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白翎島)의 추억<4>
찌렁새와 태풍새
백령도에는 철새로 찌렁새와 태풍새로 불리는 작은 새가 들렀다 가는데 3월 중순이면 2~3주 정도 백령도에 잠시 나타났다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나그네새라고 한다.
찌렁새는 찌르레기 종류 같은데 크기는 참새 두 배쯤 되고, 태풍새는 참새보다도 작은 새인데 왜 그런 이름들이 붙었는지, 또 원래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찌렁새(북방 쇠 찌르레기) / 찌렁새 구이 / 댕이(딱정벌레)
이맘 때 쯤 소일꺼리를 좋아하는 이곳 사람들은 시기에 맞추어 찌렁새와 태풍새 덫을 놓아 술안주 하는 재미에 푹 빠지는데 어떤 이들은 작은 쥐덫모양의 덫을 여나무개 씩이나 만들어 가지고 있다고 한다.
미끼로는 댕이를 쓰는데 소똥을 쌓아놓은 곳을 뒤지면 나오는 딱정벌레 모양의 까맣고 조그만 벌레다.
스프링이 달린 덫의 입을 벌리고는 그 안쪽에 댕이를 다는데 산 채로 달아야 하기 때문에 실로 묶어 매다는 아주 세심한 작업이라고 한다.
인적이 드문 산기슭의 밭 언저리에 새덫을 한꺼번에 여나무 개 아침녘에 놓고는 저녁때쯤 걷어 온다고 하는데 새들은 덫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미끼를 쪼다가 술안주가 되는 것이다.
퇴근준비를 하는데 학교 앞에 사는 한 분이 새를 잡았다고 소주나 한잔 하자는 전화가 와서 냉큼 달려갔다. 석쇠에 소금을 얹어 새를 굽는데 고소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운다.
찌렁새는 조금 커서 가위로 잘랐지만 씹으면 뼛조각을 발라내야 하는데 태풍새는 통째로 입에 넣으면 뼈까지 아작아작 먹을 수 있고 그 기막힌 맛은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소주 한잔에 태풍새 한 마리...
참새가 소등에 앉아 『내 살 한 점이 네 한 마리 고기하고 안 바꾼단다.』고 했다는 옛말이 과연 헛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가세요, 봉삼씨
용기포 선착장 / 장촌포구 / 아낙들 조개 캐기 / 북포초교
인천에서 배를 타면 도착하는 항구가 백령도 용기포선착장(龍機浦船着場)이니 백령도의 관문인 셈이다.
아늑히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산 뒤쪽은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는 사곶 해안으로 예전 모래가 단단하여 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했고 자동차도 다닐 수 있었지만 지금은 뒤쪽 백령호수로 인해 모래가 물러져서 자동차도 다니지 못하고, 대신 조개가 엄청 많아 주로 조개를 캐는 해변으로 바뀌었다.
백령도 남쪽에 있는 가장 큰 어항(漁港)인 장촌포구는 백령도 근해는 물론, 가까운 대청도와 소청도로 낚시를 가는 어선들이 출항하는 어항이다. 백령도 보다는 대청, 소청이 훨씬 낚시가 잘되기 때문에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은 주로 대청도로 간다. 내가 근무하던 북포초는 해병여단본부 바로 앞에 있다.
작년 추석 특집이었던가? 인간극장 「어디가세요 봉삼씨」가 방영된 후 미국에 사는 딸이 언젠가 귀국하면 백령도에 가서 꼭 봉삼씨를 만나보고 싶다는 전화를 해서 웃은 적이 있다.
백령도 북포초등학교 바로 앞에 사는 봉삼씨는 초등학교 때 해안에서 멋모르고 지뢰를 가지고 놀다 터지는 바람에 두 눈을 잃었다. 비록 눈은 안보이지만 8순의 노모를 모시고 사는 올해 쉰 한 살의 봉삼씨는 손재주가 뛰어나서 못 만들고 못 고치는 것이 없다.
주로 노인들이 많은 동네이다 보니 경운기 고치기, 보일러 손보기, 전구 갈아 끼우기 등은 물론이려니와 바다에서는 낚시, 해삼 잡기, 전복 캐기, 미역 캐기까지 못하는 일이 없다. 닭도 키우고, 농사도 짓는다.
또 연로하신 어머니를 위해 보조 보행기로 바퀴달린 차도 직접 만들고 페인트칠도 예쁘게 한다.
언젠가는 벽에 타일을 붙이는 사람 뒤에 섰다가 줄이 비뚤어졌다고 해서 자로 재어보았더니 정말로 비뚤어졌더라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다.
인간극장에서, 도시의 한 여인이 찾아와 얼마동안 동거하다가 재산을 몽땅 털어 도망가 버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장애인으로 받는 수당을 모아 놓은 것은 물론, 통장에서 마이너스로 뺄 수 있는 한도까지 몽땅 빼 가지고 도망가 버리지만 봉삼씨는 그 여자를 원망하지 않는다. 성치 않은 자신과 얼마간이지만 함께 살아 준 것에 감사한다고....
그 이후 서울에 산다는, 40세 중반의 한 여인이 또 찾아왔다. 자칭 글을 쓴다는 그 여인은 봉삼씨의 인간성에 반하여, 또 백령도가 좋아 그냥 봉삼씨와 살겠다고 왔다고 한다.
먼저 여자로 인하여 인생의 비애를 맛본 봉삼씨도 그러하거니와 쇼크로 몸져눕기까지 했던 봉삼씨 어머니도 막무가내로 밀어 냈지만 여자가 찰떡처럼 들러붙어 몇 개월을 살았다고 한다.
올해 4월초 봉삼씨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동네사람한테 물어 보았더니 그 글 쓰는 여자는 가버리고 또 다른 여자가 와서 산다고 한다. 그런데 다행히 가버린 여자가 돈 가지고 갔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물론 가지고 갈 돈도 없었겠지만...
오늘 학교 앞 농협에 갔는데 새로 온 여자가 봉삼씨 손을 잡고 농협에 와서 돈을 찾고 있었다. 그러려니 해서 그런지 봉삼씨의 모습이 예전보다 더 늙어 보이고 활기가 없어 보여 안타까웠다. 참 세상은 요지경 속인 것 같다. 제발 더 이상 봉삼씨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2006년에 내가 썼던 글 인용>
까나리 액젓
까나리 / 양미리 / 까나리액젓 담그기
백령도 근해에서는 까나리가 많이 잡힌다. 까나리는 동해안에서 잡히는 양미리와 흡사한데 좀 더 길고 큰 물고기이다. 양미리는 대체로 10cm 미만이고 까나리는 크기는 15cm에서 큰 것은 45cm까지 자라는 것도 있다니 훨씬 큰 물고기이다. 사람들은 양미리와 비슷하다고 하나 실은 종이 다른 물고기라고 한다.
식용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비슷해서 구워먹기도 하고 말려서 멸치처럼 먹기도 하는데 이곳 백령도에서는 까나리로 주로 액젓을 담근다.
백령도 사람들은 까나리액젓을 너무나 좋아해서 김장을 담글 때 들어가는 것은 필수이고 모든 반찬 조미료로 액젓을 사용한다. 특히 백령냉면을 먹을 때 국물을 남겼다가 액젓을 타서 마시는 것처럼....
그런데 백령수협에서도 까나리 액젓을 판매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수협의 까나리액젓은 여러 곳에서 수합하여 판매하는 것으로 믿을 수 없고 오로지 장촌포구에서 만드는 액젓이 최고라고 한다.
대체로 액젓을 만들 때 까나리를 깨끗이 씻어 국산 소금과 1대 1로 섞어서 통에 담고 1년 동안 그대로 놓아두면 까나리는 몽땅 녹아버리고 물만 남아 액젓이 되는 것인데 다른 포구에서는 잡어를 골라내지 않고 함께 넣어 삭히지만 장촌포구 어촌계에서는 모든 잡어는 말끔히 골라내고 오로지 까나리만 넣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나도 몇 번 액젓을 사다가 김장을 담갔는데 장촌포구의 액젓을 사다 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