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대한항공 … 유상증자 안하면 채권 줄줄이 디폴트
- 유동성 2조 확보 추진…유증ㆍABS발행ㆍ에쓰오일 지분매각
(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정원 기자 / 2015-01-08 10:48
대한항공이 전격적으로 5천억원에 달하는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하면서 금융시장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주식시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유상증자 소식에 '주주권'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비난이 일면서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재무상황을 감안할 때 당장 유상증자에 나서지 않으면 재무부실 현실화에 따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의견들이 많다.
한국신용평가가 지난 7일 "유상증자가 신용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평균 116달러에 달했던 항공유 가격은 국제유가의 지속적인 하락세로 4분기에는 평균 91달러로 20% 이상 내렸고, 올들어서는 60달러대로 급락했다.
이로 인해 대한항공은 약 1천500억∼2천억원에 달하는 유류비 부담을 덜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결국 영업수익성의 대폭적인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2분기부터 영업적자에서 벗어나 개선 추세를 보이는 실적에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대한항공에 가장 부담이 되는 것은 과도한 빚이다.
빚이 늘면서 부채비율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돈을 빌리면서 채권자들에 약속한 부채비율 등 재무비율을 맞추지 못하면 디폴트(기한이익상실)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대한항공이 이번에 유상증자를 전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도 일단 급한 빚부터 갚아 위기를 넘기자는 고육지책이다.
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말 기준 대한항공의 연결 차입금은 15조9천75억원에 달한다. 2010년 12조1천796억원이던 차입금이 4년만에 4조원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은 2010년 510.57%에서 2012년엔 690.99%로 높아졌고, 2013년엔 736.45%로 700%를 넘었다. 작년 3분기말 기준으로는 809.13%에 달했다. 작년말 기준으로는 이 보다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대한항공의 차입금은 총 4조392억원에 이른다.
회사채와 자산유동화증권(ABS)만 각각 9천197억원과 5천627억원이다.
단기 차입금도 6천311억원에 달한다.
부채비율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상황에서 갚아야 할 빚부담도 만만치 않다.
대한항공은 그동안 회사채 발행, 신규 차입 등을 통해 차입금을 상환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신용등급이 계속 떨어지면서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작년 9월과 11월에 각각 2천억원과 1천500억원 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수요예측에 들어온
자금은 각각 880억원과 630억원에 불과했다. 증권사들이 미달분을 떠안아 자금을 조달하는데 문제는 없었지만,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재차 발행에 나서기엔 부담이 너무 큰 상황이다.
만기는 돌아오는데 자금을 확보할 수단은 점점 줄어들자 대한항공은 유상증자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올들어서야 유상증자 실시를 공식화했지만 지난해 10월께부터 이미 내부적으로 검토를 했고, 채권단과도 협의를 진행해 왔다.
시기를 다소 앞당겨 유상증자 소식을 알린 것은 신속히 부채비율을 낮출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와 대출 등 차입금에 대한 재무약정을 준수할 필요가 있어서다.
기한이익상실로 차입금의 원금과 이자를 한방에 다 갚아야 하는 아찔한 상황을 막아야 했다.
대한항공의 차입금에 대한 기한이익상실 사유는 제각각 다르다.
당장 내달 4일 만기가 돌아오는 38-2회차 회사채(2천억원)의 경우 기한이익상실에 빠지지 않으려면 부채비율을 700%(K-GAPP 기준) 이하로 맞춰야 한다.
물론 다른 대부분의 회사채들은 부채비율 상한선을 1천%로 두고 있어 아직 문제가 없다.
그러나 특정 회사채에서 기한이익상실이 발생하면 다른 회사채도 줄줄이 기한이익상실에 빠진다. 디폴트 도미노가 발생하는 셈이다.
외화표시 ABS의 경우는 부채비율을 1천% 이하로 유지하도록 약정이 돼 있으나, 영업이익에 비현금비용을 합한 금액이 이자비용을 넘도록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원금을
갚아야 한다. 영업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이자비용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빚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중국은행에서 빌린 외화차입금은 신용등급을 'BBB' 이상으로 유지하고, 이자비용 대비 에비타(EBITDA, 상각전 영업이익)를 200%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하는 약정이 돼 있다.
대한항공은 항공기를 담보로 중국교통은행에서 6천만달러의 외화를 빌렸는데 기한이익상실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신용등급을 'A-' 이상으로 유지하고 부채비율은 1천%, 에비타/이자비용은 100% 이상으로 유지해야만 한다.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은 'A-'를 유지하고 있지만 등급전망은 '부정적'이다. 추가로 재무상황이 악화하면 'BBB'급으로 떨어질 수 있다. 빚을 줄여야 하는 이유다.
대한항공은 일단 유상증자로 확보하게 될 5천억원으로 빚을 모두 갚을 작정이다.
부채비율은 약 200%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간 이자비용도 200억원 정도
절감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유상증자와 더불어 6천억원에 달하는 ABS를 발행하고자 준비중이다.
BC카드로 결제한 운임장래매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하는 것으로 이달 28일께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1년 거치, 2∼5년의 만기로 발행될 예정으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대우증권, KB투자증권이 대표주관사를 맡고 있다.
인수단도 모두 구성됐다. 대표주관사인 대우증권과 KB증권이 각각 1천800억원과 1천300억원 어치 인수하기로 했고, 산은도 500억원 어치 사주기로 했다. 동부증권(1천억원)과 한양증권(600억원),
NH투자증권ㆍKTB투자증권(400억원씩) 등도 인수단으로 참여했다.
대한항공은 현재 신용등급 보다 2노치(notch) 높은 등급으로 ABS를 발행해 금리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확보한 자금으로 금리가 높은 빚을 갚을 예정이다. 그만큼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아울러 에쓰오일 매각 자금도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내달 초쯤에는 들어올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대금은 총 2조원으로 은행권에서 빌린 주식담보 대출을 갚고나면 대한항공이
확보하는 자금은 약 9천억원이다.
유상증자와 ABS 발행, 에쓰오일 매각대금 등으로 1분기에만 2조원 어치의 유동성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대한항공은 에쓰오일 매각대금이 들어오면 일부 빚을 갚고, 일부는 신규 항공기 도입을 위한 투자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대한항공은 올해부터 2017년까지 총 52대의 항공기를 도입할 계획으로 올해 신규 도입분은 19대다. 2조5천1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도입에 필요한 자금의 90% 가량은 항공기금융을 통해 조달할 수 있어 당장 필요한 유동성은 크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