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국민이고... 신자인데...
선거철이 되면 정부기관이나 산하단체의 강연 요청이 줄을 잇습니다. 공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학자들의 의무이자 책임이기에 카메라 앞에 서거나 강단에 오르기도 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권력을 잡기 위해 다투는 시기에는 보다 선명한 원칙과 원리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강연을 하러 가면, 그 시설과 규모에 놀라곤 합니다. 예전 같으면 방송국에서나 볼 수 있는 시설들이 대부분 갖추어져 있고, 촬영준비부터 녹화된 영상을 편집하는 전문 인력들까지 잘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 오후에 서울지방국세청에서 두 시간 가량 녹화를 했고, 다시 그 만큼의 시간 동안 녹화된 영상을 다시 확인하며 수정과 편집을 마치니 정신이 몽롱해집니다. 현장 강의 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리지만 두 배의 강연료를 주는 것은 아니니… 하루 속히 이런 비대면 강의가 좀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동시에 이제 비대면 상황은 나름의 장점도 있기에 일정부분은 계속되리라 예상하고, 많은 시설투자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신앙교육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이런 멋진 시설과 장비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쬐금 하나님께서 좋아하실만한 생각도 했습니다.
깨끗하게 조성된 광화문 뒷길을 걸으며 허기를 때우기 위해 즐겨 찾는 ‘테라로사’라는 커피숍에 들러, 맛있는 커피와 빵을 잔뜩사서 자리를 잡습니다. 저는 건강상 빵을 가능하면 먹지말아야 하고, 아내가 가끔 사주는 잡곡빵 외에는 조심해야 하지만, 혼날 각오하고 오렌지향이 듬뿍 밴 ‘버터오랑주’와 페스츄리에 시럽을 뿌린 달콤한 ‘퀸아망(퀴니아망)’ 두 개를 단숨에 먹어치웠습니다. 조금 덜 혼나기 위해, 아내가 좋아하는 ‘우드앤브릭’에 들러 케잌과 쇼콜라 몇 개를 사들고, 길에 나서니 배도 적당히 부르고 정신이 돌아옵니다.
조선시대 궁궐에 직물을 조달하던 ‘사포사터’와 목은 이색 선생의 영당터도 둘러보며 광화문 뒷길의 깨끗하게 조성된 거리를 걷습니다. 맑은 하늘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하고, 잘 키워 놓은 소나무가 멋있어서 15초짜리 동영상을 찍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모처럼의 산보를 방해하는 따가운 눈총이 쏟아집니다. 한 부류는 연합통신사와 일본대사관 사이의 평화의 소녀상을 수호하는 사회단체 사람들이었고, 또 다른 무리는 모자와 배낭에 태극기와 성조기로 장식한 어르신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눈빛에서 느낀 것은 ‘우리는 대의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데, 젊지도 않은 사람이 먹을 것을 잔뜩 들고 어슬렁 거리며 사진이나 찍고있냐?’라는 거죠.
매년 두 차례 우리 가족은 동해안에 가서 휴가를 보내곤 했습니다. 세 식구가 호텔 방을 잡아놓고 하루에 절반 정도를 그냥 잠만 자는 휴식이었죠. 배고프면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다시 돌아와서 아무런 생각없이 각자의 침대에서 잠을 잡니다. 그렇게 한 삼사일을 보내고, 자는 것에 싫증이 나면 주변의 경치가 좋은 곳이나 역사적 유적지, 이북출신인 장인어른의 영향으로 통일전망대도 꼭 둘러봅니다. 그런데 동해안의 명소들에서는 언제나 군인들을 만나게 되죠.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고, 북한과의 접경지이기에 늘 경계근무를 하는 군인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군인아저씨’들의 눈빛은 언제나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수고한다고 웃으며 인사를 했는데, 반응이 썩 좋지 않아 나중에는 눈도 안맞추죠.
이들의 눈빛이 차갑고 싸늘한 이유는 오늘 광화문에서 만난 분들의 눈빛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생을 하는데, 니들은 놀고 있냐’는 서운함때문일 겁니다.
금년엔 저도 휴가를 못갔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다 일년에 겨우 며칠 휴가를 얻은 이혜정 사모님은 멋진 휴가를 보내면서 사진을 올리는 것을 주저하시는 모습을 보이셨는데(결국은 다 올리셨지만…) 형편상 시간이든 경제적인 문제든 휴가를 못가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때문이었을 겁니다. 마음씨 고운 사모님…..
가끔 목사님들도 이런 질책을 하시곤 합니다. (페친인 한 젊은 목사님 글을 보고 많이 놀란적이 있는데) “당신들 제발 입만 살아서 교리니 신학이니 떠들지만 말고, 또 돈 좀 있다고, 헌금 좀 한다고 거들먹 거리지 말고, 예배당에 말없이 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는 분들을 좀 본받아라! 당신들이 그런 말없이 수고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서 교회를 안다고 신앙을 안다고 떠들지마라” 심지어 젊은 목회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국민 모두가 평화의 소녀상앞에 옹기종기 모여있거나 태극기 들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남녀노소가 모두 군복에 총을 들고 경계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고 국가를 지키는 일이 아니죠. 당신들이 활보하는 깨끗한 거리를 치우기 위해 국민 모두가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세금을 냅니다. 혹시 일사병에 걸려 거리에 쓰러지면 뼈빠지게 일해서 번 돈에서 떼어낸 세금으로 구급차를 보내서 병원으로 실어 나릅니다. 모두가 군복입고 철책앞에 서있으면, 무슨돈으로 먹고 입히고, 총알을 삽니까? 농부들의 쟁기나 군인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은 모두 나라를 위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도구들이죠…. 그렇게 힘들여 일하다 겨우 며칠 바다도 보고 산도 보고 힘을 얻어서 다시 나라를 위한 현장으로 고개 푹숙이고 돌아가는 겁니다.
과부의 두 렙돈으로 교회가 운영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거들먹거리고, 폼좀 내보려고 드러내면서 드리는 헌금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히 쓰입니다. 단지 거들먹 거리던 사람들은 나중에 천국가서 칭찬을 덜 받겠죠. 세상에서 이미 상을 받았으니까… 입만 살아서 신학이니 교리니… 떠드는 사람들이 있어야, 주의 종들도 긴장해서 한 번 더 공부하고, 좀 더 기도도 하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전 솔직히 교회에 한 번씩 들르면, 습관적으로 “주여…주여 하면서 걸레들고 설치는 분들이 제일 무섭고 겁납니다. 그 눈빛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나라도 교회도, 지체들이 모여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그렇게 자라나고, 그 역할이 무엇이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것이 좋은 국민이고 좋은 신자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차가운 눈총을 보낸 분들에게 예의상 웃으면서 따뜻한 얼굴을 했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저부터 서로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면서 돌아왔습니다.
당연히 집에 와서 빵먹었다고 실컷 혼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