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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백두산(白頭山) 등정(登頂)
우리 한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중국에서는 장바이샨(長白山)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도 이 백두산과 정상의 천지(天池)를 신성하게 여기는데 우루무치 천산산록(天山山麓)에도 또 다른 천지(天池)가 있다.
이 백두산은 우리 한민족의 성산(聖山)일뿐더러 이 지역의 소수민족인 여진족(女眞族), 말갈족(靺鞨族)도 자기 민족의 성산(聖山)이라고 한다며, 각각 개국신화(開國神話)들이 얽혀있는 산이라고 한다.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는 장백폭포(長白瀑布) 앞 노천온천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장백폭포는 천지에서 유일하게 바깥으로 나오는 물줄기(폭포)인데 중국으로 흐르면서 송화강(松花江)이 된다고 한다.
장백폭포를 우리나라에서 천지폭포(天池瀑布)라 하는데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을 흐르는 압록강과 두만강은 천지에서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샘으로 솟아 나와 강의 원류(原流)가 된다.
6월 초인데도 백두산은 골짜기마다 눈이 덮여있고 날씨도 제법 서늘하다. 버스에서 내려 골짜기로 올라가자 갑자기 유황 냄새가 나며 자욱이 안개가 서리는데 가까이 가면서 보니 넓은 바위 위로 물이 흘러넘치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노천온천이다. 너럭바위 위로 흘러넘치는 뜨거운 온천수가 얼마나 아까운지...
이곳에 호텔을 지으면 얼마나 좋을까? 버스에서 가이드가 봉지에 오리 알을 담아 들고 나설 때 뭘 하려나 했더니 두 개씩 나누어주며 온천물에 넣었다가 5분 후쯤 꺼내면 반숙(半熟)이 된다며 각자 해 보란다.
바위 구멍에서 퐁퐁 솟아 나오는 온천수에 손을 넣으니 기절할 만큼 뜨겁다.
그 속에 오리 알을 넣었다가 나중 먹으려고 꺼내려니 뜨거워서 손을 넣을 수가 있어야지... ㅎㅎ
조금 아래쪽에 허름한 온천욕장이 있는데 절로 헛웃음이 나온다. 입장료도 없고, 문도 없는 시멘트 가건물(假建物) 두 칸인데 한쪽은 남탕(男湯), 한쪽은 여탕(女湯)이라 한자로 써있고 두 칸 사이에 웬 창문을?
그런데 문도 달지 않아서 구멍이 휑하니 뚫려있다. 바위에서 흘러 내려온 물은 남탕과 여탕으로 들어가 욕탕을 채우고는 철철 흘러넘쳐서 다시 바깥으로 하염없이 흘러나온다. 아이구 아까워라....
장백폭포까지는 눈이 많이 쌓여 있어 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백두산 밑 노천(露天) 온천 / 오리알 삶아 먹기 / 백두산(長白山) 입구 / 송화강의 원류 장백(천지)폭포
지금은 정상인 천지(天池)까지 여러 가지 교통편이 마련되어 있다지만 당시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버스는 올라가지 못하고 별다른 교통편도 없었다. 우리 가이드는 산 입구에 우리를 앉혀놓고 근처 공사장에서 트럭을 빌려와 우리를 태우고 올라가며 울화통을 터뜨린다.
‘저런 돼지 같은 멍청한 여진족(女眞族) 놈들 같으니라고... 쯧쯧’ 하며 혀를 찬다.
중국 돈 200위안에 흥정이 되었는데 외국인이 쓰는 중국 돈인 외환폐(外貨兌換券)를 주었더니 못 보던 돈이라며 내국민이 쓰는 인민폐(人民幣)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같은 200위안이라도 외환폐가 인민폐보다 두 배는 더 가치가 있는데 무식한 사람들이다 보니 인민폐(人民幣)를 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눈 덮인, 포장도 되지 않은 길을 중간쯤 올라가다가 차를 세우고 골짜기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데 이곳 이름이 풍구(風口)란다. 풍구에서 내려다보이는 장백폭포와 잔설이 쌓인 계곡 풍경이 넋을 잃게 한다. 이곳이 2,500m 이상 되는 곳이니 오르다 보면 제법 숨이 가쁘다.
풍구(風口)에서 내려다보이는 장백폭포 / 아, 아 천지(天池)!! / 천지 건너편은 북한 땅(장군봉)
다시 차에 올라 눈 덮인 비탈길을 트럭은 용케도 미끄러지지 않고 덜덜거리며 올라가는데 트럭 뒷편 짐을 싣는 곳에 앉은 우리는 추워서, 무서워서 오들거리며... 얼마쯤 올라왔는지 갑자기 눈이 병풍처럼 쌓여서 길이 반쯤 묻혀있는 곳까지 와서는 트럭 운전수는 더이상 갈 수 없다고 주저앉는다.
가이드가 실랑이하더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걸어가자고 한다. 눈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며 10여 분 걷는데 고산증세인가 숨이 턱까지 찬다. 다행히 곧바로 눈에 덮여있는 기상대가 보이고 바로 언덕 너머가 천지(天池)였다.
눈 덮인 백두산 천지(6월) / 노랑만병초(들쭉나무 꽃)
이곳 백두산은 날씨가 너무 변덕스러워 3대가 덕을 쌓지 않으면 맑은 날씨에 천지를 볼 수 없다고 한다며 가이드는 빨리 사진이나 찍고 서둘러 내려가자고 연신 성화다. 날씨가 어떻게 변덕을 부릴지 알 수 없으니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나 벼르고 온 민족의 성산 백두산이고, 천지인데 금방 내려가자니... 백두산 기상대에서 언덕을 오르면 곧바로 천지가 조망되는데 엄청난 장관에 숨이 막히고 민족의 영산에 올랐다는 감회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조상님들의 음덕 덕분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화창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천지와 그 둘레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높고 낮은 흰 눈이 덮인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 호수 천지(天池)는 둘레의 길이 14km, 깊이는 평균 수심이 200m로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384m 나 된다고 하는, 세계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화산호수(칼데라호)라고 한다. 감회에 벅차오른 일행 중 한 명이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외치자 가이드는 질겁하며 절대로 만세를 부르거나 태극기를 흔들면 안 된다고 한다.
이 백두산과 천지는 모두 한국 땅이었는데 한국전쟁(6.25)이 끝난 후 김일성이 백두산을 반을 나누어 새로운 국경을 긋는 바람에 천지도 1/3은 조선 땅, 2/3는 중국영토가 되었다고 하니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중국 땅인 셈이다. 중국령 천문봉(天門峰)에서 천지 건너편으로는 보이는 북한 쪽 백두산은 최고봉인 장군봉이 높이 솟아있고 조금 낮은 곳에 북한 초소가 어렴풋이 보이는데 초소에서 천지로 내려오는 가파른 계단이 가물가물 보인다. 채근하는 가이드를 못 본체 우리는 들고 온 간식 중에서 빵과 술, 과일들을 펼쳐놓고 간소하나마 제례(祭禮)를 올렸다.
절을 올린 후 우리는 꿇어 엎드려있고 제일 연장자가 즉흥 제문(기도문?)을 읽고 다시 큰절을 올리고.... 여정(旅程)에 없던 즉흥적인 제례(山祭?)였지만 모두 엄숙한 얼굴이 되었다.
백두산 아래쪽 기슭은 숲이 울창하고 특히 하얀 껍질이 일어나는 자작나무숲(白樺林)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다. 천지 가까이 오르면 숲은 사라지고 키 작은 관목(灌木)들만 보이는데 고도가 높을뿐더러 비바람이 심하고 추워서 키가 큰 교목(喬木)들은 자라지 못하는 모양이다.
천지 부근의 관목(灌木) 숲에 들어갔는데 관목조차 30cm 이상 자라지 못하는 모양이다.
꽃을 보니 진달래가 틀림없는데 줄기가 모두 땅 위에 누워있다. 꽃도 조그마하고 잎도 작고...
그리고 노란 꽃을 피우고 있는, 진달래를 닮았지만 좀 다른 첨 보는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어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백두산 노랑만병초(萬病草)라고 한다. 진달래과에 속한다는 만병초는 황화두견(黃花杜鵑), 석남화(石楠花), 들쭉나무라고도 부른다는데 천지 주변은 온통 노랑만병초 천국이었다.
아! 북한이 자랑하던, 금강산 관광 때 보았던 그 유명하다는 백두산 ‘들쭉나무 술’이 머리에 떠오른다.
지금은 중국 쪽이나 북한 쪽에서 천지를 오르는 여러 갈래의 등산로(東坡, 南坡, 西坡, 北坡)가 있다지만 당시(1990년)에는 중국에서 오르는 주 등산로조차 공사가 겨우 끝난 후라 도로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중간쯤에는 이 도로를 닦다가 순직한 인부들의 추모비도 서 있다. 나중에 들어보니 우리보다 사흘 전에 이곳으로 왔던 우리 여행팀 중 미술전공 팀은 진눈깨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몰아쳐서 중도에 도로 내려갔다고 한다. 사진을 찍으려 해도 셔터가 얼어 눌러지지 않았다고...
내가 소속된 음악전공 팀은 매우 운이 좋았던 셈이다.
백두산 관광을 마친 후 저녁에 쇼핑이 있었다. 가이드가 데리고 간 가게는 시골 한약방을 연상케 하는 어두컴컴한 가게인데 백두산 산삼(山蔘), 녹용(鹿茸), 모피(毛皮), 이름 모를 한약재 등을 팔고 있다.
백두산 산삼이라고 내놓은 상품은 이끼를 깔고 하얀 수염뿌리가 온전하게 보존된, 제법 통통한 산삼인데 진위를 알 수는 없지만 제법 귀한 약재로 보였고 우리 돈으로 20만 원쯤 한다.
그리고 젓가락같이 가느다란 산삼 뿌리를 수북이 쌓아 놓고 한 뿌리에 우리 돈으로 천원이라고 한다.
주인 말로는 백두산에서 캔 진짜 산삼이라지만 장뇌삼(長腦蔘)이겠지... 나중 한국에 온 후에야 그까짓 천원인데 몇 뿌리 사서 씹어 먹을 걸 하고 후회를 했다. 나는 이곳에서 큰맘 먹고 녹용을 하나 샀는데 두 갈래로 갈라진, 보송보송 솜털이 있는 30cm가량의 녹용으로, 우리 돈으로 8만 원쯤 주고 샀다.
한국으로 입국할 때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안기부 직원을 쳐다보았더니 그냥 눈을 꿈적이며 고개를 끄떡인다. 그런데 이 녹용이 엄청난 효과가 있을 줄이야....
귀국 후 잘 아는 한의원에 가서 녹용을 보여주었더니 꽃사슴 뿔이라며 한국에서도 요정도면 10만 원 정도에 살 수 있다며 별로라는 표정이어서 조금 떨떠름했었다. 무게를 달아보더니 아이들은 7첩이 한 제(劑)이고 어른들은 20첩이 한 제(劑)인데 두 사람 제를 지으려면 조금 모자라겠다고 한다.
아들을 먹이려고 사 왔으니 우선 아들 7첩을 먼저 짓고 나머지는 적당히 배분해서 한 제를 짓던지, 몇 첩을 지으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더니만 아들과 나가 먹을 것까지 한 제씩을 지어준다.
그때 아들 녀석이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잘 먹지 않아 빼빼 말랐고, 혈액순환이 좋지 않아 겨울이면 입술이 새파랗게 되고 추위를 견디지 못했다. 체온이 떨어지면 혈액이 응고되어 위험하다는 의사의 말에 매년 겨울이면 옷을 겹겹이 껴입히고 마스크에 장갑에... 행여 동상에 걸릴까 항상 노심초사했었는데 이 녹용을 먹고 나서 완전히 체질이 바뀌고 건강해졌으니 기적 같은 예상외의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들은 몸도 말랐을뿐더러, 또래에 비하면 키도 작아서 초등학교 때에는 맨 앞자리에 앉았었다.
녹용 복용 후, 아들 녀석은 살이 오르기 시작하고 혈색이 돌아왔음은 물론 겨울이 되면 오히려 덥다고 옷을 벗어 던지고 바깥으로 뛰어나가고.... 완전히 체질이 바뀌었으니 보는 사람은 신기할 수밖에...
그 아들 녀석이 쑥쑥 키가 자라더니 지금은 180cm, 85kg...
나도 몇 년간 눈에 띄게 건강이 좋아져서 녹용의, 백두산 정기(精氣)가 서린 녹용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백두산 관광 후 이튿날 아침, 부산에 사는 친구와 둘이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 산책을 했는데 상당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광장 한쪽에서는 손수레에 국수와 만두, 빵, 우유 등을 차려놓고 장사를 하고 있고, 몇몇 사람들이 둘러서서 사 먹고 있다. 중국은 어디를 가나 이렇게 아침 식사를 집에서 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사 먹는 풍경을 많이 볼 수 있다.
옆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30대 후반쯤,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떡처럼 굳어있고 얼굴도 땟국물이 꾀죄죄, 옷차림도 언제 세탁했는지... 갑자기 나한테 뭐라고 말을 건다.
‘노, 아이 캔트 스픽 차이니즈...(나는 중국어 못해요)’ 그런데 또 뭐라고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우리나라 말이다.
알고 보니 조선족인데 나보고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어보는 거였는데 강한 북한식 사투리의, 어물거리는 말투로 물으니 꼭 중국말을 하는 것 같다. 얼씨구나!! 오히려 내가 질문을 퍼부었다.
너는 무슨 일을 하나? 벌목하는 일을 한다. 한 달 수입이 얼마냐? 200위안(30만 원)이다.
그것으로 생활이 되나? 아내가 식당에서 일하는데 월급 90위안(13만 5천 원)인데 먹고 사는 데는 일 없다. (넉넉하다) 집은 어떤가? 정부에서 배정해 준 집에서 산다. 북한 사정을 아는가? 묻지도 마라. 사는 게 말이 아니다. 어떻게 아나? 북한에서 식량을 구하러 이곳까지 오는데 이곳에 사는 친척들은 곡식을 보내면 국경에서 다 빼앗기니 밥을 누룽지로 만들어 싸서 보낸다. 그러면 국경에서 걸리지 않고 가지고 갈 수 있다.
그리고 이 친구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개 한 마리를 이만 원만 내면 모두 손질해 양념까지 해서 먹게 해 주겠다고 한다. 이만 원이면 우리 모든 일행이 포식(飽食)하겠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포기... 아! 아깝도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