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31일 묵상(시편 41:1~13)
[지나가고 썩어지는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변함없는 영원의 카이로스를 누리는 가난한 자의 기쁨]
1.시작 기도
아버지, 2016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크로노스의 시간이나 오늘도 아버지의 성실하심으로 말씀 앞에 나와 엎드립니다. 영원 속에 허락된 한시적 시간이나 복음을 통해 영원한 현재를 누리를 수 있는 은혜의 날이니다. 이 아침 말씀 앞에 나왔으나 지나간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어지럽고 혼탁해진 영혼을 주의 보혈로 정케하사 새 영과 새 마음이 되게 하소서. 아들을 힙입고 가오니 젖뗀 아이가 어미품에 안김같이 아버지 품에 안겨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본문 내용
시인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 그 환난에서 주께서 건져주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생명을 주께서 보전해주시고 병들었을 때에 구원하여 회복시키신다.
원수들의 뜻인 사망에서 건져내신다.
이에 시인은 주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며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한다.
그러나 원수는 악을 말하며 어서 빨리 죽고 잊혀지기를 바란다.
그들은 친구인 척 방문하나 소문거리만 말하고 나가서 퍼뜨린다.
모두 수군거리며 가장 최악의 것을 상상하게 한다.
치명적인 병이 들어 다시는 침상에서 일어나 나오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심지어 완전히 신뢰하여 떡을 나눠먹던 절친들도 그를 배반하였다.
기가막힐 상황에서도 시인은 오직 주를 구하며 자비를 베풀어 일으켜 세워주시기를 구한다.
원수들에게 보응하는 것은 주께서 그들이 승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주께서 그를 온전한 중에 붙드셔서 주 앞에서 세워주시는 것이다.
언약의 하나님 안에서 주의 현존 앞에 사는 생명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시인의 유일한 보응이며 그것을 주께서 기뻐하심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영원한 언약의 하나님을 찬양한다.
시인의 기도와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와 고백을 예표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눅 4:18)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를 알아보며 친절을 베푼다.
가난한 자는 누구인가?
존재물을 탐하지 않으며 존재이신 하나님만을 구하는 자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사는 존재됨을 아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가난한 자와 죄인들과 함께 하시며 먹고 마셨다.
율법에 능통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런 예수님을 비난하고 정죄하여 십자가에 넘겨주었다.
그때 예수님을 따르고 동고동락했던 제자들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였다.
이 세상의 메시아를 기대하였으나 저주받은 십자가에 힘없이 죽어가는 예수를 버리고 각기 제길로 가버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이 죄아래에 있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여 생명으로 이끄는 승리임을 알고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조롱에도, 모두가 떠나가고 배신과 거짓된 모함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인 영생을 위해 원수의 뜻인 사망을 꾸짖었다.
마침내 십자가의 죽음으로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었다.
하나님은 아들을 장사한지 3일만에 다시 살리시고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사명을 주신 후 하늘로 올리사 하늘보좌에 앉게 하심으로 만물의 주로 등극시키셨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주가 되어 만물을 통치하신다.
그런데 아직 죄의 세력이 실존하며 마지막 시대를 장악하려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얻는 성도는 날마다 말씀 앞에 나와 생명으로 사는 구원의 실제를 누리는 것이 언약 안에 거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 안에서 어둠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바 되어 살아가는 실존된 운명은 죄이 세력 아래에서 살다가 사망을 삯으로 받는 비참함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성도에게 원수는 죄의 세력이다.
승리의 비결은 이미 승리하신 주 안에 있는 것이다.
날마다 눈을 뜨면 비존재 세력이 흑암과 사망 가운데로 이끌어가려고 친구처럼 잦아온다.
거짓을 말하고 최악의 것을 상상하게 하여 불안과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주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며 말씀 앞에 나아가 죄인됨을 고백할 때 주께서 만물 위로 끌어 올리시며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주앞에 세우신다.
반석 위에 발을 세우시고 견고하게 하신다.
폭풍이는 바다 가운데 있으나 배에서 주무시는 주님 안에서 안식하며 승리의 기쁨을 누린다.
그 기쁨으로 가난한 자를 돌보게 하시는 주님께 찬양하는 자, 그는 실로 복있는 자이다.
3. 나의 묵상
2016년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며 보내는 하루이다.
지나온 시간으 돌아보니 많은 일들이 있었고 다 지나갔다.
다만 지금 내게 남아있는 것은 복음을 알고 생명으로 사는 구원의 감격과 실제이다.
의미있는 인생, 보란듯한 삶을 위해 예수 믿고 교회 안에 있을 때는 후회와 자책, 새로운 결단이 해마다 반복되며 갈수록 마음이 살찐자가 되었다.
하나님 존재를 구하기보다 내 뜻대로 사는 삶을 위해 존재물을 구하였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며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였다.
겉으로는 경건한 자였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이 야망을 위해 사는 자였다.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그런 나를 심판하시고 티끌과 재가운데 있게 하셨다.
그 속에서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갈망하는 목마름이 깊어갔다.
그 목마름의 끝에 주님이 내게 오셨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주님의 복음을 진리로 받게 하셨다.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온전함에 이르는 통합복음이 되어 진리로 계시하셨다.
말씀으로 현현하시는 주님 앞에 벌거벗은 나의 수치가 용납되는 복음의 실제는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의 감격으로 내안에 새겨지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신다.
날마다 생명으로 살아내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다.
4. 묵상 기도
아버지, 존재물을 구하며 보란듯한 인생을 사는 것이 나의 꿈이었나이다.
인정받는 삶, 세상의 부러움을 받는 세상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부르짖었나이다.
주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내뜻을 위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였나이다.
말씀없이 생명없이 사는 마음이 살찐 자였나이다.
그런 나를 불쌍히 여겨 가난한 자가 되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사랑을 따라 내게 심판이 임하였나이다.
티끌과 재 가운데서 아무것도 아닌 자로 사는 실존됨의 한계를 알게 하시며 하나님만을 구하는 가난한 심령을 주셨나이다.
그 목마름의 끝에서 영원의 복음을 듣고 말씀 앞에 나아갔나이다.
보이지 않던 나의 실존됨이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 안에 있는 것임을 알게 하셨나이다.
만물 위 영원의 하나님 품속에 있는 그리스도 주 안에 있는 것이 참된 부요함인 것을 알게 하셨나이다.
썩어질 양식, 만물 안의 존재물을 구하는 어리석음, 사망에 속한 원수됨을 버리고 날마다 주앞에 나와 생명으로 사는 실제의 참된 삶을 살게 하시니 어찌된 은혜인지요!
나도 용납할 수 없는 나를 주안에서 용납하시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어 실로 가난한 자가 되나이다.
그런 자를 보게 하시고 기회를 다하여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마지막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임을 아나이다.
아버지, 한 해가 가고 또 새해가 오나 해아래 새것이 없나이다.
오직 하늘에 있는 기쁨만이 새로운 것이니다.
주 안에서 새롭게 되어 오늘도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