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편
폭풍우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요절: 10절
내용 관찰
29편은 자연 계시를 통하여 나타난 여호와의 위엄을 노래한 시입니다.
지금 다윗은 가나안 땅을 가로질러 달리며 천지를 진동시키고 있는 폭풍우와 뇌성벽력을 바라보면서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을 찬양할 영감을 받아 이 시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4)하며, 폭풍우와 뇌성벽력을 통해서도 여호와의 능력과 위엄을 보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1-2은 회개의 촉구와 예배에의 부름입니다. "권능있는 자들"이란 세상에서 권세와 능력을 누리면서 하나님 두려운 줄을 모르고 있는 자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3)한 그 우렛소리를 "너희 권능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1) 하시는 여호와의 호령으로 듣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소리"라는 말씀이 7번이나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이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와 결부되어 계속적으로 회개를 촉구하고 계심으로 나타납니다.
3-9에서는 천지를 진동하는 폭풍우가 휘몰아칩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7-9) 하십니다.
왜 시편 기자는 폭풍우와 뇌성벽력을 묘사하고 있는 이 단락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영광"(榮光)이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위엄(威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2절에서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라고 촉구했던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10상)하고 분명 노아 홍수를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홍수 때에 좌정하신 하나님은 이제 폭풍우 속에도 좌정하시고 계심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아 홍수가 심판으로 주어졌듯이 3-9까지에서 묘사된 자연계에 나타난 폭풍우는 심판에 대한 경고적인 메시지가 들어있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10하)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29편의 핵심입니다. 노아 홍수 때만 아니라, 다윗 때만 아니라 영원토록 지금도 왕으로 좌정해 계셔서 천지만물의 주재가 되시고 섭리자가 되십니다. 여호와께서 영원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는 보좌가 언제나 어디서나 중심에 와 있어야만 합니다. 성도의 마음 중심에 있어야 하고 가정의 중심에 사업체의 중심에 교회의 중심에 여호와의 보좌가 중앙에 있어야만 합니다.
10-11은 결론 부분입니다. 그 왕 되시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11)고 말씀합니다. 거듭해서 자기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천둥 번개가 치고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질 때에 산림의 짐승들도 두려워 떱니다. 사람들의 간은 콩알만 해진다고들 그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이런 경우 성도들도 두려움에 떨게 됩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고 말씀합니다. 불신자들에게는 폭풍우와 뇌성벽력이 심판에 대한 경고로 주어지지만 자기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계시하는 힘을 주시는 것이며 자기 백성에게 평강을 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폭풍우와 평강이 절묘하게 대조되어 있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막5:39)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연적인 현상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폭풍 속에서도 그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힘주시고 평강을 주시는 여호와이심을 말씀해 줍니다.
묵상해 봅시다.
다윗은 무엇을 바라보면서 이 시를 읊고 있습니까?
뇌성벽력 가운데서 무슨 경고를 듣고 있습니까?
이 시의 결론과 중심점은 무엇입니까?
적용 형제의 마음 보좌에 좌정하신 하나님은 형제가 당면한 폭풍 속에서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암송: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10).
제 30 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는 주
요절: 7절
내용 관찰
30편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관찰하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첫 부분(1-5)을 관찰해보면 다윗은 여호와의 "노염”(5)을 사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3) 한 것을 보면 거의 죽을 뻔한 징계를 받은 듯합니다. 그때 "베옷"을 입고(11) 회개하며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2) 합니다. 그래서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4)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둘째 부분(6-10)에서 다윗이 왜 하나님의 노염을 사서 징계를 받았는가를 말씀해 줍니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6)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교만하여졌었음을 말해 줍니다. 대상 21장을 보면 다윗이 사탄의 격동에 빠져서 군대를 계수하는 것을 봅니다. 그때 군대장관 요압이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 하고 만류하나 듣지 아니합니다. 계수하는 것이 왜 죄가 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대의 수를 의지하는 교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셨다"(대상21:7)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지금 이런 경우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그렇습니다.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한대로 평안하고 형통한 것을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서인 데도 마치 자신이 잘 나서 인양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6)고 자고함은 교만입니다.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7)하고 뒤늦게 깨달음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다윗이 회개하자 징계를 푸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1상) 합니다. 자고(自高)하던 다윗은 하나님만을 높이겠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다윗은 대조법을 써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도들을 격려해 주고 있습니다. 5절에는 "노염과 은총", "저녁과 아침“, ”울음과 기쁨", "잠깐과 평생"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11절에는 ‘‘슬픔과 춤", '‘베옷과 기쁨"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대조법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겉 사람과 속 사람", "후패함과 새 움", "잠시와 영원", "환난과 영광”, "경한 것과 중한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고후4:16-18)을 대조해서 성도들을 격려해 주고 있습니다.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하고대조할 뿐만 아니라 이를 비꼼으로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라고 말씀합니다.
대조에서 강조되고 있는 점은 "잠시와 영원" "경한 것과 중한 것”등 비교도 안 된다는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노염은 잠깐이요 은총은 평생이로다"하고 징계는 필요할 때마다 잠시 왔다 지나가나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29편에서 상고한 바 있는 폭풍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폭풍은 지나가고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셨습니다(29:11).
이를 깨달았다면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12)고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묵상해 봅시다.
다윗은 무엇을 왜 당하였습니까?
다윗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30편은 이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까?
적용: 형제의 지금 시간은 저녁입니까? 아침입니까? 울음입니까? 기쁨입니까? 부르짖을 때입니까? 찬송과 감사할 때입니까?
적용: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