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 금전산 금둔사 납월매
납월은 음력 12월 섣달을 이르는 말이다. 이때 꽃이 피는 매화는 납월매이다. 가지에 붙어있는 흰 눈 틈에 한 송이 두 송이 살포시 벌어져 정월 보름 무렵이면 만개한다. 순백의 푸른 빛 감도는 청매, 어머니의 저고리색 설매, 누님의 치마색 연분홍매, 서너 살 아이의 붉은 입술색 홍매가 앙증맞고 향기롭기까지 하다. 순천시 낙안면 금전산 금둔사의 새봄은 이 청, 백, 홍의 납월매로 열린다.
‘찬 서리 고운 자태 사방을 비춰/ 뜰 가 앞선 섣달 봄을 차지했네/ 꽃핀 가지 반쯤 떨어져 고운 화장 지워지고/ 눈이 개니 이내 녹아 아롱아롱 걸려있네// 차가운 그림자는 금샘의 햇살 나직이 가리우고/ 서늘한 향기 창가 먼지 가볍게 묶는구나/ 내 고향 시냇가 매화나무도/ 서녘 먼 길 떠난 나를 기다리겠지’
최광유는 885년 남북국 시대에 신라 유학생으로 당의 외국인 과거 빈공과에 급제했다, 이 무렵 고향의 봄과 뜨락의 매화를 그리며 쓴 시가 ‘정매(庭梅)’이다. 어쩌면 납월매를 노래한 우리나라 첫 매화시이다. 이른 새봄 금둔사 사찰로 오르는 길에서부터 돌담, 대웅전, 산신각에서 이 눈을 이고 피는 납월매에 눈 시리게 취할 수 있다.
금둔사는 백제 위덕왕 30년인 583년에 창건, 그 뒤 의상대사가 금강암 등 30여 동의 사우를 지어 대찰이 되었다. 그 뒤 폐찰로 방치되다 1985년 스님 지허가 복원하였다. 이때 낙안읍성의 600년 매화 씨앗을 받아와 여섯 그루가 싹을 틔웠으니 지금의 제1세대 납월매이다.
1941년 태어난 지허는 선암사 주지, 태고종 종정을 지내고 2023년 10월 입적하였다. 이를 슬퍼함인지 금둔사 매화가 납월이 되어도 좀처럼 꽃송이가 예년처럼 벌어지지 않더니, 2024년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만개하였다.
여기 금전산 서쪽 봉우리가 온통 기암이다. 해 질 녘 붉게 물들어 마치 용광로의 쇳물빛이어서 이름이 쇠산이었으나 100여 년 전 금전산이 되었다. 불가의 오백비구 제자 중 금전비구에서 따왔다고 한다. 또 산 모습이 금(金)자이다. 무릇 이름이란 사물의 형상, 민초의 켜켜이 쌓인 바람이다. 불어오가는 바람길, 빗물이 모인 시내 물길, 뭍 동물이 지나는 길과 같음이다.
이 세상 모든 사물에 무한은 없다. 생성과 소멸의 시점이 다를 뿐, 뉘건 무어건 다 오면 간다. 또 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그저 모두가 패자이고 이 전쟁의 빌미를 주거나, 전쟁을 일으키게 하는 자는 그가 누구이든 역사의 죄인으로 단죄받을 것이다. 남녘의 봄을 이끌고 북으로 가는 금둔사의 매화 앞에서 한반도를 비롯 세상의 평화를 빌며 두 손 모은다.
이 금전산이 내려다보는 낙안읍성은 평지 읍성이다. 태조 6년인 1397년 낙안 출신 절제사 김빈길이 흙으로 쌓았고 1424년 석축성이 되었다. 정유재란에 순천 왜성의 왜군이 파괴한 것을 인조 6년인 1628년 낙안군수 임경업이 복구하였다. 축성 기간이 짧은 1개월이어서 임경업과 누님이 하룻밤에 쌓았다는 ‘오뉘설화’가 생겼다.
낙안읍성의 영웅 임경업은 용장, 덕장으로 병자호란의 소용돌이에 역모죄로 장살 당했다. 이는 혼군 인조와 간신 김자점 등 때문이지만, 외교관으로 반청복명의 국제정세 지략이 외골수였던 게 무척 아쉽다. 어떻게든 살아서 탐관 모리배의 국정농단을 척결해야 했는데 말이다.
아무튼, 올 한해 봄은 이제 가고 있지만, 내년에도 금둔사와 낙안읍성의 매화는 어김없이 새 봄맞이를 할 것이다. 한 번쯤, 두 해에 걸쳐 피는 금둔사와 낙안읍성의 납월매를 찾아 삶과 생, 그 향기와 여유를 누려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