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토법문은 지극히 어렵고도 지극히 쉬운 법문이다. 어렵다는 것은 확철대오하여 경장의 뜻에 깊이 들어간 사람도 여전히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쉽다는 것은 어리석은 촌부도 지극정성으로 간절하게 염하면 임종시 갖가지 서상이 나타나며 서방극락에 왕생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확철대오하여 경론에 깊이 통달한 사람도 뒤를 따라잡을 수 없다. 확실히 이렇게 경론에 밝은 사람들은 불력을 버리고 오로지 자력을 위주로 하지만, 어리석은 촌부는 전일하게 불력에만 의지하니, 불력으로 말미암아 자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불력. 법력. 자심이 본래 갖추고 있는 힘, 이 세 가지 법은 서로 맞는다.
그래서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의 흐름에 들어가 삶을 끝마치고 죽음을 벗어난다.
정토법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믿음과 발원에 있다. 믿음과 발원이 있으면 반드시 착실하게 수지하여야 한다. 기꺼이 수지하면 곧 왕생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역주】 이 단락의 법문도 사람들이 오해하기 매우 쉽다. 본원법문의 사람들은 이 법문을 가장 많이 인용한다. 인광대사의 원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싶다면 반드시 염불왕생의 일을 삼단계로 나눠야 한다. 1) 전기에는 염불하여 자량(믿음, 발원, 염불행)을 누적한다(수덕).
2) 임종시에는 세 가지 힘으로 부처님을 친견한다. 3) 최후에는 왕생하는 단계이다. 인광대사의 상술한 법문은 임종시 왕생하는 단계에 대한 법문으로 보통 자력법문의 임종과 대비된다.
자력법문을 닦는 자는 임종시 자력을 위주로 하고, 저 부처님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법문에 국한한다). 임종시 최후 일념에 이르러 숨을 거두기 전에 반드시 자력(또한 본공덕력을 포함)에 의지하여 심령을 맑고 밝게 유지하여 독자적으로 임종시 사대가 분리되는 일체 괴로움에 대응하여 명종삼위(命終三位: 명료심위明了心位. 자체애위自體愛位. 난심위亂心位)에 도달한다. 특히 난심위는 가장 가혹한 시련으로 한평생 지은 선악이 문득 현전하고, 업력의 환 같은 경계가 여러 번 일어나며, 무거운 업과 습기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착란. 전도시키면 즉시 생이 바뀌고 다시 눈을 뜨면 이미 후유後有의 몸이다(진실한 수행인은 대선인에 속하여 대부분 중음신이 없다). 즉 영명대사께서 《선정사료간》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중음신의 경계가 눈앞에 나타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것을 따라 가버린다(陰境若現前, 瞥爾隨他去).”
자력법문을 닦는 자는 임종시 저 부처님께서 내영하시지 않으니, 반드시 자력으로 임종시 전생(다시 태어남)을 해결해야 한다. 그때 만나는 곤란은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러나 생전에 이미 관행위를 증득한 수행인의 경우 임종시 전생에 상대적으로 자재한 경우가 매우 많다.
마음을 거두어 삼매에 들어가기만 하면 곧 자재하게 생을 버릴 수 있다. 당. 송 상법시기의 선종에서는 죄탈입망坐脫立亡하는 진실한 사례가 매우 많다.
이들은 모두 관행위 및 그 이상의 수행인으로 말법시기에 이런 부류의 상등 근성의 수행인은 이미 봉황의 깃털과 기린의 뿔만큼 적은 것 중에서 또한 적다.
정토법문에 관해서는 오히려 크게 다르다. 생전에 관행위 초품에 이르도록 닦은 염불인의 경우 임종시 짧은 염불로 선정에 들어가 곧 부처님을 친견하고 자재왕생하니, 임종시 여러 괴로움을 겪지 않고, 조념이 필요하지 않다. 이런 부류의 염불인도 많이 보이지 않는다.
말법시기에는 거의 모두 산심위의 염불인으로 임종시 대부분 자재하지 못하고, 대부분 며칠 내지 십여 일간 고통을 견뎌내어야 하고, 임종시 최후 특수한 삼매경에 들어가야 부처님을 친견하고 왕생할 수 있다. 중간에 용맹하게 수지하여 염불하는 자는 또한 공부성편에 이르도록 염하여 죄가 사라지고 왕생을 앞당길 수 있다. 산심위 염불인의 최후 왕생하는 셋째 단계의 경우 반드시 먼저 임종시 세 가지 힘으로 부처님을 친견하는 둘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는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다.
본원법문에서는 타력으로 미혹을 끊어 아미타부처님의 신통력에 의지할 수 있고, 염불인의 견혹 사혹 등 삼혹을 끊고 무명을 복단하여 염불인이 불국보토에 들어가게 함을 강조한다. 이미 아미타부처님의 타력이 이와 같이 매우 큰 이상, 먼저 미혹을 끊음(斷惑)을 말하지 않아도 바로 타력으로 미혹을 조복하니, 진사. 무명혹을 조복할 필요 없이 견혹과 사혹을 조복하기만 하면 염불인을 관행위 초품에 들어가게 하여 곧 자재하게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거늘, 왜 본원법문 신도는 여전히 자재하게 부처님을 친견할 수 없고, 자재하게 왕생할 수 없는가?
입으로 소리내어 십념하면 평상시 왕생의 업이 성취되니, 굳이 자력으로 죄를 참회할 필요가 없고, 타력으로 미혹을 끊어서 또한 매우 쉽게 염불인이 마음을 거두어 부처님을 친견하도록 하거늘, 아미타부처님께서는 왜 염불인이 임종하는 첫날 내영하시지 않는가?
이미 평상시 왕생의 업을 성취하였으니, 부처님께서는 또한 시간을 소모하여 와서 접인하시지 않고 십여일 고통을 견디다 숨을 거두며, 임종시 또한 서상이 없고 오히려 나쁜 상이 많다. 이는 본원법문을 닦는 신도의 임종시 현상이다. 그들은 임종시 왕생의 서상여부를 판정하지 않고, 설사 나쁜 상일지라고 왕생이 결정되었다 여기고 죽은 자에게 맞춰보지 않는다.
이러한 난제는 결국 임종시 세 가지 힘으로 견불이 결정되는 두 번째 단계로 말미암는다.
산심위 염불인이 견불하고 싶으면 임종시 며칠 내지 십여 일 고통을 견뎌낸 후 부처님 명호를 끊임없이 계념하여 점차 임종시 특수한 삼매경에 들어가, 제 6식의 독영경(獨影境: 자신이 홀로 마음속에 갈구하고 있는 바를 외부로 투영한 경계) 속에 비로소 견불할 수 있다. 임종 첫째날 곧 부처님께서 내영하심을 볼 수 있는 자는 반드시 공부성편에 이르도록 염불하여야 하고, 삼악도에 떨어지는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사람(곧 관경에서 중품하생의 세간선인)으로 자재왕생에 속한다. 염불하여 삼매에 들어가기만 하면 삼매경 속에 곧 견불할 수 있고, 견불한 후 반드시 왕생한다.
견불은 반드시 세 가지 힘으로 성취하니, 즉 염불삼매력. 본공덕력. 불위신력이다
이 세 가지 힘 가운데 「수덕修德」이 있는 경우 반드시 본공덕력이 있다(복덕이 아니라 반드시 진실한 공덕을 닦아야 한다). 염불삼매력이 작용하는 것은 마음을 거두어 삼매에 들어갈 때이고, 삼매경 속에서만 비로소 견불할 수 있다. 사람의 심경이 산란하면 견불할 수 없으니, 호수의 물이 출렁이면 달이 비추기 어려운 것과 같다. 산심위 사람의 경우 부처님의 가지력이 상대적으로 가장 약하여 그가 삼매에 들어가 견불할 수 있도록 부처님께서 가지할 수 없다. 아미타부처님의 타력으로 미혹을 끊을 수 있는 능력은 본원법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나치게 크지 않다. 본원법문에 따르면 극락 미타의 타력으로 미혹을 끊고, 심지어 왕생인은 무명혹(견사혹 진사혹보다 끊어 없애기 어렵다)조차 모두 끊어 없앨 수 있어 보토에 들어가게 한다고 말한다. 왜 서방 미타께서 날아서 사바세계인 우리가 사는 지구에 이르러 타력으로 미혹을 끊는 능력이 영험을 잃어버리는가?
지구의 염불인에게 견사혹을 복단하는 것조차도 해내지 못하는가?
염불인은 단지 견사혹을 조복하여 머물기만 하면 곧 마음대로 아미타부처님 화신을 관상하여 친견할 수 있다. 본원법문에서는 주장하길, 서방 미타의 불체는 서방극락에 있는 까닭에 사바세계 염불인의 마음속 혹업은 서방미타를 장애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성미타를 장애한다. (《ㅂ버연상인전집 정토수문기淨土隨聞記》). 그래서 타력으로 미혹 등을 끊는다고 말한다. 묻건대, 서방의 미타께서 지구에 사는 염불인 곁에 올지라도 염불인의 마음속 혹업이 여전히 장애하겠는가? 장애하지 않는다면 지구에 사는 염불인이 타력으로 미혹을 끊어, 바로 지금 곧 실상에 들어갈 수 있고, 일진법계에 들어갈 수 있다.(타력으로 무명혹을 끊음), 정말 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서방의 아미타불이 지구로 날아오면 자성의 미타가 되지만, 곧 지구에 사는 염불인의 마음속 혹업이 앞에 와서 접인하는 서방의 미타를 장애한다. 그러면 본원법문의 갖가지 순수한 타력으로 구제하고 타력으로 접인하는 특권(자력수행도 필요 없고, 임종시 자력의 정념도 필요 없으며, 자력의 참회로 죄를 없앨 필요도 없고,보리심을 발할 필요도 없다...) 조차도 모두 잘못이다. 이는 매우 엄중한 문제이다.
견불하려면 반드시 세 가지 힘을 갖추어야 하고, 반드시 삼매경 속에서 견불할 수 있다.
이는 쟁론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이론상 산심위의 염불인은 절대 아미타불 화신불을 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임종은 특수한 시기로 제6식이 임종시간의 추이에 따라 점차 사라지면서 제6식에 의지해 일어나는 견혹. 사혹 등 미혹은 조복하지 않아도 조복되고, 끊지 않아도 끊어지는 특수한 효과가 출현하게 된다. 그래서 염불인의 믿음과 발원이 확고하여 부처님 명호를 일심으로 계념하며 왕생의 일을 주로 사유하면 곧 임종 후기에 명종삼위의 명료심위말, 난심위 전에 일종의 특수한 임종삼매경에 진입한다.
바로 이 삼매경이 존재하기에 산심위의 염불인은 임종시 독영경에서 아미타부처님 화신을 관상하여 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해결한다. 다시 말해 이 특수한 삼매경 때문에 염불인은 정선을 염할 수 있고, 정선으로 삼악도에 떨어지는 정업을 없앨 수 있으며, 그 죄를 없애는 효과는 평상시 산심염불을 훨씬 초과하여야 한다.
평상시 산심염불을 산선을 닦을 수 있을 뿐이다. 산선으로는 정업을 없애기 어렵다. 그래서 매우 많은 염불인이 여러 해 염불할지라도 오히려 천재지변과 사람이 일으킨 화, 횡사 등 정업定業을 우연히 만나는 이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배삼품, 오역 십악의 중죄를 지은 사람이 짧은 시간 염불하여 죄를 없애고 왕생할 수 있음도 또한 이 특수한 삼매경의 존재 때문이다. 바로 삼매경에서 염불하여 정선을 닦을 수 있어야 오역 등 매우 무거운 죄업조차도 없앨 수 있다. 《관무량수경》에서 이르시길, “선남자여, 그대가 부처님의 명호를 불렀기에 갖가지 죄업이 사라졌도다! 그래서 내가 와서 그대를 맞이하노라!” 하셨고, 《묘종초》에서는 “저 사람(하품인)은 비록 삼매를 성사할 수 없을지라도 십념에 부처님 명호를 불러서 산란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삼매로 섭수하고 다시 임종시 용맹정진하는 힘을 겸한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이 문구는 바로 임종시 특수한 삼매경을 말한다. 염불인은 비록 삼매력이 없을지라도(삼매를 성사하지 못할지라도), 임종시 일심으로 계념하기만 하면 최후에 곧 임종 최후의 특수한 삼매경에 들어갈(또한 삼매로 섭수할)수 있다. 게다가 바로 이 특수한 삼매경의 존재로 아미타부처님의 타력이 명훈가피하는 힘이 현저하게 증승增勝할 수 있다.
첫째, 임종인이 염불하는 역용을 증강하여 임종시 일체 고통을 감소시키거나 더 이상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을 수 있다. 둘째, 임종시 신식이 점차 쇠약해져도 부처님 명호를 계념하는 염을 유지하여 염불상속이 가능하게 된다. 셋째, 명료심위를 잘 유지하여 그것이 맑고 밝게 산란하지 않게 지속하게 하여 자체애위와 난심위가 출현하지 않도록 한다.
넷째, 염불이 상속할 수 있는 까닭에 부처님 명호를 일심으로 계념하는 까닭에 임종시(자신. 처자식과 재산. 내생에 대한) 세 가지 애착 및 한평생 지은 선악이 한꺼번에 문득 임종시에 일체 산란한 경계가 현전할 수 없도록 한다. 다섯째, 아미타부처님의 타력이 가지하여 점차로 증승(임종 최후 일념에 더욱 가까워질수록 그 삼매경이 깊어지고 가지력도 점점 더 커진다)하여 비로소 불광이 임종인을 비추며 섭수하여 그가 더욱 깊은 삼매경(무예삼매)에 들어가게 하여 최후 왕생하는 셋째 단계(염불인의 신식을 섭수하여 연화대에 들어가게 하고 연화대에 오르는 순간 극락에 전생한 후 연꽃 가운데 화생하는 등 이러한 갖가지가 모두 염불인의 자기 도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를 완성한다.
자력법문과 견주어 임종시 갖가지 어려운 일을 산심위의 염불인은 오히려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완전히 전일하게 아미타부처님에 기대어야 이러할 수 있다. 그래서 인광대사께서는 “전일하게 불력에만 의지하니, 불력으로 말미암아 자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셨다.
특히 뒤쪽에 나열한 다섯 가지는 더욱 더 완전히 아미타부처님의 타력 명훈가피에 의지해 염불인의 갖가지 자력의 가능성을 일으킨다.
인광대사님의 이 문구를 결코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본원법문의 잘못된 영역에 들어선다. 만약 본원법문의 이해에 따른다면 묻건대, 이미 불력으로 말미암아 자력을 일으키는 이상 임종시 여전히 자력염불이 필요한가? 임종시 자력 정념이 필요한가?
자력 참회가 필요한가? 자력 발보리심이 필요한가? 이미 부처님께서 가지하면 자력이 곧 생긴다. 만약 임종시 전도 혼미하여도 부처님께서 가지하면 곧 정신이 또렷해진다.
만약 임종시 처자식과 재산에 미련과 애착이 있어도 부처님께서 가지하면 곧 정념으로 염불할 수 있고 더 이상 미련이 생기지 않는다. 만약 임종시 참회할 수 없거나 참회가 진실하지 않아도 부처님께서 가지하면 반드시 참회하여 죄를 없앨 수 있다. 만약 임종시 보리심을 발하지 않아도 부처님께서 가지하면 곧 무상보리심을 일으킨다.......
묻건대, 여전히 어느 염불인이 왕생할 수 없는가? 불력이 가지하는 역용은 단지 상대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것을 절대화하면 곧 본원법문의 잘못된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인광대사께서는 임종조념의 중요성에 대해 누누이 법문하셨는데, 바로 측면에서 아미타부처님 명훈가피의 힘은 상대적이라 설명하셨다. 《관무량수경》의 십육관 수행을 차례대로 나아가야 하고 순서를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제1관을 이루지 못하면 아미타부처님께서도 그가 제2관을 이루도록 가지할 수 없다. 앞 7관을 이루면 아미타부처님께서도 단지 타력의 가지에 의존해서만 그가 아미타부처님 보신을 관하도록 할 수 없다. 산심위의 염불인은 아미타부처님께서 가지하시는 역용의 상대성을 설명하신 것이다.
지나치게 과장하면 미신으로 불법을 증익하는 비방(增益謗)이다. 그 밖에 임종시 염불할 뿐만 아니라 염불하여 자량을 누적(수덕)할 때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면서 염불할 수 있음은 모두 자성의 불력을 밖에서 훈습하는 것이고 또한 서방의 미타 및 시방제불의 은밀한 가지와 호념을 여의지 않는 까닭에 이러한 역용 또한 “불력으로 말미암아 자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말할 수 있다.
|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