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명의 재상이 나올 명산… 순창고추장마을 한눈에 조망
경복궁 교태전 뒤뜰의 이름은 아미산峨嵋山이다. 아미산은 경회루 연못을 파면서 나온 흙을 이용해 쌓은 가산假山으로, 담장을 따라 화계 석축을 쌓고 덩굴류의 화초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후원이다. 본디 아미산峨眉山·3,098m은 중국 쓰촨성四川省에 있는 중국 불교성지 4대 명산을 말한다. 중국의 아미산은 ‘산세가 가늘고 길게 굽어진 아름다운 미인의 눈썹과 같다’ 하여 이름이 그리 붙었다.
우리나라에도 아미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많다. 순창 아미산(515m)을 비롯해 ‘작은 설악’으로 불리는 군위 아미산(737.3m), 홍천 아미산(960.8m), 부여 아미산(635m), 당진 아미산(349.5m), 부산 아미산, 곡성 아미산(587m) 등이 있다. 대체적으로 이름에 걸맞은 날렵한 봉우리들을 안고 있다.
기운찬 암봉 올려다보며 산행
순창 아미산은 순창 방면에서 바라보면 살찐 양처럼 보이지만 광주대구고속도로(일명 88고속도로) 변이나 금과면에서 바라보면 우뚝 솟은 단일 화강암봉의 웅장함을 자랑해 감탄을 자아낸다. 위치에 따라서는 북한산 인수봉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아미산은 완주 대둔산의 삼선계단처럼 철재계단을 타고 암봉을 오르는 짜릿함이 있다. 작은 산세에 비해 능선에 바위가 많고 소나무 숲도 울창해 걷기에 좋다. 곳곳에 이정표도 잘 설치되어 있다.
상죽리 또는 모토고개(못도고개)를 들머리로 잡는다면 옹골찬 암봉을 오롯이 올려다보며 오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경사 자체도 상죽리에서 오르는 것이 가장 무난하고 크게 힘들지 않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여러 자료들은 가산(421m)과 탄금정을 연계해 걷기도 하지만 등산로가 묵어 있고 볼거리도 없어 큰 의미는 없다.
상죽리에는 당산나무 두 그루가 있다. 할아버지 당산은 마을 입구에 있고, 할머니 당산나무는 마을회관 앞에 있다. 수령 400년 정도 되는 느티나무는 당산나무 몫의 전답이 있기에 ‘부자 당산나무’라 부른다.

등산객이 많지 않은 듯 잡풀이 수북하게 자라고 있지만 보드라운 흙길이 선명하게 나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좌우로 커다란 소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 삼림욕 장소로도 안성맞춤일 듯싶다.
15분 정도면 쉼터에 닿는다. 소나무 그늘 아래에 의자가 설치되어 있고 조망도 좋다. 아래로 고급스런 금과전원주택단지가 보인다. 순창군과 농어촌공사에서 조성한 이 주택단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길지로 75가구가 순식간에 분양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일설에 의하면 아미산은 ‘다섯 명의 재상宰相이 나올 명산’이라고도 한다. 큰 인물이 날 것을 두려워 한 일제가 정상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런 명산에 전원주택단지 옆으로 대규모 복합리조트 조성이 계획되어 있어 자칫 환경이 훼손될까 걱정된다.
상죽마을에서 출발해 삼거리까지 1.5km로 50분 정도 걸린다. 배미산 정상은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0.5km 지점에 있다. 멀리서 아미산과 배미산을 바라보면 한 덩어리의 산처럼 보인다. 배미산은 아미산의 작은 봉우리로 봐도 무리가 없다.
배미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큰 특징은 없으나 숲이 울창하고 넓은 솔밭길이 조용하고 한적하다. 배미산 정상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청주한씨 가족묘비다. 곳곳에 걸린 산행표지기도 정상 이정표 역할을 한다.
정상에는 잡목이 많아 조망이 막혀 있다. 오던 길에서 10m만 더 진행하면 철재계단에서 조망이 툭 터진다. 건너편으로 가산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정상 주변에는 짐승의 흔적이 많다. 자세히 살펴보니 염소 똥이다. 산 아래쪽에 염소목장이 있어서 방목하는 염소들이 올라오는 것이다.
삼거리로 되돌아와서 아미산 정상 방향으로 50m 정도 진행하면 거대한 신선바위가 있다. 의자가 놓여 있고 우회길이 있다. 여기서부터 바위지대가 시작된다. 커다란 바위 위에 전망데크가 새롭게 설치되었으나 조망대라기보다는 쉼터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소나무가 어우러진 암릉 경치 일품
아미산의 매력은 이곳부터 시작된다. 너럭바위와 너덜바위 사이로 명품 소나무들이 고운 자태를 뽐낸다. 가지가 의자처럼 길게 누운 소나무에서 바라보는 매끈한 화강암봉은 진경산수화나 다름없다. 수직벽면에 철재계단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 압권이다.
사다리 수준의 철재계단을 오를 때는 오금이 저릴 정도로 짜릿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시야가 툭 트인다. 지그재그로 설치된 계단 덕분에 바위 곳곳에 휴식하기 좋은 조망처가 있다. 발 아래로 보이는 대궐 같은 한옥단지는 순창의 대명사인 고추장마을이다. 순창읍내도 한눈에 보인다.
고인돌바위를 지나면 금방 아미산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는 철탑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사방으로 조망이 막힘없이 뚫려 북쪽으로는 순창의 진산 금산(433m)을 비롯해 회문산(837m), 용골산(647m), 무량산(586m)이 거대한 성채처럼 보인다. 서쪽으로는 호남정맥 광덕산(584m)과 산성산이 가깝게 보인다. 동쪽으로는 섬진강 물줄기 너머 동악산(701m), 문덕봉, 고리봉, 지리산까지 바라다 보이고 남쪽으로는 설산(523m), 괘일산(441m) 줄기가 힘차게 뻗어 있다.
정상에서 20여 m 내려가면 이정표가 있다. 직진하면 고추장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쇄되어 대신에 왼쪽 ‘내동리, 고례리’ 방향으로 내려 가야 한다. 경사는 크게 급하지 않은 편이다.
천천히 걸어 10분 정도면 다시 이정표를 만난다. 그대로 직진하면 고례리로 내려가고, 90도로 꺾어 왼쪽 ‘내동리’ 방향으로 가면 금과전원주택단지로 내려간다. 빽빽한 나무사이로 좁지만 선명한 산길이 있다. 전원주택단지가 생기며 새롭게 길을 보강한 듯하다.
10여 분이면 나무의자를 지나고 다시 10여 분 더 내려가면 나무계단을 만난다. 임도와 만나 왼쪽으로 꺾으면 곧장 금과전원주택단지에 들어선다. 아미산 능선이 마을을 둥글게 감싸고 있고 우뚝 솟은 암봉이 망루처럼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산행길잡이
■ 상죽리~임도~이정표 삼거리~쉼터~신선바위 삼거리~배미산~신선바위 삼거리~신선바위~전망데크~철 계단~암릉지대~아미산 정상~이정표~금과전원주택단지 <약 4.8km, 약 2시간 30분 소요>
■ 못도고개(모토고개)~농장~철계단~배미산~신선바위~아미산 정상~이정표~김해김씨 세장산비~굴다리 <약 4.5km, 약 2시간 30분 소요>
교통(지역번호 063)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순창공용버스터미널까지 하루 5회(09:30, 10:30, 13:30, 14:45, 16:10)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요금 1만5,900원. 3시간 20분 소요. 순창공용터미널에서 상죽마을(상죽회관 정류소)까지는 1시간 간격으로 군내버스가 운행한다. 약 30분 정도 걸린다. 택시를 이용하면 7,000원 정도 나온다. 문의 순창택시(652-2288), 순창개인택시(652-2222).
숙식(지역번호 063)
1938년 문을 연 금산여관(653-2735)은 지금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다.
1인 1박 3만 원. 작은 카페인 방랑싸롱을 함께 운영한다. 순창시장 주변에는 순대국밥집이 즐비하다. 토박이들은 ‘2대째 국밥집(653-0456)’을 추천한다. 피순대 양이 푸짐하고 들깨가루 듬뿍 넣은 국물이 진하다. 순대국밥 6,000원, 머리국밥 6,000원, 새끼보국밥 7,000원, 순대수육 대 2만 원, 중 1만5,000원, 소 1만 원.
볼거리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에 가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전통한옥과 숙성항아리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다. 장류명인들이 고추장 및 재래식 된장과 간장, 감·깻잎·오이·마늘장아찌 등 20여 종을 취급하며 마을 전체가 고추장 판매장이자 관광지이다. 장류박물관, 장류체험관, 장류연구소 등이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산경표山經表>를 편찬한 여암 신경준의 생가가 있다. 생가 뒤쪽 귀래정의 경치 또한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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