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杖摩鞋日往來 죽장마혜일왕래 금쇄동 안에 꽃이 만발하고 수정암 아래에 물소리는 우뢰와 같다 유인이라 일 없다고 누가 말하는가 죽장에 짚신 신고 날마다 오고가는데
참고 :
이 시는 고산 윤선도 선생이 59세 되던 해(1645년 인조 23년 을유년)에 금쇄동에서 지은 우음(偶吟)이라는시 입니다.금쇄동은 해남군 현산면 상구시리 병풍산 무명봉 산성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
나의 벗이 몇이나 있느냐헤아려 보니
물과 돌과 소나무, 대나무다
게다가 동산에 달 오르니 그것은더욱 반가운 일이구나
또 더하여무엇하리
두어라 이 다섯이면 그만이지
(水)
구름 빛이 좋다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 서리 맑다 하나 그칠 때가 하도 많다
좋고도 그칠 때 없기는 물 뿐인가 하노라
(石)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빨리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다가 누르는가
아마도 변치 않는 것은 바위 뿐인가 하노라
(松)
더우면 꽃 피우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 서리 모르는가
구천에 뿌리 곧은 줄 그로하여 아노라
(竹)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곱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月)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의 광명이 너만한 것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해남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 중에 한사람인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우리나라 국문학상 시조시인의 일인자로 꼽힌다. 송강 정철이 가사문학의 대가라면 고산은 시조문학의 대가라고 할 수있다. 당시 이 나라의 선비들이 대부분 한문문학과 경직된 사회구조의 틀속에 갇혀 있을 때 고산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 섬세하고 미려한 시조들을 지어냈다. 그의 시조는 정철(鄭澈)의 가사(歌辭)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 벽을 이루고 있다. 사후인 75년(숙종 1) 남인의 집권으로 신원(伸寃)되어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저서에 《고산유고(孤山遺稿)》가 있다.
첫댓글 내 진정한 벗은 몇이나 될까?오우가를 보며 지나온 내 삶을 다시 보게 되네
베풀지도 보듬지도 못했는데 지금부터 잘해 볼까? 참 많이 부끄럽지만 뻔뻔스레
살아가고.....그래도 친구들의 건강은 늘 걱정한단다 사랑해!!!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오우가 읽으며 진정 내 사랑하는 벗님은 몇이나 되는가?
지나 온 삶을 돌아 보게 해 주는 구금숙님. 나의 좋은 친구!
파이팅!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