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은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는가!
오만 분노 오해 위선, 어긋난 관계를 보듬는 현대인의 마지막 집
모든 존재를 ‘연결’하는 영원한 안식처 ‘하워즈 엔드’
《하워즈 엔드》는 20세기 영국문학을 대표하는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가 놀랍게도 겨우 서른한 살 때 쓴 그의 대표작이다. 발표 당시 영국 문단에서 엄청난 찬사를 받았으며, 그 뒤로 그의 이름 앞에 ‘위대한(Great)’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작가 스스로도 “왜 이 책이 이렇듯 광적인 반응을 얻는지 모르겠다”며 갸우뚱할 정도였다. 물론 포스터도 만년에 이르러 이 작품을 자신의 대표 걸작으로 주저 없이 꼽았다.
이 작품은 하워드 집안의 마지막 집과 마지막 사람에 대한 소설이다. 포스터는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장소로서, 인간과 문명을 연결하는 방향으로서, 전체를 파악하기 위한 부분으로서, 과거가 미래로 이어지는 정신으로서, 그리고 모든 존재를 서로 ‘연결’하는 장소로서 집을 택했으며, 그 집은 바로 ‘하워즈 엔드’이다.
그 집은 현대인의 마지막 집이며, 또한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를 의미한다. 해돋이와 함께 잿빛 안개가 걷히면 하워즈 엔드는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자그마한 붉은 벽돌집은 포도넝쿨로 뒤덮여 있고, 큰 느릅나무가 있는 농원에는 과일나무가 무성하다. 언덕에 피어 있는 들장미는 폭포수처럼 떨어지고, 들장미 덤불 밑은 뚫려 있어, 그 너머로 집오리와 암소가 보인다. 아침 식사를 알리는 벨 소리와 함께 이 소설은 시작된다.
두 집안 가치관의 충돌과 이해
에드워드 시대를 특징짓는 사회 변화를 반영한 《하워즈 엔드》는 완전히 다른 두 집안, 슐레겔네와 윌콕스네의 이야기이다. 슐레겔 집안 사람들이 지성인이자 이상주의자라면 윌콕스 집안 사람들은 물질만능 현실주의자들이다. 포스터는 이 두 집안 사이의 관계와 또한 가난한 회사원인 레너드 바스트 부부를 조화하여 서로 다른 가치관, 대조적 인생관의 충돌을 그리고 있다.
사람과 사람은 진정으로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 사려 깊고 이지적인 언니 마거릿과 젊고 아름다우며 정열적인 동생 헬렌. 독일계 진보적 지식인 가정에서 자란 이 둘은, 어느 날 전혀 가치관이 다른 보수적인 부르주아 집안과 만난다.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이 집안의 저택 하워즈 엔드를 둘러싸고, 결국 두 가족은 뜻하지 않은 형태로 돈독한 교제를 이어간다. 문학과 예술에 무게를 두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자매는 영국사회의 여러 계층 사람들을 접하면서 저마다의 운명을 더듬어 가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결합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시공간을 넘어 마음을 울리는 명작
가치관의 충돌은 같은 집안 안에서도 일어난다. 마거릿과 헬렌은 윌콕스 집안에 정반대의 태도를 보인다. 헬렌이 자신의 이상을 지키면서 그들의 물질주의와 현실주의에 강렬한 반감을 표시한다면, 마거릿은 이 두 가지 관점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으며 공정한 평가를 시도한다. 윌콕스네에서도 성실한 헨리와 무능한 찰스가 대비된다. 결국 마거릿이 헨리를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헬렌이 인정하는 구도 속에서 화해가 이루어진다. 마거릿은 자신의 문장과 열정을 고양하기 위해 오로지 ‘연결’하고 싶을 뿐이라고 적는다. 《하워즈 엔드》는 이렇듯 ‘연결’하고자 하는 마거릿의 시도를 그 성공과 실패와 함께 섬세히 묘사하고 있다.
《하워즈 엔드》에서 작가는 파란만장한 긴 세월을 보내면서 세상의 진리를 깨닫고 인간 성격과 심리에 정통하게 된, 나이든 노인처럼 능숙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를테면 마거릿은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도 없고, 더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질 수도 없거든요.”
이 말은 영국의 수많은 인용구 사전에 실려 있는 명언이다. 영국인이 비슷한 상황에서 흔히 중얼거리는, 사랑과 돈의 서글픈 관계를 빗댄 말이다. 《하워즈 엔드》에는 이처럼 훌륭한 구절이 많이 나온다. 포스터는 이런 지혜로운 말들을 쉰 살이 아니라 서른 살 때 쓴 것이다.
진정한 미와 낙관주의
《하워즈 엔드》는 1910년대 런던 근교의 전형적인 영국 농원을 그리고 있으나, 우리는 이 그림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마음속의 고향을 볼 수도 있다. 그곳은 영국일 수도 있고, 한국일 수도 있고, 또 세계 어느 곳일 수도 있다.
진실로 명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진정한 미와 낙관주의를 보여준다. 포스터의 모든 작품들이 그러하듯, 탁월한 인물 묘사와 현실적이고 감동적인 대화가 압권이다. 이 작품이 극적인 감정과 행위를 다루고 있지만, 결코 어색하거나 드라마적이지는 않다. 인간의 감정과 오만, 분노, 오해, 위선이 낳을 수 있는 재앙을 빼어나게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섬세하고 깊이 있게 자연과 인간을 묘사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수채화에 잠깐 현실을 잊고 평화로워진다. 인간의 본질을 빼어나게 그린 《하워즈 엔드》는 그 시대 영국의 상황과 작가의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
187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톤브리지 스쿨을 거쳐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를 졸업한 그는 그곳에서 휴 메러디스를 비롯한 평생의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03년 케임브리지의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월간지 『인디펜던트 리뷰』에 에세이 「마콜니아 상점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하였으며 다음 해, 같은 잡지에 단편소설 「목신을 만난 이야기」를 게재하여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07년 첫 장편소설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을 발표한 이후, 『기나긴 여행』(1907), 『전망 좋은 방』(1909), 『하워즈 엔드』(1910)를 연이어 내놓아 평단과 대중 모두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이후 포스터는 로저 프라이, 버지니아 울프 등과 함께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20세기 초 영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다. 1927년 대표작 『인도로 가는 길』을 발표하여 역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포스터는 소설가로서보다는 지식인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되었다. 1971년에 출간된 『모리스』는 1914년에 완성되었으나 작가 사후에 출간된 작품이다. 1949년 기사 작위를 서훈 받았으나 거절하였고 1970년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91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