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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김민지가 되자>
"여기 알바생들은 왜 다 이름이 김민지야?”
오랜만에 짠 과자가 먹고 싶어 집 앞 편의점에 들어갔을 때였다. 계산대 앞에 술에 취해 발음이 꼬부라진 술주정뱅이 하나가 알바생을 붙잡고 그렇게 묻고 있었다.
“아 왜 김민지냐니까. 거 내가 여기 맨날 오는데 평일 일하는 사람들이랑 주말 일하는 사람들이랑, 전부 이름이 김민지잖아.”
내 계산을 빨리 안 해줘서 조바심이 난다기보다는, 알바생이 불쌍했다. 취업준비생이던 시절 나도 여러 알바를 전전했는데, 편의점도 그 중 하나였다. 식당 홀 서빙이면 사장님이나 주방 이모들이 도와주기라도 하지, 편의점은 한 번 진상이 걸리면 정말 답이 없다.
나는 이름이 다 같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십중팔구 같은 명찰을 돌려 쓰는 거였다. 아마도 평일 오후 알바생의 이름이 김민지던가 할 거였다. 주말 알바생들의 명찰은 보통 없었다. 알바생이 당황해하면 내가 끼어들어 대답할 심정으로 기회만 엿보고 있는데, 알바생이 입을 열었다.
아마도 새로 들어온 것 같은, 처음 보는 20대 초반의 젊은 여자 알바생은 곤란해 하는 기색도 없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야 모두 이름이 김민지니까요.”
의문을 종식시키는 아주 간단한 대답이었다. 진상을 상대하는 것 치고는 단호한 것이, 조금 이상한 답변 축에 들었다. 그러나 앳된 얼굴의 알바생을 보면서 아마도 편의점 알바가 처음이라 당황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술주정뱅이는 술에 취해 사고판단이 흐려진 뇌로도 뭔가 의문점을 잡아내야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따지고 들었다.
“아 글쎄 내가 봤다니까. 평일 야간에 일하는 그, 뭐냐, 사장님도 김민지고 방금 전까지 여기서 일하던 남자 알바생도 김민지고, 다 김민지란 명찰을 달고 있잖아!”
“그러니까 정말 이름이 다 김민지라니까요, 손님.”
한 손에는 포스기를, 한 손에는 참이슬 병을 잡은 알바생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술주정뱅이는 끈질기게 말을 걸어 댔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전부. 다. 이름이. 김 민지에요.”
일종의 평행선을 보는 것 같았다. 영원히 만날 일도 타협할 일도 없을 대화였다.
다행히 술주정뱅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눈치가 보이는지 씨근거리며 비틀비틀 걸어나갔다. 나는 알바생의 신선한 대처가 마음에 들었다. 허니버터칩 하나를 올리며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와. 단호하네. 잘 했어요. 저런 진상들은 저렇게 당해봐야 돼.”
알바생은 머쓱하게 웃었다. 바코드를 찍는 소리가 들리고 알바생이 대답했다.
“아니에요. 틀린 말도 아닌 걸요, 뭐.”
“네?”
“틀린 말이 아니라구요. 전부 다 이름이 김민지에요. 참 신기한 우연이죠?”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걸까 싶어 알바생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알바생 또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 눈을 피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재차, “아니, 그러면 진짜로 전부 이름이 김민지라는 거에요?” 하고 묻자 알바생은 또 천연덕스럽게 “그렇다니까요.” 하고 대답했다.
나는 이 알바생이 능숙한 거짓말쟁이인건지, 아니면 그저 나를 놀리기 위해 하는 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물론 알바생의 말이 사실일 확률도 존재했지만, 편의점에서 일하는 여섯 명의 이름이 모두 똑같이 ‘김민지’일 확률은 사실상 0에 가까웠다.
“참, 재미있는 농담이네요.”
“농담 아닌데. 천 오백원입니다. 할인, 적립 하시나요?”
알바생이 말을 바꾸려 들었다. '장난이 심하네.'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카드를 주며 나는 계속 말을 걸었다.
“내 이름도 민지라서 알아요. 흔한 이름이죠? 주말이나 야간은 명찰 만들기 귀찮아서 같은 명찰 돌려 쓰는 거잖아요.”
내 이름이 '민지'라는 부분에서 알바생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를 뚫어지게 한 번 바라보았다. 피곤해 보이는 눈매 아래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재빨리 결제를 끝낸 뒤 카드를 되돌려주며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대답했다.
"아니요. 모두 이름이 김민지가 맞아요. 야간이며 주말에 일하는 남자 알바생까지 전부 김민지에요. 신기한 우연이죠?"
신기한 우연이라기보다는 소름이 돋았다. 살면서 김민지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만 일하는 편의점이 어디 있을까? 하물며 남자 중에서 김민지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알바생이 나를 골탕먹이려고 한 건지, 아니면 진짜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태로 편의점을 나섰다.
'그래. 알바생이 거짓말을 한 거겠지. 진짜겠어?'
하지만 계속해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명찰에 적힌 ‘김민지’란 이름을 봤을 때부터 머릿속에서 떠오르던 친구 때문일지도 몰랐다.
당연하게도, 그 친구의 이름도 김민지였다. 내 이름도 ‘민지’였기 때문에 학창시절 내내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는 사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와 친해져 있었다. 나에게 먼저 말을 건 것도 그 친구였다. 강의가 끝나고 점심을 먹을 사람이 없어서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였다.
“저기! 우리 같이 밥 먹을래?”
대학교 시절의 나는 숫기도 없었고,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신입생 OT에서도 쥐 죽은 듯이 있다 왔었기에 괜찮은 제안이었다. 그 애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김민지’였으니까. 솔직히, 민지와 민지가 다닌다니, 고등학교 시절 내가 ‘작은 민지’로 불린 이후로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자신만만하게 쳐다보는 눈빛이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그 애는, 나와 이름만 같고 성격은 정반대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나는 조용했고, 그 애는 시끄러웠다. 나는 키가 작았고 그 애는 키가 컸다. 나는 장학금을 받는 모범생이었고 그 애는 곧잘 C나 D를 받곤 했다. 조별과제를 할 때에도 쉬웠다. 내가 PPT를 만들고 걔는 발표를 했다. ‘너희는 투민지네? 민지민지? 더블민지?’ 이런 식상한 농담을 들을 때면 솔직히 기분이 나빴지만, ‘민지’랑 있다 보면 어느샌가 웃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의 기분 나쁨은 참을 수 있었다.
우리 둘은 모든 것이 달랐고, 그렇기에 서로 잘 맞았다. 그러나 가끔, 그 애가 정 떨어질 때가 있었다. 우리 둘 다 술이 약해서 술을 마시는 경우는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시험이 끝나고 나면 하루 종일 같이 있다가 밤 쯤 맥주에 치킨을 마시러 가곤 했다. 그러다 술에 취하면, 그 애는 꼭 자기 이름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는 내 이름이 싫어. 너무 흔해. 흔한 이름이면 오래 산다지만, 너랑 나도 그래- 이제 더 이상 ‘초등학교 김민지1’ 이라거나, ‘고등학교 김민지’ 이렇게 저장되는 굴욕은 피하고 싶어.”
“그렇지.”
“1반 김민지는 공부를 잘하고 옆반 김민지는 예쁘다는데, 넌 뭐니. 이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 이름엔 힘이 있다지. 이런 이름은 기억에도 남질 않아. 넌 만화나 소설 주인공 이름이 김민지인걸 본 적 있어?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나 연예인 중에서는? 기억에 각인될 만한 이름이니? 흔한 엑스트라한테나 써 주는 이름이야.”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말 했었어?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작은 민지’였다니까. ‘큰 민지’랑 가끔 지나가다가 복도에서 마주치잖아? 그럼 기분이 이상했어. 같은 반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는데도 왠지.”
내가 맞장구를 쳤다. (그 애와의 대화에서 주로 나는 맞장구를 치는 역할이었다. 나는 말재주가 없었다.) 나도 이름이 같았으니까 공감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다른 우리 둘이 같은 건 이름뿐이었으니까.
“너는 유민지잖아. 민지란 이름도 순우리말이고……. 민지에도 급이 있다는 걸까?”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나는 ‘유민지’고 푸념쟁이 친구는 ‘김민지’ 였다. 그래서 뭐? 그게 내가 겪은 고통을 없던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 애는 자기가 겪은 일들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 동명이인으로 고통 받은-자기랑 똑같은 이름의 ‘민지’가 존재하는데도! 무슨 불행 배틀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름 얘기가 나오면 꼭 그랬다.
“있잖아, 20대 여자 10명이 모이는 좌담회에 가면 김민지가 두 명이야. 우연치고는 소름돋지 않니? 열 명 중에 두 명이 김민지라고! 하다 못해 중고거래를 해도 판매자 이름이 나랑 똑같아!”
“그래, 그래. 지금 그 두 명이 여기 있네. 너 취했어. 이제…….”
“너는 유민지잖아! ‘유 민 지’. 고등학교 때 다니던 학원에서는 내 이름이 너무 많다고 전화번호로 찾아야 된대. 하다못해 투표를 하러 가도, 선거인이 '김민지가 너무 많아'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주민등록번호까지 일일이 확인해야 하니……."
그러고는 푹 고개를 숙였다. 평소에는 저 정도까지 얘기하지 않았다. 날 웃기려고 동명이인에 관련된 농담을 몇 가지 하다가 ‘내가 너무 투덜댔나?’ 라며 낄낄대는 선에서 끝났을 것이다. 술은 사람의 본심을 이끌어낸다. 나는 그 애가 마음속에 자신의 이름에 대한 얼마나 많은 분노를 품고 있을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편의점에서 ‘김민지’ 사건(내 인생에 저런 기묘한 사건이 얼마나 더 있겠어? 하는 마음이었다)을 겪은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금도 협소한 인간관계를 자랑하는 나였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받을 수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미약한 불안감이 들었지만, 나는 역시나 이번에도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스마트 폰 너머로 활발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민지야. 오랜만이지? 잘 지냈어?”
“응. 잘 지냈지. 만두 너도 잘 지냈어?”
이제 와서 말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그 애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지 않고, 주로 그 애의 별명인 ‘만두’라거나, ‘너’로 불렀다. 그 애 별명이 만두가 된 건 볼살이 만두처럼 통통해서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별명이었다니 굳이 내가 안 쓸 필요도 없다. 반대로 그 애는 내 이름을 꿋꿋이 민지라고 불렀다. 사실 나는 내 이름을 대체할 만한 별명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는 ‘민지’로, 그 애는 ‘만두’로 호칭하면 내가 내 이름을 부른다는 이상한 괴리감을 겪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그런 식의 호칭 정리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반대로 그 애는 ‘민지’라고 불리지 않아 좋아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이득이었다.
“나야 언제나 잘 지내지. 민지 너는 요새 뭐 하는 거 있어?”
“아니. 똑같아. 그냥 매번 일 하고, 과장한테 쿠사리 먹고 슬퍼하고, 월급날만 기다리고……. 그렇게 살고 있지.”
“그렇구나. 혹시 이번 달에 시간 돼? 너랑 만나서 오랜만에 얘기 하고 싶은데.”
처음부터 본론을 이야기했다. 전화로 얘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만두다웠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일이 바빠 그녀를 본 지 꽤 오래 된 것 같아서 나는 흥쾌히 승낙했다. 내가 메신저를 통해 얘기하는 것보다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근황을 나눈 지도 오래 된 게 사실이었다. 다음 주 주말에 약속을 잡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약속 날은 빠르게 다가왔다. ‘민지’란 이름에 그렇게 분노를 품고 있는 그녀이니까 이번에 편의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 준다면 아마 공감을 해주겠지. 나는 약속이 있기 전부터 만두를 만난다면 그 얘기부터 꺼내야지, 하고 정해 놓았다.
카페에 미리 와 앉아 있던 만두는 근 몇 달 만에 보는 것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기쁘게 웃었다.
“오랜만이야!”
“안녕. 진짜 오랜만이다. 커피 시켰어?”
그렇게 우리는 한참 동안 연예인의 이슈라거나, 범죄 뉴스를 봤냐는 등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진 않겠네. 내친김에 나는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도 얘기했다. 음료수가 벌써 반 쯤 비워져 있었다. 나는 그 애가 나보다도 더 열렬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컨대 시니컬하게 ‘봐, 그런 우연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게 김민지의 세계라니까.’라던가. 근데 만두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농담을 할지 고민하고 있는 걸까?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뭐야. 왜 반응이 없어. 진짜 신기하잖아.”
갑자기, 만두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그거 진짜 우연이 아닐 수도 있어.”라고 대답했다. 얘가 지금 농담을 다큐로 받고 있는 걸까? 그래서 ‘김민지’라는 이름이 겹치는 데 의외로 얼마나 많은 확률이 들어가는지 일장연설을 할 계획인 것일까? 그러더니 대뜸 이상한 말을 했다.
“너, 교회 안 다닌댔지?”
“최근은 그렇지. 일이 바빠서. 왜?”
나는 제멋대로인 신자였다. 사실 신을 믿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대충 성경을 보기도 했고, 부모님이 독실한 신자였으므로 가끔 따라가곤 했다. 나는 편의점에서 있었던 ‘김민지’ 사건과 만두가 내 종교를 물어보는 것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해 당황스러웠다.
“나 교회…… 비슷한 거 다니기 시작했거든. 같이 다니면 좋을 것 같아서.”
교회면 교회지, 교회 비슷한 건 대체 뭐지? 성당이면 성당이고 절이면 절이라고 확실히 말할 텐데. 뭔가 이상했다. 만두는 내가 의외로 주변 사람들에게 잘 휩쓸리는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제안을 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만두를 보지 못한 몇 달 간 그녀가 사이비 종교라도 들어간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그게 뭔데? ……미리 말해두는데, 사이비 종교 같은 거면 나 지금 당장 집에 갈 거야.”
“아이,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민지 너한테 그런 걸 말하겠어? 그냥 재밌는 거야. ‘김민지교’라고……. 들어 봤어?”
“뭐? 그게 뭐야. 너 지금 장난 쳐?”
“이름만 들어도 재밌지 않아?”
하나도 재밌지 않았다. 오늘 만두를 만나서 이상하고 재밌는 해프닝으로 떨쳐내려 했던 편의점 사건과 ‘김민지교’라는 이름이 합쳐져 계속해서 불쾌한 기분을 선사했다.
“처음부터 얘기해 줄게. 나, 결국 ‘김민지만 가입할 수 있는 카페’에 가입했거든. (”그게 뭔데?“) 아이, 들어봐. 무조건 김민지인걸 확인해. 민증을 찍어서 인증해야 된다니까? 근데 이 카페가 요즘 재밌다고 유명하거든. 거기서 나온 재밌는 이야기들이 캡쳐가 돼서 인터넷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는 거야. 난 인터넷도 좋아하고, 이름도 김민지고. 가입했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거기서 활동을 좀 열심히 하니까 정모 하자는 얘기도 나오더라고? 그래서 나갔지. 민지야, 거기 진짜 재밌어. 일단 만나면 다 같이 민지를 부르면서 인사한다고. 그러면 주위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야, 저기는 민지 밖에 없나 봐.’ 그러면 우리는 또 재밌게 얘기하고. 동명이인의 고충이란 게, 그렇잖아. 동명이인 밖에 몰라준다는 거야. 일단 첫 번째 정모에서 만난 열 명은 다 김민지였거든. 두 번째 정모부터는 양민지니 이민지니 섞여 있긴 했지만…….”
난 제발 마음속으로 ‘김민지교’가 그냥 장난에 불과한 것이기를 빌었다. 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교’같은 것 말이다.
“하다보니까 뭐, 난 한 번 빠지면 열정적으로 하잖아. 거의 고인물 수준이 돼서, 카페 운영진들하고도 아는 사이가 됐는데, ‘김민지교’라는 걸 들어 본 적 있냐고 하더라고. 아, 처음엔 나처럼 그렇게 확실하게 말해주진 않아. 그냥 고인물 되고 어어어 하다가 정신 차려보면 ‘김민지교’에 들어가 있는거야. 이미 이 사람들은 내 너무 소중한 지인들이 되어 있고, 이 사람들이랑 하는게 너무 재밌고. 나도 그래. 재밌어. 그러면 이제 자기가 잘못된 걸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데…….”
“잘못 됐다는 걸 알면서도 하고 있는 거야?”
“아, 민지야. 당연히 잘못 됐지. 나 종교 원래 그런 거 원래부터 별로 안 좋아했잖아. 근데 이게 너무 재밌어. 김민지교에 들어간 김민지라니. 평범한 김민지가 아닌 것 같잖아.”
“그래도 잘못 된걸 알고 있다니 다행이다. 너 금방 질리는 스타일이잖아. 간만 보다가 나오려고 그러는 거지?”
“간만? 글쎄……. 간만 봤다기엔 이미 좀 많이 담군 것 같긴 한데.”
문득 나는 그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되도 않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얘를 사이비(솔직히 사이비라기엔 너무 허접한 이름이었지만)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다는 그런 확신이 나를 흥분시켰다.
“너도 한 번 가볼래?”
그래서 만두가 예상했던 제안을 했을 때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좋아. 그리고, 미리 말해두는 데. 난 거기 들어가려고 가는 게 아니라 너를 데리고 나오려고 가는 거야.”
“뭐, 마음대로 해. 너도 좋아할걸?”
그리고 나는 가는 내내 그녀에게 잔소리를 해 댔다. 너 돈은 얼마나 바쳤냐. 별로 많이 안 바쳤다고 한다. 취미도 다 접고 거기만 가냐. 그렇다. 이제 내 사회관계에 그 사람들밖에 없는 것 같다. 너 이러시는 거 부모님은 아시냐. 부모님은 당연히 모른다…….
만두는 내 질문에 대답을 차근차근 다 해 줬지만, 말투에서부터 느껴지는 단호함이 그녀가 어지간한 설득으로는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의외로 ‘김민지교’의 교회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사이비의 소굴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마 만두가 일부러 우리의 약속장소를 교회와 가까운 곳으로 잡은 것 같았다. 조금 배신감이 느껴졌지만, 만두는 익숙하게 교회로 들어갔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교회 안은 밝았다. 밝아도 너무 밝았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순간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눈이 너무 밝은 실내에 적응하기까지는 금방이었다. 이윽고 벽이며 천장, 자질구레한 물건들까지 하얀색이 너무 많아서 실내가 밝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이 많았다. 밖에서 본 교회는 적당한 크기였는데, 마치 회비를 빼돌린 수련회의 숙소처럼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좁은 실내에서 우글대고 있었다.
“의외로……. 사람이 꽤 많네. 남자도 많고.”
“이름이 김민지나 민지라면 우리 종교는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거든.”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여자였지만 남자들도 많았다. 저 사람들은 이름이 김민지가 아닐 텐데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걸까? 이제 와서 만두가 나한테 몰래카메라라도 하고 있는 걸까. 사람들은 모두 하얀색 상의를 입고 있었고 어째서인지 다들 싱글생글 웃고 있는 인상이었다. 왜, 종교인들 특유의 정신 나간 것 같은 해맑음. 딱 그랬다. 여기저기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만두는 약간 시큰둥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녀와 오랜 친구였기에 그녀가 지금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즉 그 표정은 만두 입장에서- 그녀가 지금 정신 나간 해맑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빙산의 일각이야. 여기는 본부가 아니라 지부에 불과하거든. 이런 지부가 지방에 몇 개나 있어.”
그 정도로 이…… ‘정신 나간 것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야, 이거 사이비 장사 할 만하네. 우리나라에 사이비에 빠지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이 조그만 나라에.
“사람이 많아도 사이비는 사이비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들어 봐. 사람이 많으면 사이비가 아니게 돼. 이슬람교를 봐, 아직도 여성을 한낱 소유물로 여기는, 인권 따위 개나 줘버린 종교가 세계 3대 종교야. 기독교나 가톨릭은 어때? 식민지를 수탈하는데 명분이 되어 준 종교 말이야. 다 사람 수로, 힘으로 세계 3대 종교가 된 거야. 제대로 된 교리를 내세운다면 그건 사이비가 아니잖아?”
그녀가 나를 강당 같은 곳으로 이끌며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맨 끝에 앉았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김민지교’라는 이름을 쓰는 종교가 제대로 된 교리를 가지고 있겠어?”
왜 그때 그곳이 그렇게 조용했는지 모른다. 그곳도 사람은 많았는데, 다들 조용히 앉아서 무언가를-아마도 예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넓은 공간에 퍼지는 내 목소리에 사람들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나는 소름이 돋았다. 다들 똑같은 표정이었다. 나를 향해 증오를 품은 듯 하면서도 표출하지 않는, 싸늘한 무표정. 앉아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그렇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채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이 종교의 인물들이 무슨 로봇처럼 느껴졌다. 그때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다. 그들이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린 이유는 맨 앞의 강단에 어떤 여자가 한 명 섰기 때문이었다.
이건, 몰래카메라도 아니고 실제 상황이며, 내가 아주 이상하고 위험한 곳에 들어온 것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그녀의 이목구비는 평범했다. 오히려 준수한 편에 속하는 여성이었다. 다만 아주 쌍커풀이 진 아주 큰 눈 안에 비정상적으로 커 보이는 눈동자가 희번득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교인들처럼 하얀 옷에 바지를 입고 있었고, 긴 머리를 하나로 모아 묶은 상태였다.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 늙지도, 젊지도 않았다. 한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여러분!”
마이크를 쓴 것도 아닌데 큰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아마도 교주로 생각되는 사람의 말이 시작되자 다들 등에 힘을 주고 뻣뻣하게 몸을 정자세로 세우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다들 타이밍이 똑같아, 마치 프로그래밍 된 로봇 같았다.
“저희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김민지’ 입니다! 우리가 하나라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이름에는 힘이 있습니다!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들은 같이 행동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이비 종교에 매료된 사람들이라면 ‘아아, 믿습니다, 교주님!’처럼 울고불며 쓰러지는 사람이 있을 법도 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없었다. 나는 공포에 굳은 상태로 슬쩍, 대각선 앞 쪽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것으로 확신했다. 그 사람은 해맑은 무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 흥분됐는지 얼굴이 붉어져 있었지만, 몸을 부들부들 떨며 허리를 꼿꼿하게 피고 참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만두도 약간 그런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여기서 슬쩍 나가도 다들 나를 쳐다보지 않을 것 같았지만, 반대로 나를 쳐다봐서 방금 전처럼 수십명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본다면, 그리고 그 눈빛이 질책이나 분노라면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았다. 나는 교주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무 생각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회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생각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생각이 필요 없습니다! 남들 하는 대로! 누군가 시키는 대로! 그렇게 따라하기만 하면 됩니다! 의지 필요 없습니다! 개미들을 보십시오, 개미에게 의지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사회를 이륙합니다. 벌들을 보십시오. 아, 그, 육각형이란! 여러분!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군체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다들 똑같이, 어쩌면 사전에 타이밍을 맞춘 것처럼 외쳐댔다.
“우리는! 하나다!”
운동선수들이 하는 극기훈련에서나 들을 법한 말이었다. 물론 운동선수들이 그런 구호를 외치는 것은 팀워크를 위해서이다. 다들 하나가 되라는 게 정말 하나가 되라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본인들이 ‘하나’라고 믿는 것 같았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지. 지금이라도 조용히 사라진다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아무도 모르게 슬쩍 빠져 나가면 될 일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만두가 내 팔목을 붙잡지 않았다면 아마 맨 끝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허리를 숙이고 뒷문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왜 가려고 해?”
“꺄악!”
내가 놀랐던 것은, 그 말을 한 게 만두여서가 아니었다. 만두가 내 팔목을 잡고 말을 했을 때, 그 자리에 있는 교주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같은 톤으로 그 말을 내뱉었다. 마치 짠 것처럼. 하지만 이걸 어떻게 사전에 미리 계획해 놓는단 말인가.
“동명이인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힘을 얻어. 그러니 민지야, 우리 함께 하자. 너도 ‘우리’야, ‘나’이기도 하고. 군체가 되는 거야. 하나가 되는 거야. 지금 봤잖아. 우리는 모두 하나로 움직여.”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속삭였다. 이걸 짰다고 생각해도 소름이 돋았다. 다들 내 옆의 만두와 똑같은 말을, 아무런 표정 없이 하고 있었다. 뇌가 과부화에 걸린 것 같았다. 이건―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잖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니까 도저히 뇌가 돌아가지를 않았다. 공포감에 굳어 버린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였다.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공포. 이런 미친 곳에 제 발로 들어온 내가 느끼는 감정.
“이, 이거 놔!”
나는 만두의 손을 뿌리쳤다. 처음부터 많은 힘을 쥐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녀의 손은 금세 내 팔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나는 천천히 오른쪽 다리를 뒤로 내딛었고, 그 다음엔 왼쪽 다리를, 다시 그 다음엔 오른쪽 다리를 뒤로 내딛었다. 만두가 말을 하고, 그 다음 사람이 말을 이어서 하고, 그 다음 사람이 말을 이어서 하고……. 어떤 딜레이도 없이 매끄럽게 ‘한 사람’의 말이 들린다.
“너는 언제나 사회에 섞여서 남들 하는 대로 사는 게 꿈이라고 했잖아. 여기 오면 남들 하는 대로 살 수 있어. 자기 생각이나 의지 없이, 남들 하는 것처럼 그저 끌려가기만 하면 돼. 옛날에 가족 따라 몇 번 교회 갔었고 지금도 가끔 간다며, 근데 너 예수 믿어? 안 믿잖아. 그냥 간 거잖아. 휩쓸려서. 아무 생각 하지 않아도 돼. 지금 봤지. 이건 진짜야. 아무 고민하지 않아도 돼. 교주님이 다 알아서 해 줄거야. 우리가 다 알아서 해 줄 거야. 우리는…….”
말이 끝나기 전에 이미 나는 문을 열고 강당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흰 복도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뒤에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기서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뛰었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는데도 뛰어가니까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자세였다. 갑오징어는 죽기 전 극도의 공포를 느끼면 몸이 하얀색이 된다. 가도 가도 끝없이 하얗기만 한 복도를 뛰어가며 나는 마치 내가 죽기 전의 갑오징어가 된 것 같다고 느꼈다.
겨우 교회의 밖으로 빠져 나왔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호기심이 가득한 오르페우스가 아니었다. 그들이 내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을까? 양 팔에 우수수 돋은 소름을 문지르며 집으로 향한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만두의 연락처를 차단하고, 삭제했다.
그 이후 그녀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우리는 꽤 친했으니까, 사이비 종교를 포교하기 위해서 나에게 끈질기게 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삼 개월 쯤 지났을까? 같은 동네에 사는, 마트에서 우연히 말을 걸어 친하게 지내게 된 이가 자신과 함께 교회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난 교회에 그닥 좋은 기억이 없어서, 라고 응수해도 계속 나를 교회로 데려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뭔가 촉이 왔다. 나는 그녀에게 너 설마 ‘김민지교’냐고 물었다. 그녀는 순간 얼굴을 굳히더니, ‘들켰다’같은 얼굴을 하고 나에게서 사라졌다. 나중에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이름과 얼굴을 가진 사람은-그녀가 말해 준 주소에-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포교는 더욱 교묘했다. 이미 한 번의 배신을 겪은 후 나는 새로 사람 사귀는 것을 두려워했다. 설문 조사, 심리테스트, 기가 좋다고 내 팔을 붙잡는 것을 모두 단호하게 떨쳐 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포교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람의 호의를 가지고 노는 일을 할 줄은 몰랐다. 소외된 계층에게 편지를 써 달라며 낱선 이가 번화가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있었다. 그건 굳이 나만 노리는 것 같지도 않았고, 꽤나 괜찮아 보였다. 그냥 편지니까. 편지에 답장을 받을 전화번호도 적으라고 했다. 순순히 적었다. 적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편지를 써 준 이가 답장을 적었다며 받으러 오라고 했다. 주소를 검색해 보니 요가 학원이 나왔다. 그러나 나는 이 곳이 사이비임을 확신했다. 그 이후로도 내 전화번호로 끈질기게 포교 문자가 나왔다. 일일이 차단하는 것도 곤욕스러울 정도였다. 그들은 인터넷전화를 쓰는 게 아니었다. 신자들에게 일일이 문자를 보내라고 시키고 있는 거였다. 결국 나는 전화번호를 바꿨다.
세 번째는 우연이다 못해 소름이 돋았다. 언니가 출산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사람 한 명을 소개했다. 산후조리원 동기인데, 아주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아, 근데, 이름이 너랑 똑같은 민지야. 신기하지?”
“내 이름 흔하잖아.”
그 이름- 그 이름은 분명 내 이름이었지만 나는 이제 내 이름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같이 교회에 다니자고 하더라고.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엄마가 맨날 나보고 교회 가라고 그랬잖아. 요즘 교회는 애들 봐주는 것도 잘 한데. 거기서 한율이(조카의 이름이었다)가 또래 친구도 사귈 수 있을 거고. 괜찮을 것 같지 않아? 내가 우리 동생도 교회에 다녔었다고 하고 이 근처 산다니까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
그래. 사람 이름이 ‘민지’라는 것으로 편견을 가지는 건 옳지 않았다. 아무리 ‘김민지교’가 많고 그 신자들이 이름을 ‘민지’라고 개명했다 하더라도 나같이 평범한 ‘민지’가 더 많을 터였다. 굳이 언니의 동생인 나를 끌어들여서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 이상했지만,(걱정할까봐 ‘김민지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언니의 부탁에 한 번 가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그 사람은 ‘민지’가 맞았다. 거기다가 ‘김민지’였다.
“같이 가시면 좋을 거예요. 저희 교회는 단합력이 좋거든요. 다들 무슨 일 생기면 자기 일처럼 도와줘요. 모두 한 몸 같다니까요?”
나는 그들이 나를 포교하기 위해 수를 쓴 것인지 궁금했다. 그렇다면 우리 언니가 임신한 기간에 맞춰 임신하라고 한 걸까? 아니면 임신한 사람을 이용한 것일까? 저렇게 노골적으로 자신이 ‘김민지교’임을 드러내고 있는 데 내가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냐? 나는 그 자리에서 언니를 끌고 나와 버렸다. 유리 창문 안에서 그 사람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보였다.
‘흥, 꼴좋다. 산후조리원 동기마저 포교하는 인성이지만 자기가 당황스러운 일을 겪으면 대처하지 못하나 봐? 당연히 그렇겠지. 자기 의지는 없이 살고 있을 테니까.’
“너, 대체 왜 그래?!”
“언니. 내 말 잘 들어. 저 여자는 사이비야. 이름이 ‘민지’라니.”
“아니, 이름이 민지라는 걸로 사이비라니. 너 요즘 힘들어?”
“일단 언니도 오늘 여기서 헤어지고 ‘김민지교’를 찾아봐. 인터넷에 검색하면 조금 나올거야. 거긴 미친 사이비 집단이라고! 이름이 같은 사람들이 모두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정신머리 나간 종교야. 저 사람이 왜 언니한테 같이 교회를 가자고 했겠어? 뻔한 거 아니야? 내가 ‘민지’니까. 나는 더 영입하기 쉬우니까. 그래서 인거야.”‘
나중에 언니가 말한 것에 의하면 내 모습은 거의 미친 사람 같았다고 한다. 나는 카페 앞에서 언니가 반박하지도 못하게 말을 다다다 늘어놓고 그대로 혼자 사라졌고, 언니는 곰곰이 생각하다 미안하지만 이만 헤어져야 할 것 같다고 집에 왔다고 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어쩜 이럴 수 있지? 사이비 종교에 날 끌어들이려고 하다니. 난 한율이까지 있는데. 내가 그런 곳에 빠지면 어떡해? 진짜 이상한 사람한테 걸린 거였어.”
“‘김민지교’. 검색해 봤구나?”
“그래. 인터넷에 정보가 그렇게 많진 않았는데 내가 활동하던 맘카페에 게시물이 하나 있더라고. 신종 종교 조심하라면서. 어머, 그럼 맘카페에 글 올린 사람한테 포교한 것도 그 사람인거 아니야? 하지만 이상하네. 그 사람, 사진도 보내 줬거든. 교회에서 찍은 사진.”
“안이 온통 하얗지 않았어?”
“아냐. 멀쩡한 교회였어. 밖에서 찍은 것도 있었는데 그것도 진짜 교회였고.”
“요즘 사이비는 감쪽같으니까 그렇지, 언니! 일반 교회인 줄 알고 갔다가 큰일 나.”
나는 분명히 그들이 ‘김민지교’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슬슬 인터넷에 경험담이 올라올 정도로 그들의 세력이 늘었음을 알았다. 내가 그 곳에 간 지 1년이 좀 넘어서였다.
[신흥 사이비 ㄱㅁㅈㄱ 조심하세요]
초성을 쓰는 이유는 검색해서 찾아온 신자들이 게시물을 신고해 삭제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꽤 효과가 있었는지, 아직까지는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신자들이 한 몸인 것처럼 말하는 게 미친 사람들 같다는 것이었고, 또 한때 난리가 났었던 신천지보다도 더 교묘하게 자기네 종교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나는 이 나라를 떠나는게 옳은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바뀐 번호로도 계속해서 오는 교묘한 포교 문자들. 부모님은 다니던 교회가 있으니 걱정이 되지 않았고, 언니는 앞으로 교회를 가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고 이민을 갈 생각이었다. [신흥 사이비 ㄱㅁㅈㄱ 조심하세요]의 마지막 문장은 나와 상황이 똑같았다.
[그리고 다른 사이비종교랑 다른 점은, 이 종교는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요. 아주 교묘하게, 또 교묘하게……. 계속해서 사람을 붙여서 결국 포기하고 신자가 되게 하던가 아니면 노이로제가 걸려서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는 정신병자가 되게 만듭니다. 저는 이제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 볼려고요. 처음부터 엮이지 않아야 해요(특히 이름이 ㅁㅈ인 분들!). 조심하세요.]
그들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도망칠 작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무작정 이민을 떠났다. 오로지 저런 미친 정신병자 집단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목적 하나 때문이었다. 영어는 못 했지만 퇴직금을 탈탈 털어 룸쉐어를 구하고, 어학원을 끊었다. 한국어는 일체 쓰지 않고 영어만 썼고, 한국은 거의 잊은 것처럼 행동했다. 이름도 바꿨다. 내 한국어 이름은 분명 민지가 맞았지만, 다른 영어 이름을 만들었다. 미아.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이었다. 부모님께도 가끔 전화했다. 전화해서는 ‘언니 교회 다니는 거 아니지?’하고 언니의 안부만 물었다. 한국의 정세, 한국의 상황. 그런 건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 것 사이에 ‘김민지교’에 대한 뉴스가 섞여 있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았다. 아, 이제는 내가 미국에 있는데도 따라오는구나, 하고.
3년 쯤 되자 나는 미국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다. 사귀는 사람도 생겼다. 내가 알바하던 도넛 가게의 단골인 한국인 2세였다. 그는 이름마저도 브라이언으로, 나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완벽한 사람이었다. (치과 의사였다.) 한국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보이는 교회를 다니라는 시댁의 압박도 없었다. 심지어 브라이언은 교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에게 잘 대해 주는 남자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그 ‘교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를 붙잡았다. 그와 결혼하면 미국 영주권을 얻고, ‘김민지교’가 여기까지 올 일도 없으므로 나는 편하게 살게 될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가끔 나는 꿈을 꿨다. 배경은 언제나 그 교회였다. 나는 손목을 붙잡혔고,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고 중얼중얼 같은 말을 해 댄다. 나는 도망친다. 사람들은 나를 쫓아온다. 하얀 복도는 점점 가늘어진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달린다. 결국 나는 좁아진 벽 사이에 끼고 만다. 그러면 숨결 때문에 목의 솜털이 쭈뼛 설 정도 가까운 거리를 사이에 두고, 내 등 뒤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 ……끊임 없이.
그렇게 화들짝 깬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브라이언과 결혼하겠다고. 그와 결혼하면 이런 꿈을 꾸지 않을 테니까.
남편에게 한국식 이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결혼하고 한참 뒤였다. 브라이언은 우리 가족에게 꽤 잘해 주었고, 평온한 나날들이 흘러갔다. 아주 평범한 일상이 흘러가던 어느 날 그가 나한테 물었다.
“당신 한국 이름이 민지였지?”
“응. 하지만 난 미아라는 이름이 더 좋아. 여긴 미국이잖아.”
“그렇지. 아니, 나도 한국 이름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당신이? 어머님이 안 정하셨어?”
“사실 내가 정하긴 했어. 옛날에.”
“그래? 뭐야?”
이때까지만 해도 별 대수롭지 않았다.
“민수.”
남편의 성은 ‘김’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김 민수’나 ‘민수 김’이 되는 셈이었다. 그의 작명센스를 듣고 웃음이 나왔다.
“뭐야, 내 이름 따라 한거야? 내가 민지니까 당신은 민수라고?”
“뭐……. 당신 만나기 전에 생각한 거긴 한데 그렇지.”
“민수랑 민지랑, 계속 사이좋게 지내야겠네. 아무튼 그런 놀라운 소식을 새로 알려 줘서 고마워. 이제 앞으로 당신 음식엔 ‘민수’라고 적어 놓을게.”
다 먹은 그릇을 치우려는데 아무렇지 않은 투로 남편이 말했다.
“당신한테는 안 말했는데, 나 종교도 있어.”
“어머, 그래? 무슨 종교? 나를 믿는 종교?”
장난인 줄 알았기에 가볍게 농담했다. 남편은 어깨를 으쓱했다.
“농담 아니야.”
“당신 교회 싫어한다며.”
“친구 따라 갔는데 꽤 괜찮길래.”
갑자기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사이비인데 어떻게 내 남편이 나한테 말도 없이 교회를 갈 수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이 아니라?”
기분이 나빠져서, 목소리가 날카로워 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응. 엄마 따라 간 거 아냐. 친구 따라 간 거지. 당신도 같이 가자.”
나한테 권유하는 게 뻔뻔스러웠다. 아예 한 번 갔다가 너무 별로였다고 다시는 안 가는 방법도 있다. 나는 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일반적인 한국인 교회라면 사이비는 아닐 테니까. 나는 마지못해 “그래, 한 번 가보지 뭐.”하고 비꼬는 어투로 대답했다. 남편은 그런 어투의 긍정이어도 마음에 들었는지 씨익 웃었다.
집안이 조용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틀어 놓은 TV에서 한참 ‘사이비 종교’에 대한 얘기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한국에는 더 특이한 종교가 있다죠?]
한국, 특이한 종교. 마침 오늘 아침 남편의 말이 떠올라, 기분이 나빠진다.
[흔하디 흔한 이름인 존이 이곳에서만큼은 각광받겠군요. 이름이 존이라서 이름에 힘이 있다고 하는 종교가 있다면? 한국에는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도 신도들이 생기고 있는, ‘김민지교’이죠. 놀랍게도 동명이인들이 모여서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오직 ‘민지’만 신도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름이 ‘민지’가 아니면 어떡하냐고요? 개명을 하면 되는 거죠!]
‘김민지교’.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구나. 미국 방송에 나올 정도로 유명해져버린 것 같았다. 다 잊고 살았던 그 때의 악몽이 떠오른다. 하필 남편이 나한테 교회를 가자고 한 날에 이런 방송을 보게 되다니. 더 이상 방송을 보기 싫어서 TV를 꺼 버렸다.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았다. 멀리 있는 교회도 아닐 텐데 교외까지 운전을 하고 보니, 그곳은 하얗고 웅장한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아무리 봐도 교회는 아니었다. 십자가가 없었다. 남편은 어떠한 부연설명 없이 그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상의가 전부 하얀 색이었다.
“어때?”
“날 지금 어디로 데려온 거야? 여기…… 교회 아니지?”
내 말끝이 떨렸다.
“당신도 좋아할 거야.”
남편은 그 말 이외에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건물 입구로 걸어갔다. 나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그의 뒤를 쫓았다.
하얀 상의를 입은 사람들이 빼곡이 가득 차 있었다. 나 혼자 검은 상의를 입고 있었다. 마치 하얀 도화지에 잘못 찍은 작은 연필점처럼, 나만 그 곳에서 튀고 있었다. 교주를 기다리듯 다들 착석했다. 남편은 익숙하게 의자에 앉았다. 나는 억지로 그 옆에 앉았다. 아무리 봐도 이건 ‘김민지교’가 맞았다. 몇 년 전의 익숙한 풍경이었다. 조금이 지나 교단으로 올라오는 교주도 익숙했다.
그때 본 그 교주가 맞았다. 결국 나는 도망치지 못한 것이다. 교주는 또 일장 연설을 시작했지만 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교주의 방언과도 같은 연설과, 무표정한 사람들이 교주의 손짓 하나에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리고, 똑같이 행동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감정이 같은 것처럼, 같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정말로 이름에 힘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이들이 광신도라서 그렇게 믿는다는 것 자체로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걸까.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초점 없는 흐릿한 눈으로 교단 쪽을 살폈다.
그리고 저 멀리 만두가 있었다. 아, 나의 옛 친구가 있었다! 나의 옛 친구 민지가 교주의 최측근에 서서 정확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민지가 나를 보며 웃는다. 환한 웃음이다. 그녀는 입모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도 이제 김민지.’
공백 포함 1960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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