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에 따르면 성 코스마(Cosmas)와 성 다미아누스(Damianus, 또는 다미아노)는 아라비아(Arabia)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로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훌륭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들은 시리아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된 후 소아시아 남동부에 있는 실리시아(Cilicia) 지방 에게해(Aegean Sea) 근처에 살면서 외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환자와 가축들을 무료로 치료해주었다. 의료기술이 뛰어나 명의라는 소리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의약으로 낫기 어려운 병자들도 간절한 기도로 돌봐줘 육신과 영혼의 건강까지 치유해주는 의사로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이의 칭송을 받았다. 실제 기도의 힘으로 중병이 완치되는 기적도 일어났다. 그들의 의술과 자선에 대한 명성은 더욱 널리 퍼져나갔다.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박해를 시작했을 때,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 형제는 실리시아의 집정관인 리시아스(Lysias)에 의해 체포되었다. 곧바로 그들은 배교할 것을 강요당하며 모진 고문을 받았다. 하지만 굳은 믿음을 지니고 있던 이 형제는 끝까지 집정관의 요구를 거부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전설에 의하면, 리시아스가 처음에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누스를 돌로 쳐 죽이려 했으나 그 돌이 되돌아와 던진 이들이 다치고, 다시 십자가에 묶어 놓고 화살을 쏘았으나 그 화살 또한 쏜 사람에게 되돌아와 꽂혀버렸다. 그래서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도 바다에도 던졌지만 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참수형에 처했다고 한다. 이때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누스 외에도 그들의 형제인 성 안티무스(Anthimus) · 성 레온티우스(Leontius) · 성 에우프레피우스(Euprepius)도 함께 처형당했다.
그들의 순교 후에 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또 그들의 높은 신앙심을 증명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고 전해온다. 이미 4세기 초부터 예루살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에 그들을 기념하는 성당이 건립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그들이 순교한 지 백 년이 되었을 때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그들의 유해를 모신 대성당을 건축했는데, 이곳은 점차 주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6세기에 교황 펠릭스 4세(Felix IV, 526-530년 재위)도 로마에 두 성인에게 봉헌한 대성당을 건립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 이전, 두 성인의 축일은 다른 세 형제와 함께 9월 27일이었는데, 그날은 로마의 대성당이 봉헌된 날이라고도 하고 순교한 날이라고도 한다. 현재 그 성당은 재건축되었으나 내부에는 두 성인을 묘사한 6세기의 모자이크가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두 성인은 이미 6세기경부터 로마 전문(Canon, 오늘날 미사 경본의 감사기도 제1양식)에서 기억하는 성인들 명단에 추가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1969년 전례 개혁 이후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의 축일은 9월 26일로 변경되었다. 이는 같은 날 축일을 기념하는 성 빈첸시오 드 폴(Vincentius de Paul)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26일 목록에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 순교자의 행적을 추가하면서 옛 “로마 순교록” 9월 27일 목록에서 언급한 세 명의 형제 순교자의 이름을 26일과 27일 어디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는 약제사의 수호자이고, 성 루카(Lucas) 복음사가 다음으로 의사들의 수호성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많은 의사들이 성 다미아누스보다 성 코스마를 세례명으로 선호하는데, 이는 그들이 팔라디아라는 여인의 병을 치료할 때 성 다미아누스가 환자의 간청을 거부하지 못하고 치료비를 받는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회 미술에서 두 성인은 주로 함께 등장하며, 약이 담긴 작은 상자나 의료기기를 들고 있거나 병자를 치료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의사와 약사, 이발사와 미용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굿뉴스에서 따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