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뉴스에 ‘감독제도’에 대한 필자의 글이 실린 이후, 몇분 목사님들께서 ‘감독의 특별한 복장’ 착용 문제, 그리고 ‘감리교 목사가 클러지 칼라를 착용하는 것이 합당한가?’라는 질문을 보내 왔습니다. 개별적으로 답장을 보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 글을 보냅니다– 필자; 김택규)
▲ 김택규
우선 기독교 역사에서, ‘성직자’들의 일반 백성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복장이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가 하는것부터 생각해 봅시다. 초대교회는 물론, 컨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313년)이전까지는, 교회에서 성직자나 평신도 간에 복장의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428년, 교황 Celestine이 골(Gaul) 의 감독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직자들이 어떤 특징적인(conspicuous) 복장을 입는것에 대해 질책한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면, 그때에 이미 성직자들중 특별한 복장을 입는 경향이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감독이나 성직자)가 일반 백성들과 구별되는 것은, 어떤 특별한 복장에 의해서가 아니고, 우리의 배움, 우리의 행위, 그리고 마음의 정결함 등으로 의해서입니다” (Celestine 교황의 편지, Mansi, Concillia, IV, 465)
그후 6세기경에 와서 로마와 로마부근의 나라에서 성직자들의 옷이 평신도들의 것과 확실하게 구별되기 시작했는데, Braga Council(572), 그리고 Trullan Council(691년) 에서는, 성직자는 발까지 드리우는 긴 옷을 착용하도록 규정했습니다. 1215년, 제4차 Lateran Council에서는, 성직자의 복장의 길이 모양 등 전체적인 복식 제도가 교회법으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클러지 칼라(Clerical collar)의 기원
‘클러지 칼라’도 성직자의 복식 중에 하나인데, 가톨릭 측에서는, ‘로만칼라’는 자기들이 원조라고 주장하고, 개신교 측에서는, 개신교가 먼저 ‘클러지 칼라’를사용했다고 주장합니다. 가톨릭에서는, 16세기에 로만칼라가 (현재와는 다른 형태지만) 이미 정착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셔츠에 칼라를 다는 것이 유행이었으므로, 성직복도 이에 영향을 받아 칼라를 도입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복장 및 모양도 다양하고, 성직 복장도 세속 복장에서 영향 받은것이므로, 양쪽 주장에 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과 같은, (기록에 의하면), 현재의 형태와 비슷한, ‘띄었다 붙였다’할 수 있는 분리형 클러지 칼라를 처음 만들어 착용한 성직자는, 1840년경에 스카트랜드 장로교회의 목사인 Donald McLeod입니다. 그리고 1880년쯤에 와서는, 영국에서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이 ‘칼라’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온 유럽의 성직자들이 클러지 칼라를 사용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은 개신교나 가톨릭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가톨릭은 그들 식대로 개선하여 ‘로만칼라’라고 하여 사용했습니다. 1884년, 제3차 ‘Plenary Council of Baltimore’회의에서 모든 사제들은 언제나 로만칼라를 착용하도록 결정을 하였습니다.
1960년대에 와서, 즉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 이후에 가톨릭 성직자들은 상의에 로만칼라가 있는 셔츠를 평상복으로 입을수 있게 하여, 모든 가톨릭 사제들이 이 칼라를 착용함으로, 클러지 칼라 옷이 마치 가톨릭 신부들의 유니폼처럼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개신교 목사나 구교 신부들이 다같이 클러지 칼라를 착용했지만, 한국에서는, 과거에 오직 천주교 신부들만 ‘칼라’를 착용했기 때문에, 그것이 신부들의 전용 복식이라고 생각하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인들이 그것은 신부들의 ‘독신과 정결’을 상징하는 것인데 ‘왜 개신교 목사들이 로만칼라를 착용하는냐’라고 비난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분리형 칼라가 생긴 이유는 단순히 ‘목 때’를 방지하가 위함이었습니다.
나는 해병대 출신인데, 미해병대의 정복에는 높은 ‘칼라’가 달려 있습니다. (한국 해병대도 ‘칼라’가 달린 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배에서 해적과 싸운던 해병들이 적의 칼에서 목을 보호하기위해 가죽 띠를 목에 두른것에 연유하고 있습니다. ‘클러지 칼라’도 단순히 목 부분에 쉽게 생기는 때나 땀을 방지하기 위해서 시작이 된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특별한 복식으로서, 성직자들이 ‘클러지 칼라’ 등 독특한 복장을 하는 이유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일반 세속 시민 그리고 평신도들과의 ‘구별’(distinction)입니다.
복장(옷)이란 과거시대에는 직업이나 신분, 사회적 계급을 나타내는 상징이였습다. 특징적인(conspicuous) 복장은, 일반 백성들과 구별의 목적뿐 아니라, 군림하는 ‘특권층’의 상징이었습니다. 통치자, 귀족, 국가 공직자, 법관, 군인, 경찰등은 모두 특별한 복장을 착용하였습니다.
특히 ‘성직자’는 ‘세상’과 구별되는 특별한 신분 혹은 ‘제사장’이라고 믿었으므로 당연히 그들 특유의 복장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성직 계층 제도’(hierarchy) 가 정착되면서 그것은 성직자의 서열, 계급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 클러지칼라는 크게 3종류로서 (사진 위 좌에서 우로)로마식, 목 띠(neck band)식, 앞깃(tab)식이다. 아래는 현재 영국감리교회(좌), 영국성공회(중), 한국감리교 감독(우) 등의 착용모습들
개신교 목사의 ‘클러지 칼라’ 착용, 신학적으로 문제 없는가?
그러면 이제,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문제에 접근해 봅시다. ‘개신교’ 신앙 및 신학에서 ‘성직자와 평신도’간에 근본적인 ‘구별’이 있는것입니까?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캐치 프레이즈’의 하나는 무엇입니까? ‘만인사제론’(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입니다.
즉 개신교 신학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간에 ‘구별’은 없습니다. ‘성직’이라는 ‘사제’적 지위는 따로 없는것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모든 ‘믿는자’가 다 말씀을 전하고(행8:5), 평신도도 세례를 베플었습니다.(행8:38) ‘은사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사역’을 수행했습니다.(고전12:4-11)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 성직자들 중 많은 분들은 자기들이 평신도와 ‘구별’되는 ‘제사장’적 위치에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나 자신도 한때 잘 모르던때에는, ‘성직자’ 엘리트 의식을 가젔었습니다. 구세군에서는, 목사를 장교로, 평신도는 사병으로 하는 계급제도가 있기도 합니다. 어떤 장교출신 목사는, 목사를 장교로, 장로는 상사, 권사는 중사, 집사는 하사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해는, 개신교 신학과 전통으로 보면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나 자신은, 발트의 교의학(Church Dogmatics)을 공부하고, 특히 한스 큉의 ‘교회론’(The Chuech) 및 Hendrik Kraemer의 “평신도 신학’(A Theology fof Laity)을 읽은 후에는 평신도와 성직자간에 근본적인 ‘구별’은 없음을 확실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개신교 신학에서 인정하지 않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별’되게 하는 ‘성직 복장(클러지 칼라 등)을 개신교 목사가 착용하는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분명히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의 경우는 다릅니다. 천주교에서 성직자는 말 그대로 ‘사제’ (priest)임으로 그들은 과거 ‘제사장’들이 특별한 복장을 했듯이 구별되는 복식을 하는 것은 합당한 일일것입니다.
감독(Bishop)의 특별한 ‘성직복’ 착용은 합당한가?
‘감독’직에 대한 필자의 글이 이미 당당뉴스(7월 12일)에 실렸습니다만, ‘감독’(bishop)직의 연원(淵源)은 가톨릭 교회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의 ‘성직 계급제도’(Hierarchy)에서, 감독은 성직자의 높은 직급입니다. 성직자는 부제(deacon), 사제(priest, presbyter), 감독(Bishop)의 직급으로 구분되는데, 각 직급마다 입는 복장이나 색갈이 다릅니다. 에를 들면, ‘수단’의 색갈에서 사제는 검정색(혹은 흰색), 감독은 진홍색, 추기경은 적색, 교황은 순백색입니다.(트렌트 공의회 결정). 해서 천주교에서 감독이 다른 직급의 성직자와 구별되는 특별한 복식, 색갈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것입니다.
그런데 개신교 신학이나 전통에서는 성직자간에 계급이나 구별은 없습니다. 감리교단에 감리사, 감독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직급’(order) 이 아니고, 직책(office)입니다. 그들은 행정적 책임이 다를뿐, 모두 다 똑 같은 ‘목사’입니다. 따라서 ‘감독’직에 있다고 하여 일반 목사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복장이나 색갈을 사용하는 것은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한국 감리교회의 모교회였던 U.M.C. 의 ‘감독제도’가 문제인데, U.M.C.가 과거’ ‘감리교 감독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 로 시작할때는, 가톨릭과 유사한 신앙과 전통을 가지고 있는 영국교회(성공회)의 영향으로, 감독직을 ‘직급’(order)으로 해석했었으나, 현재는, 감독직을 ‘직책’(office)으로 봅니다. (물론 ‘직급’으로 이해될수 있는 제도가 일부 남아 있기는 합니다.) 따라서 UMC의 감독은 ‘장로목사’(elder)와 같은 반열인것입니다. 그러므로 U.M.C. 에서 감독의 특별한 복장이나 색갈을 규정한 것은 없습니다. ‘까운’(robe)이나 ‘영대’(stole)도 다른 목사들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한국 감리교회의 규정을 자세히 모릅니다만), 사진 등에서 나오는 감독들의 까운등 복장이나 색갈이, 다른 목사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복식이나 색갈을 착용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개신교 신학, 전통에 합당하지 않은것입니다. 특히 임기 2년 혹은 4년의 직책이 끝난 후에도 계속 일반 목사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복장을 한다는 것은 ‘난 센스’같이 보입니다. 특히 감리교회의 원조인 영국교회에 그런 제도나 전통이 전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것입니다.
현재는 모든 ‘권위주의’적인 요소 및 허세들을 다 벗어버리는 시대입니다. 미국에서 큰 교회로 성장하는 유명한 목사들 중, (‘쌔들 백’의 릭 워런 목사같이), 예배시에 까운같은 것도 걸치지도 않고, 아얘 청바지에 셔츠 바람으로 강단에 서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권위주의적 냄새가 나는, 높고 웅장한 강대상도 낮아지고 작아지고 (가리는것없이) 투명해지는 시대가 아닙니까? 사람들에게 ‘권위주의’적으로, 또 ‘위압적’으로 보이는, 성직자의 특별한, 구별되는 복장은 벗어버리는 것이, ‘낮아지는’ 자세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친근감’을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금번 감독취임식(실제는 감독취임예배라고 하였는데 예문집의 규정에 맞지않음)에 열한분의 감독들이 입은 예복은 보라색 가운에 보라색 로만 칼라를 하였고 팔소매에는 박사를 표시하는 막대기를 세개씩 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목회자 예복의 많은 문제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27회 총회 감독취임식 감독들의 기념촬영
우선 목회자 예복의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의 초기에는 성직자가 특별한 옷을 입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단순히 깨끗한 흰 옷을 입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제국화되어 로마제국 관리들의 복장양식을 채용하면서 권위와 지위를 드러내는 이교적 관습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에 대하여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은 예복이 계급을 나타내고 허식을 보이는 전시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무시하였습니다. 후에는 검은 까운을 입었으나 계급이나 허식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가 목회자 예복을 단순한 흰색으로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감리교회 감독들의 예복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보라색 까운을 입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속 황제들이 즐겨 입던 옷의 색깔입니다. 즉 특별한 계급에 속한 것을 과시하는 색깔입니다. 더군다나 임기를 마친 감독들도 보라색 까운을 입고 있으니 큰일입니다. 직위는 임기가 끝나면 내려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임기가 끝나고 직무를 더 이상 수행하지 않는데도 감독의 직위를 갖고 특수계층인양 즐기는 모습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웨슬리목사님은 감독의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감독의 직위는 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감리교회의 전통입니다. 그러므로 감독의 임기를 마친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현역 감독들도 흰색 예복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또 감독들이 보라색 로만칼라를 하고 있는데 이것도 문제입니다. 로만 칼라는 천주교 성직자들이 성당 밖에서 외출 시에 입는 복장이며, 독신의 정결을 나타냅니다. 독신도 아닌 개신교회 목회자들이 로만 칼라를 착용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으며, 외출복을 입고 예배를 집례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목사들이 박사가운을 입거나 예복에 박사 표시를 하는 것은 권위를 드러내려는 잘못된 것입니다. 가짜 박사가 가장 많은 곳이 교회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목사의 권위보다 박사의 권위가 더 높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목사의 권위는 성령님과 함께 하는 성결한 생활에 있습니다. 목회자 예복에 박사 표시를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