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태산 산행기
- 참 맹숭맹숭한 산행.
일시: 7월 05일(토) 11:20-17:30
코스: 삼둔2교-숫돌봉-개인산-구룡덕봉-삼거리-주억봉(1444m)-삼거리-이폭포-저폭포-휴양림
1.
원래 이번 산행은 직원 결혼식으로 갈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친구 유마거사로부터 연락이 와서 방태산을 가게 됐다. 방태산이 참 좋은 산이라고 들었다며 같이 가면 어떻겠냐는 연락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백수가 과로사한다”라는 말처럼 퇴직 후 남양주, 서울, 예산, 수동 등지를 홍길동처럼 쏘다니는 유마거사를 보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인지라 지리산 종주 후 일 년만에 함께하자는 그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게다가 헐키 역시 사고 이후 얼굴을 본 적이 없어 그도 함께 한다니 내 스케줄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산꾼이 어찌 경조사를 일일이 챙기겠는가? 사람이 못 가도 거시기만 가면 되니라고 생각하고 흔쾌히 허락했다. 그 후 그 바쁜 유마거사가 약속을 취소하지 않을까 걱정 아닌 걱정까지 하기도 했다. 하긴 난 기우(杞憂)의 주인공인 기(杞)나라 사람처럼 걱정이 많다.꺽정님 말대로 설악산에서 그 기우가 십분 발휘되어 여러 분 산행을 망치기도 했다.간혹 걱정대로 되는 일도 생긴다.헐키가 이번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거사편으로 들었다.
2.
거사가 여기에 발걸음을 잘 안 한 이유는 바쁘기도 하지만 여기의 산행 방식이 자기와 잘 맞지 않아서이다. 거사는 거사라는 닉네임대로 산행을 한가하게 하면서 여유롭게 산과 골짜기의 풍광을 보고 즐기고, 친구와의 정담을 나누며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는 산행, 문화유산도 탐방하고, 산 속에서 푹 쉬면서 일상의 때를 씻어 버리고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의 만족감을 느끼는 산행을 원한다. 이번에는 꼭 그렇게 하자라고 약속을 했다. 나는 스포츠로써의 산행, 그날 주어진 산행거리를 최대한 길게 잡고 완주하면서 이정도면 주말 하루 공기 좋은 산에 해야 할 운동을 충분히 해냈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우선으로 치는 산행만을 추구했지만, 내심 이런 방식에 대한 회의와 불만이 있었기에 이번 만큼은 많이 걷기보다는 많이 보고 천천히 걷고 이야기를 나누는 산행을 꿈꿨다. 물가님, 호거님 같은 분의 산행 후기에서 느낄 수 있는 산을 즐기는 분들의 우아한 향기가 나는 글을 언제쯤 흉내라도 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이번에는 드림팀이 아닌 자연팀을 선택했다. 작년에 방태산에서 호된 고생을 해봤던 스케치북님의 조언에 따라 오늘 드림팀 코스에서 깃대봉 가는 코스를 빼면 드림팀 코스가 오히려 자연팀 코스보다 쉽다고 해서 그렇게 가기로 결정했다.16-7km정도 8시간이 주어졌으니 충분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3.
모처럼 토요일에 양재에서 떠나는 산행이다. 7월이 넘은 산행 비수기인데, 여행은 성수기인지라 산행차인지 행락차인지 봄철 못지 않게 버스들과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출발 시간이 늦어지는가 싶더니 휴가철에서나 볼 수 있는 정체 현상이 방태산 가는 가평 휴게소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10시 산행은 이미 틀렸다. 11시가 넘어서 홍천군 경계인 살둔2교에 도착했다. 하산시간은 18시를 그대로 지키기로 했다. 시간이 빠듯해졌다. 산행금지 구간이었다가 최근 풀려서인지 들머리 찾기가 힘들다.구룡덕봉까지의 주능선에 닿기 위해 상당히 가파른 길을 계속 올라야 하는 길이다. 다행히 길은 흙길이었지만 물기가 있어 미끌해서 오르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안내판은 전혀 없다. 희미한 길을 계속 오르고 올라 개인산에 이르러서야 어떤 산악회에서 붙인 개인산 팻말만 하나 붙어 있을 뿐 아무 것도 없다. 한 사람 지나갈 만한 넓이의 길마저 무성하게 자란 온갖 풀들로 뒤덮혀 있기 일쑤라. 몸에 풀을 스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는 길들의 연속이었다. 마치 오지 탐험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작년 응복산에 갔다가 길을 잃었던 경험이 떠오를 정도였다. 요기가 오름길에 고비일거야 생각하면 다른 오름길이 연속되니 급기야 충청도 양반인 거사의 궁시렁 거리는 소리가 시작된다. ‘우리팀으로 갈 걸.’, ‘왜 이렇게 힘들고 바쁘게 걸어야 하는겨?’, ‘쉬었다 갑시다. 숨 넘어 갈 것 같다’는 등 타령이 시작된다.하긴 나도 왼 무릅이 다시 아파온다. 함께 왔지만 바쁘게 올라가는 닉을 알 수 없는 어나니머스 팀은 거사의 타령에 신경도 안 쓰고 묵묵히 올라갈 뿐이다. 사방에 보이는 곳 하나 없이 좁은 틈으로 저 아래 민간의 논밭이 보일 뿐이다.다행히 해를 가려서 그렇게 덥지는 않건만 지겨움의 연속이다. 월남의 밀림 속을 계속 헤치고 가는 기분이 든다.
가다가 길가에 흙이 파헤쳐진 곳이 계속 이어진다. 우리는 뭣도 모르고 방태산은 특이한 풀과 나무의 보고인데, 길가에 난처럼 생긴 풀들이 많길래 한 그루에 수백만원 한다는 기형 ‘난’을 캐러 도둑놈들이 일개 분대쯤 이 깊은 곳까지 와서 난을 다 헤치고 담아 갔나 생각하고 ‘자연을 훼손한 도둑놈들은 뒤가 없을 거다’ 라는 저주 섞인 욕도 했건만 야중에 알고 보니 멧돼지 흔적이란 말을 들었다. 구령덕봉 근처에는 멧돝 울음소리까지 들렸다고 한다.개인산에 도착해서 지겨움을 한 잔의 얼음 막걸리도 달랜 뒤 지도를 보니 구령덕봉까지 반밖에 안 왔는데 시간이 두 시간 반이 지났다. 오늘도 역시 우아한 산행은 끝난 것 같다. 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빨리 하기 위해 멤버 체인지. 내가 앞장 선다. 산행 지형이나 양상이 조금도 변화가 없다. 멀리 구룡덕봉 보이는 곳에 이르자 우측에 구름이 낀 산의 연봉들이 이어진 능선들이 보인다. 여기서 비로소 사진 한 장을 찍고 구룡덕봉쪽으로 오르다 임도를 만났다.거기서 ‘뫼산’산악회에서 온 남녀 한 쌍을 만났다.오늘 처음 만난 등산객이다. 적가리 골에서 올라오셨다고 한다. 적갈이 골 갈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작년에 산수 산악회를 통해 아침가리골로 백팽킹을 했을 때 아침가리골 향해 가는 산도 좋았고, 아침가리골 백팽킹이 너무 좋았기에 아침가리골만큼 유명한 삼둔사거리 중 하나인 적가리 골에 대해 물었보았다. 기대보다 별로라고 한다.하긴 보는 것과 직접 백패킹하는 기분은 다를 것이다. 백패킹은 직접 해 봐야 그 맛을 안다. 물길을 계속 가로 지르며 가는 시원한 기분은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산행의 맛과 멋이다.
4.
구룡덕봉에서 탁 트인 저 건너 편의 구름이 몰려있는 산들을 잠깐 숨 쉬듯 보았다. 비가 와서인지 맑은 날씨에 저 멀리까지 보이니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인다.벌써 시간이 세 시가 다 돼 간다. 머무르고 싶지만 마음이 급하다.주억봉까지 30분은 더 가야 할 거리가 남았다.주억봉을 향해 길을 가다 보니 휴양림과 주억봉의 갈랫길이 나왔다. 거기서 ‘산수’에서 나와 ‘뫼산’을 차린 ‘자하’대장님을 만나 인사를 나눈 뒤에 주억봉 올라가다 임꺽정님 내외분을 만났고, 산 정상에서 오늘 처음 대장님으로 자연팀을 이끄신 ‘여명’님을 만나서 사진을 찍었다. 저 멀리 설악능선의 대청봉이 보인다. 지난 주에 걸었던 능선의 모습이 마치 딴 모습을 하고 서 있었다. 미산에서 깃대봉 거쳐 여기까지 오는 길도 아주 어려웠다고 하신다.산 정상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자 했으나 그늘이 없어 여명님과 함께 삼거리에 내려와서 임꺽정님 내외와 함께 담소하며 식사를 했다. 거기서 이제 올라오시는 스케치북 대장님을 뵙고, 물가님은 자운영님 등과 함께 주억봉을 거치지 않고 휴양림으로 내려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가님 답게 책임을 다하시느라 시간을 고려해서 하산하신 듯 하다.
5.
네 시가 넘어서 휴양림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서 알탕을 하고 뒷풀이를 하고 승차하려면 좀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내려가다 보니 휴양림쪽에서 올라오는 우리팀 코스도 상당히 가파르다. 다 내려오니 반가운 물소리가 들리고 이폭포에 가까이 오니 폭포를 이루기 위한 물줄기들이 여기 저기 합수하듯 흘러간다. 은폐와 엄폐가 되는 곳을 찾아 작은 폭포에서 올 누드로 차갑지만 비단같은 촉감의 물에 몸을 담갔다.힘든 산행 후에 물맞이의 행복감. 뭘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올해 알탕의 진수를 최고로 느꼈다. 거사의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드디어 찬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역시 알탕 짱!
최정상이 1400고지이다 보니 가파르게 올라가는 길이 많은 것이 방태산의 특징인 것 같다. 기대와 달리 산 자체가 수려하거나 주변 풍광이 멋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설악산을 제외하고 다른 강원도의 산들이 그런 것처럼 오지와 같은 능선 길들이 연속되다가 정상이나 큰 봉우리쯤 이르면 조금 주변의 풍경이 보인다.강원도의 산들은 모두 최고 등급의 유명 계곡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 아닐까? 애시당초에 지리산을 걸을 때 느낌처럼 멋진 풍광을 보며걷는 능선길 산행이 어려우며, 겸사겸사 멋진 계곡에서 등산의 회포를 푸는 맛을 느끼기 어려웠다. 주어진 등산만으로 당일치기 산행은 거의 끝난다. 이폭포 저폭포도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나마 알탕을 했다는 것이 최고의 만족이었다.마지막 기대인 함께 한 이들과 나누는 하산주의 기쁨도 이 날은 접어야 했다. 자연 휴양림 밑에는 버스가 대기하는 장소밖에 없다.남은 음식으로 자축할 수밖에 없었다. 하산주도 없이 지각하는 사람들을 기다려야만 하는 허탈함..폭포를 자세히 눈에라도 담아 둘걸. 괜히 서둘러 내려왔다는 후회. 참 맹숭맹숭한 끝맺음이다.
첫댓글 안 가 본 곳에 흔적 남기고 온 것을 위안 삼아 봅니다.........희미한 길 찾으며 그래도 살아 있음으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ㅎㅎㅎ
스케치북님이 다시 산행대장이 되어 늠름히 산행을 인도하시는 모습 보니 정말 든든합니다.그렇다고 잘 생기신 분만 챙기면 안 됩니다. 우리처럼 안 생긴 놈도 관심 갖고 챙겨주십시오.
고생 많이 하셨네요. 가리왕산은 지난 겨울 다녀와서 이번 주는 덕유산, 육구종주 갑니다.
평범한 산에서 말객님 뵙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쉽지 않죠. 일정 레벨 이상의 산행에만 참가하십니다.지난 겨울 육구종주가 참 힘들었는데요. 네모님 덕분에 종주가 가능했었습니다.지금껏 기억에 남는 산행이었습니다.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걸음을 늦추셔서 조망이 좋지 않을 때는 육산의 그 부드러움을 함께 나누셨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입니다.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육산을 걷는 기분이 참 좋습니다.하루 종일 걸어도 피곤하지 않은 느낌입니다만 제가 무릎이 현재 안 좋다 보니 좀 나아지는 것 보고 가리왕산 신청 여부를 결정할까 합니다. 물가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연수 때문에 못간 방태산...작년에 오르는 길이 약간 힘들었지만 능선길이 좋았던 생각이 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작년에 다녀오신 방태산산행기를 읽어봤던 기억이 있네요. 이번에 가셨다면 회원님들이 더 좋으셧을 겁니다.산행대장님으로 회원님들께 안내를 잘 하셨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