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천뢰 님
엿, 윷, 엮다
“쌀 퍼주고 떡 사먹고 베 주고 고기 사기 헌 의복 엿 사먹고 잡곡일랑 돈을 사 청주 탁주 모두 받어 저 혼자 실컷 먹고 ......” [심청전]
이는 심봉사의 새 마누라 뺑파를 재미있게 묘사한 대목 중 한 부분이다. 여기에 나오는 ‘엿’은 달고 맛있기도 하지만, 점성(粘性)이 무척 강해 잘 달라붙는 물건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그런 상징성 때문인지 입시철에는 합격을 기원하는 선물로 많이 주고받는 음식이라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말 ‘엿’의 어원을 엿볼 수 있는 산스크리트 단어가 있어 소개해 보려 한다. 물론 확실한 연관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유사성을 비교해 봄으로써 인도유라시아 언어권에서의 언어적 상관관계를 재미삼아 살펴보는 계기를 갖고 싶을 뿐이다.
yuj : to yoke or join or fasten or harness; unite, connect, combine, bring or put together. [Sanskrit English Dictionary]
윶/유ㅈ : 멍에를 씌우거나 연결하거나 단단히 묶거나 말을 마구로 연결하다; 단결시키다, 연결하다, 결합하다. 한데 모으거나 합치다.
이 뜻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말 ‘엮다’에 해당한다. ‘엮다’의 고어는 ‘엿다’이다. ‘엿다’에서 동사어미 ‘-다’를 빼고 난 ‘엿’은 산스크리트 ‘윶’과 발음이 비슷하다. (물론 발음이 다르다면 다르겠지만 의미가 같은 언어적 상황에서 보면 유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말 ‘엿’의 발음과 산스크리트 ‘yuj[윶]’의 발음이 다소 비슷하다. 그리고 ‘엿’은 엿의 재료들이 한데 ‘엮인’ 즉 ‘결합’된 결과물을 얘기하고, ‘yuj[윶]’은 ‘결합’시키는 움직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결합’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산스크리트 ‘yuj[윶]’과 아주 비슷한 발음을 가진 단어가 우리말 ‘윷’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표적 전통놀이인 ‘윷’이 이 단어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윷놀이할 때 윷가락 네 개를 한데 모아서 윷판에 던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이때 도, 개, 걸, 윷, 모 가운데 어느 하나가 나오는데, 여기서 주목할 일은 ‘윷가락을 윷판에 던지기에 앞서 윷가락 네 개를 한데 모은다는 점이다. 산스크리트 ‘yuj[윶]’의 ‘결합하다’는 의미와 서로 통하지 않는가? 윷가락 네 개가 엎어지지 않고 모두 뒤집힌 상태를 ‘윷’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 또한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또 ‘yuj[윶/유ㅈ]’의 파생어 ‘yukta[윢따/유끄따]’를 보자.
yukta : yoked or joined or fastened or attached or harnessed to. [Sanskrit English Dictionary]
윢따/유끄따 : 멍에가 씌워지거나 연결되거나 단단히 묶이거나 달라붙게 되거나 말이 마구에 연결된.
이 단어는 ‘yuj[윶]’의 과거수동분사로 영어로 치면 과거분사에 해당하며, 우리말로는 ‘엮인’, ‘묶인’, ‘연결된’ 따위의 뜻이다. ‘yukta[윢따/유끄따]’가 발음상 연상시키는 우리말은 ‘엮다’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의미는 ‘엮였다’로 수동의 뜻이다. (산스크리트에서는 분사가 동사를 대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어식으로 하면 be동사를 생략하고 현재분사나 과거분사만으로 동사의 뜻을 나타내는 셈이다.) 우리말 ‘엮였다’를 실제 발음대로 기록하면 ‘여껴따’로 발음이 산스크리트 ‘유끄따’에 더 가까워진다. 좀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스크리트 ‘yuj[윶]’이 영어권으로 흘러들어가서는 ‘yoke[요우크]’가 되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yoke’는 ‘멍에, 멍에를 씌우다’의 뜻으로 소나 말과 멍에를 결합시킴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영어 ‘yoke’는 우리말 ‘엮다’와 어원적으로 상통하는 셈이다. 위에서 살펴본 산스크리트 ‘yuj’는 어근(말뿌리)이며, 이 동사의 3인칭 현재 단수는 yunakti[유나끄띠]이다. 끝의 ‘–ti[띠]’는 주어 어미로 ‘그, 그녀, 그것’을 나타내고, 그 앞부분 ‘yunak[유나끄]’가 동사를 나타내므로 이 부분이 영어 ‘yoke[요우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유나끄 : 엮따 : 요우크’는 말의 뿌리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산스크리트는 인도의 아리안족의 언어이며, 본래 그들이 살던 곳은 중앙아시아였는데, 고대에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인도로 들어왔다고 하니, 중앙아시아가 인도유라시아 언어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역사가들과 언어학자들의 연구와 고증으로 자세히 밝혀지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