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 지난 2012년 11월 13일(화) 청도군 갑북면 오산리에 있는 토굴에서 염불수행을 하고 있을 때 3년 기도를 마치고 하산한 서길수 교수가 다시 찾아왔다. 그때 나는 이미 중국 묘림 스님이 주창한 오음염불을 열심히 주력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내가 관정 스님과 처음 만나게 된 인연과 그 뒤 만났던 이야기를 다 했다. 그리고 아직 바랑에 남아있는 관정 스님 낙관을 찾아주었다. 관정 스님이 수많은 계첩과 묵적에 찍었던 바로 그 옥 낙관이다. 비록 내가 오음염불법을 하고 있지만 나를 정토로 이끈 것은 관정 스님이기 때문에 관정 큰스님의 일대기를 쓰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는 서길수 교수를 도와주기 위해 나중에 관정 큰스님이 서울 올 때마다 머무시던 상락선 보살의 집을 안내하기로 약속했다.
2013년 2월 13일 서울에 올라가 서길수 교수와 등원 스님과 함께 평창동의 상락선 보살을 찾아갔다. 나이 90인데도 정정하다. 그러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말을 길게 잇지를 못한다. 관정 스님에 대해서는 무척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하고, 관정 스님이 써주신 휘호 사진을 찍었다. 아미타사로 가서 등원 스님과 함께 저녁 먹으며 관정 스님 이야기를 많이 했다.
2015년 3월 30일 광주에서 서길수 교수와 4번째 만남이 있었다. 이날 서교수는 관정 스님의 저작집 「淨土와 禪」이 나왔다며 한 권을 주며 말했다.
「정토와 선」 책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는 「극락세계 여행기」와 「정토선 원리」를 새롭게 번역한 것도 있지만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우주적 깨달음」은 등공 스님이 가져온 원고 복사본을 바탕으로 그 글을 실은 「광동불교」에서 찾아낸 것입니다. 이 글은 정토법문 가운데 아주 뛰어난 역작인데 등공 스님이 아니었다면 밝혀낼 수 없었던 논문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등공 스님이 중국에서 가져온 관징 스님의 노트에는 「육조대사 법보단경 현의」 「아미타불 법문 교육의 속 뜻」 「빈말」 같은 미발표 글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이런 글을 발견한 것은 관징 스님의 깊고 넓은 법력을 밝히는 귀중한 자료였습니다. 이렇게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신 등공 스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 자료들이 해를 보게 된 것은 등공 스님 덕분이라는 것은 책에서도 밝혔습니다.“
사실 나는 큰스님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한 달간 함께 있다 실망하여 돌아오면서 몇 가지 관정 스님이 유품을 가지고 왔지만 모두 어려운 한문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서교수가 그것을 다 옮겨 우리말로 모두 번역하여 책에 실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관정 스님에 대해 아주 깊이 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서교수는 관정 스님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모아,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을 사진으로 크게 뽑아 보여주며 설명하였다. 자료는 미국, 대만, 싱가포르, 중국에서 모든 관정 스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서교수는 자료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크게 쇼크를 받았던 ’대처‘와 딸에 대해서 자세하게 그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중국 불교사에서 5번째 법난이었으며, 이때 중국에서는 수십만의 중들이 단 한 명도 남지 않고 쫓겨났다. 그리고 억지로 결혼을 시킨 보기가 많았다. 관징 스님도 그 때 쫓겨나 억지로 7명의 자식을 가진 과부와 결혼한 것이다. 그러나 관징 스님은 두 달 뒤 홍위병 몰래 도망가 동굴속에서 숨어 수행을 계속하였고, 이때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극락을 다녀오게 된다. 수 십 만의 중들이 예외 없이 환속했지만 관징 스님처럼 몰래 도망쳐 동굴에서 수행을 계속한 예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점은 다른 수 십 만의 스님들과 비교했을 때 관징 스님의 수행력과 도력을 찬탄해야지 무조건 비판할 수 없는 첫째 이유다. 2달 결혼 생활 동안 딸이 하나 생겼다. 그 딸은 14년 뒤에야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미국에 갈려고 여권을 내기 위해 찾았을 때 처음 만난다. 관징 스님은 그 뒤 이 딸은 물론 결혼한 과부의 7명 자식에게도 모두 잘 해 주었으며, 그 식구들이 집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보살은 채식만 하는 불자로 이끌었다. 자기의 인연을 숨기지 않고 모두 제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보살행을 행한 것이다.“
이런 자세한 이야기와 함께 「극락세계 여행기」에서 아미타불께서 관정 스님에게 한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나는 붇다께 아프고 괴로운 인간세계에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 이곳에 남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붇다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전에 이곳에 왔었는데 세상사람들을 건지기 위해 다시 인간세상으로 갔다. 너는 바로 다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극락세계의 모습을 전하고 세상 사람들은 건져야 한다.“
관정 스님은 이런 아미타불의 당부를 실천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눈앞에 보인 현상에 집착하여 보살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나의 의심이 다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또 이야기했다.
”가장 큰 문제는 「극락세계 유람기」가 경전과 일치하는가의 문제이다. 경전에는 극락에 여자가 없다고 했는데 관정 큰스님은 있다고 했다. 그리고 8대경산 같은 것도 모두 경전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교수는 가지고 온 책에서 「극락세계 유람기」에 여자가 없다고 한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관음보살께 여쭈었다.
”저는 법사가 경을 가르칠 때 극락세계에는 남자와 여자 모습의 구분이 없다고 들었는데, 왜 저렇게 계집아이들이 많이 있습니까?“
”극락세계에는 실제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다. 그들은 모두 연꽃으로 바꾸어 태어난 몸이다. 네가 보듯이 연꽃으로 바뀌어 태어난 몸은 모두 하얀 수정 같고 뼈가 없고 살과 피도 없다. 생물이 살아가는 원리라는 것이 없는데 어디에 남녀의 모습이나 남녀의 분별이 있겠느냐?“
나는 동석한 전남대학교 김지수 교수의 의견을 물었다. 김지수 교수는 「화두 놓고 염불하세」 같은 책을 여러 권 쓴 정토법문에 정토한 학자이기 때문이다. 김지수 교수는 아미타경에 나온 다음 구절을 인용하였다.
”사리불아, 이 새들이 실제로 죄를 지은 과보로 태어난 것이라 여겨서는 안된다. 왜냐 하면 그 부처님 나라에는 3악취가 없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그 부처님 나라에는 3악도라는 이름도 없는데, 어떻게 실제로 (새가) 있을 수 있겠느냐? 이 새들은 모두 아미타불께서 가르침을 널리 펴고자 바꾸어 만든 것이다.“
극락에 나타난 모습은 모두 부처님의 방편이라는 것이고, 이런 점은 「극락세계 유람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설법 때가 되어 종소리가 한 번 나면, 연못 안의 연꽃 사람이나 다락 안에 있는 사람이나 모두 계집아이로 변하거나 사내아이로 변해 다 한결같은 모습이 된다. 이러한 모습과 입은 옷은 모두 붇다의 힘이나 보살이 바꾸어 나타난 것이다. 붇다의 힘은 남자 모습이 나타나라면 남자 모습이 나타나고, 여자 모습이 나타나라면 여자 모습이 나타난다.“
이처럼 보는 부처님의 방편으로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에 관정 스님이 갔을 때 본 정관탑 같은 경계를 가지고 잘잘못을 따질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었다.
위에서 본 두 교수의 의견을 듣고 나는 그동안 관정 큰스님을 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식과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식을 가지고 쉽게 판단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동안 공부했다고 하지만 분별력만 키웠지 않았는가 하는 자괴심이 마음속에서 일어나 크게 참회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범부가 어찌 보살의 마음을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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