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에코투어
자전거의 페달을 세게 밟을 필요가 없다. 지칠 때는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상쾌함을 맞으며 자전거를 끌고 가도 된다. 홀로 여행할 땐 섬의 주인인 쿼카(Quokka·쥐와 비슷하게 생긴 설치류 동물)나 펠리컨 등과 친구가 돼 원시 자연을 감상해도 좋고, 가족이나 친구 단위라면 자전거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삶의 무게를 잠시 훌훌 벗고, 야생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8일은 절기상 겨울 초입(初入)인데도 햇살이 따갑다. 연중 최저기온은 14.9도, 최고기온은 21.5도다.
서호주의 주도 퍼스에서 페리로 약 두 시간 걸리는 섬 로트네스트(Rottnest)에 관한 얘기다. 여행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곳'이라고 부르는 서호주 본토에서도 격리된 섬이다. 시드니나 캔버라에서 비행기로 5시간가량 걸리는 곳이 서호주이고, 서호주 대륙에서 직선거리로 19km 떨어진 섬이니 결코 과장도 아니다. 육지에서 3만년 동안이나 격리된 만큼, 세계적 대세(大勢)인 에코투어(eco-tourism·환경을 보호하고 현지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자연을 책임감있게 여행하는 것)를 맛보는 데는 로트네스트가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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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경복 기자
이 섬에 가려면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일상의 짐을 훌훌 벗되 자연환경을 지키겠다는 마음 자세, 그리고 헬멧이 동반된 자전거 한 대다. 자전거는 페리 혹은 섬에 도착한 후 방문자 센터에서 빌릴 수 있는데, 호주 당국이 환경보호를 위해 섬 일주에 필요한 교통수단으로 승용차는 금지하고 자전거를 허용한 때문이다. 투어버스도 있지만, 섬을 제대로 느끼고자 할 요량이면 자전거가 필수다.
로트네스트는 '쥐(rat)가 사는 곳(nest)'이라는 뜻으로, 17세기 이 섬을 탐험했던 네덜란드 사람들이 섬에 살던 쿼카를 쥐로 오해하고 붙인 데서 유래했다. 초기 유럽인들은 질겁했겠지만 캥거루처럼 아기주머니가 달린 쿼카는 귀여운 외모와 친근한 성격 덕분에 섬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친구가 된다.
관광안내소나 페리의 승선한 가이드들은 관광객들이 절대로 쿼카나 다른 야생 동물들에게 인간의 먹이를 줘서는 안 된다고 부탁한다. 또 한가지 요구사항. 쓰레기는 재활용과 그렇지 않을 것을 구분해 처리해달라는 것. 그래서 쓰레기가 모일 가능성이 높은 장소마다 'Recy cle…It is vital(재활용…생명유지에 필수)'이라고 써놓았다. 물론 이를 어겨도 벌금도 없고 수영·스노클링·다이빙 등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지만 관광객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관리국 직원들 300명이 전체 면적인 19㎢인 이 섬에 사는 인간의 전부다. 이 역시 사람들로 인해 환경을 해치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수년째 연간 관광객이 50만명에 이르지만, 로트네스트 당국은 "관광객들이 에코투어에 대한 인식을 해줘 전혀 환경이 변하지 않았다"고 자랑한다.
굳이 로트네스트까지 가지 않아도 스완강(江)을 중심으로 펼쳐진 퍼스 시내는 자전거로 둘러보기에 최적의 장소다.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악기'라고 불리는 스완벨타워(Swan Bell Tower)를 중심으로 드넓게 펼쳐진 스완강의 물줄기를 따라 기분전환을 할 수 있고, 시내 곳곳의 호수에서 블랙스완(Black Swan·검은 백조)과 친구가 돼보는 것도 좋다.
서호주의 퍼스 인근엔 둘러볼 곳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다. 동부의 시드니, 브리즈번, 그레이트배리어리프(대보초) 등이 호주여행의 전부라고 생각했다간 오산임을 깨닫게 해준다. 서호주는 여행자의 기호에 따라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원시세계의 웅장함과 에코투어에 이미 적응된 여행자라면 '사막 위에 1만5000개의 석회암 기둥이 빚어낸 우주'로 표현되는 피너클스(Pinnacles)나 27억년 전에 형성돼 진짜 높은 파도가 치는 듯한 모양의 웨이브록(Wave Rock)을 찾을 수 있다. 커피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자부할 만한 이라면 워낙 커피맛이 좋아 세계적 체인 스타벅스가 한곳도 들어서지 못한다는 유럽풍 소(小)도시 프리맨틀의 카푸치노거리를, 달콤 쌉싸래한 와인을 좋아하는 이라면 스완밸리(Swan Valley)의 와인농장을 둘러보며 갖가지 와인을 골라 마셔 볼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