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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15) 바세루 싸페루 선포할지어다 대상 16:23-36
지난 한 주간 어찌 보내셨습니까?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보내셨습니까? 말씀을 듣고 돌아갔는데, 여전히 타인을 위해 복을 빌어주질 못하고, 내 입술에 찬양 한 소절을 담지 못하고 지내신 것은 아닙니까?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기뻐 춤추며 찬송해야 할 다윗이, 저 삼손처럼 세상 앞에서 재주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어느새 내안에 생명력으로 자리하시던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고, 오늘도 한숨과 탄식으로 염려와 걱정으로 우리의 자리를 채우신 것은 아닙니까? 잘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시고, 다시한번 우리 안에 찬양을 회복하는 저녁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다윗의 찬양이 계속되고 있는데, 우리 지난 시간, 찬양은 어떻게 하는 것이었지요? 짧게 복습하고 지나가겠습니다.
먼저 찬양은, 권면이나 추천사항이 아니고, 명령입니다. 천지의 주인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명령입니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아닙니다. 10절의 말씀처럼, 찬양해야 즐거움이 생겨나고 커집니다. 저와 여러분의 절망을 희망과 기쁨으로 채우시고 바꾸시기 위해 찬양을 명령하신 줄 믿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시며,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며 찬송하시는 종들이 다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찬양은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님의 역사를, 예, 모두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업적, 사람의 공로, 사람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사랑과 은혜, 오늘도 변치 않으시는 구원의 의지를 감사하며 노래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작고 초라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들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 단 한분 청중이신 하나님을 향해 집중하여 마음을 쏟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찬양이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찬양을, 곡조있는 기도를 회복하시는 귀한 종들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오늘은 다윗이 어떤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을까요? 본문을 통해 오늘 우리가 찬양해야하는 하나님을 확인하고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전에 먼저, 오늘 본문 우리의 찬양의 모습 하나를 소개하고 있는데, 다윗은 하나님을 선포하며 찬송할 것을 말씀합니다. 선포할지어다! 23절에도 24절에도 선포할지어다! 하면서 찬양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선포하며 하는 찬양, 어떤 찬양일까요? 찬양하다말고 이런 저런 하나님을 외치면 선포하는 찬양일까요? 네, 선포하는 찬양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선포하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조금 더 확인하고 우리는 선포하는 찬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요? 그 뜻이 우리가 생각하듯, 부끄러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서, 큰 소리로 외치는 내 믿음의 고백 정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23절과 24절 한글 번역으로는 같은 ‘선포할지어다’인데, 23절에는 ‘바세루’라는 단어로, 24절에는 ‘싸페루’라는 단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바세루는 ‘소식을 가져오다’, ‘알게 하다’라는 바사르 동사의 명령형이고요, 싸페루는 ‘상술하다’, ‘선언하다’, ‘보고하다’라는 싸파르 동사의 명령형입니다. 23절은 ‘날부터 날까지’를 번역한 ‘날마다’, 그러니 모든 날 모든 시간을 바쳐서 하나님을 선포해야 한다는 ‘시간적인 의미’의 ‘선포함’이라면, 24절은 ‘여러 나라’에 그리고 ‘모든 민족’에 알려야 한다는 ‘공간적인 의미’의 ‘선포함’입니다.
특별히 24절의 ‘싸페루’는 반복과 지속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데,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부모가 자녀에게 지식을 전수하듯, 가르치듯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이 깨달을 때까지 반복해서 선포해야 함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세루, 사페루가 말하는 선포하는 일입니다. 언제든지 세대를 관통하며, 어디든지 지역의 경계를 넘어가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다윗이 말하는, 온 땅이 모든 시간 속에서, 모든 공간을 향해 알려야 하고 가르쳐야 하고 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네, 단 한 분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노래하며(23절) 찬양하며 경외하며(25절)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의 구원(23절)이요, 그의 영광(24절)이요, 그의 기이한 행적(24절)이요, 그의 위대하심(25절)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길래요? 오늘 본문이 증언하는 하나님, 그분을 함께 확인하고, 우리도 우리 하나님을 시공간속에 더욱 반복하여 깨닫도록 선포하는 복된 종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다윗이 선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참 하나님이심, 무엇보다 그분이 바로 창조주이심(23~29)입니다. 26-2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즐거움이 그의 처소에 있도다”(대상16:26-27)
우리는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헛된 것들을 섬기며 추구하며 살아가는 지 모릅니다. 세상에 우리가 추구하고 원하는 저 힘과 권력이 아무리 대단한들, 하늘을 지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니 그 대단한 지식과 기술로도 피 한 방울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사람인 것이지요. 그 어떤 우상, 그게 돈이든 기술이든 어떤 미신이든 귀신이든, 결코 저 하늘을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땅과 바다 위에 하늘을 펴신 분입니다. 왜 지으셨어요? 오늘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여 지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섬기고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기뻐하고 우리가 추구하고 우리가 감사해야할 분은, 오늘도 우리가 힘을 삼고 의지를 삼아야 할 분은, 오늘도 우리가 귀 기울이고 그 뜻과 말씀에 준행해야 할 분은, 한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저 전도서의 피맺힌 마지막 권면처럼, 아직 때가 이르기 전, 때가 이르기 전의 모두를 청년이라고 부릅니다. 그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는 분들, 오늘 그 앞에서 내가 피조물임을 인식하는 분들, 오늘 내가 그분의 소유요, 그분의 택함받은 백성인 것을, 그분의 뜻과 마음과 기대를 담아 우리를 지으시고, 오늘도 우리를 기르시는 분인 것을, 우리는 그분이 허락하신 목적대로 살 때, 가장 아름답고 존귀한 삶이 될 수 있는 것을 기억하시고, 늘 하나님 앞에서 창조주 앞에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며 기쁨으로 살아가시는,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그 모습을 늘 하나님 앞에 보이시고, 늘 부르시면 숨지 않고 응답할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진실한 아담으로 하와로 우리 모두가 살아가게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요. 오늘 본문이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 권능을 늘 돌려드리길 축복합니다. 메시지 성경으로 보니 shout Bravo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분의 영광과 그분의 힘에 Bravo를 외치라고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잘 아는 노래 아빠의 청춘에도 ‘원더풀과 브라보’를 외치고 있더라고요. 우리를 지으신 하늘 아버지께도 ‘원더풀’과 ‘브라보’를 외쳐내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다윗이 선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왕되심입니다. 그분이 온 세계의 통치자요, 심판자되심(30~33절)입니다. 30-33절 좀 길지만 읽어보겠습니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모든 나라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할지로다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이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리 할 때에 숲 속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주께서 땅을 심판하러 오실 것임이로다”(대상16:30-33)
그래요. 하나님은 전능한 창조주이신데, 그냥 우리 멋대로 살게 두시지 않습니다. 당신의 세계를 세우시고 통치하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리석은 우리네 인간들은 어때요? 이 하나님의 통치가 불편합니다. 억압처럼 굴레처럼 속박처럼 느끼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정해주신, 줄로 재어 구별해주신 구역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이지요? 늘 내 것보다 남의 것이 커보이고, 늘 내 생각대로 하면 더 잘 되고 잘 살 것 같은 것이 늘 우리의 착각인 것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한다고? 우리는 양같아서 다 그릇 행하여 제 길로 가는 것이지요?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를 버리고, 우리가 왕이 되어 우리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만하여서 패망의 넘어짐의 길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끝이면 다행인데 성경이 뭐라고 이야기하지요?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렇게 허락하신 땅에서 우리가 살아간 모든 날에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시고 섭리해주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주시다 못해 아들까지 주시며 우리를 통치하신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우리가 살아간 삶이 어떠했는지, 땅을 심판하러, 모든 것들을 바로 잡으러(set things right) 오시는 분이심을 잊지말고, 기억하고,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급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더 급한 것이지요? 시공간 속에 선포하고 알리라고 말씀하시는 모든 것이 바로 나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 더욱 내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왕되심과 심판주 되심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 브라보를 외칠 수 있는 기쁨을 감사를 고백할 수 있는 삶으로 우리 모두는 더욱 빚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입술의 고백과 선포가 우리를 빚어가는 것이고 내 귀에 들린 내 입술의 말이 결국 나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입에서는,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묵상은, 모두가 다 주님께 열납 되는 것이 되시길, 그리하여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멋지게 완성해가는 복된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되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다윗이 선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자 되심(34~36)입니다. 그분이 당신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으로, 오늘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심판받아 마땅한 우리를 건지시고 살 길을 주신다는 것이지요. 34-3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고 모으사 우리로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드높이게 하소서 할지어다”(대상 16:34-35절)
그래요. 아닐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래도 어디 하나는 있지 않을까 싶지만, 창조주이시며 통치자이시며 심판주이신 하나님 앞에 심판을 면함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없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창조의 섭리대로 살아가질 못하고, 당신의 다스리심 속에 살아가질 못하고, 심판받을 일만 쌓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늘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의지하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간구가 어떻게 가능할까요? 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애통해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구원의 하나님이시기에 오늘 다윗은 구원의 하나님을 부르고, 우리를 구원하여 건지시고 모아주실 것을 간구하라고 가르쳐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요. 히브리서 방금 전 인용해드렸던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 다음 구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너 어떻게 하냐? 너는 이제 죽었다! 이런 말씀이 아닙니다. 심판이 있으니 “예수님을 믿으라”입니다. 살 길을 마련하시고, 살 길을 가르쳐주시는 것이지요. 히브리서 9장 28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27-28절 쉬운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한 번은 죽습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을 한 번에 드려 많은 사람의 죄를 없애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때는 죄를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히9:27-28, 쉬운)
그래요. 심판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영벌과 지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거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한 곳이지 우리를 위해 만든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요? 심판을 면할 수 있는 인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인이 없는데, 하나도 없기 때문에(롬3:10) 모두가 치우쳐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롬3:11). 사람은 다 거짓되고(롬3:4) 다 죄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롬3:9). 모두가 마귀와 사단의 하수인들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는 그런 우리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롬3:13-15)
그래서 어떻게 하셨다고요. 로마서 3장 25-26절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3:25-26)
사랑하는 성도님들, 로마서가 정확하게 고발하고 있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오늘 더욱 하나님의 성품이 자비롭고 선하심을 기뻐해야 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해 부르짖을 수 있음을, 들어주시고 건져주실 이가 살아계시고 가까이 계심을 참 다행으로 여겨야 합니다.
내일 부르짖으면 늦을 수 있습니다. 지금이 구원의 날이요, 은혜받을 만한 때(고후6:2)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미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 우리의 구원을 간구하십시오. 우리 죄를 사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의롭게 여겨주시길 구하십시오(요일1:9). 그분이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모아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을 빼앗기지 마시고, 다시오시는 주님, 당신을 기다리는 자에게 심판이 아닌 구원을 주시는 왕으로 만나게 되시는 복된 분들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스라엘은 오늘 이렇게 했습니다. 36절입니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대상 16:36)
그래요. 모든 백성이 아멘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백성이 온 땅이 창조주 하나님, 통치하시며 심판하시는 왕이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기꺼이 당신의 나라에 두시려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애 전부를 통해, 그분만 ‘바세루’ 하시고, 그분만 ‘싸페루’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시간에,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공간에, 특별히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하나님을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선포하고 가르치는 우리가 되시고,
그 선포가 지속될수록, 더욱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세워가심 또한 더욱 누리고 경험하시는 복된 종들이 다들 되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세루! 싸페루!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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