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鄕歌)
향가는 신라 당대에 우리 나라 고유의 노래라는 뜻으로 쓰였다. 인도의 불찬가인 범패(梵唄)에 상대되는 용어로, 또는 신라의 노래 일반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 것이다. 이에 향가라는 말 속에는 우리것을 폄하하는 뜻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한 당대에 이미 ‘사뇌가(詞腦歌)’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논자에 따라서 사뇌가를 곧 향가로 보기도 하지만, 대개는 사뇌가가 향가의 한 하위 양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향가는 우리 시가사상 최초의 양식화된 서정시로서, 신라 시대는 물론 고려 중엽까지 지속적으로 창작, 향유된 시가 갈래이다. 우리 나라 시가사의 전개에서 향가가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며, 향가 이후 형성, 발전된 우리 고유 시가의 형식이나 내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된다. 향가의 한 특징으로 표기 문자를 거론하기도 한다. 향가는 향찰로 표기되었는데, 향찰은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차용하여 우리말을 온전하게 나타내기 위해 마련된 표기법이었다.
신라 말기 진성 여왕 2년(888)에 위홍(魏弘)과 대구(大矩)가 신라 삼대에 걸쳐 전승된 향가들을 모아 ≪삼대목(三代目)≫을 편찬했다고 하지만, 현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존 향가 작품으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수록된 14수와 ≪균여전(均如傳)≫에 수록된 <보현시원가(普賢十願歌)> 11수 등 도합 25수를 거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향찰 표기로 이루어진 시가 작품으로는 고려 예종이 1120년에 지은 <도이장가(悼二將歌)>를 더 추가할 수 있고, 최근에 발견되어 진본 여부로 논란을 빚고 있는 ≪화랑세기(花郞世紀)≫에 수록된 미실(美實)의 <송랑가(送郞歌)>(가칭)도 여기에 추가할 수 있다. 또한 시가 형식의 측면에서 향가와 상통하는 특징을 갖고 있는 고려 가요 <정과정(鄭瓜亭)>을 향가의 잔존 형태로 거론하기도 한다.
향가의 전승상 특징은 노랫말이 배경 기사와 함께 전승되었다는 점이다. 향찰로 표기된 노랫말의 앞이나 뒤에 그 노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대개는 설화적인 성격의 이야기이지만,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나 <원가(怨歌)>와 같이 노래가 창작될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기술한 것도 있다. 따라서 막연히 배경 설화로만 알아서는 안되고, 노랫말과 관련된 배경 기사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하여야 한다.
내용면에서는 주술적, 불교적 성격의 작품이 눈에 띈다. 진평왕대에 발생한 왜적의 침입과 혜성의 변괴를 물리쳤다는 융천사의 <혜성가(彗星歌)>, 두 해가 동시에 나타난 변괴를 물리쳤다는 월명사의 <도솔가(兜率歌)>, 자기 아내를 범한 역신(疫神)을 용서해 주었기에 그 역신이 다시는 범접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처용가(處容歌)> 등이 주술적 성격의 작품이다. 서방 정토에 왕생할 것을 다짐하는 광덕의 <원왕생가(願往生歌)>, 갑자기 맹인이 된 아이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관음보살에게 기원하는 희명의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 죽은 누이와 미타찰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월명사의 <제망매가(祭亡妹歌)> 등은 불교 신앙의 노래이다. 여기에 불교 화엄사상에 기반을 두고 대중 교화를 위해 지은 균여의 <보현시원가>를 함께 생각하면, 향가에서 불교적 내용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한편, 향가의 작가인 월명사, 융천사, 충담사 등이 화랑도와 일정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향가의 주된 향유 계층을 화랑도로 보아 향가를 화랑도의 문학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이처럼 향가를 주술적 노래, 불교 노래, 화랑도의 노래 등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우세하기는 하지만, 이는 신라 당대에 향유된 향가의 극히 일부분이 전해진 오늘날의 자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또한 향가가 지닌 서정성의 측면을 더불어 고려할 때, 향가는 내용면에서 매우 다양한 층위와 양상으로 전개되었으리라는 추정이 온당하다.
향가 형식의 기원에 대해서는 중국 시가의 영향도 거론되지만, 대개는 우리의 전통 민요 형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파악한다. 현존하는 <서동요(薯童謠)>, <풍요(風謠)>, <헌화가(獻花歌)>, <도솔가(兜率歌)> 등이 민요 계통의 노래이다. 향가의 형식에 대해서는 특히 ≪균여전≫에서 최행귀(崔行歸)가 말한 ‘삼구육명(三句六名)’에 대한 해석을 통해 규명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아직 뚜렷한 결론에 합의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삼구’는 사뇌가에 속하는 향가의 3구로서 한 작품의 3분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육명’에 대해서는 각 1구가 다시 2분절 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와 각 1구에 들어가는 음절, 자구, 음보수 등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로 대별된다. 기존에 향가 형식을 4구체, 8구체, 10구체 등으로 파악한 견해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루어져, 최행귀의 3구에 대한 언급을 토대로 1구체, 2구체, 3구체나 4행시, 8행시, 10행시, 혹은 두 줄, 넉 줄, 다섯 줄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고전문학 교육에서 향가는 중등 국어 교과과정에 언제나 한두 편이 수록됨으로써 매우 비중있게 취급되었다. 그러나 향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학계에서조차 논란이 분분한 상태이기에 교육의 자료로 제공되는 내용도 유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향찰 표기의 원문에 대한 해독은 주로 양주동의 것이 수록되었다가, 6차에 와서야 김완진의 해독이 덧붙여졌다. 향가는 향찰 해독의 결과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나타나는데, 이에 대해서 국어학, 국문학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어느 정도 합의된 해독의 결과를 교과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향가 교육은 고전 시가의 한 갈래를 교육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 나라 시가사의 원류, 한국적인 서정성의 원천, 언어로 응축된 신라 문화의 정수 등을 가르친다는 의의를 갖는다. 따라서 앞으로도 향가에 대한 교육적 차원의 관심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신재홍/
<참고문헌>
간행위원회 편(1993), ≪향가문학연구≫, 황패강교수 정년퇴임기념논총, 일지사
국어국문학회 편(1979), ≪신라가요연구≫, 정음문화사
김승찬 편(1986), ≪향가문학론≫, 새문사
김완진(1980), ≪향가해독법연구≫, 서울대출판부
양주동(1965), ≪증정 고가연구≫, 일조각
조동일(1994), ≪한국문학통사1 제3판≫, 지식산업사
첫댓글 지난학기 국문학개론에서 배웠던 내용이 되살아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향가를 배우고 이제껏 머릿속에서 잊혀졌었는데, 이렇게 깊이 있게 설명해주시니 좋아요!ㅎ
아직은 1학년이라 잘 모르지만, 2학년때가서 더 자세히 배우겠지요ㅎㅎ
잘 읽었어요^^
향가는 향찰로 표기되었는데, 향찰은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차용하여 우리말을 온전하게 나타내기 위해 마련된 표기법이었다. 중국의 표기법을 그대로 벋아들이지 않고 우리 식으로 바꿨다는 점에서 향가는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향가는 우리 시가사상 최초의 양식화된 서정시로서, 신라 시대는 물론 고려 중엽까지 지속적으로 창작, 향유된 시가 갈래이다.' 최초로 양식화된 서정시인 향가가 쇠퇴해서 아쉽네요ㅠ 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
1학기 전공수업때 향가와 관련된 과제를 하면서 많이 배운내용을 이번에 또 다시 접하니 새롭기도하고 더 이해가 잘 되는 것같네요 ^^
"향가는 우리 시가사상 최초의 양식화된 서정시로서, 신라 시대는 물론 고려 중엽까지 지속적으로 창작, 향유된 시가 갈래이다. 우리 나라 시가사의 전개에서 향가가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며, 향가 이후 형성, 발전된 우리 고유 시가의 형식이나 내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된다." 향가는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연구하는 분야로 우리에게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