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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돌 대장님과 함께하는 한북왕방지맥 1구간
(도덕산 개인산행기)
날짜 : 임신년 해오름달 열아흐래 흙날
누구랑 : 나홀로 땜방
어딜 : 축석령 - 한북 분기봉 - 천보산 - 오지재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도상14km. 실거리 16.8km 소요시간; 7시간 예상; 한돌님 공지내용)
한북왕방지맥이란
한북정맥이 운악산과 죽엽산을 지나 축석령에서 천보산 주릉으로 올라가다가
헬기장인 287.3봉 직전에서 분기하여 북동진으로 올라가면서
378.1봉~어하고개~회암령~천보산~해룡산~왕방산을 거쳐 국사봉에서 북동진하여 개미산을 거쳐
한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산줄기를 한북 왕방지맥이라한다
1구간 등로
의정부역 5번출구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으로 가다보면 농협 건물이나오고
이동교 5리, 축석검문소로 가는 72번과 72-3번 버스를 타면 된다.
8시 쯤 72-3번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걸려 도착한 축석 검문소 삼거리
축석령 祝石嶺
포천시 소흘읍(蘇屹邑)과 경계를 이루며 의정부시 북쪽 관문이 된다. 일명 이백리고개라고도 하는데,
이 고개를 분수령으로 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포천천을 거쳐 한탄강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중랑천을 거쳐 한강에 이르므로 철원과 서울까지의 거리가 2백리가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네이버 지식
버스에서 내리자 축석령에 얽힌 전설이 있는 범바위가 반긴다
옛날 조선중기 포천 어룡동에 오백주(吳伯周; 1643~1719)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부친의 병환이 더욱 위중해지자
이때부터 이곳을 바위에게 밤새도록 빌었다 하여‘‘빌 축(祝)’자,‘ 돌 석(石)’자를 써서 축석(祝石)이라 하고, 또한 이 바위가 있는 고개를‘축 석령’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며
이 바위를‘범바위’라 하고 효행의 상징으로 여겨 최근에 국도변 소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잘 보존해 오고 있다.
조정에서는 1723년(경종 3) 오백주에 게 효자 정문을 내려 그의 효성을 칭송 하였다.
현재 이 정문은 포천시 어룡동 에 있으며, 포천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 정하여 포천시와 보성 오씨 문중에서 보 존 관리하고 있다.
http://www.ggcf.or.kr/html/history/hundred_list.asp?flag=READ&ky_seq=3822
횡단보도를 건너면 축석교회가 보인다
교회로 올라가면
교회 앞마당을 통과하면
바로 산속으로 진입하고
약간 올라 겨울 산행 준비를 하고
한북정맥 분기점을 만나고
한북정맥과 아쉬은 작별을 하고 왕방지맥인 우측으로 진입하고
양주시에서 설치한 이정표를 만나고
축석령으로 바로 내려 가는 축석 안부를 만나고
의자가 놓여 있는 봉을 만나
암봉으로 이어지는 가야할 능선이 반기고
포천시에서 설치한 이정표 - 포천시와 양주시에서 너무 많이 이정표를 설치해 편리하면서도 왠지 씁쓸한 생각?
자이 5단지 갈림길 이정표
전망이 좋은 암봉을 지나고
양주시 방면
바로 삼각점이 있는 376봉이다
잠시 후 어하고개로 우틀하면
어하고개
어하고개(원바위 고개)楊州와 抱川을 잇는 R350과 만나는 어하고개이다(09:15).
‘어하고개’는 ‘원바위고개’라고도 하며, 조선 태조께서 양주 회암사에 행차하실 때 어가(御駕)를 메던 가마꾼들이 이곳에서 쉬어갔다는 전설이 있다
삼각점봉을 지나
율정동 갈림봉
6번 철탑을 지나고
석문령 사거리
석문령 石門嶺 -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
경기도 양주시 귀루리 아랫마을에서 포천 갈매동으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이다. 석문이고개라고도 한다. 돌문이 있던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연산군일기』에는 석문현(石門峴)으로 소개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문령으로 기록되었다.
이후의 문헌인 『포천읍지』, 『양주읍지』, 『해동지도』, 『여지도』, 『광여도』, 『동여도』에도 석문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
이정표
송우리 하산길을 만나고
천보정 정자가 있는 341봉이다
삼각점
공원묘지를 지나고
천보산과 철봉산이 앞길을 안내하고
우측으로 해룡산이 어서 오라 손짓하고
그사이 희암고개에 도착하고
회암령 檜岩嶺
경기도 양주시 회암리에서 포천시 소흘면으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이다. 『대동지지』에 "회암령(檜岩嶺)은 포천현 서쪽 25리에 있고 양주와 경계를 이룬다."고 되어 있다.
옛날 회암리로 넘는 고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얌고개라고도 부르는데 신라 시대 '회암사'라는 절이 있어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하며, 이 절은 빈대가 하도 많아서 폐사되었다 전한다. 네이버 지식
투바위 휴게소가 있다
한국전쟁 이후 군인들이 두 번째로 넓혀 뚫은 길이라 하여 투바이고개 라고도 부르고 있다
전나무가 많고 천보산이 응결된 암석으로 되어 있어 회암이라 하였다.
희암사지가 있는 방향
회암리(檜巖里)에 회암교(일명 김삿갓교)가 있는데 이 마을이 김삿갓(김병연)의 고향이라고 한다.
문헌상 나온 기록은 아니고 연구자들에 의해 그렇게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김삿갓 본인의 쓴 시에도 그렇게 추정할 근거가 있다고 한다.
희암령에서 보았던 보루가 몇개 더 보인다. 이 보루는 한 면은 자연 바위를 이용해 만들어져 있다
천보산 5보루의 설명에 들어있다.
다른 보루들은 이런 모양인데 - 희암령 입구에서 본 보루
천보산 정상
천보산
천보산의 이름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난을 당해 이 산에 피신했다가 목숨을 건진 뒤 이 산을 ‘금은보화로 치장하라’라고 신하에게 명했다.
신하가 난리 뒤라 금은보화를 구하기는 어렵고 산이름을 하늘 밑에 보배로운 산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간청해 천보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인증 사진도 남기고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예로부터 천보산도 칠봉산이라 불러왔다. 또 양주 시지(市誌)를 보면 칠봉산은 자세히 설명하지만 천보산은 짧게 언급된 것을 보면 옛적에는 천보산을 칠봉산의 일부로 보지 않았나 싶다.
5만분의1 지도에도 칠봉산은 표기돼 있으나 천보산은 없는 경우가 많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50801032033008002
희암사와 희암사지 갈림봉이기도 하다
檜巖寺
『여지도』에는 천보산(天寶山) 아래에 회암면(檜岩面)이란 지명이 보인다. 『1872년지방지도』 「양주지도」에는 회암(檜巖)으로, 「포천현지도」에는 회암현(檜巖峴)으로 표시되어 있다.
『청구요람』에는 회암산(檜巖山)으로, 『동여도』에는 회암령(檜岩嶺)으로 쓰여 있다.
『여지도서』에 "옛날에 무학(無學) · 나옹(懶翁) · 지공(志恭) 등의 세 스님이 이곳 회암면에 창건했다고 하는 99방(房) 규모의 회암사구지(檜岩寺舊址)가 있으나 지금은 단지 이끼 낀 옛 비석과 풀에 파묻힌 섬돌만 보인다."는 기록이 있다.
『포천읍지』에는 회암령이 양주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네이버지식
전망이 좋아 오늘 달려온 능선이 일렬로 줄지어 있다
조선 최대 왕실사찰 터였던 회암사지
조선은 억불(抑佛)정책으로 유명했는데, 왕실에서 이같은 큰 규모의 사찰을 지녔다는 게 불가사의하기도 하다.
1997년부터 발굴을 시작해 지금까지 진행 중이며 64개의 건물과 왕실의 것으로 추정되는 갖가지 유물이 발굴됐다.
전망대를 만들어 놓아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고 한다.
장림고개 방향으로 내려 오면 천보산 제5 보루를 만난다
3개시를 거느리고 있는 철봉산 갈림길이 나온다.
칠봉산, 장림고개 이정표
칠봉산-해룡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50801032033008002
칠봉산은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나무 사이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져 금병산(錦屛山)으로 불렸다고도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어등산(御登山)이라고도 했고 구한말에 7개의 봉우리가 있다해서 칠봉산으로 정착했다
이 산 역시 임금이 올랐다는 의미의 ‘어등’(御登)이 말해주듯 조선시대 임금과 관련된 전설이 전하는데 일곱 봉우리 이름도 거기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칠봉산
시지(市誌)에 보면 ①임금이 처음 등산하기 위해 떠난 곳이라 하여 발치봉(發稚峯) ②임금이 수렵에 필요한 매를 날렸다는 곳이라 하여 응봉(鷹峯)
③임금이 수렵하러 나가 수렵표시 깃발을 꽂았다 하여 깃대봉(旗臺峯) ④임금이 이곳에 쉬니 시위(侍衛)군사가 갑옷투구를 풀어놓았다 하여 투구봉(鬪具峯)
⑤임금이 군사를 거느리고 떠날 준비를 하던 곳이라 하여 솔치봉(率稚峯) ⑥임금이 떠나며 돌이 많다고 하였다 하여 돌봉(突峯) ⑦임금이 돌이 많다고 말한 곳이라 하여 석봉(石峯)등의 일곱 봉우리가 그것이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지키고 있는 장림마을 갈림봉
조촐한 점심
눈에 덮여 있는 시멘트 도로를 만나고
안내판이 있다
이제 오르는 일만 남았다
첫 봉에 오르니 정상까지 1.2Km 남았다
헬기장을 지나고
정상부분 통신시설을 만나고
통신탑이 정상인 정상
해룡산海龍山
경기도 동두천시의 불현동과 포천시 선단동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고도:661m).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해룡산(海龍山)은 포천현 서쪽 20리 지점에 있다.
산 위에 물이 거울같이 맑으므로 거울못, 감지(鑑池) 또는 천호(天湖)라 하는 못이 있는데, 비를 빌면 영험이 있다.
속설에 전해 오기로는, 군마(軍馬)가 산 위를 짓밟으면 비가 오거나, 비가 오지 않으면 구름이라도 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2,000여 년 전 큰 홍수가 나서 이 산에 살던 이무기가 그 물로 인하여 용이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도 조개껍질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바로 부대 정문인 시멘트 도로를 만나고
『여지도서』엔 "민간에 전하는 말에 따르면, 태조가 왕위에 오른 후 이 산 아래에서 무예를 닦았다."고 하는데 실은 이동교리에 살 때부터 이곳에서 무술을 연마하였다 한다.
이 산은 예로부터 산림이 울창하여 산수 좋은 곳으로서 산기슭에는 최근 인공호수를 만들어 다목적으로 활용하고 있어 더욱 운치를 돋우어 주고 있다.
조선 시대의 명필 양봉래(楊峯萊)가 자주 올랐다고 전하며 산세 또한, 아름답다. 네이버 지식
이제 얼마 남자 않았네
조금 내려가다
바로 산속으로 진입한다
너무 짧게 남아 방심했나 가다 보니 시멘트도로로 내려오고...
다시 만만한 능선을 잡아 다시 정상으로 오르다 만난 능선 표지기 - 40분이나 걸렸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려하니 왠지?
헬기장을 만나고
이제 왕방산 줄기가 보이기 시작하고
다시 시멘트 도로를 만나
다시 산속으로
오지재 고개가 보이고
2구간에서 미리 보았던 오지재고개
이정표
2구간에서 이미 걸었던 왕방산 오르는 들머리
오지재 고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너무 불편해
거의 모든 산꾼들이 택시를 이용하게 되는데 나도 결국 택시를 이용했다.
031. 543. 4114나 011. 241. 0002 로 전화하면 금방 올라온다.
5000원을 지불하고 대진대 앞에서 138번 광역버스를 탄다고 하면 그 자리에 내려준다.
혜롱산에서 하산시 방심하는 바람에 알바도 하고
짐승 발자욱과 함께 보조를 맞추며 오르는 길이 결코 쉽지 않았는데
어렵게 잡은 지맥길도 아무도 걷지 않아 생각지도 않았던 스패츠를 다시 착용하고...
양주시와 포천시에서 조금만 공간만 있으면 경쟁적으로 이정표를 만들어 놓아 길 찾기에 수월했지만
마지막 알바에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갑자기 남은 시간에 남겨 놓은 왕방지맥 1구간을 끝으로 3구간 모두를 완주 한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초보산꾼 多 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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