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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최원오
일찍이 1,600여 년 전, 가난에 신음하는 민중의 벗이 되어 부자들의 탐욕과 불의를 고발하고 분배 정의를 외쳤던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340-397년). 빼어난 학식과 인품을 지녔던 그는 이미 서른의 나이에 에밀리아 리구리아 지방 총독 자리에 올랐지만, 뜻하지 않게 밀라노의 주교가 되면서 세상 부귀와 영화를 미련 없이 버리고 한평생 하느님과 민중을 위해 투신하였다. (11쪽)
☕ 하느님의 섭리였으리라!
암브로시우스가 남긴 많은 저술에는 재화의 공공 개념과 분배 정의를 세움으로써 가난한 이들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 주려는 복음적 열정이 가득하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세상 불의에 맞서 복음의 진리를 용기 있게 선포하는 암브로시우스 교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듣게 되며, 가난한 하느님 백성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참된 목자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는 부자들의 입맛에 맞는 고상한 윤리 설교가 아니라, 민중을 착취하고 공동 재화를 독점하는 부자들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었다. 주님의 복음은 진정 가난한 이들에게 선포된 기쁜 소식이었으니, 암브로시우스가 선포한 이 불편한 복음을 들은 부자들은 복음서의 부자 청년처럼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11-12쪽)
헐벗은 사람이 그대 집 앞에서 부르짖고 있는데도 그대는 모른 체합니다. 헐벗은 사람이 울부짖고 있는데도 그대는 어떤 대리석으로 그대 집 바닥을 깔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을 구하지만 가지지 못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빵을 간절히 청하는데, 그대의 말은 이빨 사이의 황금 재갈을 질겅질겅 씹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끼니를 이어 갈 양식조차 없는데, 그대는 값비싼 장신구들을 끔찍이도 좋아합니다. 오, 부자여, 그대는 얼마나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까! 민중은 굶주리는데 그대는 곳간을 닫아겁니다. 민중은 탄식하는데 그대는 옥반지만 굴려 댑니다. 불행한 사람, 그대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죽음에서 지켜 낼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의지가 없습니다! 그대의 옥반지 하나로 모든 민중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봇 이야기』 13,56) (12-13쪽)
☕ 부의 분배를 반대하는 이는 반복음적이다.
세상의 경제 불의와 사회적 모순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교부들의 거륵한 전통은 오늘날 교회의 가르침 안에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현대의 첫 사회 교서인 노동헌장 「새로운 사태」(레오 13세, 1891년)에서는 노예처럼 살아가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이 극소수 부자들의 탐욕, 생산과 상업의 독점에서 비롯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13쪽)
노동자들은 점차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으며, 인정머리 없는 고용주들의 무절제한 경쟁의 탐욕에 무참히 희생되어 왔습니다. 교회가 수차례 엄중히 금지시켰음에도 고리대금업은 여전히 성행하고 파렴치한 모리배들로 말미암아 또 다른 형태로 그러한 불의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산과 상업이 소수에 의해 독점 장악되어 극소수의 탐욕스런 부자들이 가난하고도 무수한 노동자 대중들에게 노예의 처지와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멍에를 뒤집어씌우고 있습니다.(「새로운 사태」 1) (13쪽)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한다는 ‘재화의 보편적 목적’을 천명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재화라 할지라도 사유물이 아니라 공유물로 여겨야 하고,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사목 헌장」 69 참조.) 이는 재화에 대한 암브로시우스의 인식과도 온전히 일치한다. (14쪽)
☕ 재물은 공유물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이다.
부자들이여, 그대들의 미친 탐욕을 어디까지 뻗치렵니까? "너희만이 땅 한가운데에서 살려 하는구나!”(이사 5,8) 왜 그대들과 같은 본성을 지닌 사람들을 쫓아냅니까? 왜 자연을 그대들만의 소유라고 내세웁니까? 땅은 부유한 사람 가난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이가 함께 사용하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대 부자들은 그대들만의 권리라고 사칭합니까? (14쪽)
우리는 옷도 걸치지 않고, 금과 은도 지니지 않은 채 태어납니다. 이 땅은 우리를 벌거숭이로 낳으며, 음식과 옷과 마실 것이 필요한 존재로 낳습니다. 땅은 우리를 벌거숭이로 낳았듯이 벌거숭이로 맞아들입니다. 소유한 모든 것을 무덤 안에 채워 넣을 수는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나 부유한 사람에게나 한 자락 풀밭으로도 넉넉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부자의 욕심을 다 채워 주지 못했던 땅은 이제야 부자를 통째로 집어삼킵니다. 자연은 우리가 언제 나고 언제 죽든지 차별할 줄 모릅니다. 우리를 모두 동등하게 창조하고, 우리 모두를 동등하게 무덤의 품속에 가두어 버립니다(14쪽)
☕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또한 죽음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다.
실로 "그리스도교 전통은 사유재산권을 절대적이고 침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간추린 사회 교리」 177) 재화는 만민의 것이므로 사유재산권은 공동 사용권에 예속되며, 심지어 규제할 필요까지 있다고 가르쳐 왔다. 제아무리 합법적으로 재화를 획득하여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사용에는 반드시 의무가 따르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 교리」177-178 참조) 그런 까닭에 교부들은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일을 당연한 의무라고 보았다. "가난한 이들에게 필수적인 물건들을 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것을 선물로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비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의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대 그레고리우스「사목 규칙」3,21,45. 참조) 정의
에 따라 이미 주어야 할 것을 마치 자선 선물처럼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평신도 교령」 8 참조.)더 나아가, 가난한 이들과 가진 바를 나누지 않는 것은 곧 도둑질이며 살인이라는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짤막한 진술 속에는 분배 정의의 실현을 열망해 온 교부들의 한결같은 삶과 가르침이 요약되어 있다.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것입니다.” (15-16쪽)
오늘날 우리는 돈과 하느님을 동시에 섬기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하셨지만, 자본주의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두 주인을 섬기며 휘청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불공평한 현실 속에 민중의 시름은 날로 깊어만 간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붙이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암브로시우스의 『나봇 이야기』는 제발 죽음의 질주를 멈추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는 가난의 근본 원인을 거침없이 파헤치고 선포하는 예언자적 통찰이며, 재화를 독점함으로써 많은 사람을 비참한 가난으로 내모는 부자들을 향한 준엄하고도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다. (16쪽)
☕ 부를 독점하는 사람들은 그에 상응한 댓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나봇 이야기』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나눔의 책무를 저버린 탐욕스러운 부자들의 죄악상을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자본과 개발, 시장과 경제의 교묘한 논리 아래 무참하게 희생되어 가는 민중의 짓밟힌 권리를 바로 세우도록 간절히 초대하는 우리 교회의 더 없이 소중한 교부 유산임이 틀림없다. (16쪽)
민중의 수호자 암브로시우스
암브로시우스는 340년경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암브로시우스는 갈리아의 지방 총독이었다. 트리어에서 초등교육을 받았으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가족들은 로마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철학, 수사학을 비롯한 정통 인문교육을 받았다, 변호사로서 일찌감치 출세 가도에 올라선 암브로시우스는 서른 살 무렵 밀라노에 관저를 둔 에밀리아 리구리아 지방 통치자가 되었다. (17쪽)
당시 밀라노에서는 니케아 정통 신앙파와 아리우스파가 서로 맞서고 있었다. 밀라노의 아리우스파 주교 아욱센티우스가 죽자(374년), 후임자 선출을 둘러싸고 니케아 정통 신앙파와 아리우스파 사이에 극심한 대립이 벌어졌다. 평화적으로 공동 후보를 선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암브로시우스의 전기 작가 파울리누스에 따르면, 지역 책임자였던 암브로시우스는 도시의 질서와 공정한 선출을 감독하고 중재하기 위하여 신자들이 모여 있던 대성당에 갔다. 성당에 들어선 암브로시우스가 신자들을 향하여 연설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어린이가 ‘암브로시우스 주교!’라고 외쳤다. 그러자 정통 신앙파 아리우스파 할 것 없이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외치며, 놀랍고도 믿을 수 없는 일치로 암브로시우스를 밀라노의 주교로 선출하기로 합의하였다. 세례를 미루는 관습에 따라 어릴 적부터 예비신자였던 암브로시우스는 주교직을 사양했지만, 하느님의 뜻에 더 이상 맞설 수 없음을 깨닫고는 세례를 받은 지 여드레 만인 374년 12월 7일에 주교품을 받았다. (17-18쪽)
☕ 주교가 되는 과정 자체가 놀랍다.
정부 관리로서 특별한 신학적·사목적 경험도 없이 불과 며칠 만에 교회의 중책을 떠맡게 된 암브로시우스는 당시 자신이 겪어 내야 했던 어려운 상황을 이렇게 고백한다.
“법원과 행정기관에서 일하던 나는 갑자기 사제직을 떠맡게 되었는데, 내가 배우지 않은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배우기도 전에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리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배우면서 동시에 가르쳐야만 했습니다.”(암브로시우스 「성직자의 의무」 1,1,4) (18쪽)
밀라노의 새로운 주교가 된 암브로시우스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밀라노 교구의 심플리 키아누스 사제 훗날 암브로시우스의 후계자가 됨 ― 의 지도를 받아 성경을 깊이 깨치는 일이 었다. 그리스어에 능통했던 암브로시우스는 필론과 오리게네스의 성경 주석을 익혀 나가면서, 묵상과 기도를 통하여 자신이 받은 신학 교육을 심화하고 사목 활동을 준비하였다. 특히 한평생 영적 묵상서로 삼은 성경은 하느님 백성에게 건네줄 생수를 긷는 마르지 않는 샘이 되었다. (18-19쪽)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끊임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수도승과 같은 수행의 삶을 살았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갇힌 이들을 위하여 특별한 애정을 쏟았다. 주교품을 받으면서 지니고 있던 재산을 교회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주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단출한 군장을 한 헐벗은 군인처럼 살았다. 암보로시우스의 거의 모든 작품이 사목 활동과 더불어 탄생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토록 힘겹고 분주한 일정 속에서 영적 성찰과 저술 시간을 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19쪽)
아우구스티누스는 매 순간 치열하게 살다 간 착한 목자 암브로시우스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증언하는데, 당시 회심의 여정에 있던 그는 암브로시우스가 품고 있던 거룩한 뜻을 마음껏 물어보거나 자신의 고민과 답답한 심정을 오랜 시간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었지만, 촌음을 쪼개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투신하던 암브로시우스의 일상을 차마 방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19쪽)
아우구스티누스는 매 순간 치열하게 살다 간 착한 목자 암브로시우스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증언하는데, 당시 회심의 여정에 있던 그는 암브로시우스가 품고 있던 거룩한 뜻을 마음껏 물어보거나 자신의 고민과 답답한 심정을 오랜 시간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었지만, 촌음을 쪼개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투신하던 암브로시우스의 일상을 차마 방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19쪽)
가난한 민중은 세금과 부자들의 권세에 짓눌렸다. 주교직에 오른 암브로시우스의 우선적인 선택은 가난한 사람, 앓는 사람, 갇힌 사람, 힘없는 사람, 억눌린 사람들이었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형수의 사면을 위해 힘썼으며, 비참한 처지에 있던 포로들을 구하기 위해 아리우스파의 비판을 무릅쓰고 성물을 팔기까지 했다.(20쪽)
나는 한때 포로들의 몸값을 치르려고 성물을 부수었다는 이유로 미움을 샀습니다. 사실 아리우스파를 화나게 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비위를 거스른 행위였다기보다는 그들이 나를 비난할 빌미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자를 죽음에서, 여자를 죽음보다 훨씬 더 나쁜 야만족들의 추행에서, 그리고 죽을까 두려워 배교할 수밖에 없었던 소년 소녀들과 어린이들을 우상숭배의 타락에서 구했다고 불쾌해한다면 그렇게 완고하고 잔인하며 냉혹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20쪽)
☕ 사람이 먼저인 것이다.
암브로시우스는 약육강식의 냉혹한 질서 속에서 소외되고 억눌린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많은 가난한 이가 겪는 고통과 죽음의 뿌리에는 부자들의 끝없는 탐욕과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으며, 부자들의 금 술동이에 담긴 값비싼 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피라는 것이다. ( 암브로시우스 「나봇 이야기」 5,19-22 참조.) 탐욕스러운 부자들에게 착취당하는 민중의 상징으로 내세운 성경 인물 『나봇 이야기』에서 암브로시우스는 목자의 마음과 법관의 엄정함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변호한다. 모든 사람에게 속하는 재화의 공정한 분배와 사유재산의 권리와 한계를 그토록 강하게 가르치고 있는 그리스도교 문헌은 드물다. (21쪽)
☕ 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피라는 이야기는 춘향전에도 나온다.
그대들의 쾌락을 준비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민중이 죽임을 당해야 합니까! 그대들의 배고픔은 헛되고,그대들의 영화도 부질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대들의 곡식을 쌓아 둘 넓은 곳간을 짓다가 지붕 높은 곳에서 거꾸러집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대 식탁에 어울리는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어떤 포도를 따야 할지 고르다가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집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대 식탁에 생선이나 조개가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일하다가 바다에 빠져 죽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토끼 발자국을 따라다니거나 새 잡는 덫을 찾아다니다가 한겨울 추위에 얼어 죽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무언가 그대 마음에 들지 못하여 그대 눈앞에서 죽도록 채찍질을 당하고, 흘러내리는 피로 잔칫상을 적십니다. 부자란 자기 식탁에 가난한 예언자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는 자이며, 춤추는 여인에게 상을 주기 위하여 가난한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 말고는 다른 어떤 상급도 찾지 못하는 자입니다. (암브로시우스 『나봇 이야기』 5,20.) (21-22쪽)
한평생 가난한 사람들의 벗으로서 소박한 삶을 엮어 간 암브로시우스였지만, 부당한 국가 권력 앞에서는 타협이나 양보를 몰랐다. 그는 아리우스파를 끼고돌던 유스티나 황태후(어린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제국의 권력마저 굴복시킬 정도로 품위와 권위를 지녔고, 발렌티니아누스 1세와 그라티아누스 황제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원로원 의사당에 빅토리아 여신 제단을 다시 세움으로써 이교 예식을 복원하려던 로마 원로원의 야심찬 계획을 주저앉혔고(383년), 아리우스파에게 밀라노의 대성당을 넘겨주라는 황실의 끈질긴 요구와 군사적 위협에 맞서 신자들과 더불어 성당을 지켜냈다(386년). 특히 390년 테살로서카에서 민간인 대학살이 벌어지자, 암브로시우스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 살인죄에 대하여 교회의 규정에 따라 참회할 것을 요구하였고, 황제는 일정 기간 동안 교회에서 참회하고 공동체 앞에서 죄를 고백한 뒤에야 교회에 다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교회의 권위를 국가 권력에서 독립시킨 탁월한 통치 감각 덕분이었다. (23쪽)
암브로시우스는 아무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살아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만큼 그렇게 살아오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좋으신 주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397년 성토요일(4월 4일)에 선종한 암브로시우스는 그 이튿날인 부활절에 주교좌 대성당에 묻혔고, 오늘날까지 서방교회의 4대 교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공경받고 있다. (23쪽)
☕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은 얼마나 놀랍고 복된 일인가?
3. 『나봇 이야기』 해설
암브로시우스의 『나봇 이야기』는 부와 가난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교부 문헌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구약 성경의 인물인 가난한 나봇(1열왕 21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부자들의 탐욕을 꾸짖고 있는 이 작품은 설교 형식으로 쓰인 교부 문헌이다. (23쪽)
『나봇 이야기』가 설교 형식으로 저술되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설교와는 구별된다. 속기사들이 받아 적은 설교가 아니라, 암브로시우스 몸소 이 작품을 저술했노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쓰는 까닭은 하느님 의 정의는 반드시 되갚아 주신다는 사실을 그대들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암브로시우스 『나봇 이야기』 4,18.) 암브로시우스의 많은 작품이 사목적 동기로 말미암아 글로 엮어지기 전에 이미 설교를 통해 태어났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나봇 이야기』의 탄생 배경도 설교일 수 있지만, 적어도 암브로시우스의 손질을 거쳐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난 것은 분명하다. (23-24쪽)
☕ 가난한 이에게 베푼 것은 하느님께서 반드시 갚아 주신다. 내가 하느님께 받을 것이 있는 셈이다. 이런 큰 신비가 있는가!
그렇다고 『나봇 이야기』를 성경 주석 작품으로 볼 수도 없다. 비록 성경의 인물과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성경 본문을 체계적으로 풀이한 성경 주해나 강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암브로시우스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요한 가르침을 펼칠 때면 즐겨 성경의 인물들에서 그 주제를 이끌어 내곤 하였다. 예컨대 야곱에게서는 행복한 삶[『야곱과 행복한 삶』], 엘리야에게서는 단식[『엘리야와 단식』, 토비야에게서는 고리대금업과 이자놀이[『토비야』]라는 주제를 발전시켜 나간다. 이처럼『나봇 이야기』는 부자들의 탐욕과 재화의 공공성이라는 주제로 신자들을 교육하고자 구약의 나봇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회교리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4쪽)
☕ 『나봇 이야기』는 성경 주석서라기보다는 사회교리서다.
『나봇 이야기』는 그리스 교부들의 설교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특히 부자들의 탐욕과 불의를 비판하는 대 바실리우스의 설교 두 편은 『나봇 이야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곧,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카 12,16-21)를 다룬 「내 곳간들을 헐어 내리라에 관한 설교」와, 부자 청년 이야기(마태 19,16-22)를 풀이한 「부자들에 관한 설교」가 담고 있는 재화의 공공성에 관한 주장과, 부자들의 탐욕에 대한 비판이 『나봇 이야기』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나봇 이야기』가 담고 있는 분배 정의에 관한 깊은 성찰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 가득한 영적 감수성은 암브로시우스 고유의 것이다. (24-25쪽)
☕ 교부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은 가난한 이에게 자선을 베풀라는 것이다.
『나봇 이야기』가 언제 쓰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암브로시우스의 저술 가운데 대 바실리우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작품들인 『엘리야와 단식』(389년경), 『토비야』(386-389년경), 『육일 창조』(390년경)등이 386년에서 390년 사이에 쓰인 까닭에,『나봇 이야기』도 이 시기에 저술되었으리라 추정할 따름이다. (25쪽)
첫댓글 헐벗은 사람이 울부짖고 있는데도
그대는 어떤 대리석으로 그대 집 바닥을 깔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도 그렇죠...
좋은 묵상글 고마워요 ^^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가난한 이의 몫을 움켜쥐고 살고 있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