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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위협과 멸망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7절부터 분위기가 바뀝니다.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난 날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니라."
여기서 "너"는 아하스이고,
"네 백성"은 남유다 백성,
"네 아버지 집"은 다윗 왕조를 가리킵니다.
즉 17절의 직접적인 대상은 남유다와 다윗 왕가입니다.
왜 갑자기 남유다가 심판을 받는가?
아하스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무서워서 하나님보다 아시리아 를 의지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는 실제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치고 군사 지원을 요청합니다.
당장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네가 구원자로 삼은 앗수르가 결국 너를 괴롭힐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17절은
에브라임에 대한 예언인가?
아니오.
에브라임의 멸망은 이미 앞에서 언급되었습니다(7:8-9, 16).
남유다에 대한 예언인가?
네.
특히
에게 닥칠 미래의 고난을 예언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난 날부터"
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솔로몬 사후 왕국 분열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은
"왕국이 분열된 이후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큰 환난이 올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도구가 바로 앗수르입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17절은 아이러니한 말씀입니다.
아하스는
"앗수르가 우리를 구해 줄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앗수르가 너희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사야서 전체에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하나님보다 인간의 힘을 의지하면,
그 힘이 결국 의지한 사람을 지배하게 된다.
따라서 17절은 에브라임(북이스라엘)의 심판 예언이라기보다,
에브라임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앗수르를 의지한 남유다와 다윗 왕가에 대한 경고와 심판의 예언으로 보는 것이 문맥에 가장 잘 맞습니다.
즉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네가 무서워하는 에브라임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네가 의지하는 앗수르가 새로운 문제가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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