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신론자 친구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한 비영리단체에 소속되어 사대보험에 가입 된 근로자고, 맞벌이가 아니고서는 버텨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금쪽 같은 내 아이들의 교육을 고민하는 30대 부모입니다. 당신과 혹은 주변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저는 목사입니다.
한 케이블 방송의 <성지순례>란 방송을 종종 봅니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의 젊은 성직자들이 MZ의 문화를 경험하는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성직자들이 탕후루를 먹어보고, 노래방을 가고, 중고거래를 하고, 바디프로필에 도전하는 모습이 무종교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친구들에게 어떻게 느껴질까요? 대치동 학원가의 밤 풍경을 보며 치열한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고 가슴 아파하는 젊은 성직자들의 모습을 보며 저도 함께 아파하기도 하였습니다. 종교인들이 살아가는 오늘날의 성지는 교회나 절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국사회 어디나임을 잘 깨닫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사실 개신교 목회자에게 노래방에 가고 탕후루를 먹는 일은 어색한 일은 아닙니다. 적어도 개신교는 산 속이 아니라,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피정과 정신수양을 하기보다 지역사회 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직자라고 하지만 개신교 목회자는 이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요. 결혼도 하고요! 주변에 목회자 혹은 기독교인을 만나보셨나요?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궁금하군요.
그런데요. 드라마나 영화, 미디어에 등장하는 개신교는 종종 악당으로 그려집니다. <수리남>의 전요환 목사(황정민 분)는 천국이 아니라, 마약왕국을 건설했으며, <더 글로리>의 목사 딸 이사라(김히어라 분)는 친구에게 지옥을 선물하였습니다. <비질란테>에서도 목사가 교회에서 신앙교육은 제대로 하지 않고 불법 자금 세탁이나 하다가, 정의의 사도 비질란테에게 참교육을 받았습니다. 더 찾아볼까요? 생각나는 캐릭터 하나는 더 떠오르시지 않나요? 이런 개신교가 당신이 경험한 것과 비슷한가요? 직접 경험한 것과 언론, 미디어를 통해 본 것의 차이도 조금은 있지 않으신가요?
교회 안의 누군가는 이러한 현상을 세상 문화와의 영적인 싸움이라고 여깁니다. 안티세력과의 전쟁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미디어가 행하는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를 멈춰달라고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현상들이 교회가 지역사회 안에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오늘도 일부 교회와 목회자의 비행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는 개신교의 민낯이고요. 이들을 편들어주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교회가 잘못해왔기 때문에 그것이 대중문화 안에 적나라하게 매개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만큼 종교의 일탈이 자극적인 소재로 사용되는 것 기저에는 어쩌면 종교인이라면 좀 달라야하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의 기대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도 생각이 드네요. 더 가까이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진정 놓치지 않아야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미디어 속 기독교의 모습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교회 안 일부 사람들의 안티기독교가 더 양산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와 달리, 적어도 교회 밖의 젊은이들은 교회를 욕하기 전에 기대조차 하지 않으며 관심 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냥 "여러분이 믿는 신 잘 믿고 나만 귀찮게 하지 않으면 됩니다"가 당신을 비롯한 요즘 젊은 세대들의 생각이겠지요. 최소한 인간답게 살아가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안끼치면 충분한 세상에서 어쩌면 기독교인들은 너무 그대를 불쾌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염려도 됩니다.
얼마 전 <개그콘서트>가 부활했습니다. 반가움에 본방사수의 옛감성을 되살리기 위해 일요일 밤 TV 앞에 앉아서 방송을 시청했습니다. 여전한 재미도 있었지만, 아쉬움이 더 많이 남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는데요. 봉숭아학당(언제적!)의 이상해 씨역을 맡은 개그맨 신윤승 씨는 특정 브랜드도 말하지 못하는 방송법을 저격하며 "아니 어떻게 웃기라고!"라 외칩니다. 방송법 때문에 제대로 웃기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돌아온 개그콘서트에서 제일 웃긴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개그콘서트 종영 이후 상표, 브랜드, 정치 등 조심해야 할 것들에서 벗어나, 유튜브 세상에서 성공한 개그맨들이 많아지기도 했지요. 이들의 행보를 응원하며, 변화 된 미디어 생태계의 현실을 바라보면 참 신기합니다. <개그콘서트>도 기존의 플랫폼에서 부활하였지만, 추억과 함께 새로움이란 키워드도 잘 살려내길 응원해봅니다.
방송에서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종교"입니다. <성지순례>와 같은 방송은 전에도 있어왔고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소재로 등장해왔지만, 종교에 대한 언급은 예민한 일입니다. 특정 종교에 편향되면 안되지요.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자신의 종교를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때는 연말 시상식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유튜브 세상은 다르죠. 유튜브에서 브랜드, 정치 얘기를 편하게 하듯이 자유롭게 종교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출연진들이 자신의 신앙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김신욱 축구선수는 이제는 스포테이너가 된 이천수 씨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예배모임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흥민 선수가 살면서 예배를 두 번 드렸는데 자신과 함께 한 것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손흥민이 국가대표 주장으로서 부담을 가지고 있을때, 본인이 위로해주고 격려해준 이야기도 전했지요. 예전 같았으면 댓글 창에 '손흥민을 왜 전도하려 하냐', '우리 흥민이형 내버려두라'며 기독교인이 지겹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신욱 씨를 응원하는 반응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난 무교지만 저렇게 종교적 신념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하시는 분들이 존경스럽다"라는 댓글이 기억이 나네요. 하나의 기독교인이 아니라, 사람냄새나는 한 따듯한 인간으로 먼저 받아들여지는 것이 꽤나 인상적입니다.
무신론자인 당신에게 억지로 제가 믿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공동체가 당신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사회경제가 발전했다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살기 힘든 이 세상이지요. 이런 세상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손 내밀면 잡아줄 여러분의 기독교인 친구가 곁에 한 명 씩은 있을 거라고 저는 믿어요. 사람 사이의 연결은 쉬워졌지만, 더욱 파편화되고 쉽게 외롭게 되는 이 세상에서 함께함의 가치를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이 있음을 기억해주세요.
당신 곁의 목사가.
구선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