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本堂), 성당(聖堂), 경당(經堂), 공소(公所)
한국 천주교회에서 전례공간의 역사적 발전은 좀 남다른 데가 있다.
유럽교회는 전례공간의 크기가 작은 순으로 성당이나 본당, 그리고 경당이나 공소의 순으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한국은 박해로 인한 성직자의 부재(不在)와 선교지역이라는 특징으로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는 공소가 먼저 형성되었고 경당, 성당, 본당 순으로 발전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박해와 성직자들의 부족으로 한국 천주교회는 공소예절이 주를 이루었다.
공소(公所)란 교회가 정한 전례공간을 의미하는 한국 천주교회의 토착화된 전례용어다.
박해시대 때는 평신도 지도자의 집이 공소가 되어 교리와 기도를 하였고, 이후 공소를 별도로 건축하여
사제가 오면 미사를 드리는 공적인 장소로 발전하였다.
경당(經堂)은 기도문을 나타내는 경(經)에 집 당(堂)을 합쳐 만든 글자로 ‘경문 외우는 집’이라는 뜻이다.
공소는 경당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박해시대를 지나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된 후 지역별로 신자들이 정착하고 교회의 관할권을 나누면서
담당 지역 내 신자들을 위한 성당을 본당(本堂)이라고 불렀다.
서방에서는 그리스도교 전례를 거행하는 공간에 대한 용어들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르게 사용된다.
전례의 주례자인 사도들과 그 후계자인 주교들이 특성화하는 용어이거나 건축양식이 그대로 그리스도교화되어
사용된 용어가 있다. 사도 시대부터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전해 듣고 그분이 행하라고 한 예(禮)를
함께 모여서 실현할 장소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유다교의 회당을 함께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로마제국의 박해로 인해 드러내놓고 그리스도교 전례를 행할 수가 없어서
약간 큰 집인 도무스(Domus)에서 모였다.
이러한 교회 형태를 도무스 엑클레시에(Domus ecclesiae, 가정교회)라고 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을 매장했던 카타쿰바(Catacumba, 지하무덤)에서는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예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여기서의 Domus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발음이 변화되어, 현재는 이탈리아어로 두오모(Duomo)라 하고
‘주교좌(主敎座)가 있는 성당’을 의미한다.
오랜 기간의 박해시기를 지나 마지막 박해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가 죽고,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306-337)가 권력을 잡으면서 313년 밀라노 칙령을 선포해 그리스도교의 자유를 보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교는 공식적으로 전례를 거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였던‘공회당’(公會堂)을 뜻하는 바실리카(Basilica)의 양식을
324년 완공된 라테라노의 성 요한 대성전에 처음 적용했다.
이때부터 하나의 건축양식이 된 바실리카는 직사각형의 공간에 원주들로 구성한 성당을 일컫는 용어가 되었다.
이 형태는 지금도 자주 사용하는 성당 건축 양식이 되었다.
서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거대한 고딕 양식의 성당들을 카테드랄레(Cathedrale)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주교가 앉는 팔걸이가 있는 의자, 즉 주교좌인 카테드라(cathedra)에서 유래했다.
초대 교회에서는 주교가 이 주교좌에 앉아서 예식거행을 주례했고 교도직을 수행했다.
그래서 주교좌는 주교의 권위와 가르침을 상징한다.
이러한 의미를 지금도 이어받아서 강론을 이곳에서 앉아 한다.
이런 이유로 카테드랄레는 주교좌가 있는 교구의 중심 성당을 뜻한다.
왕이나 성주가 머무는 궁전이나 대성전의 측랑에 배치된 작은 제대들이 있는 곳을 카펠라(cappella)라고 한다.
이를‘경당’이라고 번역한다. 본래 이 용어는 투르의 주교 성 마르티노의 유물인 캅빠(cappa, 성대한 예식 때,
성시간이나 성체강복 때 주례자가 입는 망토 모양의 전례복)를 보관하고 있는 파리 왕궁의 한 방을 가리켰다.
그러나 경당 중에서는 식스토 4세 교황이 개인적으로 미사를 드렸고, 현재는 교황 선출장소이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심판 벽화로 유명한 시스티나 경당이 가장 유명하다.
즉 카펠라는 본당 공동체나 수도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공적 미사의 장소라기보다는 개인 신심을 위한 미사나
소규모 공동체가 모여 기도하거나 개별적으로 묵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성당은 기본적으로 기도와 성사거행을 중심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모인 공간이다.
그래서 교회법은 “성당은 하느님 경배를 위하여 지정된 거룩한 건물을”뜻한다고 정의하였다(제1214조).
그리고 성당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모시는 감실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성당은 구세주 예수님을 만나는 곳이다.
그러니 성당에 들어설 때 마음을 가다듬고, 옷매무새도 고치면서 예의를 지키라고 하는 것이다.
또 남자들이 입는 반바지, 여자들의 너무 짧은 치마, 슬리퍼 형태의 신발은 금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성당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거나,
하느님께 합당한 흠숭의 자세를 갖추지 않는, 그래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대화[祈禱]를 나누기보다는
신자들이 서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관계자들은 모두 성당이 하느님의 집으로서 알맞은 청결과 미관이 유지되게 하고,
장소의 거룩함에 맞지 아니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치우도록 보살펴야 한다.”(제1220조 1항).
그리고 교회법은 “제대 즉 성찬 제헌이 거행되는 제단은 그것이 바닥에 고착되어 움직일 수 없도록
설치”(제1235조 1항)되어야 하고,
“교회의 전통적 관습을 따라 고정 제대의 제단은 돌이어야 할 뿐 아니라 하나의 자연석이어야 한다.
그러나 주교회의의 판단에 따라 품위 있고 단단한 다른 재료도 사용될 수 있다.”(제1236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이상의 이유들로 성당건축에 있어서 비용의 많고 적음, 규모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지역과 교우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전례거행에 적합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느냐가 관건이다.
또한 그 거룩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본당 신자들의 정성이 얼마나 많이 담겨져 있는 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신들과 하느님이 만나는 공간을 만들면서 성당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고
품위 있는 모습을 만들지 못한다면, 매일 찾고 싶은 공간일까?
집중되지 않고 산만하기만 해서 기도가 되지 않는다고 화내지 않을까?
아무런 정성도 보태지 않고 이용만 하려고 하는 ‘무임승차’는 너무 이기적이지 않을까?
신자들의 더 현명한 판단과 정성어린 참여를 부탁한다.
연중 제5주일(2017. 2. 5)