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子夜歌를 주제로 세편의 방송글을 썼다.
그 뿌리를 쫓아 올라가면 東晉 시대로 1600여년을 올라가서
자야라는 여성 싱어 송 라이터를 만나야 결판 날 일이다.
흥미로운 건 조선후기까지 '자야가'란 이름으로 작품들을
남겼고, 아주 진하디 진한 자야가는 아예 이름없는 무명씨 작품으로
나돌고 있다. 중간에 선비들이 44자로하자 형식미를 부여했지만
동진의 자야란 여자가 부른 구슬픈 사랑노래가 그 핵심이다.
이걸 후대 사람들이 형식화 하거나 틀에 맞춰서 노래해 하나의
장르처럼 만들었지만 결국 민간에 부르는 민요 중에 '애정요'
또는 진한 '사랑노래', 보다 간단히 말하면 조선시대 유행가 중
한가지라고 보면 될성 싶다. 원조가 있으면 뒤를 잇는 자들이
변형을 하게 마련이다. 원판 그대로 따라하는 건 개성있는 자 치고
못할 짓이라며 비틀고 또 꽈 보고 해서 형식의 변화는 필연인데
이 子夜歌 격조있고 속 뜨겁게 불러 댄 시인을 꼽자면 당나라 이태백과
우리 땅엔 한문 4대가 중 한분인 상촌 신흠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 두 사람 '자야가'를 중심으로 방송에선 3회로 이어 봤다.
애정요이고 사랑가이기도 한 '자야가'의 치부를 들자면 은밀한
사랑 이야기를 찐하게 화려하게 알콩달콩하게 멋지게 묘사하려는
진한 화장발에 질린다 할 것이다. 이 땅에 흔해 빠진 유행가 가사들
조금만 더 톡 쏘게, 조금만 더 보일 둥 말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백의 '자야오가子夜吳歌'를 보면 조금 심각하고 뼈가 시린
여인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이백은 사계절 자야오가를 남겼는데
그 중에 가을편이 절창이다. 이런 그림을 그리면 될 것이다.
가을달 밝은 밤 동네 곳곳에 다듬이질 소리 끊어지질 않고
으쓱하니 추운 추풍은 방안까지 달려드는데, 그냥 추풍이 아니라
그놈의 전쟁 때문에 국경으로 나간 낭군님 쪽에서 불어 온 바람이더라
빈 바람만 잡은 아낙은 잠시 전쟁터 낭군님 옷 짓는 다듬이질 멈추고
언제나 올까 그놈의 전쟁은 언제나 끝나고 낭군님 한번 얼싸안아볼까
이런 그림이다. 여기서 이태백이 다른 자야가랑 시선을 달리 한 것은
그냥 님과 멀리 떨어져 그리워 하는 설정이 아니라, 그놈의 전쟁 땜에
추풍 속에 국경에서 벌벌 떨며 마누라 부르고 있을 낭군 생각하며
전장터로 옷을 지어 보낼 다듬이질 하는 여인네 그 달밤을 그렸다는 점이다
후대로 오면 이 자야가는 그냥 찐한 사랑가로 변절하기 시작한다.
일테면 정이 담뿍 든 남녀가 한 방에서 은근히 쳐다 보면서
남자가 하는 말이 '이 술잔이 어쩌면 이리 향긋할꼬?'
여자가 받아서 하는 말이 '그야 소녀가 먹다 남긴 술이니깐요'
뭐 이런식으로 농염한 노래로 심심풀이 사랑가로 몰아가기도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중에 청장관 이덕무가 고른 자야가가 그래도
조금은 격조 있으면서 연정을 머금은 운치를 그리고 있다. 원전으로 음미해 보자.
버드나무 가지는 구불구불 얽혔고 / 柳條宛轉結
파초잎은 가운데 심으로 밤낮없이 말렸다오 / 蕉心日夜卷
누가 펼 줄 몰라서 오므리고 있겠수 / 不是無舒時
님의 손길 오면 스르르 펴질건데 / 待郞手自展
우리 시인이 아니라 명나라 이헌길(李獻吉)의 염곡(艶曲)으로 유명한 한구절이다.
이런 자야가(子夜歌) 사랑노래가 조금씩 질펀하게, 마침내
금지된 묘사까지 하면서 현란한 사랑의 수식어로 화려한
말장난 사랑가나 애정요로 변절되는 걸 보게 된다.
요즘 자야가(子夜歌)라 할 우리네 유행가를 보면 짐작 갈 일이다.
이런 자야가 그림 한쪽은 어떨까?
깊은 밤 개짖는 소리에 치맛끈 반만 묶고
섬돌을 내딛다 마당으로 널브러져
뚜벅뚜벅 멀어진 발걸음에 달빛만 부여 잡았구나!
이런 기다림이라도 남아 있었음 좋겠다.
요즘 우린 과연 자야가(子夜歌) 한구절이라도, 아니 사랑가 한장단이라도
불러 보면서 사는건지, 그저 질펀한 유행가 한곡조로 달래는건지
듣는 사람마다 울렸다는 동진의 자야는 말이 없고 이내 자야가는 밤이 깊어만 간다.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 상촌 신흠이 노래한 ’자야가‘ 子夜歌3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고전 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어제까지 두 번에 걸쳐 ‘자야가’를 돌아봤었죠.
초란 중국 동진 때 자야란 여성이 만든 슬픈 노래가
훗날 유명시인들이 나도 한곡조 보태서 ‘자야가’ 시리즈를
남기게 됐다는 거잖아요.
놀보 조선 중기 기록을 보면 사신으로 갔던 우리측 사절단이
명나라에서 새로운 자야가 가사를 들고와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으니 자야가 전통은 중국의 남북조 시대
이후 천년을 이어왔고, 오늘까지 치면
초란 거의 1600여년을 이어 온 오래된 악곡이름이군요.
이 자야가를 ‘사시 행락가’라고 별명을 붙이기도 해서
‘사시행락가’와 단가 ‘사철가’ 랑 연관 지으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을 듯 싶구요.
놀보 조선 중기 문신 상촌 신흠은 한문4대가에 꼽히는
문장가이고 좌의정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이기도 한데요.
그 상촌 신흠이 ‘자야가’란 제목으로 무려 열 수나 되는
작품을 남겼거든요. 여기 네 번째 ‘자야가’ 한번 볼까요?
초란 (낭송) 홀로 든 거울에 마주 보는 난새 한 마리
너랑 나랑 한쌍이 되었구나/ 차라리 물오리하고
갈매기가 둘이 마주 보면서 가을 강가에 조는 것이 나았겠지
놀보 자야란 여인이 슬픈 곡조로 남겼다는 ‘자야가’가
조선의 상촌 신흠에게 와서는 짝 잃은 원앙새
고독으로 그려지고 있는 장면이죠.
초란 오늘이나 님이 올까 화장을 하고 거울을 보는
여인의 기다림이 느껴지는군요. 근데 벌써 오랜 세월을
화장 고치고 본 거울에 새겨진 난새와 자기
둘이만 한쌍이더란 그 대목부터 가슴이 아파오는데요.
놀보 그래서 그 난새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죠.
꼭 원앙새가 아니더라도. 그래 그냥 물오리하고
갈매기가 서로 가을 강가에 졸고 있는게 낫지
이렇게 만나지도 못하고 거울속 난새랑 백날 짝을 지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초란 흔들리는 여심도 살짝 비춰지는거 같은데요.
오랜 세월 기다리고 기다린 난새 같은 님은 소식없고
그러니 물오리랑 갈매기라도 서로 강가에 졸고 있더라도
그렇게 만나서 살고 싶다는 거잖아요.
놀보 기다림과 고독에 지쳐 흔들리는 여심을 보여주기도 한
상촌 신흠의 ‘자야가’는 그 다섯 번째 ‘자야가’에서
호수보다 깊은 기다림의 뜻을 다시 노래하고 있습니다.
초란(낭송) 열길이나 된 계수나무 노를
짙푸른 태호 호수에 담궈본다
태호여 호수여 깊다고 말을 마소
낭군 그리는 내 마음 같이 깊을까?
놀보 어떤가요. 이런 ‘자야가’의 전통을 살려서 오늘의 ‘자야가’에
기다림, 그리움, 꿈과 사랑노래 다시 지어 불러보는 것은요?
초란 오늘 ‘신 명심보감’ ‘자야가’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우면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 자야가 자야사시가(子夜四時歌) 2’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고전 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어제 세상에서 슬픈 노래로 알려진 자야가를
잠시 소개해 드렸죠.
초란 동진시대 민요였다면서요. 자야라는 여성이 지었던
곡이라 자야가라고 했구요.
놀보 훗날 ‘자야 사시가’라는 노래로 확대돼 불려지기도
했으니, 님을 기다리는 자야, 사랑을 잃은 자야.
세상에 나 혼자인가 하는 고독과 그 아픔을 노래한
자야가는 대를 이어서 다른 가사와 곡조로
불려지게 됐더란겁니다. 이태백도 자야사시가란
가사를 지어서 남겼을 정도구요.
초란 어제는 자야가를 인용한 고봉 기대승 노래도 잠시
음미해 봤는데요. 중국 동진시대 이후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때까지 자야가는 새로운 가사와 곡조로
전해 왔겠군요.
놀보 애초엔 슬픈 곡조였는데 후대로 가면서
‘사시행락가’로 바뀌어 부르기도 했으니,
우리가 지금도 즐겨 부르는 단가 ‘사철가’도
실은 자야가의 맥락에서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초란 또 그렇게 연결되는군요. 이래서 전통이란 참
끈질기게 오랜 생명력을 갖고 있구나 싶네요.
우리 쪽에서 자야가를 어떻게 받아 들였는지 그 흔적을
놀보 우리 사철가 같은 형식과 내용을 보면
사계절 흘러가는 자연의 시계 속에 인생이 무상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더라. 그래도 서로 함께 오붓하니
같이 살 정든 사람들 있으니 그 마음으로 어버이 사랑하고
우정을 변치말며 살아보세.
초란 그게 단가 사철가가 전해 주고 싶은 메시지 아닌가요.
이게 전통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중국의
‘사시행락가’ 와 만날 수 있고, 그 ‘사시 행락가’는 또
동진의 ‘자야가’와 만나게 된다는 말씀 아닌가요?
놀보 그렇죠. 해서 조선의 선비들도 때때로 중국 쪽
자야가 사설을 입수해서 서로 소개도 하고
제 각각 지어 보기도 했던건데요. 명나라 이헌길이
전하는 ‘자야가’ 잠시 음미해 볼까요?
초란(낭송) 구불구불 얼크러진 저 버드나무야
파초잎도 밤낮없이 말려 있지만
펼 줄 몰라서겠수, 님의 손길만 오면 스르르 펴질건데....
놀보 이런 내용의 노래가 자야가 전통으로 이어 오기도
했더란겁니다. 그게 사계절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바꿔지기도 했고, 우리 단가 ‘이산 저산’ ‘사철가’도
그런 사시행락가에 비교해 보면 흥미로울 것이란거구요
초란 이제 애청자 여러분도 나름 낭만과 우수가 실린
님 기다리는 마음 실은 ‘자야가’ 한편 지어보심이?
초란 오늘 ‘신 명심보감’ ‘자야가’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우면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촌신흠의 자야가 노래
악부체(樂府體)○고악부(古樂府)
자야가(子夜歌) 10수
그대의 백옥 채찍을 가지고 / 以君白玉鞭
나의 황금 팔찌와 바꾸었는데 / 換我黃金釧
더디게 와서 즐겨 말을 않는지라 / 遲回不肯言
부끄러워 도리어 얼굴을 가리네 / 惹羞還遮面
이(二)
젊어서 서호 가에 살았는데 / 少居西湖上
서호 십리가 온통 연밭이었지 / 西湖十里荷
꽃이 열매 맺는 것만 탐하여 볼 뿐 / 貪看花結子
애당초 연꽃은 따지 않았다오 / 本不採蓮花
삼(三)
오동 꽃은 이미 다 떨어졌고 / 桐花落已盡
뽕 잎새 또한 시들어가는데 / 桑葉亦欲老
어이하여 인정 박한 사나이는 / 如何薄倖郞
항상 양양 길에만 있단 말인고 / 長在襄陽道
사(四)
거울 속에 외로운 난새가 있어 / 鏡中有孤鸞
나와 더불어 한 쌍이 되었는데 / 與我還作雙
물오리와 갈매기가 둘이 서로 마주해 / 不似兩鳧鷖
가을 강에서 조는 것만 못하도다 / 相對睡秋江
오(五)
열 길 된 계수나무 노를 가지고 / 桂棹十丈長
이 태호의 깊은 물을 헤아리나니 / 量此太湖深
태호가 깊다고 말하지 말라 / 莫道太湖深
어찌 낭군 그리는 마음만 하리오 / 爭如戀郞心
육(六)
가증스러워라 저라산의 계집이 / 生憎苧羅女
오왕을 위해 죽지를 아니하고 / 不爲吳王死
고소대는 아직도 남아있는데 / 姑蘇臺尙存
문득 치이자를 따라가버렸네 / 却逐鴟夷子
칠(七)
땅에 가득한 건 붉은 융단이요 / 滿地紅氍毹
잔에 넘치는 건 좋은 술이라 / 盈觴紫流霞
술상 머리서 낭군께 술 권하니 / 當鑪勸郞飮
낭군 절로 기뻐 붉으레 취하네 / 郞自喜微酡
팔(八)
천상의 달을 말하지 말라 / 休言天上月
차면 반드시 이지러지나니 / 盈則必有虧
바라건대 지중의 산이 되면 / 願作地中山
땅은 갈라져도 산은 옮기지 않으리 / 地拆山不移
구(九)
비녀의 머리 금봉황으로 / 釵頭金鳳凰
등잔의 불똥을 떨어뜨리노니 / 敲落蘭缸燼
등잔불이 어이 그리도 성한고 / 燈火何太熹
명일에는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 明日有芳信
십(十)
강 조수는 절로 시각이 있고 / 江潮自有信
돛은 절로 바람을 일으키나니 / 布帆自生風
모름지기 백문 밑으로 좇아서 / 須從白門下
우저의 동쪽에 돌아가 정박해야지 / 還泊牛渚東
[주C-001]자야가(子夜歌) : 자야(子夜)는 진(晉) 나라 때의 여자 이름인데, 그가 이 악곡을 맨 처음 지었다 한다.
[주D-001]거울 …… 있어 : 거울 뒷면에 난새를 새겼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2]저라산(苧羅山)의 …… 따라가버렸네 : 저라산의 계집이란 저라산에서 땔나무를 팔던 미인 서시(西施)를 말함. 춘추 시대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회계(會稽)에서 크게 패하였을 적에 그의 모신(謀臣) 범려(范蠡)가 서시를 취하여 오왕에게 바치고 위기를 면하였는데, 오왕은 서시를 위해 고소대(姑蘇臺)를 짓고 그의 미색에 빠져 날마다 유연(遊宴)이나 일삼고 정사는 돌보지 않다가 마침내 월 나라에게 멸망당하자, 서시는 죽지 않고 다시 범려를 따라갔다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치이자(鴟夷子)는 범려가 뒤에 월 나라를 떠나 고친 이름인 치이자피(鴟夷子皮)의 준말이다.
[주D-003]백문(白門) : 남경(南京)에 있는 지명으로, 즉 금릉(金陵)을 달리 부른 말이다.
[주D-004]우저(牛渚) : 남경에 있는 못[淵] 이름.
|
첫댓글 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데도 살아 가다보면 멍하니 티비 에 눈 멈추고 앉아는 있을 지라도 책읽기가 쉽잖은데
선생님의 좋은 글이 저의 요즘 유일한 지식의 양식이 되고 있네요..ㅎㅎ
감사 드립니다..^^
연화님 처럼 아직도 젊은 감성 이성으로 즐겨 봐 주신다니
시간만 있으면 생각대로 올리고 싶은데 이도 짬을 내기 그러네요.
그래도 때때로 연화님 같은 분을 위해 작은 글자리 마련해 볼게요.
그럼요, 연화님.
주인이 던져주는 대로 먹이를 받아 먹는 길들여진 동물처럼
tv에서 차려놓은 여러 눈요깃 거리에 정신을 팔다가는
어느샌가 우리들 머릿속은 스펀지처럼 엉성하고
가볍게 되고 말 겁니다.
부지런히 좋은 글을 찾아서 읽고, 양서도 많이 읽어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두뇌를 만들어야죠.
ㅋㅋㅋㅋ 이렇게 말하는 이 보라돌이도 아침, 저녘으로
보는 드라마가 있죠. 꼭 챙겨 보는데....이 마약중독 같은
드라마....이것 결말을 보고나면 이제 그마저 끊으려구요.
일절, 새로 시작한 드라마들은 시청하지 않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