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ann Sebastian Bach(1685-1750)
Suites for Cello Solo No. 1 ~ No. 6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전곡
Anner Bylsma, Cello
☆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BWV 1007
[전곡듣기]
☆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1717년말, 바흐는 바이마르를 떠나 작센 지방의 소도시 쾨텐으로
옮겨가, 그 곳 궁정악단의 악장이 되었다.
이 때 쾨텐의 궁정악단에는 수석(首蓆) 바이올리니스트 시피스 외에
궁정악사의 자격을 가진 첼로의 명수 아벨이 있었다.
바흐는 이 사람들을 위하여 많은 기악곡의 걸작들을 썼던 바, 오늘날
남아있는 "무반주 바이올린을위한 소나타" 전 6곡과 "무반주 첼로조곡"
전 6곡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까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 은 쾨텐의 궁정 첼리스트였던
아벨을 위하여 작곡된 것이지만, 그보다는 당시까지 독주악기로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던 첼로의 적극적인 연주기법 개발을 위해, 즉
첼로라는 악기의 교법을 위해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명곡은 바흐가 죽은 뒤 무려 200년 가량이나 묻혀 있어서
전혀 연주되지 않고 있었다.
이 곡이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이상으로 어려운 기교를
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 6번처럼 현재의 첼로로서 연주하기는
매우 곤란한 고음역(高音域)으로 씌어진 곡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이 명곡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오직 현대 최고의
첼리스트였던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의 덕택이다.
카잘스는 12세 때부터 모든 악기를 다룰 수 있을 만큼 비범한 재능을
보여준 천재였었다.
그러나 카잘스가 특히 좋아했던 악기는 첼로였기 때문에, 당시 유명한
첼리스트였던 마드리드의 호세 가르시아에게 특별히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카잘스는 곧 마드리드에 있는 왕립 음악원에 입학하여 첼로를 정식으로
익히는 한편, 실내악에 대한 연구도 체계적으로 익혀나가기 시작했다.
겨우 13세때의 일이다.
카잘스는 13세가 되면서부터 첼로주법의 결함을 깨닫고 새로운 기법을
연구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잘스는 바르셀로나의 헌 책방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버려져 있는 악보뭉치 하나를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무한한 감동을 가지고 듣고 있는
"무반주 첼로조곡" 의 악보였던 것이다.
카잘스의 나이 겨우 13세 때 발견된 이 악보뭉치야말로 근대 음악 사상
가장 획기적인 "사건" 으로 기록되어야 할 일이었다.
그 때부터 카잘스는 이 악보를 꾸준히 연구하여 12년간에 걸친 고심끝에
전6곡을 완전한 형태로 연주하는데 성공했다.
실로 200년 동안이나 묻혀 있던 보석의 찬란한 빛이 어둠을 비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카잘스와 이 모음곡은 하나의 동류항이 되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가 이 모음곡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연주한 것은 1909년 그의 나이
23세 때였고, 처음으로 녹음을 단행한 것은 나이 60이 되어서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이 곡은 모든 첼리스트들이 도전해야 할 처음이자
마지막 한계점이요 궁극의 목표이기도 했다.
이 모음곡을 가리켜 "첼로의 성서" 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는 결코 과장된
표현만은 아니다.
☆ Anner Bylsma(아너르 빌스마, 1934 ~ )
아너르 빌스마(Anner Bylsma) 는 네덜란드의 유명한 고음악 연주자로
바로크 첼로를 부활시키는 데 누구보다도 큰 역할을 했던 선구자이다.
그는 1934년에 네덜란드에서 태어났고 헤이그 왕립 음악원에서 공부
했는데, 1959년 파블로 카살스 국제 첼로 경연대회에서 우승했으며
1962년부터 1968년까지는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로 활약했으나, 곧 박차고 나와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일찍부터 구스타프 레온하르트나 프란스 브뤼헌과 같은 위대한
선구자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고음악 부흥 운동을 이끌었고, 현대의
일반적인 첼로와는 다른 "바로크 첼로" 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앞장
섰다.
바로크 첼로에는 악기를 고정시키는 엔드핀이 없어서 두 다리로 고정
시켜서 연주해야 한다는 점이 다소 불편하고 현은 거트로 만들어진 것
이라서 내구성이 약하며 악기의 특성상 큰 음량을 얻어내기도 어렵지만,
그 대신에 거트현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음색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아티큘레이션이 필요한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리드미컬
하게 연주하는 데는 꼭 안성맞춤인 악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활의 모양이 오늘날의 일반적인 활과 달라서 끝이 뾰족한 형태의
바로크 활을 사용하는데, 이와 같은 활을 사용하면 옛 음악을 좀 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연주할 수 있다.
빌스마는 이러한 악기로 고음악을 연주하면서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개척했던 거장이다.
그는 "DHM, Sony Classical"(Vivarte 시리즈) 등의 여러 레이블을 통해
뛰어난 음반들을 많이 녹음한 했으며,, 가장 유명한 녹음은 역시 두 차례
녹음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집(Seon과 Sony Classical) 일
것이다.
물론 둘 중에서 좀 더 잘 알려져 있는 두번째 녹음은 엄밀히 말하면
"바로크" 첼로로 연주한 것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바로크 첼로 연주
경험을 최대한 적용하고 있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역사주의 연주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타펠무지크와 함께 연주한 비발디 첼로 협주곡(Sony Classical),
보케리니 첼로 협주곡(DHM, Teldec Classics, Sony Classical),
하이든 첼로 협주곡(DHM), 계몽주의 시대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의 첼로 협주곡(Virgin Classics) 등 아주
뛰어난 녹음이 많다.
대부분 최상의 연주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첼로를 위한 작품은 고전주의 시대 이후에
더 많아서 그렇겠지만, 그의 관심은 18세기 이전에만 머물지 않고
19세기 음악으로까지 뻗어나갔는데, 아내인 바이올리니스트 페라 베츠
(Vera Beths)와 비올라 주자 위르겐 쿠스마울과 함께 라르키부델리
(L'Archibudelli)라는 실내악 연주단체를 결성해 18~19세기의 실내악
작품들을 당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활동도 열심히 하였다.
라르키부델리는 영국의 모니카 허깃(Monica Huggett)이 이끄는
하우스무지크 런던(Hausmusik London)과 함께 이 방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대악기 연주단체라고 할 수 있다.
포르테피아노 연주자인 요스 판 이메르세일(Jos van Immerseel)과
함께 녹음한 슈베르트의 피아노 삼중주라든가 피아노 5중주 "송어" 와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연주(이상 모두 Sony Classical)가 아마도 가장
인기 있을 것 같고, 슈베르트의 현악5줌주나 멘델스존의 현악8중주도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연주이다.
그리고 각각 맬컴 빌슨, 요스 판 이메르세일과 한 차례씩 녹음한
두 개의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집(Nonesuch와 Sony Classical)도
이 곡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권해 드리고 싶은 음반이다.
그 외에도 램버트 오키스와 함께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도 녹음했고,
로버트 레빈과 함께 연주한 하이든 피아노 트리오도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음반이다.
베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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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는 노래도 몇곡 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