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문신들은 장군들을 희롱했다

[녹림처사]

◈ 그날 문신들은 장군들을 희롱했다 ◈

고려는 거란이 세운 요와 세 번 싸웠어요

그중 수도 개경이 불탔던 2차 여요 전쟁이 가장 큰 위기였지요

절체절명에서 나라를 구한 장수가 양규였어요

수많은 전공을 세운 뒤 나선 마지막 전투에서 쏟아지는 화살을 맞고

선 채로 전사했지요

그의 희생 덕에 고려는 기사회생했어요

여요 전쟁 이후 고려는 200년 넘는 장기 평화를 누렸지요

하지만 평화에는 기강을 허무는 독성이 내재해 있어요

그 독이 가장 먼저 공격하는 대상이 아이러니하게도

고려에 평화를 가져다준 군인이었지요

전몰장병과 그 유족을 숭모와 보훈의 예로 대우하던 나라가

군인을 멸시하고 희롱하는 나라로 타락했어요

그러다가 맞은 것이 무신의 난이었지요

무신의 난으로 쫓겨난 의종은 놀기 좋아하는 왕이었어요

개경 주변 30여 곳에 놀이터를 짓고 싸울 일 없어진 장군들을

광대놀음에 동원했지요

나라 지키려고 연마한 무예를 한낱 왕과 문신의 볼거리로 삼았어요

놀이판의 최고 가치는 재미이지요

대련을 하던 장군 하나가 밀리는 것을 본 어느 문신이 달려들어

뺨을 때리자 웃음과 박수가 터졌어요

그날 밤 무신의 난이 발발했지요

난리 통에 죽은 문신 중에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도 있었어요

무신의 난 여러 해 전, 정중부 장군의 수염에 재미로 불을 붙였던 자이지요

장군들은 평화로운 고려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잃었어요

결국 참다못해 '무신의 난'을 잃으켰지요

오늘날 대한민국에도 나라 지키는 이들에 대한 존중을

잃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휴전 70년의 평화가 군을 우습게 여기는 풍조를 만들고 있지요

어제 아침 출근하다가 동네 네거리에 채수근 해병 1주기를 맞아

여기 저기 민주당 쪽에서 내건 플래카드를 봤어요

‘끝까지 진상을 규명하여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적혀 있었지요

채 해병의 죽음은 안타까운 비극이지요

사고 책임자를 밝혀 엄중히 문책하는 것에 누가 반대할까요?

그러나 한편으론 ‘민주당이 언제부터 군인의 죽음에 관심을 가졌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요

민주당은 북한이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 46용사의 목숨을

빼앗은 것에 대해 북의 책임을 묻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천안함 폭침 만행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국회에서 의결될 때

민주당 일부 의원은 반대하기까지 했지요

전직 좌파 대통령은 천안함 용사와 연평해전 전사 장병을 기리는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조화조차 보내지 않았어요

이러니 민주당은 책임을 묻는 것도

선택적으로 하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지요

서해 수호의 날은 제쳐놓고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인민군과 중공군 전몰자 위령 행사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도 있어요

6·25 당시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다부동 전투는

우리 국군의 큰 자부심이지요

미군 장성들도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백선엽 장군 생전에

그를 만날 때면 무릎 꿇어 존경을 표했어요

그런데 한국의 어느 국회의원은 그 전투를 패전이라고 깎아내려

군의 명예에 상처를 냈지요

6·25 때 조국 수호 제단에 피를 뿌린 육군사관학교를 향해선

‘나라 팔아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성장하지 않았나’라고 막말했어요

명예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장군의 뺨을 때리고

수염에 불을 지른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욕을 가한 것이지요

‘핵 가진 북한과 잘 지내겠다’는 인사가

지금 미국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이지요

70년 유지된 우리 안보에 중대한 변화가 올지도 모르는데

우리 국회에선 군복 입은 장군들의 명예를 함부로 훼손하고 있어요

일부에선 지난달 채 상병 특검 청문회장에서 치욕을 겪고도

감내한 장군들을 기개 없다고 나무라기도 하지요

그러나 군인의 기개와 용기는 적과 싸울 때 발휘하는 것이지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게 아니지요

그러기에 국민이 지켜주지 않으면 군은 명예를 지킬 길이 없어요

명예를 잃은 군인에게

누가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켜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민주당의 폭주에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 *-

▲ 대하 사극 '고려거란전쟁'에서 양규 장군이 거란군과 싸우다 전사하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