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ph Bae | Biblical Humanities & History
성경 속 악당들이 남긴 뜻밖의 유산 – 산발랏과 도비야, 그리고 느헤미야의 고독한 결단
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는 종종 불편한 진실과 마주합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역사를 다루는 두 가지 상반된 흐름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페르시아 제국이라는 거대한 세상 속에서 유연하게 신앙을 지키며 고위직에 오른 다니엘이나 에스더를 사랑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을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매력적인 모델입니다.
반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이방인과 결혼을 금지하고, 성벽을 쌓아 철저히 문을 걸어 잠근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어딘가 편협해 보입니다. 꼭 그렇게까지 유별나게 믿어야 하나, 라는 질문이 듭니다. 과연 느헤미야의 배타적인 개혁은 옳았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느헤미야를 그토록 괴롭혔던 두 명의 악당, 산발랏과 도비야를 소환해야 합니다. 흥미롭게도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들은 이들이 단순한 훼방꾼이 아니라, 성경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역사적 추적의 선두에는 세계적인 복음주의 고고학자 에드윈 야마우찌 박사가 있습니다. 일본계 미국인 2세로 하와이에서 태어난 그는, 동양적인 꼼꼼함과 서구의 학문적 엄밀함을 겸비하여 페르시아와 성경이라는 기념비적인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는 성경 비평가들의 공격에 맞서, 흙 속에 묻혀 있던 고고학적 증거들을 통해 산발랏과 도비야를 역사적 실존 인물로 복원해 냈습니다.
성경은 산발랏을 단순히 호론 사람, 도비야를 종이었던 자라고 묘사하지만, 야마우찌 박사가 제시한 증거들은 그들이 거대한 권력자였음을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첫 번째 증인은 사마리아의 총독, 산발랏입니다. 성경은 그를 호론 사람이라고만 부르지만, 그는 사실 유다 북쪽을 호령하던 거대 정치 가문의 수장이었습니다. 1962년, 사해 근처의 험준한 와디 달리에(Wadi Daliyeh) 동굴에서 충격적인 유물들이 발견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에 쫓기다 동굴 안에서 몰살당한 사마리아 귀족들의 유골 수백 구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품속에서 발견된 불에 탄 문서와 인장들이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었습니다. 산발랏이라는 이름이 할아버지에서 손자로 계속 이어지며 사마리아를 통치한 왕조였다는 것입니다.
더 결정적인 증거는 이집트 나일강의 유대인 용병 부대였던 엘레판타인에서 나왔습니다. 기원전 407년에 쓰인 편지를 보면,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의 두 아들인 들라야와 셀레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아들들의 이름입니다. 들라야와 셀레먀. 두 이름 모두 끝자가 야(Yah)로 끝납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뜻합니다. 느헤미야의 철천지원수였던 산발랏이, 놀랍게도 자기 자식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붙여줄 만큼 독실한 야훼 신앙인이라고 여겼음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증인은 암몬 사람 도비야입니다. 성경에서 그는 종 되었던 자라고 불리며 조롱받았지만, 이것은 그를 낮추기 위한 느헤미야의 의도적인 표현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히브리어로 종을 뜻하는 에베드는 왕의 신하라는 고위 관직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르단 암만 서쪽의 아라크 엘 아미르(Araq el-Amir)라는 곳에 가보면, 이 도비야 가문의 위세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절벽을 깎아 만든 웅장한 묘실 입구에는 지금도 도비야라는 이름이 아람어 글자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고고학자 야마우찌 박사는 이 도비야 가문이 요단 동편에서 수백 년간 왕처럼 군림했던 유력한 토비아드 가문이었음을 밝혀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이방인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대제사장 가문과 사돈을 맺을 정도로 뼈대 있는 유대 귀족 혈통이었고, 그랬기에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당당하게 예루살렘 성전 뜰 안에 자기 전용 사무실을 차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토록 강력했던 그들은 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으려는 느헤미야를 두려워했을까요?
문제는 그들의 신앙이 혼합주의였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여호와도 섬기고, 사마리아의 신들도 인정하며, 이방인과 통혼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우리도 너희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노라.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매우 포용적이고 합리적인 평화주의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단호했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느헤미야의 이 거절은 편협한 국수주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적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만약 느헤미야가 그들의 포용을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미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의 혼혈 정책에 의해 역사 속에서 사라졌듯, 유다 지파 역시 사마리아의 거대한 혼합 종교 속에 녹아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쌓은 성벽은 사람을 차별하는 혐오의 벽이 아니라, 꺼져가는 유일신 신앙의 불씨를 지키기 위한 인큐베이터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다니엘과 에스더처럼 세상 속에서 빛나는 별이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본토에서 욕을 먹어가며 고집스럽게 순수한 뿌리를 지켜내지 않았다면, 다니엘과 에스더가 지켜야 할 신앙의 정체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마우찌 박사가 고고학을 통해 밝혀낸 산발랏과 도비야의 위세는, 역설적으로 그 거대한 세력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았던 느헤미야의 용기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
느헤미야가 구축한 그 배타적인 울타리 안에서 유대교는 보호받았고, 그 보존된 그루터기에서 마침내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울타리를 넘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셨지만, 그 복음의 순수성은 느헤미야가 목숨 걸고 사수한 그 거룩한 구별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산발랏과 도비야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적당히 섞이자,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유혹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야마우찌 박사와 같은 학자들을 통해 돌들이 소리치며 증거하는 이 역사의 교훈은 분명합니다.
때로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세상의 합리적인 제안을 거절하고 고독한 성벽을 쌓아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을 잉태하는 거룩한 배타성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오래된 역사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가슴에 새기길 원합니다.
첫째, 적은 가장 친절한 얼굴로 다가올 수 있다는 영적 분별력입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칼을 들고 덤비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도 하나님을 섬긴다며 평화의 악수를 청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다가오는 유혹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기독교를 향해 포용과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본질을 희석시키려 합니다. 진정한 분별력은 겉으로 보이는 친절함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중심을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타협은 평화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소멸로 가는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거룩한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느헤미야는 왕따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예라고 말하며 적당히 어울릴 때, 그는 아니오라고 말하며 성벽 안에 고립되기를 자처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독선적이라는 비난을 듣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것, 세상과 구별된다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성도의 능력입니다.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버티는 그 거룩한 고집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갖게 됩니다.
셋째, 당장의 인기보다 다음 세대를 위한 그루터기를 남기는 사명입니다. 느헤미야의 개혁은 당시에는 욕을 먹고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켜낸 그루터기에서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꽃피웠습니다. 우리가 지금 지켜야 할 예배, 우리가 고수해야 할 말씀의 가치는 당장 우리 세대에는 답답해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영적 성벽을 무너뜨리지 않고 지켜낼 때, 우리의 다음 세대가 그 안에서 안전하게 자라나 세상을 구원할 주역이 될 것입니다.
산발랏의 화려한 권력은 흙 속에 묻혀버렸지만, 느헤미야의 고독한 눈물은 지금도 별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산을 남기시겠습니까?
배경락
<silky waves>
photo: Michael Kim _shade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