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을 잔뜩 머금고 무거워진 머리를 축 늘어뜨린 강아지풀과 강물에 아롱아롱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며 엄마손 꼭 잡고 종종 걸음으로 시골 장터로 향하는 아이의 발걸음은 비포장 길 날리는 먼지보다 가뿐했다. 장이 서는 읍내 주변의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면 비포장 길을 걷거나 혹은 콩나물시루처럼 만원 버스를 타고 엄마 따라 장 구경에 나서던 설렘이 잠재의 기억 속에서 아롱거린다. 동해시 북평장에서 기억의 발자국을 거슬러 잠자는 추억을 깨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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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에서 손 꼽히는 큰 장터로 230여년의 역사를 지닌 동해 북평5일장. 장날엔 어디가 장터고 어디가 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동네 전체가 북새통을 이루며 활기가 넘쳐난다. 본사DB |
동해시 북평장은 5일장이다. 달력 날짜에 3일과 8일이 새겨진 날이다.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
북평장은 쉬는 날이 없다. 폭설에도, 폭우에도 여지없이 장이 선다. 230여 년 전 장돌뱅이들도 그랬을 것이다.
북평장 5일장(이하 북평장)은 조선 중엽부터 물물교환 방식으로 펼쳐진 정기시장이 모태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과 같이 매달 3일과 8일에 장으로 발전한 것은 지난 1796년(정조 20)부터다.
최초에는 전천(삼화에서 갯목으로 이어지는 강) 일대에 열렸다. 1910년 10월 8일 대홍수로 인해 북평마을이 수해를 입으면서 장이 옮겨지기도 했다.
1932년에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았다.
시대가 지나 지형이 변하고 도시가 개발되면서 모양은 다소 변했지만 구미동과 북평동 일대 부지 4만6008㎡에 자리를 틀고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북평장은 삼척 근덕·도계·미로, 동해 묵호, 정선 임계, 강릉 옥계 등지에서 상인들이 모여들어 성시를 이루고 있다.
수산·농산·청과·축산물과 일용 잡화 등이 주로 거래되면서 현 동해 삼척 지역의 상업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예전 북평장은 쇠전, 미전, 채소전, 강포전, 어물전, 잡화전으로 구분됐다.
이제는 강원 남부지역 유일의 쇠전은 아쉽게도 2008년 역사속으로 사라져 볼 수 없다.
미전과 채소전은 쌀, 좁쌀, 찹쌀, 보리, 밀, 수수, 옥수수, 조, 메밀, 싸리버섯, 영지, 도토리묵, 약초 등 계절별로 셀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식품류가 거래된다.
옛말이지만 강포전은 안동포, 울진포와 함께 한국의 3대 삼베로 꼽히는 강포 거래시장으로 손꼽혔다. 북평장이 강포의 대표적인 거래지라고 할 만큼 명성이 높은 시절도 있었다.
어물전은 철 따라, 날씨따라 거래되는 해산물이 조금씩 다르다. 장날 묵호와 삼척 동해안 일대에서 잡은 오징어, 가자미, 꽁치, 놀래미, 대게, 숭어 등의 활어가 팔린다.
또 명절용·제수용 건어물 그리고 냉동 어물이 많이 거래된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큰 장인 북평장.
2013년 말 현재 몇 개 남지 않은 대규모 재래장이다.
수백 년의 흐름에 따라 연대별로 파는 물건은 바뀌었다.
하지만 옥신각신 에누리 깎는 재미는 여전하다. 없는 것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그대로 살아 있다.
북평의 순우리말을 따서 지역노인들은 뒤뚜르장 또는 뒷구르장으로 부르곤 한다. 삼척부 북쪽에 있는 넓은 뜰이란 뜻이다.
북평 장터에 펼쳐진 물품만 나열하더라도 책 몇권은 족히 나올 만하다. 숱한 자리에 임자가 없는 것 같아도 암묵의 주인이 존재한다. 그래서 매번 같은 자리에 같은 사람이 같은 물건을 팔고 있는 것이다. 그 원칙과 순리처럼 북평장의 짜임새도 깊다.
살아 숨쉬는, 인정이 넘치는 북평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동해/조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