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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6월 17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0617목] CCTV 돌려놓고 고문하는 경찰
재갈 물린 채 머리 밟기, 수갑 채워 날개 꺾기 등 사라졌던 단어들이 부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담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어제 발표한 경찰의 피의자 수사실태가 그렇다.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수사를 받은 32명을 조사한 결과 22명이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한다. 양천경찰서는 "절대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으나 우리는 인권위의 조사와 발표를 신뢰하며, 경찰이 피의자 인권보호에 새로운 인식을 갖는 계기로 삼을 것을 촉구한다.
인권위가 발표한 내용이 피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해당 경찰관에 대한 직권조사를 거친 뒤 나온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고문을 가한 장소가 호송 중인 차량 안과 조사실 CCTV의 사각지대에서 이뤄졌다는 대목에서 그러한 행위가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또 고문 이유가 공범관계 수사와 여죄 추궁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구시대 시국사건에서나 있었던 행태가 여전히 답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경찰서는 피의자들이 검거 당시 마약에 취해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나 고문 당한 것으로 인권위가 확인한 피해자 가운데는 절도혐의 피의자가 더 많은 것으로 판명됐다. 또 조사실 CCTV의 화면 절반이 천장을 향해 들려 있었던 데 대해 경찰이 관리업체가 하는 일이라 알지 못했다는 변명이 군색하기만 하다. 해당 경찰관 5명에 대해 즉각 대기발령을 내린 이유도 정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수사기관의 고문과 가혹행위는 군사정권이 끝나면서 많이 줄어들었고, 이후 최근에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실적과 성과만 중시하고 피의자의 자백과 진술에 의존하는 수사관행이 여전하다면 고문과 가혹행위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인권위가 이번 사안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하고 경찰청에 직무감찰을 권고했으니 보다 철저한 진상이 밝혀질 터이다. 관련자에 대한 엄정한 문책과 함께 전반적인 인권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특정 경찰서, 일부 수사관의 그릇된 일탈이라고 볼 수 없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0617목] ‘멋대로 보안법’ 안 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적법 절차를 밟아 방북했던 인사 27명에 대해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두고 수사중이라고 한다. 전임 정부에서 허가를 받았던 인도적 목적의 방북을, 그것도 3년이나 지난 시점에 들춰내 수사하는 행태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울산지방경찰청은 2007년 국수공장 준공식에 참석하러 평양을 방문했던 울산지역 민간인과 공무원 등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주체사상탑 참배 등 김일성 주석 찬양·고무 활동을 했는지가 수사 초점이라고 한다. 경찰의 이런 움직임은 의도를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당시 적법 절차를 거쳐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을 두고 느닷없이 국가보안법 적용을 거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경찰 수사가 지방선거에 출마한 야당 후보 옥죄기용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방북을 이끌었던 김종훈씨는 민주노동당 구청장 후보로 출마했는데, 선거기간 중 경찰 수사 탓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김 후보가 당선돼도 구속될 수밖에 없다는 말을 경찰 쪽에서 흘렸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수사당국이 국가보안법을 정치적으로 휘두른다고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면 그동안 수많은 남북교류 활동은 모두 처벌 대상이 되게 된다.
그러잖아도 최근 수사당국에 의한 국가보안법 남용이 우려돼온 터다. 대표적으로 검찰은 유엔 안보리에 천안함 사건 관련 의견서를 보낸 참여연대에 국가보안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참여연대는 안보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견해를 달리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다른 규제 방법이 마땅하지 않자 보안법 적용을 들먹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천안함 사건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던 박선원 전 청와대 비서관을 공안사건으로 다루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막걸리 반공법’이란 게 있었다. 수사기관은 당시 서민들이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것을 덜미잡아 간첩과 공안사범을 만들어냈다. 반공법은 규율 대상을 포괄적으로 열어놓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갖다 붙이기가 편리했다. 정부와 견해가 다른 시민단체를 옥죄고 야당 후보를 탄압하는 데 국가보안법을 멋대로 적용하려는 지금 수사당국의 모습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막걸리 반공법 시절로 역주행하는 권력기관의 행태가 개탄스럽다.
[조선일보 사설-20100617목] 실업계高校 졸업생 채용, 전국으로 확대돼야
인천시가 인사규칙을 개정, 내년부터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9급 기술직 공무원 중 일정 비율을 전문계(옛 실업계) 고교 졸업자 중에서 뽑기로 했다. 인천시는 전문계 고교생들이 취업이 안 돼 어쩔 수 없이 대학에 진학하는 바람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특별 채용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문계고는 학생들에게 전기·전자·토목·건축 같은 기술 분야의 직업 훈련을 시켜 졸업 뒤 바로 취업하도록 만든 학교다. 그러나 전문계고 졸업생의 취업률은 1990년 79.8%에서 2009년 16.7%로 낮아졌다. 반면 대학 진학률은 2000년 42%로 일반계고(84%)의 절반 수준이었으나 2008년에는 73.5%로 높아졌다. 학생들이 졸업 후 취업이 잘 되지 않아 대부분 대학 진학에 매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전문계고 학생 수는 691개교 48만7000여명으로 전체 고교생 190만7000여명의 25.5%를 차지한다.
우리 사회는 어느 직장이든 대졸자가 넘쳐나고 있다. 2008년 경찰청의 순경 공채 합격자 1120명 중 고졸자는 190명(16.9%)뿐이고 930명(83.1%)은 대학(전문대학 포함) 졸업 이상이었다. 지난해 서울시 신규 채용 공무원 539명 중 고졸은 단 6명뿐이었다. 은행원 역시 10여년 전만 해도 신규 채용자 가운데 고졸과 대졸 비율이 7대3 정도였으나 지금은 고졸은 계약직(창구 직원)으로도 들어오지 못한다.
정부와 공공기관, 일부 민간 기업들의 신규 채용에서 공식적으론 학력(學歷)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이 제도의 원래 취지는 고교 졸업생들에게 취업의 문(門)을 넓혀주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론 고졸자는 대졸자에게 밀려 취업 기회가 봉쇄된 상태다. 인천시처럼 채용 인원의 일정 비율을 고졸자에게 할당해야만 그들에게도 실질적 취업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00617목] 4대강, 정치논리 아닌 국가대계가 선택기준
6·2지방선거에서 4대강 사업 저지를 주장했던 광역자치단체장들이 다수 당선되면서 4대강 사업이 다시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다. 강원, 충북, 충남, 경남 도지사 당선자와 제1야당인 민주당, 다수의 종교단체들이 지방선거 민심을 들어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 반면 종교단체 일각에서는 4대강 살리기 사업 지지를 선언하고 나서는 등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대치가 나라 전체를 분열로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4대강 사업은 정치논리가 아닌 국가대계가 선택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민과 후손의 미래를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국민과의 진솔한 소통을 통해 4대강 사업의 속도와 규모 등 내용을 결정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그제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의 제안을 주목한다. 박 수석은 “해당 기초단체 또는 광역단체에서 지역주민의 뜻을 모아 끝까지 반대한다면 구간별로 사업 재검토를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측은 이달 말까지 새 당선자들의 구체적 의견을 접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강원, 충북, 충남, 경남 도지사 당선자를 염두에 둔 것 같다.
우리는 박 수석의 제안이 실천되는지 지켜보겠다. 4대강 사업은 시작될 때 지방자치단체의 건의를 받아 사업내용을 확정하고 포함시켰다. 따라서 해당 지자체 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할 경우 재검토하는 것이 순리이다. 물론 일선 지자체와 실제로 협의를 해보면 반대가 예상을 밑돌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특히 기초단체장들은 주민들의 요구와 경제적 필요에 의해 4대강 사업을 원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따라서 4대강 문제는 솔직한 대화를 통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일부 광역단체장이 4대강 사업을 끝까지 반대, 사업이 차질을 빚을 경우 기초단체나 현지 주민들의 반발이 상당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이 새 지자체장들의 임기가 시작되는 7월에 4대강 사업 관련 도지사들과 면담을 추진하는 것도 소통을 통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어제 국회에서도 야당 의원들은 환경, 생태파괴 등을 내세우며 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업 지속을 역설하며 대치했다. 까닭에 4대강 사업은 번거롭더라도 다시 한 번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 실행하는 게 이치에 맞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0617목] 정부부채 급증 안이하게 볼 일 아니다
정부 빚이 3개월 만에 15% 가까이 늘어 국민총소득(GNI)의 3분의 1을 넘어섰다. 한국은행은 어제 올해 1분기 말 기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이자부 부채는 모두 368조7613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7조7515억원(14.9%)이나 늘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증가율은 2005년 1분기의 15.2%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부채는 다른 주요 국가에 비해 아직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증가 속도가 매우 가파르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GNI에서 정부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34%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2004년 1분기에 이 비중이 17%였던 점을 감안하면 6년 사이에 곱절로 커진 것이어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게다가 정부부채에 공기업부채까지 더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대 중반을 넘어 유럽연합(EU)의 국가채무 권고치 상한(60%)에 육박한다.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이 우리나라의 정부 및 공기업부채에 우려의 시각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그동안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다 보니 부채 증가가 불가피했고,올해 경기 회복과 세수 확충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정부 설명도 일리는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 민간 부실을 공공부문이 떠안은 남유럽과는 상황이 많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자부 부채가 많이 늘었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 부채가 안 늘어도 이자 부담이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또 글로벌 경기 불안으로 우리 경제 회복세가 하반기까지 이어질 지도 의문이다. 자칫 재정확대 정책을 계속 써야 할 상황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정부부채를 줄일 체계적 계획을 세우고 불필요한 지출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령화와 저출산 등으로 재정 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세수는 상대적으로 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그 필요성은 더욱 크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0617목] OECD도 권고한 '영리병원' 도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일반의약품(OTC)을 편의점에서 팔도록 하는 것이 의료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지름길이라는 권고를 내놓아 정부 반응이 주목된다. 이 같은 권고는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간 이견으로 표류하고 있는 영리병원 도입 문제에 대한 결말을 내는 데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권위 있는 OECD의 권고를 계기로 영리병원 논란을 마무리하고 의료ㆍ의약 부문 서비스 개편을 적극 추진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행 법과 제도는 병원은 의사와 비영리기관만 운영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병원들은 대부분 영리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제도와 현실이 따로 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진입장벽 때문에 자본과 새로운 경영기법이 도입되지 못해 의료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환자의 대기시간이 길고 의사의 진료건수가 회원국 중 가장 많다는 것이 OECD의 지적이다. 더구나 시급한 현안인 일자리 창출은 물론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서비스 부문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영리병원 도입 등을 통한 의료산업 발전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이다.
복지부 등이 영리병원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는 영리병원이 도입될 경우 고소득자 및 특정 지역에 진료가 편중되는 서비스 양극화 등으로 의료의 공공성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과 선진 경영기법을 갖춘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경쟁이 심해져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게 된다. 나아가 높은 의료기술에 비춰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이 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매년 1조원 이상이 암 치료 등으로 해외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의료 서비스의 품질을 높여 이를 국내로 돌리면 일자리도 그만큼 창출된다.
의료 분야를 비롯한 서비스 시장 개방에 대비하고 국내 의료산업의 국제화를 위해서도 영리병원은 매우 효과적인 대안이다. 지금처럼 의료산업이 제도적인 진입장벽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국내 의료산업이 국내시장을 벗어나기 어렵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까지도 의료 서비스를 시장경쟁체제로 전환하려 시도하고 있다. OECD 권고를 의료 서비스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의료 공공성 훼손 등 예상되는 부작용은 관련 예산 확대 및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 보완대책을 통해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배인준 칼럼/배인준(동아일보 주필)-20100617목] ‘2012’
2012년이 달려오고 있다. 1년 반 뒤면 시작되는 그해, 북한은 강성대국 완성을 선포하며 고려연방으로 국호를 바꾸기라도 할 것인가? 김정일은 건재할 것이며, 김정은 세습도 성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것인가? 중국은 그해 시진핑, 리커창 등이 제5세대 지도부를 출범시킨 뒤 남북한을 어떻게 다루려 할 것인가? 러시아는 그해 대선에서 푸틴이 다시 대통령으로 등극해 북한과의 관계를 훨씬 강화할 것인가? 미국 국민은 그해 오바마를 재선 대통령으로 만들어줄 것인가? 그 뒤의 한미동맹은 우리나라의 안전판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인가?
더 큰 관심사는 대한민국의 그해 4월 총선과 12월 대선 풍향이다. 지난 6월 2일 밤 지방선거 개표를 지켜보면서 ‘2012년이 요동치겠구나’ 생각한 국민이 많았을 것이다. 6·2선거는 과거 이회창 대세론처럼 ‘한나라당 재집권론’이 미신(迷信)임을 일찌감치 깨우쳐줬다.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은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뒤 20년 이상 기다려야 했지만, 2012년엔 단번에 당선되는 ‘한국판 오바마’가 나올지 모른다는 상상마저 불러일으켰다.
그해 남북관계는 더 극적으로 소용돌이칠 가능성이 있다. 한국 북한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의 국가지도자 조합(組合)이 얽히고설키고 맞물리면서 한반도의 장래와 5000만 국민, 7400만 민족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천시(天時)는 기다리기만 하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누가 어떤 일을 도모하며 상황을 엮어내느냐에 따라 정권 향배도, 국가 운세도 뒤바뀔 수 있다.
* 대한민국 갈림길의 해
김영삼 노무현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2012년은 이명박 대통령이 시험받을 차례다. 정권 재창출 여부는 대통령 성패의 중요한 잣대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대통령은 스스로 성공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2007년 이명박 후보에게 대승을 안긴 대선은 ‘노무현 심판’의 선거였다. 그로부터 2년 반 뒤 ‘노무현 폐족’ 김두관 안희정 이광재가 지역의 벽을 깨고 부활했다. 어떤 고정관념도 통하지 않는 시대다.
6·2선거 이후 이 대통령에게 던져진 첫 숙제는 인사(人事)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양날의 칼이다. 잘한 인사는 그 자체가 국정 성공의 일부가 되지만 잘못한 인사는 대통령의 무능을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동시에 정부의 무능을 자초한다. 대통령은 국가 인재풀 전체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발탁할 수 있기 때문에 인사에 실패하면 변명도 할 수 없다. 정권 후반부로 갈수록 ‘한자리 챙기려는’ 주변 사람들이 더 극성을 부리겠지만 보은-연고 인사가 거듭되면 2012년 총선과 대선이 ‘이명박 심판’ 성격을 띨 우려가 더 커진다. 그렇지 않고 이번에 정부 인사와 한나라당 재편이 세대교체 가능성을 포함해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면 지방선거 패배의 충격을 상당히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 일각은 패배주의에 빠져 정체성(正體性)위기 조짐마저 드러내고 있다. 역시 ‘심약한 웰빙 보수(保守)’답다. 이런 모습으로 우왕좌왕하면 총선에서 1등은 어림없고 대선에서도 반(反)한나라당 총연대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집권 후 2년여 동안 당내 통합은커녕 원수처럼 싸우는 흉한 몰골을 여지없이 보여 왔다. 그러고도 선거 승리를 바랐다면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또한 지역에서나 대학가에서나 노동현장에서나 젊은층과 만나고 함께 고민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설득의 정치’를 야권(野圈)의 반도 하지 않았다. 20, 30대가 투표장에 몰릴까 봐 눈치나 보는 행태로는 ‘그렇지 않아도 불리한 세대(世代) 지형’ 속에서 2012년의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보수는 진보보다 레토릭(수사·修辭)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는 머리 쓰지 않는 게으름뱅이의 변명이다. 2007년 대선 때는 ‘경제대통령’의 포지티브와 ‘잃어버린 10년’의 네거티브를 엮어 BBK 광풍까지 날려버렸다. 그러나 6·2선거에선 ‘천안함 비극’에나 올라타려다 역풍을 맞았다. ‘지킬 가치를 지키는 보수’의 소신도, 행동력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근본문제다.
* ‘심약한 보수’로는 나라 못 지킨다
이런 노곤한 자세로 김정일 집단의 배수진을 친 공세를 어떻게 차단하며, 야권의 기획력과 전투력과 단일화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민심이 전광석화처럼 변하는 시대, 2012년까지는 긴 시간이다. 민생을 구체적으로 개선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와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 등 경제와 안보의 기반을 다지며,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에 대한 비전을 국민과 세계 앞에 당당하게 보여준다면 아무리 럭비공 같은 젊은 세대라도 무조건 반대만 하겠는가. 20대는 앞으로 80년을 더 살 세대다. 지금 나라가 잘못가면 이들이 가장 긴 세월 고통 받을 것임을 왜 이해시키지 못하는가.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진세근(탐사2팀장)-20100617목] 성 공화국
관리 부패는 화제도 아니다. 중국 곳곳에서 늘 벌어지는 일이니까. 하나 이건 또 뭔가. 지난 12일 중국 광시(廣西)성 푸베이(浦北)현 룽먼(龍門)진. 당 기율검사위 린(林)모 서기란 자가 대낮에 만취해 사무실로 들어선다. 기율검사위가 어떤 조직인가. 당원의 부정부패를 감독하는 최고위 조직이다. 린 서기는 그래서 안하무인이었을까. 당시 여직원 4명이 근무 중이었다. 그의 입에서 거침없이 음담패설이 튀어나왔다. 여직원들은 당황했다. 2명이 피신했다. 우물쭈물 남은 여직원 2명이 결국 봉변을 당한다. 린 서기는 그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모든 것을 공개한다. 옆 사무실 직원이 달려와서야 행패는 끝났다. 조사 결과 린 서기는 형편없는 자였다. 권위 자랑 일쑤였고, 권력 남용을 밥 먹듯 했다.
더 큰 일도 있다. 후베이(湖北)성 바둥(巴東)현 여성 노동자 덩위자오(鄧玉嬌) 사건이다. 그는 기율검사위 위원 덩구이다(鄧貴大)를 살해했다. 덩구이다 위원은 양아치 출신이다. 어찌해서 관리가 된 뒤 승승장구한다. 바둥현 산관(三關)진 사법위에서 출발해 기율검사위 위원으로 승진한 뒤 천하를 얻은 듯 활개 친다. 어느 날 그는 사우나에 간다. 그곳 노동자인 덩위자오에게 ‘특별 서비스’를 요구한다. 그녀가 거절하자 그는 힘으로 대응한다. 결국 덩위자오는 과도로 응징했다. 경찰은 덩위자오를 살인혐의로 구속했다. 이때부터 네티즌의 힘이 발휘된다. 교수·관리도 이 대열에 합류한다. 삽시간에 중국 전역이 덩위자오 살리기로 하나가 됐다. 관영 인터넷 중신왕(中信網)은 이를 ‘무한 동정(無限 同情)’이란 말로 설명했다.
또 있다. 쓰촨(四川)성 심계(審計)국장 중젠추(鍾建初)가 부패 혐의로 기소됐다. 심계국은 우리의 감사원이다. 청렴과 권위의 상징이다. 이 자는 기소된 것도 모자랐던 모양이다. 법정에서 성희롱 혐의가 제기되자 “여인을 잠깐 곁에 두었기로 무슨 대수인가”라고 태연하게 응수했다. 지역 언론은 “정부 내 성폭력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발언”이라고 썼다. 다른 언론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성(性) 공화국이 됐다”고 자탄했다.
우린 느긋할 수 있을까. 조두순·김길태로 모자라 이젠 김수철이다. 그것도 학교 안에서 버젓이 말이다. 제대로 고민하고 대책을 만들자. 여기서 또 우물쭈물하면 성 공화국 정도가 아니라 성 천국이란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월드컵 열기에 묻힐 일이 아니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00617목] 정대세의 눈물
남자는 평생 세 번 운다고 한다. 태어날 때 울고,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울고, 나라가 망했을 때 운다는 것이다. 남자의 눈물은 그만큼 귀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주로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어머니들은 아들이 울면 “사내 녀석이…” 하며 꾸짖는다. 사나이는 눈물이 헤프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생 동안 세 번만 우는 냉혈한이 얼마나 되겠는가.
남자들이 얼마나 잘 우는지는 TV를 켜면 금세 알 수 있다. 드라마에서뿐만 아니라 도처에서 훌쩍거린다. 대체 어떤 부류의 사내들이 그렇게 잘 울까. 누군가가 조사해보니 1등은 운동선수였고, 2등은 정치인이었다고 한다. 기뻐 울고, 슬퍼도 울기는 스포츠나 정치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눈물의 순도(純度)에는 차이가 있다.
자고로 정치인의 눈물은 드물지 않다. 영웅 호걸도 예외는 아니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천하를 겨룬 항우와 유방이지만 둘다 마지막에는 눈물을 흘린다. 항우는 걸핏하면 화를 냈다. ‘항우본기’에는 ‘노(怒)’ 자가 수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사면초가에 싸여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는다. 그래도 때가 이롭지 않으니, 명마 추가 가질 못하는구나…” 하고 노래를 부르는 항우의 뺨에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泣數行下). 똑같은 표현이 ‘고조본기’에도 되풀이된다. 황제가 된 유방은 “큰 바람이 이니 구름이 난다. 이름을 온 땅에 떨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네…”라고 춤추며 눈물을 흘린다. 승자와 패자로 엇갈렸지만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기는 둘다 마찬가지였다.
북한 정대세 선수의 눈물이 화제다. 그는 브라질과의 월드컵 첫 경기에서 국가가 연주되자 눈물을 주체 못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용기가 기적을 만든다”며 투지를 불태운 그였기에 의외였다. 더구나 선수가 경기 전에 우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드디어 월드컵 무대에 섰다”는 감회와 “세계 최강팀과 맞붙는다”는 감격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사나이가 싱겁게…”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반향은 컸다. 그의 눈물은 국내 누리꾼들의 가슴을 적시며 순식간에 포털 검색어 1위로 떠올랐다.
눈물은 가슴에서 가슴으로 흐른다. 남북은 막혀 있지만 가슴은 통한다는 것을 정대세는 새삼 일깨워 주었다. 정치인의 눈물도 남북으로 흐를 날은 언제일까.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김경범(서울대 스페인문학 교수)-20100617목] 부모와 학부모 사이
아이가 태어나 말귀를 알아들을 즈음이면 엄마는 아이에게 사물의 이름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엄마 눈에 아이의 탁월한 영재성이 각인되면 드디어 거금을 투자하여 한글과 숫자라는 마법의 세계를 아이 앞에 펼쳐 놓는다. 드디어 국어와 수학의 시작이다. 간혹 엄마의 눈에 아이의 영재성이 신의 선물로 비쳐지게 되면 엄마는 더 큰 용기를 내어 꼬부랑거리는 글자까지 풀어놓는다. 영어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런 아이를 두었다고 믿고 있는 어느 엄마가 깃발을 올리면 다른 엄마들도 순식간에 그 깃발 주변으로 몰려든다. 이렇게 몇몇 엄마가 움직이면 또 다른 많은 엄마들도 참지 못한다. 그리고 경쟁의 시작에는 애써 눈을 돌리고,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같이 있다는 위안에 만족한다.
국영수의 세계가 시작되면서 엄마의 마음은 급해진다. 월드컵도 천안함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가 이제 갓 시작한 국영수의 세계가 얼마나 심오하고 오묘한지 엄마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머리 속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갈 때까지의 국영수 성적표가 영사기 속에서 필름 돌아가듯 순서대로 재현되고, 학교생활에서 취직 혹은 결혼까지 이어지는 삶의 모든 신산(辛酸)함과 영욕(榮辱)이 그 세계에 응축되어 있음을 알고 소스라친다. 그러니 초등학교 입학 때 내 아이와 다른 아이가 똑같이 출발하는 것을 견딜 수 없다. 그때 아이는 이미 한글을 깨치고 구구단을 외울 뿐더러 엄마가 중학교 1학년에 배웠던 영어를 마스터해야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엄마는 성적표가 나오지 않아도 뭔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아이를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을 탓하기도 하고, 매일 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로 화살을 옮기기도 한다. 엄마는 정성과 정보가 부족한 것 같아 열심히 여기저기 쫓아 다니며 학원과 교재를 챙긴다. 그렇게 아이는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에 갔다.
그 아이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 엄마가 된 아이는 태어난 아이가 말귀를 알아듣기 전부터 사물의 이름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자신에게 없었던 영재성을 찾기 위해 한글과 수학이라는 마법의 세계로 인도한다.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부모와 학부모는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