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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미가 제 18 강 ‘하나님의 간섭’
미가 6:9-16절
9-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하신 자를 순종할찌니라
10-악인의 집에 오히려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11-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12-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거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궤사하도다
13-그러므로 나도 너를 쳐서 중히 상하게 하였으며 네 죄를 인하여 너를 적막하게 하였나니
14-네가 먹으나 배부르지 못하고 속이 항상 빌 것이며 네가 감추나 보존되지 못하겠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일 것이며
15-네가 씨를 뿌리나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을 밟으나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으나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16-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행위를 지키고 그들의 꾀를 좇으니 이는 나로 너희를 황무케 하며 그 거민으로 사람의 치솟거리를 만들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을 담당하리라
9-Listen! The LORD is calling to the city--and to fear your name is wisdom--"Heed the rod and the One who appointed it.
10-Am I still to forget, O wicked house, your ill-gotten treasures and the short ephah, which is accursed?
11-Shall I acquit a man with dishonest scales, with a bag of false weights?
12-Her rich men are violent; her people are liars and their tongues speak deceitfully.
13-Therefore, I have begun to destroy you, to ruin you because of your sins.
14-You will eat but not be satisfied; your stomach will still be empty. You will store up but save nothing, because what you save I will give to the sword.
15-You will plant but not harvest; you will press olives but not use the oil on yourselves, you will crush grapes but not drink the wine.
16-You have observed the statutes of Omri and all the practices of Ahab's house, and you have followed their traditions. Therefore I will give you over to ruin and your people to derision; you will bear the scorn of the nations."
Point: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지혜로 순종의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간섭하십니다.
Introduction: 한 10여 년 전에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싱가포르에는 태형이라는 형벌제도가 있습니다. 우리식으로하면 곤장을 치는 형벌이지요.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졌지만 싱가포르는 아직까지도 그런 형벌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가 외교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한 미국인 청소년이 차량 20여대에 장난삼아 스프레이를 칙칙뿌려댄 것입니다. 교통표지판도 훼손을 하고! 그러다가 붙잡혔습니다. 이것을 ‘고의적이고도 악의적인 공공기물 파손행위’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싱가포르법원이 이 청소년에게 태형 6대를 선고하고 집행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미국인인 게 문제였습니다. 미국쪽에서 ‘인권침해다, 그럴 수 있느냐. 심했다.’ 이런 식으로 외교적으로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법원은 아랑곳 하지 않고 태형을 집행했습니다. 철썩, 처얼썩! 많이 아팠겠지요.
Point 1: 하나님의 간섭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태형, 하나님의 매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매를 드는 모습이 나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강한 간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의 간섭이라는 내용을 부모의 간섭과 비교해서 우리가 한 번 이해를 해 보겠습니다. 부모님의 간섭은 크게 두 범위에서 진행됩니다. 처음은 말폭탄이 날라오지요. 요즘 폭탄이 유행인데 세금폭탄, 물폭탄! 부모님은 대부분 처음에는 말을 퍼붓습니다. 듣는 사람입장에서 잔소리입니다. ‘하지 말라. 말라. 말라. 해라. 좀 해라. 공부 좀 해라. 말 좀 들어라’ 이런 잔소리가 그야말로 퍼부어집니다.
하나님 말씀도 어떻게 보면 잔소리 성격이 강합니다. ‘이것 말라. 저것 말라. 말라 말라’ 이런 말씀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이 순종할 때는 참 좋은 말씀이지만 욕심으로 갈려고 할 때는 아주 귀찮은 잔소리에 해당이 됩니다.
부모의 간섭, 다음 단계는 매지요. ‘말로해서 듣나? 이리와! 철석, 처얼석!’ 그런데 보면 이것도 나이가 어릴 때 통하지, 질풍노도의 시기만 되어도 잽싸게 도망을 합니다. 좀 심하면 ‘왜 때려요?’ 이러면 참 난감합니다. 특히 요즘은 자녀가 많아야 한 둘이래서 금이야 옥이야 기릅니다. 그래서 매를 아낍니다. 아끼다가 드니까 서로 당황합니다. 때리는 사람도 서툴고 맞는 사람도 왜 이러나 생각하면서 저항을 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든 자녀인 경우, 부모의 간섭이 좀 다른 형태로 바뀌지요. 경제적인 제재를 가합니다. 이게 뭔가하면 용돈을 대폭 축소하는 경우지요. 아니면 정치적인 제재를 내립니다. ‘몇 시까지 들어와. 내일은 집에 있어.’ 활동을 제약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일종의 정치적인 조치입니다. 나이든 자녀는 매를 들기도 버겁습니다. 잘못 매를 들었다가 합리적인 논리를 가지고 대항하면 이유만 궁색해지지요.
나라간의 관계도 다 이 범위에서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요즘 나라 상황이 이런 관계가 굉장히 복잡해지고 있는데 결국은 크게 두 범위입니다. 우선 말로 하자는 것입니다. 이게 외교지요. 외교는 좀 깍아내려서 말하면 말장난하는 것입니다. 서로 말가지고 요랬다 죠랬다 하다가 서로의 이익에 부합하는 지점에서 합의를 이루는 것이 외교입니다. 이것을 아주 소리없이 부드럽게 하면 성공적인 외교이고, 부작용이 심하거나 중간에 소음들이 많으면 실패한 외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외교로 안되면 어떻게 합니까? 무슨 경제적인 제재 얘기가 나옵니다. 어디 자금에 대한 동결조치를 한다거나, 무슨 지원을 중단한다거나, 무역선의 정박을 거부한다거나, 이게 다 경제제재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효과가 없으면 어느 시점에서는 군사적인 대립과 충돌이 생겨납니다. 이게 시기를 잘못 만나면 군사적인 대결, 즉 전쟁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관계! 우리가 언약관계라고 얘기를 합니다. 서로가 책임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얘기를 들어야 할 책임이 있고, 하나님은 하나님 백성을 지키고 인도할 책임이 있고!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 백성에게 하나님 얘기하시는 게 잘 안들려요. 자기 관심사에 대한 얘기가 없어서 그런지 자꾸 딴 얘기들은 들리는데 하나님 말씀이 안 들려요. 저쪽 동네 돈 번 얘기, 수지맞은 얘기, 보물 구입한 얘기, 땅이 늘어난 얘기, 재미 본 얘기, 이런 얘기들은 너무 너무 잘 드리는 데 하나님 얘기는 좀 귀찮아져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말씀은 안 하시고,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하면 손해볼 듯 한 얘기만 잔뜩하시면서 그것을 지키라고 하니, 귀에 잘 안들어옵니다.
이러면 사람에게 어떤 현상이 생깁니까? 아주 가까운 사이인데 그 사람에 얘기가 제대로 안들려요. 관심은 딴 데 가 있는 거지요. 이러면 사람이 형식적이 됩니다. 영어로 show off라고 표현하는데 겉치레만 할려고 합니다. 마음이 담긴 반응을 못하게 됩니다.
이게 종교적인 영역에 오면 어떻게 되는가? 소위 외식현상이 나타납니다. Hyocrisy라고 하지요. 예수님의 설교와 행동을 보면 이 현상에 대한 강한 저항과 책망이 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회칠한 무덤아!’ 이게 대표적인 말씀이지요. 안은 썩어서 냄새나는 시체가 들어앉아 있는데 밖은 두꺼운 회로 칠을 해 놓아서 그럴 듯해 보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속은 아무 것도 없는데 겉만 번지르한 상태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판단하는데는 빠른데 자기의 결점은 무시해 버리는 위선에 대한 언급이기도 합니다. 이런 외식의 현상이 말씀이 마음을 파고들어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고 귀가에만 돌다가 사라질 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의 상황이 바로 이것입니다. 미가가 바라보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상태가 바로 이것입니다. 말씀이 선포되어도 유다가 그것을 듣지를 않습니다. 왜냐? 생각하는 데 자기들의 욕심을 말씀이 채워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방해하는 성가신 존재가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배의 형식, 자기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야훼종교 자체를 버릴 수는 없으니까 예루살렘의 형식은 유지합니다. 예배는 그대로 있고, 드리는 제물은 그대로입니다. 때로는 말씀을 따르지 않는 양심의 가책을 무마하기 위해 제물을 더 많이 드리기도 합니다. 마음은 말씀에서 떠났지만 형식은 여전히 강하게 살아있는 바로 이것이 미가 당시의 예루살렘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이러니까 말씀으로 간섭하시던 하나님, 잔소리로 간섭하시던 하나님의 간섭 정도가 강해집니다. 높아집니다. 그게 뭡니까? 바로 본문의 ‘매’입니다. 하나님의 매는 참 다양합니다. 기근이 되기도 하고, 전쟁이 되기도 하고, 병충해가 되기도 하고, 하늘에 구멍이 뚫리기도 하고, 바다가 성난 듯이 들이밀기도 하고, 참 다양합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도 욕심으로 나아갈 때는 하나님의 간섭, 강한 간섭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무엘하 24장을 보면 다윗이 인구조사를 합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자기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하고자함이지요. 이스라엘의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인데! ‘주님의 나의 산성이시오 피할 바위이시니이다.’ 이게 다윗이 늘 하던 소리잖아요. 그런 다윗에게 이런 인구조사는 하나님을 무시한 영적인 교만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갓이 옵니다. ‘너 뭘 맞을래’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고 옵니다. 일번 칠년 기근, 이번 세달 도주, 삼번 삼일 온역! 칠년 기근은 경제적인 어려움입니다. 세달 도주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시같은 이웃이 콕 콕 찔러대는 관계의 고난이라고 볼 수 있지요. 삼일 온역은 건강의 악화입니다. 온역은 전염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뭐가 제일 힘들까요? 경제적인 어려움은 참으면 됩니다. 정말 가난해서 죽는 경우는 없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죽지를 않아요.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살아가요. 때로는 더 해피하게 살아갑니다. 제가 동남아 원주민 마을들 자주 가거든요. 가서 거기에 교회지어주는 사역 몇 번 했거든요. 이번 선교여행때도 방문할 예정인데 참 어렵게 살거든요. 하루 생활비 1-2불 정도로 다들 살아갑니다. 그런데 보면 우리보다 더 잘 웃어요. 별 거 아닌데도 막 웃고, 부끄럽다고 웃고, 신기하다고 웃고, 제가 강남과 분당의 잘나가는 사람들도 심방을 많이 하는데 그 분들보다 훨씬 많이 웃어요. 억지 웃음이 아니고 해피해서 웃어요.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살거든요. 또 견디면 견디어 내거든요. 경제적인 어려움의 성격이 그렇습니다.
그 다음으로 인간관계의 어려움! 이것은 정 어려우면 피하면 되거든요. ‘에이, 뭐가 뭐시기가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이러면서 피하면 되거든요. 물론 자꾸 끈질기게 따라다니니까 분명 힘들기는 합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문제가 괴롭기도 합니다. 그러나 피할려고 하면 피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견딜래야 견딜 수 없고,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게 뭡니까? 육체적인 어려움, 질병입니다. 이것은 몸에 딱 붙어 있고, 몸 깊숙이 숨어 있으니까 어쩔 수가 없습니다. 땔래야 땔 수가 없습니다. 그게 몸이 당하는 고통의 성격입니다.
어떻게 보면 경제적인 어려움과 관계의 어려움은 하나님의 간접적인 간섭이요 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일종의 남에게 위탁을 한 것이지요. 그러나 육체적인 고통은 직접적인 간섭이고 매입니다.
다윗이 이것을 모르고 삼일이니까, 짧으니까 세 번째를 택합니다. 하나님의 매를 직접 맞겠다는 것입니다. 짧고 굵게! 그런데 이 일로 정예군사가 무려 칠만이 죽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2-3개 사단이 완전 멸절이 된 것입니다. 휴전선에 큰 구멍이 뻥하고 뚫린 게 됩니다. 하나님이 직접 때리는 매 무지 무지 아픕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로 이 하나님의 매 얘기를 합니다. 9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하신 자를 순종할찌니라’
여기에 ‘매’의 얘기가 나옵니다.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여기서 ‘성읍’이란 말은 영어번역으로 보면 the city! 그 도시로 번역이 되는데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즉 하나님 백성들에게, 교회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완전한 지혜’를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완전한 지혜를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그 지혜로 사시기를 원합니다. 그 지혜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풍성히 누리며 붙잡으며 복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며 그게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에게 주시고자 하는 완전한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지혜의 성격이 뭡니까?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그것이 믿음의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간섭, 지혜의 간섭을 불러오는 것이 믿음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 유다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이 지혜를 버리고 있습니다. 이 완전한 지혜를 버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오히려 불순종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10-12절에 나옵니다. ‘악인의 집에 오히려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거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궤사하도다.’
이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 백성이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욕심이 뭔가하면 내가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나의 손해도 상관하지 않는 것이 욕심입니다. 내 것은 내 것, 남의 것은 남의 것, 이게 분깃입니다. 내 땀으로 얻는 나의 것,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것이고, 남이 자기 땀으로 얻은 남의 것은 존중해주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고! 이게 하나님 백성들의 일상의 삶이거든요.
그런데 욕심은 이 분깃의 범위를 자꾸 넘어가려고 합니다. ‘내 것은 이미 내 것이니까 내 것! 남의 것은 저 사람이 너무 허술해보이니까 내가 챙겨놓는 것이 저 사람이 딴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보다 낫잖아! 어차피 남에게 빼앗길 것이니까 내가 관리해주지.’ 자꾸 이런 식이 되는 것입니다. 분깃의 범위를 넘어서 욕심의 방향으로 자꾸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다의 집들이 악인의 집이 되어 버립니다. 그들의 재물이 분깃이면 당연히 하나님의 선물인데 욕심의 결과가 되니까 불의한 재물이 되어버립니다.
이들이 어떻게 장난질을 칩니까? 정해진 기준을 몰래 몰래 변경시킵니다. 돈을 모으는 방법! 줄 것은 최대한 늦게 주고 받을 것은 악착같이 받는 것! 이러면 현금을 내가 유통시킬 기간이 늘어납니다. 현금을 내가 유통시킬 기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이자의 수익이 늘어남을 의미합니다. 이자에 또 이자가 붙고 또 붙고 그러니까 돈이 돈을 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기준을 바꿉니다. 기준을 축소시켜 줄 것을 최대한 늦게 줍니다. 이러면 여지가 많아지지요. 그 여지를 내 이익을 위해서 활용하면 재물의 축적현상이 일어납니다. 또 기준을 변경해서 받을 것을 악착같이, 요즘보면 ‘심부름해드립니다. 돈 받아드립니다.’ 그런 광고 있잖아요. 이게 악착같이 받는 것이거든요. 높은 이자로, 아니면 담보물을 빼앗더라도 악착같이 받으면 재물의 축적이 이루어집니다.
이게 본문에 나오는 가증한 에바입니다. 에바란 곡식량의 단위가 되는 것인데, 한 에바가 한 22-23리터 정도됩니다. 예를 들면 쌀 됫박 같은 것의 속을 불룩하게 하면 몇 박만 되면 한바가지가 남는 그런 식입니다. 단위를 속이는 것입니다. 이게 가증한 에바입니다. 또 부정한 저울이나 거짓 저울추가 같은 말이 됩니다. 이렇게 단위를 속여 나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모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분깃을 넘어서는 욕심을 부리게 되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완벽한 지혜를 거부하는 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시기가 되면 하나님의 간섭을 불러오고, 하나님의 매를 불러오기 때문에 하나님 백성에게는 더 큰 손해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이런 불순종, 이런 욕심의 방향이 물론 눈에는 좋은 결과들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뭔가 이상한 현상이 하나님 백성들에게 생긴다는 것을 미가가 지적을 합니다. 13-15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나도 너를 쳐서 중히 상하게 하였으며 네 죄를 인하여 너를 적막하게 하였나니 네가 먹으나 배부르지 못하고 속이 항상 빌 것이며 네가 감추나 보존되지 못하겠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일 것이며 네가 씨를 뿌리나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을 밟으나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으나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유다에게 어떤 현상입니까? 여기에 보면 13절에 ‘적막’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또 14절을 보면 ‘속이 항상 빌 것’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소득과 수확이 있으나 결정적일 때 그것이 자기들에게 유익으로 나타나지 못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먹으나 배부르지 못한다. 감추나 보존되지 못한다. 씨를 뿌리나 추수하지 못한다. 감람을 밟으나 몸에 바르지 못한다. 포도를 밟으나 마시지 못한다.’ 이런 얘기들을 쭉 하십니다. 결정적일 때 열매가 열매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다 어떤 성취를 위해서 오늘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이것을 깊이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참 열매는 결정적일 때 여러분의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잊지 마세요. 결정적일 때 도움이 되는 친구가 참 친구잖아요.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이런 영어속담도 있잖아요. 중고등학교 때 많이 외운 문장! 또 보면 며칠 씩 밤새워서 공부하고 시험보면서 졸아요. ‘에이, 졸다가 시험 망쳤네!’ 망칠 시험을 왜 봐요? 제때 자고서 말짱한 정신으로 찍기라도 했으면 졸다가 못 쓴 것보다는 성적이 나을 겁니다. 결정적일 때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정적일 때 좋은 방향, 열매있는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그런 결정적인 시기에 임하기를 소망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평소에는 별로 차이가 없어요. ‘쟤나, 나나, 이거나, 저거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변곡점이란 게 있습니다. 영어로 tipping point라고 합니다. 말콤 글래드웰이라는 사람이 이 제목의 책을 쓰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지요. 이게 무슨 뜻이냐하면 어떤 아이디어나 트렌드, 또는 어떤 행동이 순식간에 확~ 퍼져서 공동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시점을 말하거든요. 그것을 잘 타면 유익을 얻게 되고, 그게 뭔지 모르면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열매가 별로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우리 믿음이 뭔가?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그런 결정적인 시기를 붙잡아주시고 허락해주신다는 믿음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주위에서도 답답해하고 나도 갑~갑~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결정적인 시기에 책임을 져주시고 열매를 주시고 복된 길을 가도록 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먼저 보이질 않고, 주위의 복잡한 상황이 먼저 보입니다. 저 나라가 강해질 것 같고, 저쪽하고 붙으면 뭔가 유익이 생길 것 같고, 이쪽 줄 잘 서면 콩고물이 많이 떨어질 것 같고, 그래서 남들 하니까, 또 하나님 백성으로 자존심도 있으니까 예배도 드리고, 제물도 드리지만, 속으로는 계산하기 바쁩니다. ‘주긴 줘야 하는데 어떤 핑계를 대면 좀 덜 주고 천천히 줄 수 있을까? 저 사람이 나한테 신세진 것 어제주기로 했는데 이게 간이 부었나 안주네! 예배 마치고 당장 가서 한바탕해야지! 옆동네 김서방, 기가 막히게 이번에 한건 한 모양인데 나도 제대로 배워서 한건 해야지!’ 이런 계산으로 복잡해집니다. 그러면서 온갖 생각이 예배시간에 다 듭니다. 이 생각, 저 생각, 이렇게 돌리고 저렇게 돌리고! 주위의 상황에 하나님의 백성이 완전히 매여버립니다. 어느새 하나님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시고!
이게 바로 16절이 말하는 상황입니다. 보세요.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행위를 지키고 그들의 꾀를 좇으니 이는 나로 너희를 황무케 하며 그 거민으로 사람의 치솟거리를 만들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을 담당하리라’
여기에 보면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행위와 그들의 꾀’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게 하나님의 간섭과 하나님의 매의 원인으로 나옵니다. 이게 뭐냐하면 오므리는 북이스라엘의 여섯 번째 왕이거든요. 그리고 그 아들이 우리가 많이 듣는 아합, 이세벨의 남편 아합왕입니다. 이들이 소위 오므리왕조의 대표적인 왕들입니다. 이 때 엘리야선지자가 활동하지요. 이들은 미가선지자의 시대보다 한 백년 쯤 전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북이스라엘의 번성을 가져오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주로 종교 혼합 정책입니다. 그리고 이방결혼을 통한 외교정책들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끈과 배경을 든든히 해서 무역루트와 기회를 확보한 그런 왕이요 그런 시대입니다. 그래서 바알이 적극적으로 들어오고 아세라신이 적극적으로 들어와 이스라엘의 공간에서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고 그런 시대입니다.
그런데 지금 미가가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지금 유다와 예루살렘이 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번영이 욕심나고 그 형통이 탐나서 오므리왕조가 가던 길을 지금 유다와 예루살렘이 따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관습과 율례를 따르고, 그들의 행동들을 따르고, 그들의 전통들을 따라서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행위와 그들의 꾀를 좇으니’
왜 미가가 지금 이런 유다의 모습을 책망합니까? 물론 잘되고 싶어서 유다가 이런 방향으로 갔겠지요. 누구든 망하려고 뭘 시작하고, 망하기로 작정하고 무슨 방향을 택하진 않습니다. 누구든 다 잘되고 축복받고 번성하기 위해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선택을 하고 방향을 잡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에게 어떤 길은 분명 하나님의 책망을 불러오고, 하나님의 강한 간섭과 매를 불러오는 그런 길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오므리와 아합의 율례요, 행위요, 꾀입니다. 잘되기 위해서 이방종교 끌어들이고, 그래서 잘 살기 위해서 우상숭배하고, 그러다가 매혹적인 유혹들에 끌려가고, 이방결혼을 하고, 그래서 남들처럼 잘살기 위해서 그런 길을 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억할 것은 하나님 백성이 이런 길을 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냐하면 시작은 아주 좋은 것 같아요. 남들처럼 나도 잘 될 것 같습니다. 다들 여기 이 부분에서 속거든요. 악한 마귀가 이 부분에서 너무 잘 포장을 합니다. 그래서 남들처럼 나도 한건 올리고 대박이 터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뭐가 문제냐하면 결정적인 시기에 가서 새는 구멍이 자꾸 생깁니다. 초장에는 잘 나가다가도 아주 중요한 시기에 가서 엉뚱한 일들이 자꾸 겹칩니다. 그러면서 비용이 자꾸 증가되고, 인간관계가 꼬이게 되고, 잔뜩 기대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이런 현상이 생깁니다.
믿음이란 게 결국 사람을 덜 믿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거든요. 사람을 믿어도 하나님을 통해서 믿어야지, 사람을 믿으면 자꾸 하나님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사람한테 실망이 생기고 서운하고! 이게 믿음으로 나가지 않아서 결국 생기는 현상이거든요. 처음에는 다들 다 해줄 것처럼 하다가도, 사람들은 결정적일 때 도와주질 않아요. 끝까지 돕는 사람이 참 드뭅니다.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서운하다느니, 니가 그럴 수 있느냐느니, 그래봐야 소용없습니다. 믿음없음의 결과이므로 감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말 해봐야 자기만 손해입니다. 이렇게 결정적인 도움이 오질 않아요. 그게 오므리와 아합의 꾀와 행동이 결국 낳는 결과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뭡니까? 내 분깃을 아는 것입니다. 그날 그날 열심히 살고 거기에 열매가 있으면 감사하고, 없으면 기다리면서 더 열심을 가지고 나아가고, 그게 분깃의 삶이거든요. 이런 열매는 마음에 감사가 있습니다. 적막이 틈탈 수가 없습니다. 속이 꽉찬 열매입니다. 보존이 되요. 황무하게 되거나 치솟거리, 놀림감이란 말이지요, 그런 게 안됩니다. 왜 내 손의 열매인데 누가 뭐라고 그럽니까?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남을 조금이라도 돕고 남을 사랑하는데 쓰기라도 하면 굉장히 큰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거든요. 누구도 설명 못하지만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그런 보람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신 분깃 가지고 사랑을 계속 베푸는 것입니다. 해 본 사람은 그 기쁨을 알거든요. 봉사의 기쁨, 사랑의 기쁨! 이게 순종의 삶이고 이게 완전한 지혜의 길로 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예배의 삶을 살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며 이런 분깃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런 삶을 언약의 하나님은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Conclusion: 사랑하는 갈보리청년 여러분, 우리가 구약 민수기에 보면 발람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당나귀가 말하고 바로 그 당사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발람에 대한 생각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유혹한 나쁜 사람, 이렇게만 아는데 좀더 우리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민수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발람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이것은 선지자의 표징입니다. 다시 말해 발람은 모세의 시대에 이스라엘의 바깥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존귀한 선지자에 해당됩니다. 모세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모세처럼 찾아가시고 말씀하시는 선지자가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이 발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발람이 그 존귀한 하나님 말씀을 받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재물의 자극에 연약했습니다. 그래서 모압왕 발락의 제안에 자꾸 자꾸 끌립니다. 하나님께서 찾아가서 말씀하셔도, 여호와의 사자가 길을 막아서도, 그래서 나귀가 항의를 해도, ‘당신이 나를 일평생 타고 다녔는데 전에 이러는 것 봐냐, 이러면 이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 이렇게 말하지요, 이 밥통 선지자야! 그런 뜻입니다. 그렇게 나귀가 항의를 해도, 또 결국 저주를 퍼붓는 그 말을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바꾸어도,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다 빼앗긴 발람은 자기의 길을 갑니다. 지혜를 버리는 길을 갑니다. 불순종의 길을 갑니다. 그래서 모압 사람들에게 악한 지혜를 주어서 이스라엘의 행군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국이 어떠했습니까? 여호수아의 칼에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중요한 것과 부수적인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영혼이 중요하고, 우리의 양심이 중요합니다. 그 영혼과 양심을 새롭게 하고 깨끗케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몸의 행동이 중요합니다. 이게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어떤 경우에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러면 언약관계에 의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우리의 모든 영역을 책임지셔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무입니다. 그게 언약입니다. 그래서 살 길을 주시고, 방향을 주시고, 공급해 주실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남자도 공급해 주시고, 여자도 공급해 주시고, 직장도 허락하시고, 분깃을 마땅히 주십니다. 부수적이지만 우리 삶에는 너무 필요하다고 우리가 믿는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게 믿음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중요한 것과 부수적인 것을 혼동하면 안됩니다. 뒤바꾸어도 안됩니다. 뒤엣 것을 먼저 찾아다니며 온통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이 부분에서 명심할 것, 중요한 것에서 시선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에 우리의 눈길과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부수적인 것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이 떼먹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떼먹는다고 생각하면 못 기다리지요, 믿음으로 살지 못합니다, 마음이 다급해서 믿음으로 살기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치사하게 안 떼먹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시선집중이 흐트러지고,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하고, 그래서 기다리지 못하고 성질 따라 마구 달려가고, 어떤 머리 좋은 사람들은 교묘하게 그쪽으로 달려가고, 그래서 뭔가 성취를 얻는 것 같고 열매가 있는 것 같고, 그러나 속지 마세요. 결국 이것이 하나님의 간섭을 불러옵니다. 하나님의 강한 간섭을 불러옵니다. 시간 낭비, 물질 낭비, 그리고 처음 그 자리로 다시 돌아와서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엄청 정확하십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사는 것, 그게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너~무 머리 굴리지 마세요. 하나님 말씀이 내게 들리는가, 이게 중요합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이 내 양심에 느껴지는가, 이게 중요합니다. 이것 놓치지 않고 붙들고 믿음으로 가는 것, 그게 가장 복된 삶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Pray together: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 무엇? 부수적인 것? 나의 믿음을 돌아보는 시간!
Prayer: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의 눈을 여셔서 무엇이 중요한 지를 보게 하시고, 무엇을 붙들어야 함을 알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시간을 살게 하시고 그 시간의 복됨을 믿음으로 알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