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봉산 가는 길
留春春不住(봄은 붙들어도 머물지 않네)
春歸人寂寞(봄이 가면 마음은 쓸쓸하고)
厭風風不定(바람이 싫지만 그치지 않아)
風起花蕭索(바람 일어 꽃 지네)
--- 백거이(白居易), 「낙화고조부(落花古調賦)」
▶ 산행일시 : 2011년 3월 19일(토), 황사 짙게 낌
▶ 산행인원 : 9명(영희언니, 버들, 드류, 감악산, 인치성, 송주, 신가이버, 가은, 메아리)
▶ 산행시간 : 9시간 50분(휴식과 점심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5.3㎞
▶ 교 통 편 : 두메 님 25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 따름)
06 : 4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8 : 05 ~ 08 : 15 - 인제군 남면 어론리(於論里) 다물2교, 산행시작
08 : 54 - 571m봉
09 : 38 - 753m봉
10 : 25 - △890.0m봉
11 : 40 - 갑둔고개
12 : 08 ~ 12 : 45 - 응봉산(鷹峰山, △887.1m), 점심식사
13 : 24 - 881m봉
14 : 02 - 인제군 남면 어론리 신수리(新水里) 삼거리
15 : 27 - 소뿔산(1,108m)
16 : 36 - 암봉
16 : 46 - △1,076.4m봉
17 : 00 - ┣자 능선 분기봉
18 : 05 - 인제군 남면 어론리 신수리, 산행종료
21 : 48 - 동서울 강변역 도착
1. 가야 할 응봉산
▶ △890.0m봉, 갑둔고개
집 주위에 돌로 쌓은 울타리를 ‘다무리’라고 한다. 이 고장에서는 집집마다 다무리를 둘렀다고 하
여 웃다무리, 새다무리, 아랫다무리 등 마을이 있다. 한편 ‘다물’은 ‘담불’의 일부 지방 방언으로 곡
식이나 나무를 높이 쌓아 놓은 무더기를 뜻한다. 아마 다무리는 다물의 늘린 말일 것 같다. 상남으
로 가는 446번 도로가 갑둔고개 넘기 전 웃다무리까지 ‘다물’자 붙은 다리는 6개다.
다물2교로 소양호로 흘러드는 지천을 건너자마자 차에서 내린다. 서울 빠져나올 때 우중충하던 날
씨는 갰다. 산기슭 수로 옆 임도 돌아가는 모퉁이로 가서 능선 끝자락에 붙어 잣나무숲으로 들어간
다. 산행 시작할 때에는 으레 그런다. 가파른 사면 처음 10분이 가장 힘들다. 숨은 견디기 힘들 만
큼 가쁘고 심장은 터질 듯 고동치고 얼굴은 빨개지고 구슬땀은 눈으로 흘러 눈 못 뜨게 따갑다.
도중 발 헛딛거나 미끄러져 스텝이나 리듬이 헝클어지기라도 하면 몇 갑절로 힘이 든다. 지능선의
흐릿한 인적은 울창한 잡목 숲에 가렸다. 고개 숙이고 돌진한다. 한 피치 올라 허리 펴고 가는 걸음
으로 숨 고르며 다음 피치를 예비한다. 10분. 이런 때는 퍽 긴 시간이다. 지능선 합류하고 가파름은
한결 수그러든다. 얼굴에 맞는 바람이 상쾌하다.
발걸음이 가볍다. 교통호 넘어 571m봉을 오른다. 짧게 내렸다가 길게 올라 591m봉. 이어 753m봉,
860m봉. 표고점 하나 얻는 게 결코 쉽지 않다. 피와 땀을 바치는 경우가 흔하다. 단순히 표고 차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뚝뚝 떨어져 앞 봉우리의 높이 한껏 올려놓고서 오른다. 내림 길 낙엽 밑은 얼
음장이다. 여지없이 미끄러진다. 기껏 가려 밟지만 러시안 룰렛게임 다름 아니다.
△890.0m봉은 마루금에서 북쪽으로 살짝 벗어나 있다. 배낭 벗어놓고 들린다. 바위 돌아 오르면
공터 위쪽에 삼각점이 있다. 어론 304. 나무숲으로 앞뒤 시야 가려 건너 망태봉도 응봉산도 보이지
않는다. 갑둔고개로 향한다. 낙엽 길 한갓지지만 예의 살펴 걷는다. 820m봉 오르는 북사면은 한겨
울 눈길이다.
820m봉 넘어 나는 듯 내닫다 왼쪽 사면아래 미약골로 들어가는 임도가 보여 갑둔고개 마루금의
절개지는 절벽이겠구나 싶어 미리 임도로 내린다. 현명했다. 갑둔고개는 엄청나게 깊다. 이 근처
산불감시초소로 출근하신다는 빨간 모자 쓴 할아버지와 수인사 나누고 임도 따라 고갯마루 훨씬
비켜 내린다.
2. 갑둔고개 옆 골짜기
3. 오른쪽이 소뿔산
4. 지나온 능선, 응봉산에서
5. 왼쪽부터 가은, 감악산, 영희언니, 응봉산에서
6. 왼쪽이 소뿔산
▶ 응봉산(鷹峰山, △887m)
갑둔고개 너머 임진왜란 때 군사들이 진을 쳤다하여 갑둔리(甲屯里)라 한다. 예나 지금이나 군사상
요지인 모양이다. 지금은 우리 국군이 부근에 진 치고 있다. 응봉산 오르는 갑둔고개 오른쪽 골짜
기는 수로로 정비하였는데 연단 대폭인 와폭의 물길이 아직까지 얼어붙어 보기 드문 빙폭의 장관
을 연출하고 있다.
빙폭 오른쪽 옆으로 오르다 와폭 살금살금 건너고 두릅나무 섞인 잡목 숲 뚫는다. 응봉산이 가깝
다. 콘크리트 포장한 군사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는 응봉산 정상까지 마루금으로 나 있다. 도로 따
라간다. 겨우내 사용하지 않아 도로에는 눈과 얼음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철조망 친 군부대 시설물
앞마당에서 점심자리 편다.
전깃줄 울리도록 부는 바람이 비켜 가는 양광(陽光) 따스한 마당이다. 신가이버 님이 가져온 버너
로 추어탕 데우고 라면 삶고 커피 끓인다. 반주하는 이가 적어 술탐 적이 부려도 되겠다. 이 응봉산
은 2006.4.8. 황사 짙던 날 오개탕고개에서 올랐었다. 오늘 황사는 그때보다 다소 덜하다. 얼음 깔
린 슬랩 돌아 오르면 응봉산 정상이다. 삼각점은 어론 409, 2005재설.
등로는 군인들의 행군 산행로다. 밧줄 잡고 슬랩 내리고 얕은 교통호와 나란히 간다. 881m봉 오르
는 사면은 빙벽으로 변했다. 밧줄이 길게 달려있다. 881m 정상은 암봉인데 오른쪽으로 우회로가
있지만 영희언니 따라 직등한다. 바위 싸안고 슬랩으로 내린다. 손맛 본다. 쭉쭉 내리고 △798.4m
봉 오르기 전 안부에서 신수리로 내린다.
자작나무 숲을 지난다. 하얀 수피의 자작나무 숲을 보면 저절로 기분이 환해진다. 산기슭은 작달막
한 낙엽송지대. 아무렇게 자란 잔가지 후드득 헤치며 신수리 도로로 떨어진다. 옛날 어떤 사람이
이 산에 들어가 마음을 닦기 위하여 공부를 하였다 하여 신수리라 한다(국토지리정보원). 그런데
新水里로 새긴다.
운이 좋았다. 이 근처가 육군 과학화전투훈련단의 위수지역이어서 자칫 군부대의 경계에 걸렸더
라면 얼씬거리지도 못할 터. 더 못가겠다는 송주 님을 남겨두고 우리는 소뿔산으로 향하고, 두메
님이 송주 님을 차에 태우러 이리로 왔는데 그 두 사람은 군부대의 검문에 시달리고 소뿔산에 오른
우리가 내려오기 기다리느라 이리저리 피해 다녀야했다.
7. 오른쪽이 소뿔산
8. 자작나무숲
9. 영춘기맥
10. 소뿔산 가는 길
11. 소뿔산 가는 길
12. 소뿔산 사면
▶ 소뿔산(1,108m)
눈길. 겨울을 간다. 눈 녹은 낙엽 길보다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아예 조심하는 눈길이 낫다. 가도 가
도 설원이다. 맨 앞 한 사람의 발자국으로 여덟 사람이 간다. 봉봉을 넘는다. 신수리 도로에서는 눈
들어 한 뼘이 공제선 영춘기맥이었는데 공제선은 우리를 홀리는 듯 달아난다. 키 작은 산죽 숲 지
대에 든다.
펑퍼짐한 설원을 대각선으로 질러 영춘기맥에 들고 소뿔처럼 솟았다는 소뿔산 정상이다. 그러나
정상은 넙데데하다. 오늘로 세 번째 오른다. 정상주 분음하고 하산 길을 궁리한다. 여태 눈길에서
고역 치른 일을 생각하면 당초의 신흥동이나 달음재가 양지쪽이라 수월하겠는데 다시 두메 님더
러 그리로 다시 오라하면 나는 불뚝 성질내겠다.
△1,076.4m봉 지난 ┣자 능선 분기봉에서 신수리로 내리기로 한다. 영춘기맥의 등줄기를 간다. 유
무명 1,000m 넘는 고봉이 줄줄이 이어진다. 산죽 숲 사이로 난 길이 빙판이다. 두어 번 넉장거리
하고나서 길 비켜 산죽 숲으로 간다. 건들기라도 하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큰 바위가 놓인 암반에
들려 백우산에서 백암산에 이르는 산릉을 감상한다.
△1,076.4m봉 전위봉은 첨봉이다. 왼쪽은 깎아지른 바위절벽이고 오른쪽도 가파르지만 잡목이 섞
였다. 오른쪽으로 오른다. 다행히 굵은 밧줄이 달려있다. 밧줄이 없다면 오르기 아주 곤란할 뻔했
다. 정상은 암반으로 사위가 탁 트이는 경점이다. 온길 갈길 뿌듯이 바라본다. 뚝 떨어졌다가 다시
급사면 치고 올라 △1,076.4m봉. 소뿔산에서 말하는 소뿔(牛角)은 여기일 것 같다. 서너 평 공터 가
장자리의 삼각점은 어론 24, 1989 재설.
예로부터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산행 내내 산하가 전례 없이 조용하다 못해 허
전하다. 살다보니 이런 (좋은) 날도 있다며 신모씨(이러면 익명으로 모르려나)가 대간거사 님 자리
비운 사실을 종종 들먹인다. 마음 둘 데 없어서 그랬을 것. ├자 능선 분기봉. 신가이버 님 따라 오
른쪽 사면을 트래버스 하려다 그 설벽의 가파름에 그만 움찔하여 뒤로 돌아서 직등한다.
하산. 영춘기맥 벗어나 오른쪽 능선으로 간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지막
한 봉봉 오르내리는 리지성 등로다. 인적은 잡목과 빙판으로 가렸다. 길 없는 우리의 길이다. 잡목
헤치는 데 열중하다보면 발밑이 위태롭고 발밑 살피다보면 잡목에 휘둘리기 예사다. 날랜 나였기
미끄러지는 것을 불과 수회로 막았다.
950m봉 내린 안부에서 잠시 휴식. 산그늘이 길다. 1시간 후면 해 진다. 갈 길은 멀다. 봉우리 하나
넘는 것이 대단한 고역이다. 사면의 깊은 적설에 미끄럼 제동하여 돌아 넘기도 한다. 드디어 경사
완만한 능선이고 무덤 나왔다고 희희낙락하기는 이르다. 방심하면 에누리 없이 넘어진다. 너덜사
면 가로질러 낙엽송 숲 지나고 개울 건너 도로로 올라선다. 스틱 접으며 둘러보니 엉덩이 멀쩡한
사람이 없다.
13. 멀리 왼쪽은 백우산, 오른쪽은 매봉산
14. 소뿔산 내린 등로
15. 소뿔산
16. △1,076.4m봉과 영춘기맥, 먼저 오른 일행이 보인다
17. 가운데는 응봉산, 그 뒤는 망태봉
18. △1,076.4m봉 옆의 암봉
첫댓글 모처럼 짭짤함()을 느낀 산행이었습니다..소뿔산을 오를때는 꽤나 힘이 들었지만 영춘지맥길에서의 잔재미 아주 좋았습니다
감악산형님 카메라 바뀌셨네 당연찍는 자세도 바뀌고 아직도 눈이 남아 있네요 자작나무는 어제 보아도 멋지고
김부리,다물,갑둔고개 등 그 지방에 유별난 지명은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와 관련되어 있다는 주장을 역사스페셜 프로그램에서 본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