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를 아들에 맞춰 생활합니다.”고3 아들을 둔 김모(51·부산 부산진구 양정동)씨. 1남1녀 자녀중 맏딸(대졸)에 이어 두번째 수능시험을 겪는 김씨는 “솔직히 이번엔 아들이어서 딸애 때보다 신경이 더 쓰인다”고 토로했다.
수능시험 100일 전이던 지난 7월29일부터 범어사에서 ‘100일기도’에 들어간 김씨의 하루는 일어나는 것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철저하게 아들의 생활에 맞춰져 있다.
김씨가 매일 사찰을 향해 출발하는 시간은 오전 8시30분. 오전 7시 등교하는 아들과 남편의 아침 등 뒷바라지를 하고 나서 서둘러 집에서 나온다.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30여분만에 절에 도착한 뒤 오후 3시30분~4시까지 법당에서 기도에 빠져든다. 몸은 피곤하지만 지금까지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오후 5시30분께 귀가해서도 쉴 겨를이 없다. 저녁 준비를 마친 뒤 아들이 돌아올 때(밤 10시40분께)까지 대부분 방안에 앉아 기도를 올린다. ‘발원문’ 책자를 펴놓고 쉼없이 읽고 또 읽는다. 책자 안쪽에는 아예 큼직한 아들 얼굴사진까지 붙여놓았다.
“하루에 몇시간 자냐구요? 수험생하고 똑같습니다. 5시간 정도죠.”아들이 야식을 먹고 집 근처 독서실로 가서 새벽 2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예능계 수험생을 둔 학부모의 하루는 더 피곤하다.
동래구 온천3동 박모(46)씨의 고3 딸은 피아노 전공이다. 김씨는 새벽 4시면 일어나 딸아이에게 녹즙 한잔과 아침을 챙겨 먹인뒤 40분 거리인 학교까지 차로 바래다 준다.
오후 5시께 학교가 파할 무렵에 맞춰 학교로 가서 아이를 태우고 레슨 교수의 집으로 간다. 짧은 개인레슨 시간동안 비슷한 처지의 다른 엄마들과 함께 레슨 교수의 집에서 대기하며 이것저것 필요한 정보도 교환한다. 특히 서울의 어느 교수가 유명하더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신경이 쓰인다. 레슨 후 딸아이를 싣고 다시 수능 단과학원으로 간다.
“밥먹을 시간이 없어 레슨 교수나 학원으로 가는 차안에서 집에서 마련한 도시락이나 간식을 딸아이에게 먹인다”고 말했다.학원 마치는 시간에 맞춰 학원으로 가서 딸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 12시를 넘기기가 예사다. 또 일주일에 한번은 딸아이와 함께 서울의 교수에게 가서 레슨을 받고 내려온다.
김씨는 “절에 가서 딸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싶어도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며 “대신 수능 100일전부터 집에서 매일 108배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딸아이를 학교까지 배웅하고 돌아와 딸아이 방에서 집 인근 절에서 받아온 입시기도문을 읖조리며 20~30분간 기도하다보면 다소 위안이 된다는 것.
해운대구 우동 이모(44)씨는 노래방을 운영한다.
매일매일 영업이 새벽 2~3시가 되어야 마치기 때문에 고3 딸아이의 뒷바라지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이씨는 “영업마치고 가게 정리하고 집에 가면 새벽 3~4시다. 딸아이 등교시간에 맞추려면 잠을 잘 수 없어 밤을 샌다. 딸아이 학교보내고 난뒤 눈을 붙인다”고 말했다. “아이가 갈수록 성적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애가 타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씨는 최근 딸아이가 점을 좀 봐달라는 소리를 많이한다고 밝혔다. 친구들 역시 답답한 마음에 휴대전화를 이용해 전화 운세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기도 어느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알아봐달라는 것이다. 저녁 시간 노래방에 있어도 딸아이 생각에 마음이 답답하다는 이씨는 “맞벌이 부부라서 아이에게 더 미안하다”고 말했다.
부산대 의대 정신과 김명정 교수는 “평소 우울증 등이 있는 경우 자녀의 수험 뒷바라지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면 이상증세가 올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