다...시내만큼 땅값이 비싸다고하더군요...
함덕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서우봉'...그 입구쪽에서 자연정화 봉사가 한창이더군요...어디나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도 저렇게 고생하며 주변 정화에 애쓰시는 분이 계셔 넘 감사하더군요...지나가면서 큰 소리로 "수고하시네요~~'하고 인사했더니 "네에~~"하고 웃음으로 답해주셨답니다...
저 서우봉은 오늘 처음 올라가보니 함덕이 한눈에 보일 뿐만 아니라 일몰의 풍광 감상에 좋은 곳이더군요...나즈막해보이는데 꽤나 적요함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서우봉에서 함덕해수욕장 전경...
북촌 위령비...4.3사건 당시 민간인이 가장 많이 무차별 사살되었던 곳입니다...이 곳은 마을 전체가 같은 날 촛불 밝히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도 말합니다..,
방파제에 낚시하는 군상...
잎파리에 잔뜩 달린 것이 좁쌀입니다..,고개 속인 이삭에 꽃인지 열매인지 알알이 땀구멍에 박힌 것처럼 세포 하나하나에 뱉아놓은 알멩이...좁쌀. 저 이삭이 노랗게 보이는 것은 약조, 거므스름하게 보이는 것은 흐린 조.
문주란이 더러 피었습니다...누가 씨를 팍 뿌린 것일까요?
농부는 뒷짐지고 구경을 하고 있고 벼를 수확하는 것은 기계차네요...'산디'라고 불리우는 밭벼를 수확하고 있는데 한시간이면 이발을 끝낸 밭구르터기로 변할 겁니다...
김녕 '백년사'가 보이네요...길을 건너가 저 절을 끼고 바닷가로 내려갔습니다. 바닷가 회센터도 보였지만 쉬는 날이고 우리는 택시를 불러타고 동복리 해녀의 집으로 갔습니다. 와! 맛집이어서 만원입니다. '회국수' 1인당 7,000원짜리를 시켜 먹었는데 맛이 있더군요...쟁반냉면이나 춘천막국수와 비슷은 한데요... 커다란 접시에 상추썬 것, 회 썬 것 그리고 국수 를 삼등분해서 놓고 양념장을 둘렀습니다. 저도 첨 먹어보는 것이었는데 별미였답니다...
집에 돌아오니 오후 3시..다섯시간 바닷가로 숲길로 많이 바람 바람 쐬고 왔습니다...일주일에 한번씩 이 바람을 쐬다보니 바닷가에서 파도소리처럼 사람을 멍멍하게 하지만 잡다한 것들은 다 날라가는 것 같습니다.
"바다에 가면 파도가 소리쳐 운다. 그가 하도 울어 내 가슴이 멍멍해진다. 내가 파도에게 울며 말하려 했는데
파도가 너무 우는 통에 내가 하소연하려 했던 것을 잊어버렸다.
들판으로 가면 바람이 소리쳐 운다. 그가 하도 울어 내 가슴이 멍멍해진다. 내가 바람에게 소리쳐 말하려했는데
바람이 너무 큰 소리를 쳐 내가 하소연하려 했던 것을 잊어버렸다.
바다와 들판은 늘 나 보다 슬프다한다."
섬이 내게 전한 말...이라는 제목을 붙여 봅니다...(오늘의 메모)
(2011. 10. 2)
첫댓글 아주 좋으네.
아직 걸어 보지 못했지만 이걸 보니 걷고 싶어 지네
사진과 글 올려 줘서 고마워.
넘 좋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더니 정말 아기자기 정겹다.
빨리 걸어보고 싶은 길이다.
길은 어딜 걸어도 좋지만, 순국처럼 생각하고 기록하며 걷는다면 더 마음에 박힐 것 같다.
덛분에 좋은 추억을 미리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