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도둑
곽 흥 렬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 따라서 처벌할 수 없다.’
만일 책의 도난 사건으로 인해 송사訟事가 걸린다면, 추측컨대 아마도 이런 판결이 내려지지 않을까 싶다.
이 땅의 사람들은 책에 관한 한 무척 관대한 편이다. 책은 슬쩍한 다음 제 책꽂이에 꽂아 두고 돌려주지 않아도 그다지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사회의 묵시적 합의쯤으로 여긴다. 지식을 얻고 마음의 양식을 쌓으려는 순수한 의도에 매몰차게 법의 칼날을 들이댈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인지 모르겠다.
누구 없이 다들 한두 번씩은 책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으리라. 도둑질을 해 간 사람이나 도둑을 맞은 사람이나, 본의였든 아니든 그것이 도둑질이라는 의식 자체를 갖지 않는 성싶다. 이것이 책을 귀히 여기는 마음에서인지, 아니면 거꾸로 천히 여기는 마음에서인지는 내 아둔한 식견으로선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다. 다만, 애초 의도가 불순하지 않은 이상 그 문제로 인품의 높낮이까지를 들먹여서는 곤란하지 않느냐는 생각인 모양이다.
나 역시 여러 차례 책 도둑을 맞아 보았다. 그때마다 잃어버린 책이 특별히 아끼던 귀중본이 아닌 한 도둑맞았다고 여기지를 않았다. 그저 필요해서 가져갔으려니 하고 가볍게 넘겼었다. 어찌 보면 책꽂이에서 주야장천 쿨쿨 잠만 자고 있는 것보다야 오히려 나을 법도 하지 않은가.
그에 반해 글 도둑에 대해서는 완전히 생각이 다르다. 글 도둑질은 어떠한 변해의 말로도 결코 용서 될 수 없는 파렴치한 범죄 행위라는 입장이다. 그것은 평소 글 도둑질이야말로 작가의 머리를 훔치고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는 비도덕적인 짓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 그러한 상황이 내게도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글 도둑을 맞은 것이다. 나는 예외일 수 있으려니 여겼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뜻밖의 일을 당하고 보니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마치 경기 들린 사람처럼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머리통이 흔들거렸다.
지난봄, 대구의 모 일간지에 ‘사랑은 있어도 사랑이 없다’라는 에세이 한 편이 소개되었었다. 초름한 글이었음에도 독자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호응을 받았던 작품이다. 그 작품을 누군가 감쪽같이 훔쳐간 것이다. 제목은 물론이려니와 본문마저 글자 한 자 바꾸지 않고 마치 자기 글인 양 발표를 해 놓았었다. 거기다가 버젓이 인물사진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충남 서산에서 발행되는 ‘S 타임즈’라는 지역신문에서다. 경상도와 충청도, 오로지 수백 리 떨어져 있는 물리적 거리 하나 믿고서 그저 눈 가리고 아옹 하면 아무 탈이 없을 줄로 알았나 보다, 인터넷이 신경망처럼 깔려 있는 이 대낮 같은 세상에.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 보았다. 결국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십대 여자 분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전혀 예상 밖에도 착하고 순박한 농부農婦였다. 도저히 그런 몰상식한 짓을 할 위인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사실이 드러나자, 그녀는 사시나무처럼 와들와들 떨었다. 글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아서 잠시 이성을 잃었었다며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자신의 행위가 죄가 되는 줄을 까마득히 몰랐다고 했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이 있고 보면, 줄잡아 책 한 권 분량의 오십 분지 일에도 못 미치는 글 한 편 훔쳐가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가볍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리情理상으론 모른 척 눈감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일이 아니었다. 그냥 놔두자니 괜히 스스로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일단 죄를 지었으니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하는 것이 마땅할 노릇 아닌가. 그래, 단단히 매운맛을 보여주자. 그래야 두 번 다신 그런 부도덕한 행실을 되풀이하지 않을 게 아니냐. 이것이 또한 당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되리라. 나는 이렇게 내 편리한 대로 자의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었다.
문제의 매듭은 이것으로 일단락이 지어졌다. 다음 차례로 그 매듭을 푸는 일만 남았다. 풀지 아니하고는 도저히 마음의 울렁거림을 가라앉힐 수 없을 것 같았다.
풀긴 풀되 어떤 식으로 풀어야 좋을지 혼자서는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깟 일에 요란을 떨긴’, 이렇게 나올지도 모를 세상 사람들의 비난의 화살에 방패막이를 세워 둘 필요가 있었다. 벗에게도 물어보고 지인들한테도 떠보았다. 밑에서 글공부 하는 이들로부터도 의견을 구했다. 어디 함부로 남의 글을……, 그것도 심지어 사진까지 곁들여 가지고. 대다수가 이런 반응이었다. 그러면서 이구동성으로 엄한 처벌을 주문했다. 이것으로 응원군은 충분히 확보된 셈이다. 단단히 뜨끔한 맛 좀 봐라. 사로잡은 쥐를 요리하는 고양이처럼 나는 이렇게 마냥 신바람을 내며 폭군의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가까운 경찰서로 달려가 고소장을 썼다. 화장실하고 경찰서는 멀면 멀수록 좋다고 했던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일로 이런 곳을 찾기는 난생처음이다. 이제 며칠 뒤면 사이버수사대에서 피의자를 소환할 것이고, 그러면 조사실에 불려가 취조를 받게 될 것이고, 그리 되면 그 다음 순서는……. 커튼 뒤로 몸을 감추고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시간은 사람을 눅게 만드는 묘약인가 보다. 한껏 흥분되었던 감정이 시나브로 수그러져 갔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어’, 하던 분노감은 ‘어쩌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동정심으로 바뀌었다. 생각 한번 돌려먹기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나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란다.
그렇잖아도 날이 갈수록 글을 읽지 아니하는 세상, 영상매체에 짓눌려 활자매체가 기조차 펴지 못하는 세태 아닌가. 이처럼 글이 푸대접 받고 있는 시대에, 그 여자 분만큼 시답잖은 내 글을 사랑하고 아껴 줄 사람이 또 누가 있을 것인가. 그러니 돌려 생각을 해 보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찾아가서 넙죽 절이라도 하는 것이 도리어 도리에 맞으리라. ‘한 편 아니라 열 편, 아니 백 편이라도 좋다. 얼마든지 가져가거라. 가져가서 민들레 갓털처럼 세상에다 훌훌 퍼트려 다오.’ 마음속에서는 이런 얄망궂은 심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글 도둑은 처벌할 수 없다. 오히려 상을 주어야 마땅하다.’
내 마음의 판관은 결국 이렇게 판결을 내렸다.
다음 날 아침, 곧장 경찰서를 찾아가 고소 취하서에 서명 날인을 했다. 한때나마 이번 일로 적잖이 마음고생을 겪게 만든 내 불민한 행위가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맞은 놈은 다리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다리 오그리고 잔다는 속담처럼, 사실 나 역시도 그 문제로 잔뜩 신경 줄이 곤두서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심한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듯 가슴속이 후련하다. 용서가 상대편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그리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는 세상사의 이치 하나 새삼 깨친다.
돌아서 나오는 길에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내딛는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볍다.
<'수필미학' 창간호>
첫댓글 넉넉하심에 고개 숙여집니다^^
늘 건필을 기원드립니다.
용서하신 건 참 잘 하셨다고 생각됩니다. 특히나 능부라고 하니 표절에 대한 뚜렷한 관념이 없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추후에는 남의 글을 훔치는 일은 근절되야겠지요.
참 잘 하신 멋진 교수님!
읽는 내내 마음 졸아 들어 이 일을 어떻해.......... 걱정 했습니다
제 작은 생각으로는 조금씩 바꾸는 사람이 더 나쁘다고 생각 되오며,
교수님의 글이 그 분의 마음을 순간 사로잡았다고 보여집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남의 것은 탐내면 아니됨을 잊지않고 살아 가실 겁니다
참 잘 하셨어예
교수님의 글을 더 많이 사랑하며 마음으로 늘 용서를 고마워 하리라 여겨집니다
살다가 더러 마음 상 하셔도 너그러움이 먼저인 교수님을 바라오며........................................-^
아...농부 였군요. 잘 하셨습니다 교수님!
그 분 다음엔 절대로 그렇게 안할 겁니다.
표절에 대한 상식이 없었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농부의 마음을 감동시켰던 작품 어디서 만날 수 있을지요?
그 여자 분은 교수님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싶을 만큼 훌륭한 수필을 쓰신 수필가로, 또 자신의 불미를 용서해 주신 대인배로 말입니다.
교수님, 참 잘 하셨습니다. 그 분도 자신에게 잘못한 이를 그렇게 너그러이 용서하면서 살 겁니다.
누구나 본인의 글을 도둑맞는다면 기분이 떨뜨름 합디다. 전부 다가 아니고 한 구절이라도 발표되지 않은 것은 따 가면 안 된다고 봅니다.
교수님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사연입니다.
참으로 몰라서 저지른 행위로 받아들이신다니
용서로 이해합니다. 물론 용납은 아니어야지요.
이 수필은 사유의 깊이가 부족해서 그다지 예술성은 갖추지 못한 작품입니다. 다만 도문 혹은 표절에 대하여 독자들을 향해 경종을 울리고 함께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 세상에 내놓게 된 글입니다.
교수님의 판결은 아주 관대하셨지만 씁쓸한 기분입니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셨네요. 다시는 그런일을 안하겠죠.
교수님의 수필 뒤에는 언제나 소통이 원활합니다. '동리목월카페'에 들어온 분들은 '교수님방'을 지나치지 않아 보입니다. 교수님의 진심은 소통을 부추기는 가속페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