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첫 급행을 타야 하므로
일찌감치 , 약 20 분전에 구로역에서 급행을 기다렸습니다.
무르익은 가을!
긴 끈의 가방엔 점심과 물과 사진기와 핸펀과 한권의 책등등을 챙겨 넣었으므로
제 비쩍 마른 어깨가 무척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오랜만에 홀로 ,
그것도 긴시간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하는 유구행은 괜시리 설레였습니다.
구로에서 급행 전철을 타고 두어 정거장 쯤 갔을 때
한 흑인 여성이 두 아들을 데리고 탔습니다.
큰 아이는 우리 나이로 약 5 살쯤
작은 아이는 3 살쯤 되어 보였습니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자리가 비어있지 않았으므로
그 여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서서 가야 하는 상황인데
갑자기 내 오른쪽 여인(40대 중반쯤) 여인이 자리를 양보하였고,
뒤이어 그 옆에 여인도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엇습니다.
그리하여 그 작은 아기를 안은 흑인 여인이 내 바로 오른 쪽 옆에 앉게 되었습니다.
나는 평택이나 오산에 미군기지애 근무하는 가족인가보다 생각하고 그곳에서 내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여인과 그 아기는 그곳을 다 지나치고 천안까지 쭈욱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난생 처음 코 앞에서 흑인 아기를 오랜 시간 바라보며 함께 가게 된것입니다.
가까이 보니 그 살결이 얼마나 고운지,
마치 펄을 발라 놓은 것처럼 반짝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얼굴의 이목구비가 얼마나 뚜렷하고 완벽하던지 ,
우리 한국인이 흐멀건한 ,
말하자면 그림을 그려 놓앗을때 가상자리가 명료하지 않은 그런 그림의 느낌이라면
그아기는 아주 실선으로 또렷하게 윤곽을 그린 것같은 시원함 같은 것,
흑백사진 보다가 칼라 사진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가 연신 소리를 지르는데 " 기차! 기차!" 라고 소리르 지르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우렁차던지,
현존하는 지구상의 동물 중에 가장 진화가 많이 된 동물이 이아이와 같은 흑인이겠구나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아기엄마에게 말을 붙여보니 한국말을 제법 잘하는 것을 보니
우리 나라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온 거 같았습니다.
바로 이 아기 입니다.
이름이 뭐냐고 하니깐,
뭐라고 얘기를 하는데 도저히 따라 할수가 없었습니다.
약 22 개월쯤 되었다고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시기 이랍니다.
얘쁘다고 하니깐 눈을 깜으며 이쁜짓을 하는데 정말 귀여웠습니다.
그 아기 일행과 나도 천안역에서 내리고 눈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온양역에서 유구행 버스를 기다리는 버스정류장!
모두가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쓸쓸한 가을날!
그 노인분들도 인생에 가을쯤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저 한평생 숙명처럼 농사만 지어오셨을 분들!
그리고 유구행 버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운수 좋게도 또 내 옆자리에 아기 엄마가 아기를 안고 앉는 겁니다.
기침이 심하여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랍니다.
이름은 최누리랍니다.
이아기도 얼굴도 잘 생기고 순한 걸보니
이녀석도 서진이처럼 씩씩하고 딥따 귀여운 어린이로 자랄 거 같습니다.
아기 엄마는 동남아에서 시집 온 여인이었습니다.
버스에 온통 노인들만 그득한데 먼 나라에서 온 여인이 아기를 타고 버스를 타주니
분위기가 확 달라지니 정말 고마운 존재입니다.
그렇게 먼길을 ,긴 시간에 걸쳐 유구에 도착하엿습니다.
두 아기 옆에 앉아 가던 그날은 정말 운수 좋은 날이었던거 같습니다.
첫댓글 기차안에서 보았던 아기는 호주원주민으로 영적으로 진화된 참사랑 부족과 닮았고 -이목구비가 크고 순한- 버스에서 본 아기는 듬직하니 정말 장군감이네요....내가 유구에서 살았을 적엔 온양터미널에서 유구가는 완행버스를 탔었는데 지금은 시내버스처럼 다니는 구만요. 그 땐 (1981년~1983년) 비포장이라 먼지날렸는데 지금은 다 포장되어 길이 미끈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