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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1934.1.15-2022.2.26)
★ 너 어디서 왔니?
세상 돌아가는 것이 궁금할 때는 뉴스를 보기도 하지만, 세상 구석구석을 알고 싶을 때는 세계 오지를 소개하는 〈오지 탐험〉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현지인이 어디서 왔느냐 하고 물었을 때, ‘Korea’라고 대답하면 ‘아, 코리아!’라고 하면서 한국을 아는 채하고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물을 때는 공연히 가슴이 벅차고 기분이 좋아져서 우쭐대고 싶었던 것은 비단 나만의 기억은 아닐 것이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된 한국을 모른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한국인인 네가 한국을 모른다”고 나무라면 동의하기 싶지 않을지 모른다. “너 어디서 왔니?”라고 묻는 이 말은 이어령 교수가 한국인에게 묻는 질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이제 비로소 한국인 문화 유전자의 모든 암호가 풀린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2022년 2월 이어령 교수는 88세를 일기로 타개했다. 책은 2020년 3월 출간되었으므로 그가 타개하기 2년 전에 나왔고, 그전에 10년을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20대 때부터 우리를 놀라게 한 글들을 써 왔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 지향의 일본인》, 《젊음의 탄생》, 《지의 최전선》, 《가위바위보 문명론》같은 역작들 말이다. 이 책들을 대하면서 나는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에게는 천년만년 이어져 온 생명줄 같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이어령 교수가 들려주는 그 이야기를 듣고, 흘리면서 오늘을 살다가 이어령 교수처럼 조용히 물러가고 싶다.
우리는 언제부턴가부터 막살아왔는지 모른다. 별다른 계획 없이 작년에 산 것처럼, 올해를 살고 내년도 살아갈 것처럼 말이다. 막자 붙은 말치고 천대받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한류라는 바람을 타고 있으니, 막사발에 담아 먹는 막걸리, 막국수, 이것들이 우리 자신도 미처 몰랐던 미묘한 한국의 맛이 되어 세계인의 입맛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개밥그릇으로 천대받던 막사발은 다도의 총아가 되어 일본 국보 제26호 ‘키자예몬’으로 불리고, 고려말 청자기술이 쇠락해 흩어졌던 도공들이 자기 방식대로 막 구워낸 분청사기 역시 ‘미시마데’라는 이름으로 일본 도자기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막춤과 막말(욕), 막순이같은 이런 것에도 ‘막’이 붙었다.
해방 후에도 우리는 막살았다. 그렇게밖에 살 방법이 없었는지 모른다. 막노동, 말국수 먹고, 품팔이, 국제시장 담배 장수, 판자집, 구두닦기 등 막투성이였다. 그러나 산업화, 도시화를 몰고 온 70년 80년대는 우리의 전성시대였다. 막 이야기로 대박친 것은 산업화뿐 아니라 조선작의 통속소설 《영자의 전성시대》가 있었다. 일제 끝물로 생겨난 영자라는 이름, ‘간난이, 막순이’처럼 흔한 막이름이었지만, 영화로도 만들어져 대박을 쳤다. 子는 원래 공자·맹자·노자·순자처럼 성현들 존칭이었으나, 일본으로 건너가 변질되어 귀족뿐만 아니라 그 부인들에게도 子자를 붙였다. 개화 이후 평민도 누구나 쓰면서, 子가 여자들 이름의 90%를 차지했다. 聖과 俗이 뒤집히는 이런 막문화 현상은 일본 하나꼬(花子)가 한국에서는 영자(英子)가 된 것이다. 내 친구 중에도 영자라고 있는데, 요즘은 동창회에도 나오지 않아서 소식이 궁금하다.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서양에서는 성현의 이름을 따르거나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주지만, 한국과 중국에서는 아버지 이름은 물론, 함부로 타인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이를 기휘忌諱 또는 피휘避諱라고 하며, 별도로 字나 號로 부를 수는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익명, 별명, 애칭으로 본명을 대신하곤 한다. 조선시대 유학자 퇴계 이황의 경우도 그렇지만, 서예가 〈세한도〉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 선생은 호가 무려 200개도 넘는다고 한다. 죽어도 남기는 것이 이름인데, 이렇게 많으면 기억도 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기억하는 이름일 텐데 말이다. 이름이 그래서 중요한지 모른다. 이름에 관한 시다.
(1) 꽃 - -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2) 초혼(招魂) ---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3) 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슬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소녀(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김춘수의 〈꽃〉은 탄생의 이름이고, 김소월의 〈초혼〉은 죽음의 이름이라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이름은 생과 죽음을 넘나드는 부활의 이름이다. 봄이 오면 새 생명이 돋아나듯 자랑처럼 풀이 무성하리라고 예견한 것은 죽음으로 이름을 땅에 묻으면 자연의 순환으로 다시금 되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윤동주에게 이름은 ‘부활의 씨앗’이었다.
일본 사람들과 유럽사람들은 여자가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따른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는 여자가 결혼을 해도 성을 바꾸지 않는다는데 그러면 어떻게 누구의 아내라는 것을 알지요?”이에 이어령 선생은 이렇게 되받았다. “일본에서는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른다는데, 그럼 누구의 딸인지 어떻게 알지요?”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이 있는 나라는 미국으로, 약 100만 개라고 한다. 핀란드는 6만 개, 영국은 1만 5000개..., 하지만 한국은 겨우 300여 개로 가장 적다.
[탄생]
신화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동굴 속의 곰이었지만, 생물학적 가설로 보면 넓은 바다에서 헤엄치던 물고기였다. 곰이든 물고기든 바쁜 세상에 그게 뭐 중요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한국인이기 전에 인간이었고, 인간이기 전에 원숭이나 쥐, 도룡뇽 같은 양서류였고, 더 올라가면 바다속의 미생물이었다. 이렇게 상상해 보는 것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 달라질 수 있고 재미도 있다. 등뼈를 꼿꼿이 세우고 두 발로 걷는 우리 조상은 자신을 보호할 갑골은 물론이고, 날 수 있는 날개도 없었다. 등뼈 줄기를 가진 척색(脊索) 밖에는 없었다. 기껏해야 4㎝에 불과했던 ‘파키이아’라고 하는 척색동물은 포식자 ‘노틸러스’(앵무조개)의 먹이로 쫓기다가 물고기로 진화했고, 네 발 달린 ‘틱타일릭’이 되었다. 틱타일릭은 바다 속의 포식자를 피해 육지로 올라왔고, 기적 같은 반전드라마로 어머니 양수 속에 숨어서 꿈을 꾸었다. 그 꿈이 포식자에게 쫓기던 파키이아가 땅으로 올라와 등뼈를 꼿꼿이 세우고, 두 발로 일어서는 ‘호모 에릭투스’였는지. 우주 대폭발과 같은 축제의 불꽃처럼 일시에 생물들이 터져 나온 캄브리아기의 꿈이었는지, 굽은 나의 등뼈를 곧추세우는 꿈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바다를 향한 꿈이었을 것이다.
옛날 말대로라면, 어머니 몸 안에서 ‘생명의 이슬’이 맺히고 3주가 되면 7㎜ 정도 자라고 조금 지나면 깨알만 한 심장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모니터 액정에도 그것이 보이는데 하얗게 보인다고 하여 그것을 ‘화이트 하트’즉, ‘하얀 심장’이라고 한다. 임산부에게 이것을 보여주면 갑자기 눈이 빛나고, 감정이 풍부한 임산부라면 그만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심장이 할딱이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한 생명이 어둠 속에서 하얀빛을 발하고 고동치는 점 하나가 ‘꼬물이’,‘쑥쑥이’가 되는 것이다. “엄마 나 여기 있어요”하고 말하는 것만 같은 그것을 보는 순간 엄마는 저절로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세상과 상황은 바뀌고 있다. 인간이 우주를 향해 인공위성을 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 새로운 의료기술의 발달로 태내의 소우주 탐색도 가능해졌다. 〈출생전 심리학〉을 개척한 ‘T 버니’박사 증언에 따르면 태아는 듣고, 보고, 느끼기도 하고 무엇보다 엄마의 생각이나 감정을 읽을 줄 안다고 한다. 배 내 아이를 어엿한 한 인간으로 대접하고 나이를 계산한 한국의 태교 문화가 미신이 아니라, 미래 과학이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1초에 2만 번을 진동한다고 하여 초음파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지만, 박쥐나 돌고래 심지어 바퀴벌레도 이 초음파를 이용해 대상물을 감지하고 소통한다고 한다. 초음파를 갖지 못한 인간, 아니 엄마는 무엇으로 태아와 대화하고 소통할까? 그것은 엄마의 심장과 태아의 화이트 하트가 보내는 리듬으로다. 태아는 약 10개월 동안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며 태내에서 자란다. 태어나면서 아이가 우는 것은 갑자기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공포와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자유로운 두 손으로 도구를 만들고 사용해 문화·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침팬지, 고릴라, 우랑우탄 같은 유인원은 왜 먼저 인간으로 진화하지 못했을까? 손이 아니라는 것이 그것 때문인데, 처음에 수상생활을 했던 원숭이들은 사지가 모두 손이었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더이상 수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된 일부가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육상생활을 시작하면서 오늘날의 인류로 진화했다고 생물 진화학자들은 가설한다. 네 개의 손 가운데 아래 두 손이 다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사람과 가장 많이 닮은 침팬지나 고릴라는 하루에 기껏해야 3㎞ 이상 걷지 않는다. 그러나 채집시대 원인류는 하루 30㎞ 이상을 걸었다. 손이 아니라 발이 오늘의 인간의 문화와 문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역국]
바다를 한 번도 구경한 적이 없는 산골 여자라고 해도 아기를 낳으면, 반드시 바다에서 나는 해초와 미역국을 먹는다. 미역국을 먹으며 뜨거운 바다, 생명의 바다를 자궁 속에 채운다. “고려 사람들은 고래가 새끼를 낳은 뒤 미역을 뜯어 먹고 산후 상처를 낳게 하는 것을 보고 산모에게 미역국을 먹인다.”라고 당나라 때 서견이라는 사람이 《초학기》라는 책에 이미 썼다. 고려시대부터 미역이 산후에 좋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명나라 때 의서 《본초강목》에도 “신라 미역, 고려 미역이 안팎 종기를 낫게 하는 신비한 약제로 사용된 적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산후에 미역국을 먹는 풍습은 삼국시대부터 천년 이상 이어져 온 풍습이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왜 큰 소리로 우는가? 세익스피어는 “바보들만 사는 덩그런 무대 위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과학자들은 서러워서거나 노여워서 우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더구나 억지로 세상 밖으로 끌려 나온 것도 아니다. 태아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양수를 내뱉는 호흡연습을 하고, 뱃속에서 발길질을 하며 걸음마를 위한 다리 운동까지 한다. 젖을 빨기 위해서 손가락을 빠는 등 제 살 궁리를 하고 난 다음에 죽을 각오를 하고, 출생이란 모험길에 나선 것이다. 깜깜한 산도 속에서 빠져나갈 좁은 산도를 용케 찾아 그쪽으로 머리를 내민다. 가끔 다리부터 나오는 녀석도 있지만, 달력도 시계도, 학원 선생도 없는 어머니 배 안에서 혼자 출생 예비고사에 합격한 천재들인 것이다. 초음파 스캔으로 태내를 훤히 훑어보는 산부인과 의사들도 아이가 언제 나올지 정확히 모른다. 그래서 옛날에는 밭을 매다 애를 낳고, 요즘은 구급차 안에서 애를 낳기도 한다. 태어날 날과 시를 선택하는 것은 배 안의 아이 자신인 것이다. 분하고 억울해서 우는 아이는 세익스피어 시대 아이가 아니라, 강철 집게(겸자)에 잡혀 끌려 나오는 요즘 아이거나, 제왕절개 수술로 영문도 모른 채 나온 21세기 신생아들인 것이다.
아이가 우는 것은 울음소리가 아니다. 일종의 호흡작용으로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물고기처럼 살아왔는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폐호흡으로 숨을 쉬어야만 한다. 폐가 열리면 바깥 공기가 들어오고 그때 들어 마시는 호흡소리가 바로 울음 소리인 것이다. 그 최초의 들숨(흡기)이 생을 마칠 때 내뱉은 마지막 날숨(호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일생을 ‘한 호흡’으로 비유하는 것처럼 최초 호흡이 예사롭지 않은 울음소리다.
흔히 생일날을 ‘귀빠진 날’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본과 중국에 없는 말이다. 탄생의 의미를 이렇게 표현한 것은 한국인의 지혜요 철학이다. 사실 아기의 출생에서 귀가 보이는 순간 가장 고통스럽고 아픔이 절정에 이른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고속도로가 생기던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산모 75.1%가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것도 반수 이상이 의사나 조산부의 도움 없이 홀로 숨죽이며 아이를 낳았다. 남성은 도저히 알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이 여인의 산고다. ‘만다라의 꽃잎으로 자비의 세례로 변하는 그 축복’이라고 한 시인의 말처럼 출산의 비밀인 것이다. 투박하지만 익살맞기도 한 ‘귀빠진 날’은 산모와 아이가 함께 경험한 고통이요 지복의 순간이다.
[몽고반점]
서너 살 때까지 엉덩이에 주로 보이던 이것을 일본에서는 어린이 반점이라는 의미로 ‘지한’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청흔(靑痕)’이라 하며, 영어권에서는 ‘출생 마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독 한국인의 발생률은 97%로 중국과 일본인보다 10% 이상 높다. 몽고반점은 몽골로이드계 인종에게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보이지 않을 뿐 흑인도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히스패닉계도 있으나, 50%를 넘지는 않는다. 백인은 10명 중 1명꼴로 색소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의학적으로는 배아 초기에 표피로 이동하던 멜라닌 색소세포가 진피에 잔류해 생기는 현상으로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몸 어디에나 생기지만 주로 엉덩이 쪽에 많은데, 몽고반점이란 이름을 바꿔 부르기도 하지만 ‘애숭이, 미숙아’라는 뜻을 품는 데 반해 한국에서만은 오히려 자랑스러운 대접을 받는다. 단일 민족의 휘장이고,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성공한 국가로서 미스트리를 몽고반점에 결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은둔의 나라’라고 불리던 그 나라 사람들인데도 어느 날 엉덩이에 불이 붙으면 아무도 못 말리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월드컵과 광화문 촛불, 말춤과 BTS 열풍 이런 것들로 말이다.
구글 검색창에 몽고반점을 치면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는 도덕 너머의 푸른 신호등! 멈출 것인가, 달릴 것인가?”라고 묻고는 몽고반점의 푸른 점을 원초적인 생명을 찾아가는 초록 신호등으로 압축한 글이 있다. 게임 오버다. 배설작용밖에 모르는 엉덩이를 아토피 환자처럼 긁어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삼신할머니 손자국의 의미를 알며, 무의식이 된 아픈 자리에 켜지는 초록 신호등의 유혹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고 저자는 묻는다.
[기저귀]
순우리말인 기저귀의 어원은 ‘작은 헝겊 천’이다. 이것은 일본말로는 ‘무쓰기(むつき)’중국의 강보(襁褓-포대기)와 비슷하다. 천인데 강하게 조인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기저귀는 강하게 조여야 할까 아니면 느슨하게 해야 할까? 느슨하면 배설물이 쏟아지기 쉽고, 너무 강하면 마음의 상처(트라우마)를 남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기저귀학’이란 게 생겼다. 여기서 문화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한국의 푸는 문화, 일본의 조이는 문화 말이다. 일본인은 머리에는 하치마키(鉢卷-머리띠), 어깨에는 다스키(襷-멜빵), 가랑이 사이는 훈도시(裙)로 조여야 정신이 난다고 한다.
한국인이 머리띠를 두르는 경우는 골치가 아픈 때지만, 일제의 영향으로 이제 머리띠와 어깨띠를 두르고 데모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랑이 사이에 기저귀처럼 훈도시를 차는 것은 역시 그들만의 것이다. 어른이 벌거벗고 기저귀를 차고 씨름판을 벌이는 ‘스모도리’는 웃음과 함께 물음표가 던져진다. 기저귀 유전자라고나 할까. 조여야 함이 그들의 유전자고 문화라지만 그것이 기업가에게는 몰라도 군국주의 ‘가미카제’특공대를 낳은 것이라면 그리고 언젠가 낳게 될 것이라면, 분명 기저귀를 조이는 문화 유전자라면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근대까지도 러시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추위를 막는다. 아이를 혼자 두고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등의 이유로 몸을 감싸는 스와들링이라는 풍습이 있었는데, 유대인도 2000년 전, 고대 로마인들도 이런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로마시대 정치인 세네카는 “부모는 아직 유약한 정신을 가진 아이들에게 약이 된다고 하는 것을 견뎌내도록 강요한다. 그들은 울고 발버둥 치려 하지만, 아직 미성숙한 그들의 몸이 곧게 자라지 않고 굽을까 봐 단단히 천으로 묶어둬야 한다. 그런 다음에 차근차근 교육을 시키는데 만일 이 말을 듣지 않고 거부하면 겁을 주어야 한다.”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겁을 주어서라도 뜻을 이뤄야 한다는 폭압적 부모론이 아닐 수 없다. 세네카의 말속에는 아기 인권이란 것은 없다.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는 〈아이를 키우는 조언〉(1732)에서 육아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아이가 한 살이 되기 전에 채찍의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작은 소리로 우는 법을 익히도록 해야 해요. 그렇게 되면 저 귀 따가운 아기 울음소리가 온 집안에 울리지 않지요. 우리 가족은 마치 아이가 있어도 없는 듯이 조용하게 지낼 수 있답니다.”한 살배기가 울음을 참고, 작은 소리로 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니..., 그 어머니에서서 자란 아들이 기독교 한 종파를 창시자라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스와들링의 악습을 비판한 선각자도 있었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육아의 문제가 곧 교육이고, 사상의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아기가 어머니의 배 속에서 나와 몸을 움직이고 손발을 뻗고 하는 자유를 얻자마자 사람들은 그 아이에게 새로운 속박을 준다. 배내옷으로 싸고, 머리를 고정시키고 다리를 곧게 하고, 팔을 몸 옆에 꼭 붙여놓고, 반듯이 눕게 한다. 여러 종류의 헝겊이나 끈으로 몸을 감아 주어 그것 때문에 돌아누울 수도 없게 만든다.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묶여 있지 않으면 다행이다. 몸이 옆으로 눕혀져서 입에서 나오는 액체가 저절로 흘러내릴 수 있게 돼 있으면 다행이다. 아기는 침이 흘러내리게끔 머리를 돌릴 자유도 없을 테니까…”그러면서 “가슴이 꽁꽁 묶여 있기 때문에 혈액 순환이 잘되지 않아 피가 머리로 올라간다. 그리고 모두 아기가 대단히 조용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아기는 소리를 지를 기운조차도 없어진 것이다. 그러한 상태 속에 얼마나 오래 있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무사하지는 않을 게다. 배내옷을 입힌 효용이 모두 이런 데서 나타나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기저귀로 돌아와 1회용 기저귀를 발명한 미국은 지금 기저귀 없는 육아법인 ‘BC 운동’이 한창이다. Elimination(배설물)과 Communication(소통) 두 문자를 딴 ‘배설 소통’을 말하는데, 이것은 기저귀학보다 더 신기한 용어로 일본만 해도 ‘기저귀 없는 육아연구소’가 설립되었다고 한다. 기저귀 없이 아이를 키운다니 좀 의아하기도 하겠지만, 한마디로 기저귀 없이 아이를 키우는 아프리카 어머니들에게 배우자는 것이다. 여러면에서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애고 어른이고 기저귀 의존증에서 벗어나 배설의 본능을 자연의 힘에 내맡기는 방법, 그것이 가능할까 싶지만, ‘아기에게 기분 좋은 배설을 시켜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아이가 배설의 기미를 보이면 얼른 채웠던 기저귀를 풀어줘 밖에 배설을 하도록 하는 것으로, 우리는 오래전부터 아기의 옹알이를 통해서 이미 ‘쉬쉬’와 ‘응가’를 가르치고 있었다.
[어부바]
아기를 미라처럼 꽁꽁 싸매는 유럽의 스와들링과 달리 우리의 배내옷은 입히고 벗기기가 쉽다. 넉넉하게 만들어 아이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배내옷은 집안의 장수한 어른들이 입던 옷을 이용해 만들거나 수의를 만들고 남은 천으로 만들었고 하는데 무병장수 기원을 담았기 때문이다. 배내옷 재질은 여러 가지, 무명과 광목도 쓰였고 여름철과 겨울철의 재료가 달랐다. 광목은 용도가 다양한데 뒤로 묶으면 포대기가 되고 앞으로 묶으면 띠가 된다. 아기가 잘 때는 배를 덮어주면 이불도 된다.
포대기는 우리 민족만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옛날 어머니들은 포대기 하나로 아기를 가슴에 품거나 등에 업었다. 아기를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올 때는 포대기를 사용했는데, 특유의 품는 문화와 업는 문화가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안아줘도 깽깽, 업어줘도 깽깽, 어쩌라고 깽깽”이라는 노래말에서 깽깽대던 아이라 해도 가슴에 안고 등에 업으면 금세 조용해 지고 잠이 든다는 거다. 아기가 울음을 그치게 하는 방법은 딱 하나 업어주고 안아주는 수밖에 없다. 엄마 피부에 닿아 온기가 아이를 편하게 해 준다는 관점에서 이제 서양에서도 포대기를 이용한 어부바가 크게 장려된다고 한다. 어부바를 가능케 하는 포대기의 영문 포기는 ‘새마을 운동’처럼 영어로 ‘Podaegi’다.
어부바의 원형은 모자관계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른이 아이를 업어주는 관계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업는다. 엄마가 아이를 업고, 자녀가 연로한 부모를 업는다. 이는 생명에 대한 배려이자 상대에 대한 사랑이다. 아이를 업는다는 것은 짐일 질뿐인 보릿자루를 메는 것과는 다르다. 사랑과 애정 속에 업고 업히는 관계, 상생이다. 수렵과 채집 시절부터 어부바는 상생 관계였던 것이다. 일본에는 ‘고모리’라는 자장가가 있다.
자장자장 해서 자는 애는 귀여워
깨서 우는 애는 보기도 싫어
꼴보기 싫은 녀석은 도마에 올려놓고
무 다지듯 잘게 다져두었다가
뒤란의 수채로 흘려보내고 싶어
에도시대에 불렸다는 노래로 따뜻해야 할 자장가가 섬뜩하기조차 하다. 노래는커녕 읽기에도 겁이 난다. 일본의 자장가가 모두 이렇진 않지만, 비슷한 내용을 담은 내용을 일본 전역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한국의 포대기처럼 두르는 것이 아니라, 꽉 조여 매기 때문으로 보인다.
[옹알이]
언어학자 ‘베네딕토 드 부아송 바르디에’는 태어나서 두 살까지 영아들이 어떻게 언어를 배우고 시작하는지 실험하여, 아기들은 선천적으로 모국어 옹알이를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덟 달 된 프랑스 아기에게 프랑스어·아랍어·광동어를 들려주었는데, 70% 성인들이 프랑스 아기가 하는 옹알이 말을 식별해냈다는 것이다. 옹아리는 모국어와 동일한 리듬, 억양, 음소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을 배우기 이전에 소리만으로 느낌을 전달하는 일종의 태생적‘배꼽말’인 옹아리는 ‘오노마토피아’라고 하는 의성어로, 의성어가 가장 발달한 말은 한국어를 꼽는다. 사전에도 나와 있지만, 한국말에는 8,000개, 일본말은 2,200개, 독일어는 우리의 7% 수준인 541개 정도 의성어가 있다. 예를 들어 코 고는 소리를 일본말은 ‘스야 스야’라고 하는데, 영어 ‘snore’와 거의 같다. 하지만 한국말은 ‘색색’과 ‘콜콜’어른이 되면 ‘쿨쿨’‘드렁드렁’그것도 모자라 ‘드르렁드르렁’까지 수없이 많다.
프랑스 부모가 낳은 아기 30명과 독일 부모가 낳은 아기 30명의 울음을 비교 분석하기도 했는데, 생후 2일째부터 아기 울음소리에 부모가 말하는 언어의 ‘운율’이 드러나 프랑스 아기 울음 끝에는 상승조, 독일 아기의 울음에는 하강조가 뚜렷했다. 이 결과는 이미 자궁에서부터 듣고 익힌 부모의 소리 억양을 울음으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는 천부의 사실을 알려 준다.
인류의 원초적인 말은 모두 옹알이다. 세계 문명인들이 거의 다 상실한 옹알이 말이지만, 한국인은 용케 막문화를 통해 지켜오고 있다. 막사발에 미역국 말아먹듯이 세계의 한류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옹아리말 같은 리듬 〈상어 가족〉노래말인 ‘뚜 루루 뚜루’는 생명의 리듬이자 작위적인 인공의 틀 속에 갇힌 모태의 생명기억을 깨어나게 한다. 〈상어 가족〉노래는 리듬도 리듬이지만, 잡아먹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따지고 보면 들어서는 안 될 정도로 엽기적이다. 그런데 전래동화는 물론 자장가에서도 엽기적이 아닌 것이 없다. 엄마 잡아먹고, 형님 잡아먹고, 동생 잡아먹고 뼈가 책상 밑에 수북하다는 등 말이다. 반문명 반문화의 이 막문화가 합쳐져 한류를 만들어낸 공식이 〈상어 가족〉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먹는다’는 것처럼 막 쓰는 말은 한국말밖에 없을 것이다. 밥을 먹고, 욕을 먹고, 나이를 먹고, 축구를 하다 점수를 잃을 때는 골을 먹고….
[아리랑]
나는 이제 거의 한평생을 살아왔지만, ‘아리랑’이 무슨 뜻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박혁거세 부인 알령閼英에서, 밀양부사의 딸 아랑阿郎에서 혹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노역에 끌려온 인부들이 ‘내 귀는 먹었소’(我耳聾)라고 한데서 따왔다는 설이 있기도 하나, 피리의 장전타음(長前打音)을 흉내 낸 의성어라는 설이 정설처럼 들리고, 아무 의미도 없는 후렴구로서 옹알이 말일 수도 있다는 말도 일리 있어서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아리랑’에는 한민족의 정서와 애환이 피어오른다. 이것이 바로 성문, 소리의 무늬다. 지역과 풍속이 다르고 시대가 변해도 우리는 아리랑을 부르면서 하나가 된다. ‘아리다. 쓰리다’는 것은 아픈 감정을 드러내지만, 그 속에 ‘ㅇ’이 들어 있다는 것은 ‘너랑 나랑’, ‘머루랑 다래랑’처럼 꼬부랑할머니, 꼬부랑 고개길 같은 의미와 효과를 나타낸다.
우리말 전체의 어휘 52.11% 내지 69.32%가 한자어라고 하지만, 사용빈도가 높은 말 100개 가운데 한자어는 고작 16개밖에 안 된다는 통계가 있다. 눈·코·입·목·손·발·배, 머리, 허리, 다리가 모두 순수한 우리말이다. 한자 바이러스를 막는 면역체계가 이미 내 몸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일본말에는 한자를 통체로 넘겨준 것이 많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한자로 ‘동해’는 일본에서는 그냥 동해지만, 우리는 동해에 바다를 붙여 ‘동해 바다’라고 한다. 그런 것이 한두 개라면 틀렸다고 할 수 있겠으나 초가집, 처갓집, 역전앞, 일본말인 모찌에 떡을 붙인 모찌떡, 영어의 빵떡, 라인선상까지 그런 것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三은 의미가 아주 많다. 로마숫자 Ⅲ은 우람한 석조의 기둥이 되고, 아라비아수 3을 쓰면 아라비아의 이야기가, 한자로 三을 쓰면 중국의 왕서방 이야기가 들리는 것처럼 된다. 천·지·인을 한 줄로 묶은 것이 王이라고 유교를 국교화한 동중서(董仲舒)라는 사람이 말했다. 우리가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태어난 것은 삼신할머니 덕분이지만 유교·불교·도교의 삼신을 아우르는 그것은 종교와 관계없이 하늘·땅·사람이 하나가 되는 삼재(三才) 사상에서 비롯된다. 서양에서 기독교가 들어와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말해도 하나도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문명인지 유럽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높이 쳐들어 보이면서 웅얼거리는 장면(영화)을 연출하는데 그것이 무엇을 상징할까? 필립 아레아스가 편찬한 《사생활의 역사》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로마인의 탄생은 단순한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었다. 신생아는 태어난다기보다는 차라리 가장의 결정에 따라 사회 속에 받아들여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피임, 유산, 자유민으로 태어난 아이를 버리는 일, 그리고 여자 노예의 몸에서 태어난 아기를 죽이는 일은 늘 있었고 완전히 합법적인 일이었다.(…) 로마 시민들은 아들을 낳지 않았다. 아들을 잡고 쳐들었다.”라고 적고 있는데, 아버지는 자식이 태어나면 아기를 친자로 인정하고 버리지 않겠다는 뜻을 표시하기 위해, 산파가 내려놓은 아기를 들어 올리는 특권을 행사했다. 그러면서 “산모는 의자에 앉아 분만한 아이에게 내려지는 판결을 기다렸다.”고 했다.
신라 시대에 ‘에밀레종’을 만들 때 아기를 시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그리스·로마 신화에도 자식을 낳으면 잡아 삼켜버리고 또 살아남은 자식이 이번에는 아비를 죽이는 이야기들이 올림포스 동산의 주신 제우스의 탄생 이야기이고 보면 덜 새롭다.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돌팔이 수준이던 프로이트가 어떻게 영광의 자리를 누려왔는지 그 비밀도 바로 아비를 죽이고, 생모를 범하는 오이디푸스왕의 신화 이야기 덕분이기도 하다.
[외가집]
고향과 외가집을 못 가는 사람도 있고 잃어버린 사람도 있지만, 고향이 없거나 외가집이 없는 사람은 없다. 집을 나서면 언제나 그곳이 그립다. 시간이 멈춰버린 고향집 사랑채는 허물어지고 안채만 남아 있을 때 옛집을 향해 ‘어이’하고 부르면 뚜껑머리 소년이 달려 나올 것 같은 그런 곳이 고향이고 외가집이다. 엄마 손잡고 처음 나들이 가던 곳, 온돌이 있는 곳은 안방이었고, 툇마루와 대청마루는 여름이 제격이다. 안방이 어머니의 공간이라면 사랑방은 아버지의 공간, 앞마당이 도시로 나가는 열린 문명의 공간이라면 뒤꼍은 외가로 가는 산골짝의 닫힌 자연의 공간이다. 책에서 옮겨 왔지만, 누구에게나 고향과 외가집은 그립다. 나의 고향집과 외가집은 모두 허물어지고 없어졌지만, 기억 속에는 언제나 그대로다.
《단군신화》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어 삼칠일 동안 동굴에 있으라고 하여 곰은 버텨냈으나 호랑이는 버티지 못하고 사람으로 화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때 먹은 마늘은 어떤 마늘이었을까 궁금하다. 《삼국유사》에는 애(艾)와 산(蒜)이라고 하고 애는 쑥이고, 산은 ‘작은 마늘, 냄새 나물’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야생의 달래마늘이라는 것인데, 마늘은 통일신라 시대 이후에 들어온 것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벌판에서 자라는 야생의 달래마늘로 봐야할 것 같다. 쓴맛이 나는 쑥과 씀바귀 그리고 매운맛이 나는 달래마늘 이것은 야생 나물인 것이다. 그 후각과 미각이야말로 웅녀의 신화시대까지 올라가는 한국인의 기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고향을 떠올리면 언제나 아버지, 어머니가 그립다. 당신들과의 기억이 낡은 사진 한 장처럼 아련하다. 이제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늘 고향과 함께 오버랩되기도 한다. 가끔 부모를 버리는 뉴스를 접할 때는 이 나이에도 공연히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에로틱은 아닐 것이다 싶다. 당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는 제비 한 쌍이 새끼 네 마리를 낳아서 부리와 발톱이 닳도록 정성껏 길렀으나, 어느날 하루 아침에 새끼들은 다 날아가 버렸다고 하고 제비 부모에게 ‘너무 슬퍼하지 말고 돌아보라’고 하고는 ‘그대 또한 그렇게 어미 곁을 떠나오지 않았느냐’고 하였다. 전설에는 까마귀가 부모를 모시는 효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부모를 공양하는 ‘반포지교(反哺之敎)는 까마귀에게도 없다. 버리는 쪽이 자식 쪽이 아니라, 어미 쪽인지 모른다. 새끼와의 정을 끊고 무자비하게 내쫓는다. 어미곰은 새끼가 크면 숲으로 데려가 딸기를 따 먹는 동안에 새끼를 버리고 온다. 자립시키기 위해서다. 그나마 어미가 하는 짓이고, 동물의 세계에는 아비란 거의 없다.
도끼로 상징되는 남자, 아버지의 힘은 문명과 문화의 기점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는 신화가 생기고, 부권의 부재로 이어져 이제는 아버지 찾기 사회가 나타나고 있다. 아버지 지위의 붕괴와 궤를 같이하여 나타난 것이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말대로 ‘문명의 대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숭배할 영웅이 없는 시대, 아버지가 더 이상 아이들의 모델이 될 수 없는 ‘아버지의 부재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육두문자로면 현대인은 모두가 ‘애비 없는 후레자식’과 다름이 없다.
사자나 늑대처럼 사냥한 그것을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다 먹어 치우지 않는다. 허기를 참고 사냥한 먹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나눠 먹는 즐거움과 행복을 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억제(참을성)와 동조(함께)와 동정의 상징이다. 눈앞에 고깃덩이 불타는 식욕을 억제하는 힘은 동굴 속에서 식구와 함께 식사하는 환상에서 온 것이다.
보아라!
파란 정맥만 남은 아버지의 두 손에는
도끼가 없다.
지금 분노의 눈을 뜨고 대문을 지키고 섰지만,
너희들을 지킬 도끼가 없다.
어둠 속에서 너희들을 끌어안는 팔뚝에 힘이 없다고
겁먹지 말라.
사냥감을 놓치고 몰래 돌아서 훌쩍거리는
아버지를 비웃지 말라.
다시 한번 도끼를 잡는 날을 볼 것이다.
2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처음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을 때
그들의 손에 들려 있었던 최초의 돌도끼
멧돼지를 잡던 그 도끼날로 이제 너희들을 묶는
이념의 칡넝쿨을 찍어 새길을 열 것이다.
옛날 나들이 길에서처럼 마디 굵은 내 손을 잡아라.
그래야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차린 저녁상 앞에 앉을 수 있다.
등불을 켜 놓고 보자.
너희 얼굴, 너희 어머니 그 옆 빈자리에
아버지가 앉는다.
수염 기르고 돌아온 너희 아버지
도끼 한 자루!
- 이어령의 〈도끼 한 자루〉‘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옛날 이야기]
눈 내리는 날밤, 먼 데서 수캐들과 늑대들이 우는 밤, 방 안에만 갇혀 있던 아이들은 심심해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아무나 잡고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른다. 그런 모습에서 아득한 석기시대 사람들을 보게 된다. 동굴 속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야기하는 광경 말이다. 낮에 있었던 일, 놓친 사슴과 호랑이를 만나 쫓기던 공포, 낭떠러지를 만나 죽을 뻔한 위험과 모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강 건너 숲과 바다에 관해서도 없던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하고, 그것을 우리는 신화나 전설로 옛날이야기로 변형시켰다. 원숭이와 다른 ‘호모 나랑스’로 진화된 요체가 바로 그것이다. 지렁이가 용이 되고, 봉황이 되고, 밭에서 농부가 우렁각시를 만나고, 나무꾼이 선녀와 산신령을 만나고, 쉬어가던 비위가 장수바위가 되고, 미역감던 개천은 천년 묵은 이무기가 사는 용담이 되고…, 그런 터무니 없는 이야기들이 기억의 둥지에서 나오기도 하고, 어린 시절 놀던 뒷동산으로 변하기도 한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만남보다 이별이 먼저다. 출생이 곧 종생(終生)인 것이다. 다시 말해 ‘태어난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가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어머니와의 만남은 모태와 나를 연결해 주었던 생명줄, 그 탯줄을 끊는 것이 가장 큰이별이었다.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인 모자 관계는 단 한 번의 생물학적 탄생으로 끝나지 않는다. 과수체락(瓜熟蒂落),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하지 않던가. 외가 익으면 꼭지가 떨어지고, 만나면 반드시 해어진다는 말 말이다. 탯줄이 끊어지고 꼭지가 떨어진 다음에도 나가고 들어오는 나들이 이야기는 계속된다. 꼭지가 떨어진 흔적이 배꼽이라면, 그것은 여전히 한 생명의 한복판에서 어머니가 들려준 옛날 이야기의 집합 속에 남아 있다. “용호야, 밥 먹으러 온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또래들과 노느라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던 내 어릴 적 기억은 내가 아무리 커도 어머니의 그 목소리는 변하지 않는다.
패(稗)는 우리말로 ‘피’잡초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잡곡으로 먹기도 했다지만, 좋은 뜻으로 쓰이지는 않은 모양이다. 패관은 말단관직, 임시직으로 민간 마을을 돌면서 허접한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정리해 조정에 올리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패관잡기’또는 ‘패관소설’이라고 한다. 춘추사관이 쓴 왕조실록을 ‘대설’이라고 한다면, 소설은 막 이야기라는 뜻이다. 잡스런 이야기 심지어 똥이나 기저귀 이야기고, 절세가인이 아니라 꼬부랑할머니, 잡신에 속하는 삼신할머니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그런 小자 달린 것들이 노벨상을 타고, 랩의 가사로, 막춤, 막말로, BTS 춤으로, 세계인들을 매혹 시킨다. 작은 혹은 막 이야기 속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때문이다. “잡초란 무엇인가? 여지껏 발견되지 않은 덕을 지닌 식물이다.”라고 식물학자 에머슨은 말했다. 바다 속 잡초인 미역과 개똥쑥이 항암제로 쓰임에 따라 유용한 약제가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너 어디서 왔니”라고 물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은 김소월의 시 〈옛이야기〉를 대신하고 있는데, 인류는 다른 짐승들처럼 먹는 데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호모 나랑스(이야기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역사관에 대하서도 견해를 피력했는데, “우리가 지금껏 아는 역사란 나와 너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이야기,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했다. 진정한 역사란? 역사책에 한 번도 쓰여진 적이 없는 이야기라야 하고, 지금까지 글로 쓰진 대부분의 역사는 항상 승자에 의해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옛이야기〉 --- 김소월
고요하고 어둡은 밤이 오면은
아스라한 등불에 밤이 오면은
외롭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 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마한 세상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워두었던
옛이야기뿐만은 남았습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올려줍니다.
- 1925년 《진달래꽃》〈옛이야기〉
우리는 지금 ‘아버지가 없는 세상, 아버지가 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만큼 아버지의 존재가 미미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없어져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태교신기》* 첫 장에 “아비가 씨를 주고, 어미가 기르고, 스승이 가르친다.(父生之 母育之 師敎一也)”라고 하고 “훌륭한 의사는 병나기 전에 손 쓰고, 잘 가르치는 자는 낳기 전에 가르치므로, 스승 10년의 가르침이, 어미 열 달 배 안의 가르침만 못하고, 열 달 어미의 가르침 또한 아비 하룻밤의 씨를 줌만 같지 못하다.(善醫者 治於未病 善敎者於未生 故師敎十年未若母十月之育 母育十月未若父一日之生)라고 했다. 가르침 중에서 가장 근본인 것은 태교이며, 태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이를 가질 때 아버지의 올바른 마음이라고 한 것으로, 아버지의 역할을 어머니보다 더 중하게 본 것이다. 요즘 엄마들이 들으면 고리타분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쾌락주의 성과 생명주의 성이 어떻게 다른지 근본에 대한 물음이 아닐 수 없다.
*胎敎新記 : 조선 정조 24년, 1800년 사주당 이씨(師朱堂李氏)가 저술하고, 다음 해인 1801년 아들인 유희(柳僖)가 한글로 음을 단 최초의 임산부의 태교법 교습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