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대선을 앞두고 여타의 풍수인들이 그래왔었던 것 처럼 오직 제 개인적으로 각기 후보자들의 선대 묘소에서 그 풍수적
특히 형기적 사실들을 근거로 학술적 고찰을 해보고자 하는 것일 뿐 여타의 후보자를 비방 폄훼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에
혹여 본의 아닌 내용이 당사자를 비방 폄훼하려는 의도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혜량해 주실것과 함께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丙申年 말에 언필칭 병신년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국가적 비극이 차기 대권 행보까지 앞당기고 있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쯤이면 의당 나올법도 한 예의 계룡산 정도령 타령은 그동안 말도 안되는 설들로써 이제 다들 지쳐 식상했나 보다.
그간에 본인은 계룡산 정도령이 등장하는 수 많은 정감록을 나름 탐독해 보았다.
물론 그 내용의 실체들을 해부해 보기 위해서였다.
이에 40여 종류가 된다는 주장들을 모두다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허구만을 주장하고있는 주요
서책들을 분석해 낸 결론은 모두가 도선국사 옥룡자 유산록 비결에 있는 한 혈처를 가지고서 혹은 그 내용의
진실 조차도 모르고서 대저 자신들의 상상력을 가미해 해괴하게 꾸며낸 한낱 소설같은 결과물들이라고 결론지었다.
즉 정감록의 핵심은 아래 도선국사 옥룡자 유산록에 적혀있는 혈장이다.

서쪽으로 재를 넘어 장흥지경(長興地境) 다다르니
구산하 상제봉조(上帝奉朝) 배례(拜禮)밧 놓였구나
육경(六卿)은 안(案)이 되고 삼태(三台)는 서쪽에 있다
쌍귀추성(雙鬼樞星) 세운 곳에 혈재상취(穴在上聚) 하였구나
육조신(六朝臣)이 아래에서 옹위(擁衛)하니 군왕지지(君王之地) 되엿구나
이 산주인(山主人)을 찾아보니 연정(延鄭)의 거물이라
이後
백년안에 우연(偶然)히 쓸 것이니
하늘이 주신지라 그 누구에게라도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라는 비결이다.
물론 본인은 이곳의 혈장을 오래전에 찾았었다.
그 이유는 같은 옥룡자 유산록에 적혀있는 태인 군신봉조 혈을 찾기위해 그곳에서 나오는 배례밧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확인코저였었다.
또한 유산록의 수 많은 혈장중 배례밧 형태을 적시한 곳은 이 두곳밖에 없기 때문이였다.
결론은 배례밧의 밧의 정확한 뜻이 지금껏 모든 지사들이 확신하며 주장해 온 오늘날의 밭,
즉 田이 아니라 받들다의 옛말이였다.
즉 배례밧은 절을 하듯 예를 갖추어 받드는 형국이였다.
이에 태인 군신봉조의 배례밧은 예덕리의 즉 속칭 보릿밭 마을이 아니라 두월리 방성동쪽에 있는
왕자산 모습을 태인 군신봉조 혈장에서 바라 볼 때의 형국을 지칭한 것이였다.
즉슨 멀리서 절을 하 듯 예를 갖추고 받들고 있는 모습의 아래 사진속의 왕자산이 배례밧 형태였다.
이는 태인 군신봉조 혈장에서 뒤쪽을 바라보며 찍은 모습이다.
이에 다른 여러 선사들은 이를 後 有臣으로도 표현했었고 또한 聖人이 왔다해서 앞 마을 이름 또한 坊聖洞이다.
따라서 지금껏 모든이가 주장해 온 태인 군신봉조 혈장의 위치는 잘못된 것이며
앞서 본인의 주장은 하나의 틀림도 없는 맞음이였다.
어찌하든 위의 도선국사 옥룡자 유산록 비결서로 인해 以後 장흥에는 그 유산록 비결내용을 근거해 찾아나선
일지승 용혈도를 포함 몇곳의 잘못된 군왕지가 더 있다.
모두가 이곳을 찾으려고 했으나 제대로 찾지못하고서 나름 자신이 점지한 곳을 이곳 군왕지라 믿고서
용혈도를 그린 탓이다.

하지만 정감록에서는 왜 계룡산 정도령일까?
그것은 간단한다. 위 도선국사 유산록에서도 李氏의 한문글자를 해체해서 고려이후 이씨 조선을 예견했듯이
鄭씨를 해체한 것이다.
즉 鄭에서 좌측의 윗 八와 아래 大를 털어내면 酉만 남는데 이 유자가 닭 酉이다.또한 같은 닭에는 鷄도 있다.
즉 八道 아래 닭 酉이 크며 大 또한 그 큰 닭은 고을 읍 옆에 있음에 혹은 그곳에 도읍을 정한다인데
그곳은 곧 계룡산에 맞닿는다.
해서 계룡산 정도령 타령을 해왔던 것이다.
또한 정감록은 임진왜란 이후 크게 펴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시대의 혼란도 있었지만 결록에서 나오는 이後에 대한 해석이였다.
물론 도선국사는 이미 살아생선 고려왕조를 그리고 이씨조선을 그의 옥룡자 유산록을 통해 예언했었고
또한 정확히 들어 맞았다.
따라서 이씨조선 그후를 이곳에서의 그 이후라고도 말할 수 있긴하다.
즉 유산록 비결서에서는 李後,혹은 李后(임금후), 혹은 伊後로써 고려 왕씨 제국후 등으로 해석이 되는
주어내지는 목적어가 생략된체
이後 백년 안에 우연히 쓰인다고 했다.
따라서 이씨조선이 쓸어져갈 듯 했던 힘든 임진왜란 그 시점에서는 고려 왕국이후 100년 혹은
이씨조선 시작후 100년안에 혈처에 묘소가 이미 우연히 쓰여진걸로 보고 정도령이 나타난다고 믿어왔 던 것이다.
종합해 보건데 이 뜻은 李後,李后,伊後라는 해석이다.
즉 이씨 조선 後,혹은 왕조 뒤 100년이란 뜻이다.
여기에서 본인은 도선국사의 예지력에 또다시 까무라쳤다.
그리고 도선국사에 더욱 미치기 시작했었다.
이씨 조선후 100년,혹은 왕조 뒤에 100년이면 조선이 1910년에 망했으니 정확히 2010년에 본인이 이 혈처를
태인 군신봉조를 찾으려다가 우연히 발견했음이였던 것이다.
어찌하든 그곳은 아직까지도 오롯 생지로 남아 있었기에 이 땅에 정도령이 나타날 수 는 없는 일일터이고
또한 통일신라때의 연일 정씨가 그 이후 어떻게 분파되었는지 본인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현 시점쯤에서 연일정씨 관련 성씨 중 거물이 이 땅을 차지 한다고 했다.
때문에 계룡산 정도령이 아닌 연일정씨 정도령이 이 땅에 나타나 또 하나의 왕조를 이룰 일은
이제 그리 머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본글의 제목에 붙이여 벚꽃 대선,폭염대선등으로 화두가 되고있는 닭년의 새로운 대통령은 누가될 것인가?
본인은 문재인 안철수 전대표 그리고 반기문 총장이 붙는다면 단연코 반기문이다라고 단언하겠다.
물론 이는 본인의 형기 풍수적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적으로 반기문 총장의 4대 先考 묘소 반종만 묘소는 위의 도선국사가 말한 장흥 군왕지에는
비록 못미치지만 그곳과 비슷한 군왕지 형상이 있다.
더더구나 秀特在前 屛帳在後로 前應後照하는 아름다움이 이 정도라면
비록 왕조까지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오늘날 대권 정도는 능히 쉽게 잡을수 있을 거라 확신해 본다.
UN 사무총장 역임도 이 묘소의 발응으로 본다.
물론 혈처 윗쪽을 많이 파헤처 쓰인 선대 묘소들의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어쩌튼 그의 부친 묘소 역시도 절묘한 변와혈로써 옛 판정승 정도는 능히 쉽게 배출해 낼 수 있는
국세를 또한 갖추었다. 다만 조부 및 증조부는 맥진처에서 벗어나 자리가 아니다.

좌우로 있는 7개 묘소중 그 중앙 휘 종만 묘소가 반총장의 고조부 묘소로써 군왕지지 정혈에 정확히 점지하였다.

하지만 이곳 역시도 삼성 창업자 호암 증조모 묘소 또한 금호 그룹 창업자 증조부모 묘소처럼 안산에 흠집이 있다.
물론 그 크기나 훼손 정도는 위의 그들 것 보다는 작은 것이지만 그 흠결로 인하여 어러움이 발생하겠다.
하지만 큰 뜻 만큼은 종국에 이루어 질것이다. 이곳이 군왕지를 아우른 주혈이다.

위의 사진이 반총장 부친 묘소이다.
이곳은 빨강 백호가 없었다면 결코 좋은 혈처가 될 수가 없다.
즉 와혈에서 필수라 할 수 있는 청룡과 均均한 본신 백호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밖깥 빨강 외백호 도움으로 혈장에서 매우 긴급히 필요한 關欄欄鎖抱로 거수하는 怜悧한 弦稜사를 만들어
좌우 양국 모습이 均均해지면서 절묘한 변와혈을 형성하였으며 또한 穴前이 緊狹하면서 물 나가는 것이 보이지
아니하니 速發한 것이다.
때문에 자신의 능력보다는 외부의 도움이 매우 클것이나 아쉽게도 주황색 지점을 파헤치고 정자를 만들어
놓는 바람에 도움을 준 그들과 동티가 생길것은 자명하다.
이에 문재인 전 대통령 후보 및 안철수 전대표 선영은 어떻는가?
먼저 문재인 전 후보 선대 묘소 대부분은 이북에 그리고 안철수 전 대표의 부모님은 현재 살아계시고 그분의
증조는 화장을 했다는 설과 고조 묘소 역시 위치가 불분명해 모두 간산치 못해 못내 아쉽지만
문재인의 부모 및 안철수의 조부모 묘소들에서 그분들의 현실들이 정확히 관통되어 있음에
그 두 묘소들 만으로써 그분들의 대권에 대한 미래를 평가했음이다.
또한 문재인 전 후보와 안철수 전 대표 둘만이 붙는다면 그때는 위 두분 묘소의 각기 다른 강점과 약점이 있어
윗 선대까지도 반드시 살펴봐야할 일 이겠지만
기왕에는 문재인 선친이 훨씬 더 좋다.
하지만 적어도 반기문 총장에게는 크게 흠이없는 그분의 부친묘소와 함께 군왕지인 고조부 묘소가 있음에
작금의 풍수적 역량으로써 비교는 감히 그 누구라도 쉽게 반총장에게는 不及되리라는 판단이다.

위의 문재인 전 후보 선친 묘소에서 우선적으로 빨강 土體를 張子微와 廖金精 선사들은 財星이라고도 하였으나
鎭星으로써 帝尊을 의미하는 바 그분에게는 기본적 제왕적 후광은 있으며 다만 묘소 뒤 현무로써 토체가
바르게 照하고 있지 못하고 또한 공망에 가깝다.

다만 朝山쪽의 귀인사는 휼륭한 후손을 기약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하겠다.
아래는 안철수 전 대표의 조부모 묘소이다.

이곳 역시도 제왕적 토체에서 落脈했지만 반기문 총장 부친묘소처럼 沖天紫氣 木體가 照하고 있다.
물론 종국에는 옛 판정승정도의 자리지만 그 위세로도 오늘날 대권을 잡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음이다.
하지만 묘소의 조안산이 문제이다.

이곳 역시도 멀리 훌륭한 귀인사가 수줍어 숨은 듯 있지만 조산들 모두가 각자도생하고저 비주하고 있음에
여럿이 함께 큰 뜻을 이루어 내기에는 난망해 보인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익히 김영삼 전대통령 묘소를 평가 했을때 언급했었으며 서책에서는僞朝 즉 가짜 조안이라 해서
흉하다고 했다.
그 보기들은 아래와 같다.

아래는 김영삼 전 대통령 묘소 조안 모습이다.

아울러 중국에서는 풍수적 형국이 갖추어진 土體山을 后山이라 불리우는데 농사꾼 아들로 東晉등을 멸망시키고
남북조시대를 연 一字無識 唯我獨尊 제왕으로 대표되는 송나라 劉裕의 부친 유교(劉翹)의 흥녕릉(興寧陵)현무봉이
그러한 모습이며 지금은 그 묘소는 비록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곳을 임금의 산 后山 이라 부른다.
아래 사진이 강서성에 있는 그곳 后山이다.

아래 역시도 명태조 朱元璋 묘소 현무봉으로 토체이다.
모두 본인이 중국을 직접 간산하면서 촬영한 사진들이다.

또한 도선국사 보다 200여년 앞선 자장율사 역시도 영취산에 있는 통도사에 최초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했는데
그 이유로는 본래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중국 산과 같은 모습의 산을 신라에서 찾았고
이곳이 그곳 산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곳 역시도 토체 산이다.

아래 사진 중앙 부도탑이 신라때 자장율사 께서 친소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통도사 적멸보궁이며
그곳의 현무봉은 위의 사진 모습으로 앞서 열거했었던 토체의 모습이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글쎄요
궁아래 조아렸으니 벼슬이야 있겠지만
봉으로 날기에는 마지막을 견딜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