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나 아쉬람에서 매일 열리는 명상 시간은 최소한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명상 리더는 참가자들에게 자기의 경험을 공식석상에서는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명상이라도 경험은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에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겐
다른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같은 명상을 하더라도 그 경험은 천차만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쇼는 아예 자신의 명상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금지시켰다.
두 번째는 명상 리더에게 어떠한 권위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비파사나 시간엔 삼십 년 된 올드 산야신이 진행을 한다.
다음날엔 오쇼 책이라곤 몇 권 읽지도 않았지만 거금을 들여 명상 트레이너 코스를 마악 마친 스무 살의 코찔찔이가 대인공포증과 경험 미숙으로 인해 다소간 겁먹은 목소리로 세계 각국의 인간들 앞에서 명상을 진행한다.
이것은 실로 진풍경이다.
그러니까 다른 명상 단체에서는 거의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권위 놀음도, 모든 종류의 에고 게임을 무효화시키고자 했던 오쇼의 현명한
계책이다.
덕분에 오쇼가 죽은 지 십 칠년이나 되었지만 아쉬람은 별다른 문제없이 성황중이다.
어떤 이인자 다툼도, 리더들끼리 공공연한 세모으기 같은 것은 전혀 없이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이다.
현실에선 이와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다이나믹 명상을 하루에 다섯 번이나 하는 미친 놈도 있다.
그는 말하길, 대부분 힘들어하는 다이나믹 명상을 다섯 번이나 하는 나를 보아라,
나는 그 비법을 알고 있다, 다이나믹 명상을 쉽게 하는 요령을 알려 줄 수 있다,
나에게 와라, 하면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자신만의 명상 모임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코메디다.
그는 심지어 오쇼의 어떤 깨달은 제자가 다이나믹 명상을 그만 두라고 말했지만
오 일도 안 되어 예전으로 돌아갔다.
코메디가 아니라 비극이다.
그는 어느덧 다이나믹 명상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사람은 명상의 대가 내지 권위자가 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으나 다이나믹 명상이 만든 최악의 샘플일 것이다.
다른 예도 있다. 한 다이나믹 명상 지상주의자는 결혼하자마자 곧 남편에게 다이나믹 명상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남편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남편도 머리가 굵은 어른이다. 그 강요가 얼마나 오래가겠는가?
결국 두 사람은 피 터지는 시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요란한 불협화음을 내며 서로의 인연을 정리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두 사람에겐 명상의 노예이자 환자라는 사실 이외에 또 다른 공통분모가 있다.
그것은 바로 양자 공히 자기만의 그룹이나 추종자를 만들어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경험이 생기면 반드시 세를 모으려 한다는 것,
이것이 보통 명상인들이 곧잘 빠지게 되는 정규 코스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리더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실은 구루가 되고자 하는 열망의 다른 표현이다.
내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명상 센터의 센터장들이나, 온갖 테라피와 명상 자격증을 주렁주렁 매달고 이리저리 활동하는 모든 리더들은 실은 의사擬似 구루 체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내면 깊은 중심은 여전히 비어 있으며, 취약하고 공허하며, 메워져야 하는 무엇이며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리더라는 역할을 매개로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의사 구루체험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단지 주관적인 생각일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깨끗하게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이다.
내면의 중심을 체험 한자는, 존재의 공함을 맛본 자는, 그는 실로 침묵일 뿐이며 어떤 것도 행하지 않으며, 순수한 의식 그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수리새 날아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것도 죄가 되는가!
그의 의식은 바로 그것일 터이다. 어떤 구름이나 어떤 바람으로도 가려지지 않고 동요되지 않는 텅빈 영원의 푸른 하늘.
그런데 지금 나는 단지 문제의 일면만을 말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올바르게 말해서 테라피스트나 센터장이나 그룹 명상 리더들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식들이다.
어머니는 사랑을 베풀고 아버지는 권위와 숙련된 경험을 통해 조직을 통솔한다.
그러니까 리더들이 하는 게 바로 그런 거다.
다른 말로, 즉 좋은 말로는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처럼 사랑의 존재들이며, 무언가 좋은 것을 나눠주고 싶어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또 그들은 다른 한편에서는 효과적인 규율과 터득한 지식을 전수해주는 자들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들은 보통 어머니적인 사람들과 아버지적인 사람들 두 가지 유형, 권위주의적 유형과 헌신이나 포용 중심의 유형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이 두 가지가 다같이 섞여 있는 것이며 또 참을 수 없는 구루에 대한 열망도 같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이성이나 성에 대한 깊은 욕망이다. 이것은 명상인들 뿐만 아니라 인간인 이상, 남자와 여자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포괄적으로 얘기하면 그러한 행위들은 일종의 보시 행위이자 자기 공부를 위한 하나의 장치, 계기가 된다. 대개는 열거한 것들이 다 같이 얽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저번 산행 후 뒷풀이나 사석에서 얘기한 바도 있지만 두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어머니의 자식들인 우리들은 무언가를 나눠주고 싶어하는 존재들이다.
그럼 그들에게 나눔의 공간과 시간을 주라.
내 말은 이런 것이다.
명상 경력 십 년 이상된 사람들은 무언가 자기만의 특기나 비법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나누게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명상 십팔 년차 모크샤는 하루에 세 시간씩 명상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만이 알고 있는 명상 노하우라든가, 비법이 있다.
그것들을 나누게 하는 것이다.
혹은 누군가는 건강법이나 조리법, 질병 치료 기타 등등에 있어서 그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센터에서 한번쯤 날을 잡아 그들의 살아있는 경험과 지혜와 노하우를 주고 받는 그런 종합 이벤트를 열면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눈다는 행위 속에는 나눠주는 자 스스로가 관계를 통해 배운다는 행위를 함축하고 있다. 서로간에 공평한 것이다. 또, 누군가 길에 들어선 자가 더 높은 다음의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그의 자리에 와야 한다, 이것은 영적 진화에 있어서의 절대불변의 철칙이다, 라는 구르지예프의 말이 있다. 보시 행위의 이러한 영적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한결 이러한 이벤트의 보이지 않는 효과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구루 테라피>를 해보는 것이다.
구루 테라피라?
이것은 내가 <가족 세우기> 프로그램을 참가하고 관찰하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가족 세우기>도 중요하지만 일단 명상에 발을 담군 뒤에야 대부분은 구루병에 직면하게 된다.
모든 테라피스트나 센터장, 그룹 리더는 물론이고 어지간히 명상하는 인간들에 속한다면 반드시, 공공연하든 깊이 무의식적이든 이 구루 콤플렉스라든가 마스터 집착증에 걸리게 마련이다. 일반인에겐 찾아볼 수 없으며 단지 명상 수행판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 질병이다.
그러므로 이 구루 테라피는 마음 깊은 곳에 숨겨 둔 골칫거리나 무의식의 끈질기고도 애타는 열망을 공개화하는 작업, 자기 자신을 새롭게 즐기는 작업이 될 것이다.
ㅎㅎㅎㅎ
재밌지 않은가?
이것은 어쩌면 세계 최초의 시도가 될지도 모른다.
오쇼는 매우 현명했지만 죽기 전에 좋은 <구루 테라피>를 하나 만들어 주었다면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는데..ㅎㅎㅎㅎ
나의 기본적인 구상은 이렇다.
가족세우기에서 부모와 형제, 친척이 중요하다.
구루 세라피에서는 아마도 오쇼나 혹은 그에 준하는 구루, 그를 추종하는 남자 헌신자와
그의 제자 겸 애인인 여자 헌신자. 그리고 오쇼나 구루에 대한 분명한 반대자 및 제3의 관망자 등으로 기본 인원을 구성한다.
그리고 나 자신이 구루가 되어 본다는가 상황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해본다든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구상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여러 가지 모의 실험이나
데이터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재밌는 일이지 않을까?
당신들이 보기에 무슨무슨 명상이나 테라피가 그리도 중요하고 대단해 보이는가?
한마디로
그것들은 다 사기다. 종이로 만든 돈이며 장난감인 것이다.
아니 그렇게 말한다면 너무 심각한 것이다.
그냥 즐겨라.
어린애는 딱치치기를 하고 큰 애는 연예인이나 따라다니지만 어른인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당신도 어쨌든 당신에게 맞는 어떤 놀이라든지 장난감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명상, 테라피, 그룹 요법 기타 등등.
언젠가는 당신이 때려치울 그런 장난감들이다.
그래도 그것들 가지고 놀 때는 잼나게 놀아야지.
그러므로 나도 이런 제안을 해보는 것이다.
돌아가면 <명상 속의 명상,--->이라는 제목을 이 글에 달았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일반화되지는 않는 어떤 명상법을 오래동안 수련한 결과
자기에게 정말 잘 맞는 명상법으로 바꾼 것이다.
오랜 경험에서 생긴 어떤 결과물로서의
명상 속의 명상. 그 자신의 경험적 체득과 명상적 지혜로 잘 가다듬어지고
그 깊은 의미가 많이 많이 해독된 것으로서의 어떤 명상법.
두번째는
바팍 수부가 발명한 <라티한 명상>처럼 우연히 발견해 낸 것.
사실 이 라티한 명상은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니라고 한다.
오쇼는 이것을 <사아지 요가>라고도 하는데 동양식으로 말하면 자발동공 쯤 되겠다.
라티한 에너지는 내가 보는 견지로는 프라나와 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라티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당신들도 목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 중 대부분은 이 라티한 에너지나 프라나 에너지를 쿤달리니 에너지 현상과
혼돈하거나 착각하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쿤달리니가 일어났다고 하는 백 명 중의 아흔 아홉 명은 실은 이 라티한 에너지가
일어난 경우라고 생각된다. 쿤달리니는 라티한이나 프라나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누군가 명상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알게 되는 어떤 요령이나 통로, 비법등이 있다.
이런 것은 공개된다면 공개자와 받는 자 모두 이득이 될 것이다.
세 번째 <명상 속의 명상>은 누군가가 그의 전생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이것은 전생에 강렬한 수행을 한 바 있는 명상인이라면 어느날인가는 반드시
알게 되는 그런 명상법이다.
누군가 제대로 수행 작업을 했다면 그것은 그의 덧없는 육체 이외의 또 다른 신체 어딘가에 저장되기 마련이다. 그의 영혼의 깊은 심저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또다른 현생에서 조건과 시절인연이 무르익은 경우에는 반드시 그의 의식의 수면으로 부상하게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티베탄 펄싱 요가를 확립한 산탐 디라지가 되겠다.
전생으로부터 물려받은 명상 유산들은 한층 비의적일지도 모르며, 시공간의 거리를 좁히고 해석과 적용상의 좀더 정밀한 고려가 필요하겠지만
이 또한 서로가 나눌 수 있는 부분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나눈 뒤 우리는 또 <구루 테라피>같은 것을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심각한 건 아무 것도 없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모든 상황을 즐기자, 뛰어들자,
그런 것이다.
기러기 날아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것이 무슨 죄가 되련만
그렇다고 맨날 빈둥빈둥거리거나 적당히 해치우면서 자기 변명으로 일관한다면
그에게 무슨 일이 있겠는가 말이다.
병은 쇠털같고 약은 태산같다만
이 약 저 약 먹어보지도 않고서는 어찌 그렇게 말할 수 있으랴.
ㅎㅎㅎㅎ
헛소리도 자꾸 하려니 심심하구나.
합장.
나무그대로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