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장현성(38)이란 이름은 아직 낯설다. 이름보다 드라마 속 캐릭터가 깊이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부모님전상서’에서는 듬직한 장남으로, ‘며느리 전성시대’에서는 부모의 반대로 헤어진 아내를 잊지 못하는 남자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지난해 ‘뉴하트’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지녔으면서도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의사 김태준을 연기해 주목 받았다. 지난 몇 년 간 조연배우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누빈 그를 만난 건 6월 초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 그는 5월 말부터 ‘연극열전’의 여섯 번째 작품이자 배우들의 인생이야기를 그린 2인극 ‘라이프 인 더 씨어터’의 ‘막내’로 살고 있다. “그동안 무대에 서고 싶었지만 스케줄이나 작품이 잘 맞지 않아서 주저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마침 ‘뉴하트’가 끝난 후 약간의 시간이 생긴데다 연출가와 ‘연극열전’ 프로그래머인 조재현 선배의 권유를 받아 무대에 복귀했죠. ‘라이프 인 더 씨어터’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저는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는 신출내기 배우 ‘막내’로 등장해요. 막내는 처음에는 같은 분장실을 쓰는 노배우의 잔소리를 받아주지만 점차 내리막길을 걷는 노배우의 말을 따르지 않게 되고, 급기야 영화에 출연하면서 스타가 돼요. 패기 넘치는 막내를 연기하면서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던 신인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배우가 배우를 연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그는 ‘라이프 인 더 씨어터’ 속에 있는 여섯 개의 극중극을 통해 막내가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을 표현해야 한다. “한번쯤 배우 역할을 맡아보고 싶었어요. 치열하게 준비하고 좌절하고 기뻐하는, 무대 뒤의 감춰진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배우 연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데 2인극이라 조금 힘들어요. 처음에는 2시간 내내 100m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 들었죠.” “공연을 할 때마다 떨리고 설렌다”는 장현성은 사실 95년부터 극단 학전 소속으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하면서 연기 내공을 쌓은 베테랑 배우. 설경구 황정민 조승우 등 학전 출신의 다른 배우보다 늦게 대중 앞에 섰지만, 7년 동안 ‘지하철 1호선’의 60여 개 배역 중 3개를 제외하고 다 해봤을 정도로 학전의 터줏대감이었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지난 2006년에는 3천회 기념공연에도 참여했다. “‘지하철 1호선’을 위해 먹고 자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하철 1호선’이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을 때였는데, 일주일에 한번 집에 들어가면서도 동료배우들과 밤낮으로 붙어다니면서 연기와 인생을 논했죠(웃음). 물론 저도 막내처럼 유명배우를 꿈꾼 적이 있어요. 같이 무대에 오르던 배우가 주목받고 활동영역을 넓히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저들처럼 되지 않을까’ 기대하곤 했죠.”
“연기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외판원 생활 한 적도 있지만 힘든 줄 몰랐어요” 서늘한 인상을 가진 그는 차분하고 깊이 있는 음성으로 이야기하다가도 종종 크게 웃고 농담도 했다. 끊어질 듯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다가도 기자와 거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친밀하게 다가왔다. 그는 그런 자신을 다중인격자라고 표현했다. “요 근래 드라마에서 반듯하거나 날이 선 연기를 하다보니 사람들이 실제로도 그런 줄 알아요. 하지만 친한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카리스마의 껍데기를 벗겨야 한다’고 말하죠(웃음). 그런데 인물을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이렇게 재단할 수 있을까요. 모두에게 추앙받는 사람도 범법자가 될 수 있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가슴 한곳에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을 수 있잖아요. 드라마니까 인물의 성격 중 한 부분만 부각시켰을 뿐 그게 실제 제 모습과 비슷하다, 다르다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는 처음부터 배우가 되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친구를 따라 서울예대에 갔다가 학생들의 연기에 빠져들어 연극과에 원서를 냈던 것. 하지만 입학 후에는 공부보다 예술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삭발하고 데모에 앞장서거나 총장실을 찾아가 불합리한 제도에 항의하기도 했다고.
“부모님은 연극하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저래가지고 사람 되겠나’ 하며 아예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으셨죠. 연출을 전공하다가 연기로 진로를 바꿨는데, 부모님은 연출가든 연기자든 그저 대학로 연극판을 기웃거리는 한심한 아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저 몰래 한번씩 공연을 보면서 내심 흐뭇해하셨고, 지금은 아들이 TV에 자주 나오니까 무척 좋아하세요.” 한때 그는 낮에는 차에 가전제품을 싣고 팔러 다니는 외판원으로, 밤에는 배우로 이중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달에 30만원을 벌면서도 부족하거나 생활이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고. 그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2001년 영화 ‘나비’를 통해서였다. 고아 출신의 택시운전사로 주목 받은 그는 이후 ‘베사메무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오로라공주’ ‘연애’ 등에 잇따라 캐스팅됐다. 그는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형사, 성매매 여인에게 쓰리썸(2대1섹스)을 제안하는 남자 등 비범한 캐릭터를 주로 맡았다. 출연한 영화 역시 흥행작보다 독립영화가 많다. 그런 그가 좀 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선 건 드라마 ‘부모님전상서’에 출연하면서부터. “사실 믿음직한 가장, 살가운 아빠 같은 캐릭터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해요. 이를테면 가족에게 훌륭한 아빠지만 사실은 외로운 사람, 그래서 매일 30분씩 가족 몰래 와인바에 가 여장을 하고 남자를 유혹하는 사람이 더 끌리죠. 그런데 드라마 ‘부모님전상서’에서 오랜 시간 믿음직스럽고 과묵한 장남을 연기하면서 삐딱이 장현성이 어느 정도 순해진 느낌이 들더라고요(웃음).” 이후 그는 ‘며느리전성시대’ ‘하얀거탑’ ‘뉴하트’ 등에 출연했고,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덕분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촬영이 없는 날에는 가족들과 공원에서 산책하고, 큰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데 그럴 때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반가워해요. 가끔씩 불편할 때도 있지만 고맙고 기분 좋은 일이죠.” 그는 얼마 전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내와 데이트를 할 때 통금시간을 늦춰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장인을 찾아갔다. 무릎을 꿇고 30분을 기다렸는데, 술이 얼큰하게 취한 장인이 대뜸 ‘니가 (우리 딸과 교제한다는) 그 놈이냐? 언제 결혼할 거냐?’며 물었고 그 뒤 결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장인이 내게 먼저 프러포즈를 한 셈인데, 그분이 바로 중견탤런트 양택조”라고 말했다.
“처음 양택조 선배님이 장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아내와는 같은 연극에 출연하면서 만났는데, 집이 가까워 바래다주다가 자연스레 연인으로 발전했어요. 포장마차에서 같이 술 마시고 공원에서 자전거 타면서 소박하게 데이트를 즐겼는데,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 출연료로 막창구이를 사준 기억이 나요(웃음).” 7년 전 연극배우 출신인 양희정씨(36)와 결혼한 그는 여섯 살배기 아들 준우, 돌을 앞둔 둘째 아들 준서를 두고 있다. “연극배우치고는 수입이 괜찮은 편이었지만 살림을 꾸리기엔 많이 부족했어요. 아내에게 ‘한 달에 백만원 정도 벌 수 있는데 결혼할 수 있냐’고 물으니 ‘그 돈이면 의식주 해결은 물론이고 저축까지 할 수 있다’고 답했는데 정말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줬어요. 두 아이가 생기니 책임감이 더 커지면서도 행복하고 든든해요. 바람이 있다면 연기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되, 책임감 때문에 원치 않는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 거예요.” 그는 두 아들에게 친구 같은 아빠라고 한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하는데, 준우는 아빠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믿는다고 한다. 작품을 시작하면 3~4일에 한 번 집에 들어가기 일쑤지만 잠시라도 틈을 내 함께 축구를 하거나 공연을 보면서 아이와 추억을 만든다고.
배우생활 잘 알기에 언제나 든든한 힘이 돼 주는 아내와 장인 양택조 그에게 “연극배우 출신인 아내와 장인어른에게 도움을 받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배우 집안이긴 하지만 모니터링을 해주거나 대사를 맞춰주는 일은 없다고. “배우로서의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여느 장인과 사위처럼 지내요. 3년 전 장인께서 간암 판정을 받아 간이식 수술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제게 ‘아들 노릇을 톡톡히 했다며?’ 하고 묻더라고요. 장인이 아픈데 병문안 가지 않는 사위가 있나요. 오며 가며 문안 인사를 드렸을 뿐인데 ‘효심 가득한 배우’라는 말을 들어서 부담스러웠어요. 장인은 가족이기 전에 선배 연기자로서 존경해요. 단역배우부터 시작해 중견 연기자로 인정받기까지 배우로서, 가장으로서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잘 알기에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딸 욕심이 있다는 그는 둘째가 어느 정도 자란 뒤 셋째를 가질 계획이라고 한다. 아내가 육아 부담에서 벗어나면 다시 배우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라고. 장현성은 요즘도 하루 6시간 이상 공연 준비를 한다. 데뷔 후 촬영장에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다는 그는 늘 공연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연습을 한다고 한다. “한 신문에서 일흔이 넘은 바이올리니스트를 인터뷰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습실에서 쉴 새 없이 연습하기에 기자가 ‘아직도 그렇게 연습하세요?’하고 물었더니 ‘아주 조금씩 느는 것 같아서요…’ 하고 수줍게 답하더래요. 그분의 말을 빌리자면 저도 미흡하게나마 연기가 느는 것 같아요(웃음).” 그는 마지막으로 30여 년 뒤 다시 ‘라이프 인 더 씨어터’에 출연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때는 선배 역을 맡고 싶어요. 극 후반부에 선배가 분장실을 정리하는 장면이 있는데, 비록 한평생 배우로 살면서 제대로 된 성공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분장실이 얼마나 소중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까지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 배우, 신념과 소신을 지키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글·김수정 기자/사진·조영철 기자, 페퍼민트 느낌 제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